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6화(16/388)
16화. 프리인턴 교육 (7)
택시에서 내린 진혁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이태희가 자신을 붙잡더니,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뭐야, 왜 이러는 건데?’
당황스러움도 잠시.
술 냄새가 많이 났는지 그녀가 어이없어했다.
“술까지 마시고 온 거야?”
“그럴 일이 있어서요. 왜요? 혼날까 봐요?”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
“그 국회 의원이 부원장님한테 항의했나 봐. 징계 이야기가 나온대!”
“하…….”
진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한 게 하나도 없건만, 무슨 징계를 내린단 말인가.
하지만 이태희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어떻게 하지? 큰일이야. 큰일 났다고!”
불안해하는 눈빛과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한 이태희.
진혁이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기자를 사칭한 건 쉽게 못 밝힐 거예요.”
“어?”
“그때 실명을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내 걱정을 하는 게 아니잖아!!”
순간 이태희가 어이없어했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하지만, 곧.
이진혁이 자신을 부르던 때가 떠오른다.
– 이 기자님!! 여기요! 여기!!
– 이 기자님!!!
그는 자신의 실명을 부르지 않았다.
반면, 자신은.
– 진혁아, 어떻게 된 거야!?
그의 실명을 불러 버렸다.
끔찍한 사실을 인지한 이태희의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나, 나 때문에.”
“내가 먼저 도와달라고 한 거잖아요.”
“미, 미안해.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내가 그때 이름만 부르지 않았어도…….”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방법? 무슨 방법?”
그녀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은 진혁이 고개를 돌려 불 꺼진 골프장을 응시했다.
‘오크밸리에 문의했을 테고. 아신 병원 의사들이 연수 온 걸 알고 내 신원을 확인했겠지. 그런 뒤에 부원장한테까지 전화로 항의한 거고.’
징계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건, 자신의 행동을 이상하게 부풀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
어찌 보면 위기였다.
하지만, 자신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익장.
이대로 순순히 당해 줄 마음은 없었다.
“아까 사진 찍었다고 했죠?”
“아, 응.”
“방에 가서 카메라 좀 갖다줄래요?”
“카메라?”
“네, 기자한테 제보하게요.”
순간 이태희의 눈이 커졌다.
보험용으로 찍어 놓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써먹을지 몰랐던 탓이다.
“아는 기자가 있어?”
“있어요. 기레기 같은 기자요.”
“기레기? 기레기가 뭔데.”
“그런 게 있어요.”
진혁이 강기재를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가 제 맘대로 움직여 줄 거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이미 선빵을 맞은 상황.
카운터를 날릴 차례였다.
* * *
띠리리리링.
요란스럽게 울리는 전화.
김 순경과 술잔을 기울이던 강기재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김 순경! 뭐 해!”
“네?”
“전화 울린다고.”
“와. 여기 강 기자님 집이거든요?”
명확한 거부 의사.
강기재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딸깍.
“네? 누구라고요? 이진혁?”
너무 흔한 이름.
강기재는 여전히 진혁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자 통화기 너머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동양호텔에서 뵀던 이진혁입니다. 의사요. 의사.]“아아! 우리 의사 선생님! 또 환자 상태 물어보려고 전화하신 겁니까?”
[아뇨, 일이 있어서요.]“무슨 일이요?”
[혹시 도꾸다이(특종) 하나 하시렵니까?]기자들만이 쓰는 은어.
사회 초년생에 가까운 인턴이 알 법한 단어가 아니었기에 의아했지만, 곧장 되물었다.
“도꾸다이? 거? 내가 아는 도꾸다이가 맞습니까?”
[큰 건입니다.]“오오.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여의도 영감님이랑 연관돼 있는데 괜찮겠어요?]“영감님이요?”
[힘들면 말씀하세요. 다른 분한테 던지면 되니까요.]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빠지라는 말.
강기재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이야. 우리 의사 선생님. 샌님처럼 생기셨는데 아주 밀당도 잘하시네.”
[긴말하지 말죠.]“저 메이저 출신입니다. 메이저.”
[메이저 출신이라 더 예민할 거 같은데요?]“부귀영화를 바랐으면 서울에 계속 있었겠죠. 촌구석으로 내려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하.”
반드시 내보내겠다는 말.
그제야 진혁의 설명이 시작됐다.
국회 의원의 이름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사진으로 확인하면 될 테니 상관없었다.
“이거이거. 아주 고약한 영감님이네.”
[쓰레기라고 정정하죠. 사람이 죽을 뻔했습니다. 기사 치실 거죠?]“네, 그래도 좀 시끄러울 겁니다.”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오케이. 그럼 필름부터 보내 주십쇼. 여기 주소가…….”
뚜욱.
전화기를 내려놓은 강기재가 곧장 뛰쳐나갔다.
같이 술을 마시고 있던 김 순경만 황당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잠시 후.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저녁 늦은 시간.
원주에서 동해까지 가는 퀵.
물가를 감안해도 요금이 꽤나 비쌌다.
카메라 필름을 꺼내 든 이태희가 물었다.
“너 돈 있어?”
“없죠.”
“그럼 어떻게 하려고.”
“착불해야죠. 착불.”
강기재를 향한 소소한 복수였다.
* * *
퀵을 보낸 뒤 다시 올라가고 있을 때.
이태희가 갑자기 두 팔로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으으. 춥다. 너무 추워.”
진혁이 반사적으로 그녀의 옷차림을 살폈다.
아직 2월 중순.
한창 쌀쌀한 날씨인데 두꺼운 패딩도 아니고, 점퍼 차림이었다.
“따뜻하게 좀 입고 오지 그랬어요.”
“와…….”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어요?”
