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5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54화(154/388)
154화. 이상한 며느리 (5)
투석실에서 근무하다가 코디네이터로 전향한 최나연.
곧 증축될 장기이식센터 때문에 야근하던 그녀가 서류철을 건넸다.
“원래 외부인은 열람이 금지된 거 아시죠? 이 선생님이니까 특별히 보여 드리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짧은 대답을 건넨 진혁의 시선이 서류철을 향했다.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
장기 기증 서약서.
그리고 상담일지까지.
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지만,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원본 서류인지는 어떻게 확인하죠? 위조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어서요.”
“이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직접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했어요.”
“관할 동사무소까지 가셨다고요?”
“아뇨, 시영 아파트 옆에 있는 동사무소에 갔죠. 김 주사님이 발급처에 확인까지 해 주셨어요.”
유선 연락까지 취해 진위를 확인했다는 말.
다른 서류들은 진짜라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은요? 전화로 주민등록대장까지 확인할 순 없을 거 같은데요.”
“사진하고 실물이 크게 다르진 않던데……. 그건 왜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갱지로 만든 거라 조금 걱정돼서요. 홀로그램도 없으니까요.”
“홀로그램이요?”
“네, 그냥 갱지 위에 코팅만 했으니까요. 혹시 아드님은 만나 보셨어요?”
진혁이 말을 돌렸지만, 최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십수 년 동안 똑같이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두고 이상함을 논하니 그럴 수밖에.
게다가 방송과 관련된 일이라지만, 꼬치꼬치 캐묻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건 왜요?”
“검사 기록이 없어서요. 보통 이런 경우엔 아들이 직접 나서잖아요.”
“글쎄요. 이런 경우가 없는 건 또 아니라서요.”
“음…….”
“뭐, 저도 직접 본 건 아닌데요. 아드님은 지방간이 심해서 간을 이식할 수 없다고만 들었어요.”
“그렇군요. 실례 많았습니다.”
쓰게 웃은 진혁이 곧장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최나연이 이상하게 여긴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 * *
다시 병동으로 돌아가는 길.
외래 환자는 썰물같이 빠져나갔지만, 의료진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송팀 직원은 환자를 옮기느라 바빴고.
검사실에서 일하는 거로 보이는 간호사는 혈액이 가득 담긴 카트를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뿐이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간 액팅을 하고 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간 사망 선고를 하고 있을 터였다.
혹자는 중환자실을 두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라고 일컫지만.
광의의 의미로 보면, 병원 자체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혁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 자신의 행동에 따라 윤영철의 생사가 엇갈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여러 생각이 들어 한참을 서 있던 진혁이 쓰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란했다.
뭐, 누군간 말하리라.
천하의 이진혁이 왜 이러냐고.
하지만 그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지방에 있다는 이유로 서신대 병원은 이식 환자한테 외면받았고.
심장과 폐를 이식하려는 환자는 서울로 올라갔으니까.
그렇게 망부석처럼 한참 서 있다 보니 누군가 말을 걸기도 했지만 진혁은 어색하게 응대할 뿐이었다.
그러고선 윤영철의 행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왜 연락하지 않았을까.
검사 기록이라도 있다면 부적합 판정을 받아 그런 거라고 여길 테지만, 그것도 아닌 상황.
가족이 있음에도 찾지 않은 게 분명했다.
물론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식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얼마 없다는 걸 고려한다면, 제 추측이 맞으리라.
그래, 어쩌면.
최재성의 말대로 사이가 나빠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 * *
급하게 전화를 받고 돌아온 로젯.
일렉티브 수술(Elective surgery, 정규 수술)은 끝난 지 오래였지만, 응급 수술이 있었기에 고민을 오래할 수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수술은 또다시 길어졌다.
담관을 절제하고.
간과 장을 직접 이어 줘야 했기에 당연한 일.
집도의가 아니었기에 진혁은 평소처럼 행동했다.
리트렉터를 당기고.
석션을 한다.
때로는 수술 도구를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수술이 막바지에 이른 건 새벽 3시.
개복했던 가슴을 닫는 걸 지켜보며 진혁은 생각에 잠겼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단언컨대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최소한의 윤리 도덕을 지키며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영철을 무작정 비난할 수 있을까.
불특정 다수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그러니까 이남춘 교수가 주장하는 그런 일들은 애초에 인간 본성을 너무 무시한 일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물질적 보상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차라리 음성화된 물질적 보상을 제도화하자고.
허나, 이는 선을 한참 넘은 일.
고민 끝에 진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하는 데까지 해 보자고.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고.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컨퍼런스 때, 윤영철의 이름이 언급됐다.
* * *
간담췌의 컨퍼런스는 ER과 결이 달랐다.
외래 환자야 이슈는 아니었지만, 수술과 입원 환자가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학술 컨퍼런스를 짧게 끝낸 뒤.
전날 수술한 환자의 결과를 보고하고.
당일 수술 환자의 스테이터스를 논하며 수술 방향을 정하는 엑스레이 컨퍼런스가 계속됐다.
