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6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68화(168/388)
168화. 할 수 없는 일 (7)
강홍립은 바라고 또 바랐다.
이진혁이 자신을 향해 말했던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방법은 있지만 시끄럽게 해서 송구스럽다는 뜻이길.
하지만 그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이진혁이 또다시 죄송하다는 말을 하자, 탄식이 터져 나왔다.
“끄으응.”
“…….”
“진짜 방법이 없나?”
“예.”
“끄으으응.”
또다시 탄식을 터트린 강홍립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젠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마저 핑 돌아 견딜 수 없었다.
어지럼증마저 도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진혁은 귀한 인재였다.
술기 능력이 뛰어날뿐더러 외과 계열을 희망하고 있었다.
한데 이대로 징계를 받는다면 병원을 나갈 테고.
그를 탐하는 로컬 병원에 갈지도 몰랐다.
그 자신의 관리책임을 떠나, 소중한 인재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다시 강홍립이 끙끙거렸다.
주변 시선을 의식할 법도 했지만, 살필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이 캄캄하거늘.
시선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그 모습을 부재일이 지켜보고 있었다.
* * *
병원에서 오래 있다 보면 마음이 닳고 닳아 무뎌진다.
6살 아이의 폐 질환.
이미 감정이 마모돼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뭉툭해질 대로 뭉툭해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부재일의 마음은 가뿐했다.
눈엣가시 같은 이진혁을 없앨 천금 같은 기회.
전통과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아신 병원의 시스템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하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번번이 실패했다.
해서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이진혁이 또다시 꾀를 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동태를 살폈다.
뭐, 동태를 살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회의 석상에서 오지호의 표정을 살피면 그만.
혹은 간담췌에 지인이 있는 간호사를 통해 강홍립의 기색을 보고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행태를 면밀히 확인한 지금.
부재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외통수라고.
이진혁은 끝났다고.
그렇지 않다면 강홍립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대지 않을 테고, 오지호마저 저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 때문일까.
그의 목소리엔 힘이 담겨 있었다.
“8개 회사에서 항의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괜한 괴담을 퍼트려 소비자들이 불안해한다는 공문입니다.”
“법적 조치를 운운한 회사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적자가 예상되는데, 고작 인턴 주제에 그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부재일의 눈짓에 PPT가 띄워졌다.
아신 병원에 공문을 보낸 제조사와 판매사들.
그들의 이름과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고.
공문의 내용이 요약돼 있었다.
“뭐, 누군가는 말할 테지요. 그냥 개인이 떠들고 다닌 게 우연히 기사화됐고 이진혁 선생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진혁 선생은 환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했습니다.”
“안수현 환자의 건강 상태, 특징, 병력, 진료 정보. 모든 게 기사화됐습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단호한 어조.
확신에 찬 말투.
육모방망이에 얻어 터지던 부재일은 없었다.
시스템을 맹신하는 세파에 닳고 닳은 의사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
당장 오지호가 반박했다.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물적 증거야 없지요, 하지만 정황 증거는 있습니다. 다음.”
부재일의 신호에 화면이 바뀌었다.
“허허, 저 정도의 기사는 다른 기자들도 썼습니다만.”
“아니지요. 강기재 기자만큼 자세히 쓴 기자는 없었습니다. 후속 보도는 이 기사를 참조한 게 분명합니다.”
“너무 억지 같습니다만.”
“동해호텔! 원주 오크밸리!”
“……?”
“전부 강기재 기자의 단독 보도였습니다. 그 후에 다른 기자들이 달라붙었죠.”
“……!”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기자가 이번 일도 보도했단 말입니다!”
부재일의 일갈에 내과 계열 의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파벌 싸움이야 오랜 전통.
누군간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호흡기내과장과 이미 한번 물먹은 적이 있던 소화기내과장은 적대감이 서린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오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다르지요.”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강기재 기자보다 먼저 보도한 기자가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런 말씀을 하실 거 같아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다음.”
곧, 딸깍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었다.
그러자 기레기가 처음 날갯짓을 펼쳤던 기사가 띄워졌다.
“보시다시피 자세한 내용이 없지요. 하지만 강기재 기자가 쓴 기사는 어떻습니까. 그 내용이 다릅니다. 다음!”
“…….”
“어떻습니까? 확연히 차이 나지 않습니까? 내부 조력자의 도움 없인 이런 디테일이 나올 수 없습니다!”
부재일이 쐐기를 박자 외과 계열 의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개인 정보 유출은 금기시되는 일.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6살 아이의 폐가 녹았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검사 결과 또한 상세히 쓰여 있었다.
단순히 병원 내 소문을 전하는 수준을 뛰어넘은 것이다.
오지호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자, 승기를 잡았다고 여긴 부재일이 책상을 내리쳤다.
꽈앙.
“우린 의사입니다, 의사! 항상 팩트에 기반해 움직여야 한단 말입니다! 한데, 이진혁 선생은 어떻습니까. 선동, 불안감 조성. 사실 호도!”
