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66화(166/388)
166화 할 수 없는 일 (5)
과장실을 나와 스테이션으로 향하던 진혁의 뇌리에 예전 일이 떠올랐다.
면접 때 있었던 일이었다.
– 레지던트가 자네 생각과 다른 오더를 내리면 어떻게 할 텐가?
– 환자를 위한 선택을 하겠습니다.
– 들이받기라도 하겠단 겐가?
– 아닙니다. 항상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거란 뜻이었습니다.
면접자로서 할 수 없는 답변이었지만, 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랬기에 저런 대답을 했다.
사실 자신 있기도 했다.
윗사람과 부딪칠 필요 없이 환자나 보호자를 설득하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때 말했던 대로 움직일 때였다.
오수아와 안정호를 설득해 다른 병원에서 CT를 찍을 생각이었다.
그다음은 간단했다.
영상을 CD에 담아 제출하면 그만이었다.
환자 번호? 접수?
이 또한 문제없었다.
ER을 통한 우회 경로가 살아 있으니까.
호흡기내과에서 안 받아 주면 CS에 접수시키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계획을 세웠지만 곧바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엔 안정호와 오수아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남편인 안정호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오수아는 누구보다 불안해 보였다.
누군간 안아키 같은 행태를 보인 오수아를 손가락질하며 자업자득이라고 일컫겠지만, 그 또한 모성애의 발로.
그녀도 자식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맞았다.
곧 스테이션에 도착한 진혁에게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이 쌤! 과장님 면담하고 오셨다면서요?”
“네? 면담이요?”
“아까 과장실 들어가는 거 수쌤이 봤대요.”
“아…….”
“왜 부르신 거예요? 혹시 CM(호흡기내과) 때문이에요?”
“CM 얘기도 들으신 겁니까?”
“어머! 진짜 CM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어머! 어머! 웬일이래! 환자 보러 간 걸 가지고 왜 그러신대요!”
스테이션을 지키는 간호사의 호들갑.
호흡기내과에서 근무하는 지인한테 들은 모양이었다.
벌써 소문이 퍼졌다는 생각에 쓰게 웃는 것도 잠시.
진혁의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역학조사도 안 됐고 인과관계도 밝혀지지 않아 가습기 살균제 얘기를 꺼내면 안 된다고 여겼지만, 길이 있을지도 몰랐다.
빠르게 퍼지는 소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자신.
기레기나 다름없는 기자.
세 가지 조합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다른 병원에서 CT를 찍겠다는 기존 계획과 또 다른 계획이 맞물리며 해결책이 보였다.
곧 진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시작했다.
“제가 우성 아파트 101동에 살 거든요. 근데…….”
한참 안수현의 사정을 늘어놓는 진혁.
어느새 간호사들이 몰려와 눈을 빛냈다.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멀쩡하던 애가 IPF(폐섬유경화증)에 COPD(만성폐쇄성폐질환)라니 조금 이상하잖아요. 기관지에 낭종까지 생겼어요.”
“이상하긴 하죠. 보통 렁(폐)보다 브레인(뇌)에 문제가 생기잖아요. 피버(열)가 계속돼서 문제인데, 이번 케이스는 좀 그러네요.”
“그러니까요. 근데 집에 위험한 물건이 있더라고요. 그게…….”
진혁이 가습기 살균제가 의심된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누군간 그런 제품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누군간 설마 그런 제품을 시중에서 팔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그들의 반응은 중요치 않았다.
소문이 퍼지면 그만.
원내를 넘어 원외까지 소문이 퍼지고.
기레기들이 냄새를 맡는다면 당장 보도되리라.
그럼 제조사들이 반발할 테고.
그때 공개 검증을 하자고 제안하면 된다고 여겼다.
중독분석실을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언제까지 떠들 수만은 없었다.
간호사 또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간호사들이 흩어지자, 진혁은 곧바로 차팅을 했다.
