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65화(165/388)
165화. 할 수 없는 일 (4)
안수현의 부친인 안정호 또한 가습기 살균제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여겼다.
해서 CT를 찍어 보자고 했고 안정호 또한 동의했다.
한데 CM(호흡기내과)은 거부했다.
왜?
어째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진혁이 마우스 스크롤을 움직였다.
드르럭.
드르럭.
차트를 맨 위로 올리자 히스토리가 한눈에 보였다.
랩(Lab, 피 검사) 검사 결과는 정상.
ABGA 또한 정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Chest PA(흉부 X-ray 영상) 또한 깨끗했다.
CT를 찍어 보자고 했던 안정호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였지만, 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X-ray 검사 결과야 그렇다고 쳐도.
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동맥혈 검사(ABGA) 또한 정상인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가 너무 깨끗한데……. 혹시 퇴근을 못 해서? 그래서 영향을 받지 않은 건가?’
아직 주5일제가 도입되기 전인 상황.
당연히 토요일도 출근해야 했고.
주 69시간 근무 또한 당연시됐기에, 어쩌면 집에 있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허나 잠은 잤을 터.
이상한 일이었다.
진혁이 숨을 고르며 여러 가능성을 따져 봤지만, 선뜻 떠오르는 건 없었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딸깍.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GS 인턴 이진혁입니다.”
[안녕하지 못하겠는데요.]“네?”
[그쪽 때문에 안녕하지 못하다고요.]“…….”
[할 말 없으면 끊죠.]“잠시만요, 선생님!”
진혁이 곧장 인트라넷을 확인했다.
혹시 전화를 잘못했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ER에 내려왔던 정우택의 전화번호가 맞았다.
“안수현 환자 주치의라서 연락드렸습니다. 아직 발생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그런데요.]“보호자인 안정호 씨가 본인도 체스트 CT를 찍는 걸 희망했는데, 찍어 보면 안 되겠습니까.”
[아, 진짜!!]“……?”
[야! 너 내가 만만해!? 너 때문에 내가 무슨 욕을 먹은 줄 알아!]정우택이 급발진하자, 진혁이 의아해했다.
타과의 진료에 간섭하는 건 선을 넘는 행위가 맞았지만.
새벽만 해도 그 자신의 호출에 즉각 내려왔던 정우택이 아니던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궁금합니다.”
[너 환자한테 뭐라고 지껄였어! 어!]“…….”
[환자가 이진혁 선생이 CT를 찍어 보라고 했다고 교수님 앞에서 말했다고! 감히 그런 말을 하게 말하게 만들어!!]“사정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정? 무슨 사정? 랩(피 검사) 찍어 봤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고! 나중에 수가 삭감되면 니가 책임질 거야!? 어!]“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뭐! 네 맘대로 해! 나도 조지려면 조지고. 네 맘대로 하라고!]뚜욱.
곧바로 끊긴 전화.
진혁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전화를 끊은 정우택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 그 자신도 할 만큼 했다.
그도 그럴 게.
아신 병원이 어디 보통 병원이던가.
상급 종합 병원이었다.
3차 병원인 만큼 진료를 받으려면 1차 혹은 2차 진료 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받아야 했고.
외래 일정을 잡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한데, ER(응급실)로 접수해 CM(호흡기내과)으로 컨설트하는 우회 경로까지 받아 줬다.
왜?
말리그인 이진혁이 요구했으니까.
김상혁 또한 넌지시 부탁했으니까.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외래를 잡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ER을 통해 들어오는 환자가 많았지만, 그건 이상이 있을 때 하는 일.
한데 안정호의 검사 결과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들인 안수현과 그 양태가 다른 것이다.
그 덕분에.
– 환자를 받은 이유가 뭐지? 루틴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도 없었는데?
– 가습기 살균제가 문제라니? 내가 지금 이런 말을 들어야겠나!
– 다른 과 인턴이 우리 과 일에 간섭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나!?
욕이란 욕은 다 먹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치프한테도 따로 불려가 욕지거리마저 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참고 또 참았다.
말리그랑 불화를 일으켰던 이들의 말로가 어떻게 됐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CT를 찍어 보자는 말에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X발. 말리그랑 괜히 엮여서.”
욕지거리를 내뱉은 정우택이 다시 움직였다.
일과 시간이 끝나면 가능한 퇴근.
퍼뜩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20분이 지났을 때.
안수현의 병실에 들른 정우택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 * *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
절로 코웃음이 났고.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작 인턴인 이진혁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주치의인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안수현이 입원한 병실까지 찾아올 리 없었으니까.
뭐라 소리치려던 순간.
정우택의 눈에 카메라를 들쳐멘 김석대가 보였다.
“이, 이익!!”
“선생님, 죄송합니다.”
이진혁이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정우택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참 촬영 중인 상황.
욕지거리를 내뱉는 건 빌미를 줄 뿐이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죠? 어차피 맘대로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사정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사정이요!?”
“…….”
“카메라만 들이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까! 위에 보고할 겁니다.”
정우택의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기에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참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분원으로 쫓겨난 박태준처럼 조인트를 까고 싶은데 참는 게 분명했으니까.
곧 정우택이 밖으로 나가자, 안정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차라리 외래 때 말씀드려야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 실수했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아니었는데요.”
“…….”
“CT를 찍을 필요 없다는 말에 선생님 이름을 팔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안정호의 표정은 참담했다.
회진 때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허나 이미 지난 일.