모든 의료진이 모인 자리에서 황선웅이 고했다.
“윤영철 환자는 일정을 다시 어레인지 중입니다.”
“최대한 빨리하는 게 좋겠는데, 푸시는 해 봤나?”
“네, 보호자를 계속 설득하고 있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지?”
“부작용이 염려돼서 망설이는 거 같습니다.”
황선웅의 대답에 이남춘 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보호자이자 공여자인 하유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끌려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공기처럼 서 있어야 할 진혁이 손을 들었다.
“저…….”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골든타임을 놓칠까 봐 걱정됩니다.”
“으음?”
이남춘이 얕은 침음성을 내뱉고.
다른 이들 또한 의아한 기색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병동 담당도 아니고.
수술방 담당인 진혁이 나선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섰다면 컨퍼런스가 끝난 뒤 불려 갔을 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진혁.
의아한 기색 끝에 호의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다른 보호자한테 연락해서 액션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네, 혹시 괜한 말이라도 나올까 봐 걱정됩니다.”
진혁이 한참 촬영 중이라는 걸 상기시키자, 누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영철 환자는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닌가?”
“그게 사실…….”
진혁의 설명은 계속됐다.
이남춘 교수와 나눴던 대담을 상기시키며.
코디네이터를 찾아갔던 일 또한 고했다.
그러자.
“허허, 너무 환자한테 몰입하는 거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요. 아직 인턴이지 않습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환자 생각까지 하는 게 참 기특합니다.”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춘계 학술 대회 때 쌓아 둔 평판.
그리고 외과를 지원할 거라는 기대감이 불러일으킨 반작용이었다.
* * *
또다시 선을 넘었다.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인턴이 컨퍼런스 때 발언했고.
환자를 설득해 보겠다고 나섰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장 회진이 끝나자 장혁준이 달려왔다.
“어떻게 하려고요.”
“하는 데까진 해 봐야죠.”
“방법은 있어요?”
“일단 윤영철 환자를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려고요. 하유미 환자 좀 맡아 주세요. 그러니까…….”
윗선의 승인을 받은 이상 계획은 간단했다.
장혁준이 하유미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면, 진혁이 그사이에 윤영철을 찾아가 설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혁준이 매가리 없이 병실 밖으로 나오자 진혁이 의아해했다.
“뭐래요?”
“속이 안 좋아서 좀 그렇대요.”
“그래도 푸시했어야죠.”
“와, 저도 해 봤죠.”
“어떻게 했는데요.”
“아, 그게 좀…….”
사회 경험이 부족했기에 이런 류의 거짓말에 익숙하지 않은 장혁준.
진혁이 그를 대신해 36호실에 들어섰다.
곧, 윤영철과 하유미가 눈에 들어왔다.
하유미는 멀쩡해 보였지만 윤영철의 안색은 며칠 전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먼저 말을 꺼낸 건 하유미였다.
“저, 오후에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윤영철 환자 때문에 왔습니다.”
“그래요?”
“네, CT를 찍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장혁준이 한 번 실패한 상황.
진혁은 윤영철을 밖으로 빼내려고 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하유미의 말이 길어졌다.
“CT는 지난번에 찍었는데요.”
“수술 일정이 딜레이돼서 다시 찍어 봐야 합니다.”
“회진 때 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
“교수님께서 지시하신 겁니다. 환자분, 잠깐 내려와 보시겠어요.”
단호한 대답.
하유미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고.
윤영철은 군말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휠체어와 연결된 폴대에 라인을 매달고.
몸을 휘청이는 그를 붙잡고 앉혀야 했다.
곧,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윤영철 또한 마찬가지.
윤영철이 입을 연 건 서관 밖으로 나설 즈음이었다.
* * *
한참 마음고생을 했는지, 윤영철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잠깐 산책이나 하시죠.”
“산책이요?”
“네, 병원 내에선 말씀드릴 수 없는 문제라서요.”
은연중에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티 냈지만, 윤영철은 태연한 기색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수없이 많은 일을 겪은 그.
연륜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었다.
곧,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 선 진혁이 말했다.
“하유미 환자와 구부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금 하유미 씨를 사칭하는 분이라고 해야겠지요.”
“……!”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당장 자식한테 전화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진혁은 그를 향해 물었다.
어떤 심정이냐고.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한참 말이 없던 윤영철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은 없습니다.”
“서류는 진본인 걸 확인했습니다.”
“서류상 가족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연을 끊고 산 지 수십 년이 넘었습니다.”
“……!”
“살고 싶었습니다. 살고 싶어서 업체를 수소문했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순순히 제 잘못을 인정하는 윤영철.
하유미와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혹은 잘못을 덮어 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진혁이 탄식했다.
“이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를 주신 겁니까.”
“1억 남짓 줬습니다.”
“추가로 요구한 돈은요.”
“아직 주지 않았습니다.”
최재성이 그들의 얘기를 엿들었던 그 시점에 멈춰 있다는 말.
진혁은 한참 말없이 서 있었고.
윤영철 또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