과마다 차팅하는 법은 달랐지만, 간담췌에서 근무한 지 꽤 된 상황.
그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타다닥.
타다다닥.
빠르게 쳐 내려가는 타자.
환자기록지를 입력하고 루틴처방전까지 작성한 진혁이 병실로 향했다.
그러자 급성담낭염으로 입원한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선생님, 아직 많이 안 좋아요. 배도 여전히 아프고요.”
“잠깐 촉진 좀 하겠습니다.”
“네.”
환자의 나이는 21살.
그것도 여성.
손길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그녀는 환자복을 걷어 올렸다.
부끄러움보다 고통이 컸기 때문이다.
상복부 촉진이 시작되자, 그녀가 고통스러워했다.
“으으.”
“많이 아프세요?”
“죽을 거같이 아파요.”
“여기는요?”
“거긴 괜찮아요.”
“그럼 여기는요?”
“으으, 너무 아파요.”
“통증이 심하신데요. 진통제 용량을 늘리겠습니다.”
주치의가 따로 있었지만, 추후 노티하면 그만.
곧바로 종이 차트에 기재할 때였다.
여전히 배를 움켜쥔 환자가 물었다.
“언제쯤 좋아질까요?”
“담낭에 쌓인 담석 때문에 아픈 거라서요. 담석을 제거해야 좋아지실 수 있어요.”
“아…….”
“주치의 선생님이 MRI를 찍어 보자고 하셨는데요. 예약은 두 시간 뒤로 잡아 드렸습니다.”
진혁의 말에 환자의 눈동자가 커졌다.
“CT를 찍었는데 MRI도 찍어요?”
“네, 복부 CT로 잡히지 않은 담석이 있을 수도 있어서요. 부작용으로는…….”
퍼미션(동의서)을 받기 위한 설명이 계속됐지만, 환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안 그래도 부담되던 병원비.
MRI는 의료 보험도 안 됐기에 찍고 싶지 않았다.
“내시경으로 담석을 제거할지 복강경으로 수술할지 정해야 해서 꼭 찍어 봐야 합니다.”
“큰 차이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내시경이 회복도 빠르고 간단하죠. 시술과 수술의 차이입니다.”
진혁의 설명에 환자가 마지못해 동의서에 사인했다.
물론 돈 걱정을 하던 모습과 달리 동의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지 않는 건 여느 환자와 똑같았다.
뭐, 어쩌면 그게 더 좋을지 몰랐다.
혹시 모를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안 좋은 말만 쓰여 있으니까.
곧 퍼미션 서류를 챙긴 진혁이 당부했다.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일인데요. 다신 하시면 안 됩니다.”
“…….”
“담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면서 담석이 생긴 거라서요.”
환자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진혁이 내심 혀를 찼다.
며칠 동안 흑변을 싸서 고생하고.
상복부 통증과 오열, 구토에 시달렸지만, 또다시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을 굶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환자를 향해 움직이려던 찰나.
미련이 남은 진혁이 말했다.
“담낭에 점액이 증가하고 운동성이 감소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식이요법이라고 좋은 게 아니니까요.”
* * *
마지막으로 들른 병실은 35호실.
병실 밖으로 나온 진혁이 기지개를 켰다.
그다음 행한 건 간단한 스트레칭.
손목과 발목을 돌리고.
뭉쳐 있던 어깨마저 툭툭 쳐 준다.
사실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밤을 새웠으니 당연한 일.
몸이 찌뿌둥하다는 생각에 다시 기지개를 켠 진혁이 스테이션으로 걸어갈 때였다.
저 자신의 행태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분명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데 또다시 환자한테 매달리고 있었고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는 것이다.
어느새 발걸음을 멈춘 진혁의 뇌리에 그간 있었던 일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새롭게 연을 맺은 사람들.
기억에 남는 환자들.
그리고 부재일과 육선재까지.
회귀 후 전생과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던 만큼 다른 삶을 살고 있긴 했다.