“내가 몇 시간을 기다린 줄 알아? 이렇게 늦게 올 줄 알았으면 패딩 입고 왔을 거야!”
“아!”
순간 진혁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이태희가 앞에 서 있었다.
언제 올 줄 알고 딱 맞춰서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한참을 기다렸을 게 분명했다.
‘걱정돼서 계속 기다렸던 건가.’
몇 시간이나 기다렸을까.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진혁은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잔뜩 찌푸린 미간.
숨을 쉴 때마다 하얗게 나오는 입김.
추워서 그런지 더욱 새하얀 피부.
붉어진 목덜미와 귀까지.
외모도 눈에 들어왔지만, 무엇보다 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의리도 있고.’
진혁이 애써 속내를 숨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쩌면 회귀했다는 걸 티 내지 않기 위한 말투일지도 몰랐다.
“내 옷 줄까요?”
원한다면 옷을 벗어 주겠다는 말투.
이태희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너 여자한테 인기 없었지?”
“?”
“여자 친구는 대체 어떻게 사귄 거니?”
“그거 진짜 아니라니까요.”
“그때 다 들었거든? 너 그런 식이면 평생 혼자 산다. 아무도 옆에 없을 거야.”
“이번엔 결혼도 할 거예요.”
그녀와 드잡이질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나온 본심.
이태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결혼까지 생각하다가 깨진 거구나.”
“아니거든요.”
“네네. 그러시겠죠.”
“하…….”
진혁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생에선 평생 혼자 살았다지만, 이번 생은 다를 터.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수 없는 탓에 오해가 생기고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냥 말없이 옷을 벗어 줄 뿐이다.
처음부터 말없이 옷을 벗어 주는 게 나을 뻔했다.
* * *
계속된 오르막길.
이젠 허연 입김마저 나왔다.
“이럴 거면 그냥 로비에서 전화할걸.”
“로비는 무슨. 장길만 선생님이 아직도 로비에 있다니까?”
“그 양반도 끈질기네요.”
“뭐, 위에서 시켰으니까. 근데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온 거야?”
“? 저 조용히 살기로 한 사람입니다.”
단호한 대답에 이태희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늦게 와? 술까지 마시고?”
“사정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왜 이렇게 늦게 온 건데?”
“잠깐 스크럽(수술실에서 보조 서는 것) 들어갔다 왔어요.”
“뭐! 어시를 서고 왔다고?”
이태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진혁이 쓰게 웃었다.
‘이 정도 반응이면, 아신 병원도 뒤집히겠는데. 아, 진짜.’
안 그래도 뜻하지 않게 유명해진 상황.
괜히 구설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태희는 우군.
그녀에게 최소한의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그러니까…….”
설명은 한참 계속됐다.
그러다가 제 실수를 깨달았다.
‘아, 췌장암! 췌장암을 말씀 안 드렸구나.’
몇 년 후 최지봉은 췌장암으로 죽는다.
췌장암은 생존율이 10% 이내인 무서운 암.
더욱 무서운 건 증상이 없어서였다.
증상이 발현될 때쯤은 말기인 게 보통인 것이다.
하지만.
‘조기 발견만 할 수 있다면 생존율이 높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갑자기 진혁이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제 안위만 생각하며 아신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잘 말씀드려 달라고 청했던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야! 이진혁! 같이 가! 아. 진짜!”
그 뒤를 이태희가 냉큼 뒤따랐다.
힘겹게 걸어온 길을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 *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
누군가가 제 미래를 알려 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십중팔구는 믿지 못하고 부정할 게 뻔했다.
최지봉도 같은 반응이었다.
[뭐? 췌장암 검사를 받으라고?]“네, 건강 검진 때 보통 췌장은 스킵하니까 이번에 받아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갑자기 뭔 소리를 하는 거야.]“오늘 술 드시는 거 보니까 받아 보셨으면 해서요.”
[야. 이진혁이.]“네. 교수님.”
[네가 내 마누라냐?]순간 진혁이 할 말을 잃었다.
미래에는 건강 검진 때 췌장 CT를 찍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직은 1998년.
설득할 논리나 근거가 부족했다.
[이거이거. 술 취했구만, 취했어.]“아, 아닙니다.”
[이럴 때 전화하라고 핸드폰 번호 알려 준 거 아니다. 끊어!]“교수님!”
[왜!]진혁이 다급히 그를 붙잡고 숨을 골랐다.
“저 CS(흉부외과) 가겠습니다.”
[뭐?]“CS 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님도 췌장암 검사 한번 받아 보세요. 오래 사셔야, 찾아뵙고 모르는 건 여쭤도 보죠.”
[이게 아주 딜을 하려 드네.]“그건 아닙니다.”
[됐어. 이놈아. 이거 아주 웃긴 놈일세.]자칫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최지봉이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제 안위를 생각하는 제자가 기특한 모양이었다.
[그 맘 변치 마라. 끊는다.]“네, 교수님.”
뚜욱.
곧바로 끊기는 전화.
하지만, 마지막 말을 고려한다면 최지봉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성공한 건가.’
진혁이 희게 웃자 이태희가 물었다.
“뭔데? 뭔데 그래?”
“응?”
“갑자기 Pancreatic Cancer(췌장암) 검사를 권하길래.”
“그냥 좀 걸리는 게 있어서요.”
“근데 너 진짜 CS 갈 거야?”
“아뇨? 아직 고민 중인데요?”
“그럼 방금 말한 건 뭔데?”
“거짓말이죠. 일단 검사받는 게 중요하니까요.”
태연한 대답에 이태희가 황당해했다.
‘마마보이에 사고뭉치. 거기에 거짓말까지!’
이진혁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녀의 반응을 개의치 않아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까요.”
“와……! 너도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