프리라운딩 때문에 끝까지 케어하지 못한 그 자신의 책임도 있었기에, 진혁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가습기를 계속 트신 건 맞습니까?”
“네?”
“CT를 찍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와서 그렇습니다.”
“아…….”
“말실수도 그렇지만, 그 검사 결과 때문에 호흡기내과 선생님들은 CT를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순간 안정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차라리 같이 아팠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차라리 그 자신이 아프고 아들은 멀쩡하길 바랐다.
한데 그 자신은 아니었다.
“혹시 퇴근이 늦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주무실 때도 틀어 놨다고 하셨는데요. 조금 이상합니다.”
“사실 코골이가 심해서 옷방에서 잔 적도 많습니다. 가습기가 없는 방입니다.”
“아…….”
진혁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는 대부분 가정주부와 아이들.
생각보다 노출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됐다.
“어머님이 검사를 받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지금 어디 계신 겁니까?”
“잠깐 통화하러 나갔습니다. 근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밤새 울고 분노하고 지금 제정신이 아닙니다.”
검사를 받자는 권유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는 말.
진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 *
오수아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때로는 오열했고.
자책하고.
분노하길 반복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건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기제.
분노? 분노 또한 당연했다.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분노로 치환됐을 테니까.
오수아를 기다리며 진혁이 차트를 살폈다.
“얘기는 들으셨지요?”
“네, 듣긴 들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콜히친(Colcicine, 항 섬유)을 투약하고 있습니다. 폐가 딱딱하게 굳었을 때 투약하는 약물입니다.”
“효과가 있을까요. 새벽엔 분명…….”
“일단 더 나빠지진 않을 겁니다.”
“아…….”
“기관지 확장제도 호흡기를 통해 투약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효과는 없겠지요?”
“현상 유지만 가능합니다.”
진혁이 씁쓸하게 웃자 안정호가 맥빠진 얼굴을 했다.
새벽에 들었던 설명과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달라진 건.
“여기 오기 전에 흉부외과 선생님이랑 통화했습니다. 상태를 지켜본 뒤에 폐와 기관지에 생긴 낭종은 수술로 제거할 거라고 합니다.”
수술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허나 완치가 어렵다는 말이 이어졌기에, 안정호가 털썩 주저앉았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예기치 못한 일에 어떻게든 버티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빨갛게 충혈된 오수아가 병실로 들어섰다.
곧, 진혁을 확인한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 잠깐 호흡기 좀 빼 주세요.”
“네?”
“제가 알아보니까 숯물을 들이켜는 게 그렇게 좋대요. 숯물도 줘야 하고. 그 뭐지, 아! 차가버섯! 차가버섯물도 좋다네요.”
“……!”
“차가버섯 분말을 방금 주문했어요. 더덕도 그렇고 은행도 그렇고. 폐를 보호하는 음식이래요.”
“…….”
“비름나물도 사 올까요? 안 되겠어요. 잠깐 시장 좀 다녀올게요.”
“여보!”
“오빠, 잠깐 있어 봐. 금방 다녀올게.”
“아니야, 여보. 이건 아니야.”
오수아가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주저앉아 있던 안정호가 앞을 막았다.
그때부터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숯물을 들고 있는 오수아와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하지만 진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라면 늘상 하던 일이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간요법에 의지하는 게 우리네 보호자들의 일상이니까.
암 병동에 가면 이보다 더한 보호자는 훨씬 많았으니까.
* * *
안정호에겐 털어놓았지만, 이 모든 게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역학조사도 해야 했고.
인과 관계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조사의 반발뿐 아니라 어떤 일이 더 있을지 몰랐고.
험난한 길이 될 게 뻔했다.
허나 안정호는 오수아한테 모든 걸 털어놨다.
가습기 살균제가 의심된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네 탓이 아니라고.
홍보용이라고 뿌린 가습기 살균제를 받아 오면 안 됐다고.
안정호의 고백에 오수아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신이 자책할까 두려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만 출시됐던 가습기 살균제.
테스트를 하지 않은 채 제품을 출시했던 제조사나 이를 허가한 한국 정부의 문제였다.
그들이 진정되길 기다릴 때.
진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간담췌외과장인 강홍립의 호출이었다.
* * *
이진혁이 오길 기다리며 강홍립은 끙끙거렸다.
당장 데려가지 않으면 운영회의 때 문제 삼겠다는 호흡기내과장의 협박도 있었지만, 이진혁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 진혁이 들어오자 그가 표정을 풀었다.
“앉아요, 앉아.”
“죄송합니다, 과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사실…….”
진혁이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에 관한 얘기는 쏙 뺐다.
그러자 강홍립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난주에 식도정맥류(Esophageal varix) 럽쳐(Rupture, 파열) 환자를 두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
“우린 간문맥 우회술로 근원적인 치료를 하자고 했고 내과는 반대했지요.”
“컨퍼런스 때 언급하신 환자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아아. 맞습니다, 맞아요. 뭐, 바이탈이 그만큼 안 좋기도 했고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내과에선 내시경으로 블러딩 포인트(출혈점)만 잡자고 했지요.”
“…….”
“결국, 환자가 죽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맞을 때도 있고 때로는 그네들이 맞을 때도 있단 말입니다.”
돌려서 말하고 있었지만, 그 뜻은 명확했다.
더는 관여하지 말라고.
괜한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과장실을 나온 진혁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우유부단하기로 유명한 강홍립이 반대하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