그 옛날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사건과 사고를 겪었고.
새로운 환자와 동료를 만났으니까.
하지만 그 본질은 동일했다.
환자에 또다시 매몰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행보가 잘못된 걸까.
곧, 그의 뇌리에 부모님이 떠올랐다.
술을 마시며 나눴던 말들.
웃음기 그득한 아버지.
여전히 몰래 일하고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즐겨야 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어머니.
부모님은 행복해 보였다.
물론 그 자신이 유명해져서 그런 것만은 아니리라.
의사 아들이라는 게 어딜 가나 어깨를 으쓱거릴 만한 자랑거리긴 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있었기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 엄마는 우리 진혁이가 환자를 치료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가 들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
– 아빠도 마찬가지다. 진혁아, 유명해졌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꼭 마음이 따뜻한 의사가 돼야 한다.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한편, 간담췌외과 간호사실은 시끄러웠다.
이브닝 근무자는 출근하고.
데이 근무자는 퇴근할 시간인 것이다.
“성 쌤~ 오늘 분위기 안 좋아요.”
“왜? 무슨 일 있어?”
“이 쌤이 과장님한테 불려갔다 왔어요. CM(호흡기내과)에서 클레임 했다지 뭐예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요 앞에 우성 아파트 있잖아요. 그게…….”
인수인계를 해야 했건만 그날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간호사.
동태 눈깔을 하며 일하기 싫다고 중얼거리던 이브닝 간호사들의 눈이 빛났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
사건 사고만큼 흥미를 돋우는 일이 없었다.
“뭐라고 하셨는진 몰라도 이 쌤이 조용히 일만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 그래도 심하게 뭐라고 하시진 않았을 텐데…….”
“모르죠, 뭐.”
그들은 곧 강홍립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유약한 성격의 그.
병원장님한테 한 소리 듣거나.
이번 일로 마음이 상한 이진혁이 다른 과에 어플라이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가습기 살균제 얘기까지 나왔다.
원인 불명이라 적혀 있는 차트.
이진혁이 발병 기전으로 독성 물질 흡입.
그러니까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그건 CM도 마찬가지였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그랬다는 건 또 뭔데.”
“뭐?”
“아니, 보호자가 그랬다잖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라도 꼭 찍어 봐야 한다고.”
그들도 회진 때 있었던 일을 떠들기 바빠했다.
* * *
일주일 후.
안수현의 상태는 여전히 안 좋았다.
염증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딱딱하게 굳은 폐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항생제를 투약하고.
호르몬제를 슈팅해도 한번 망가진 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꿋꿋했다.
호흡기를 잠깐 뗄 때면 엄마를 찾았고.
‘엄마 울지 마’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 어쩌면 꿋꿋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아직 6살.
생일이 지나지 않았기에 만 나이로 고작 4살.
오랫동안 입원하다 보면 빨리 철든다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저 항상 제 곁에 있던 엄마가 눈물을 쏟아 내고 분통을 터트리며,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 하는 모습을 보며 늘상 하던 말을 하는 걸지도 몰랐다.
울지 말라고.
나도 울지 않겠다고.
간간이 간호사들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듣던 진혁이 움직인 건 3일이 더 지난 뒤였다.
폐 CT 촬영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했고.
비급여로 촬영했다.
방사선 때문에 촬영을 꺼리던 오수아는 그간 생각이 많았는지 진혁의 요청에 군말 없이 따랐다.
거기에 더해 루틴 검사에서 멀쩡했던 안정호까지 CT를 찍었다.
어쩌면 진실을 밝히는 게 그들의 유일한 희망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사이 병원은 점점 소문으로 뒤덮여 갔다.
누군가를 만난 진혁이 계속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는 우려했다.
“진혁아, 그러다 제조사가 고소하면 어떻게 하려고 해.”
뭐 이런 유의 걱정을 쏟아 내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진혁은 되레 반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기레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