“…….”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아 보호자를 현혹하고 진료과의 권한마저 침범했습니다.”
“검증해 보면 될 일 아닙니까.”
“검증이라니요. 안 그래도 파산하는 기업이 수두룩한데 뭘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또다시 부재일이 일갈하자 오지호가 쓰게 웃었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재단 이사장의 경고마저 떠올라 눈앞이 캄캄했다.
* * *
투표하기 전 입장 표명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항변이나 하고 먹고 떨어지라는 분위기였다.
두렵고 떨릴 법도 했지만, 진혁은 태연했다.
그저 오퍼레이터에게 다가가 플로피 디스크를 건넬 뿐이었다.
부재일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오지호와 강홍립마저 속인 상황.
숨겨 뒀던 칼을 칼집에서 꺼낼 때였다.
플로피 디스크에 담긴 자료를 오퍼레이터가 옮기는 사이.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오지호와 강홍립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대감 어린 눈빛을 했고.
부재일은 마지막 발악이라고 여겨 냉소했다.
잠시 후 띄워진 PPT.
화면을 메운 흉부 CT 영상과 다르게, 진혁이 부재일의 말을 반박했다.
“저는 강기재 기자와 유착한 적이 없습니다.”
“더 자세히 말해 봐. 어서!”
오지호가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맞장구치자,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강기재 기자가 동해호텔 감전 사고를 보도한 건 우연히 벌어진 일입니다. 인근 파출소에서 소스를 듣고 호텔을 찾아왔지요.”
“사실인가?”
“네, 강기재 기자의 자택이 동해시에 있습니다. 따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
오지호는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부재일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크벨리 사건은 뭐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제보한 게 틀림없거늘! 이번엔 뭐라고 변명할 텐가!”
“아닙니다.”
“흥! 정황 증거가 있는데 아니라고 부인하면 될 줄 알았나.”
“강기재 기자의 부사수는 이현정 기자입니다. 이현아 PD의 동생이죠. 아시겠지만 이현아 PD는 『응급실 사람들』과 『외과의사 24시』의 책임 PD입니다.”
“해서.”
“원래 친분이 있었던 이현아 PD랑 논의했을 뿐입니다.”
“직접 제보한 게 아니다?”
“네,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거짓말이었다.
허나 바로 확인할 순 없는 일.
미간을 찌푸린 부재일이 다른 일을 문제 삼았다.
“환자의 개인 정보를 유출한 것도 똑같은 핑계를 대겠군.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아닙니다.”
“……?”
“전담 VJ와 같이 병실을 방문했다가, 보호자와 대화를 나눈 게 흘러 들어간 거 같습니다.”
“뭐?”
“정우택 선생이 목격자입니다. CM(호흡기내과) 소속이니 그 객관성이 입증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말.
보호자와 나눈 대화를 VJ인 김석대가 이현아에게 알렸고.
이현정을 통해 강기재한테 흘러 들어갔다는 변명이자, 거짓말이었다.
동해호텔 건과 다르게 확인 작업이 시작됐다.
정우택한테 바로 전화했고.
사실로 밝혀졌다.
그러자 축 늘어져 있던 외과 계열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반격할 수 없다고 여겼거늘.
아니었다.
* * *
오퍼레이터에게 미리 자료를 건넨 건 부재일의 실수였다.
그는 운영과 소속.
당장 운영과장인 우용만에게 보고됐고.
미리 입을 맞추고 대비할 수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정보의 양이 판가름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물론 부재일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해 오지호한텐 비밀로 했지만 말이다.
이번엔 진혁이 화면에 띄워진 흉부 CT를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폐 기저부에 봉외상폐. 그러니까 벌집 모양(Honeycombing)의 음영이 보입니다. 전형적인 IPF(폐섬유화증)죠.”
“…….”
“폐 하부에 간유리 음영(pure GGO, 유리를 갈아 넣은 것 같은 음영)이 확인되며 기관지 또한 확장돼 있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말을 하는군. 여긴 자네가 교육하는 자리가 아니야!”
부재일이 일갈했지만, 진혁은 흔들림이 없었다.
곧바로 다른 화면이 띄워졌다.
“양폐 하부에 다수의 공동을 동반한 폐경결(Consolidation)이 관찰됩니다.”
“…….”
“랩(피 검사) 수치와 동맥혈 검사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폐 기능이 많이 저하된 상태입니다.”
진혁이 계속 환자의 상태를 브리핑하자, 부재일이 또다시 성질을 부렸다.
하지만 진혁은 꿋꿋했다.
“TBLB(경기관지 폐생검, 내시경으로 폐 조직 샘플을 채취해 검사) 결과 IPF(폐섬유화증)로 확진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건 검사 결과입니다.”
“뻔히 아는 얘기를 할 게 아니라 이 말이야! 지금 뭐 하자는 겐가! 어!”
“양폐하부에서 Vel-cro 양상의 흡기 시 악설음(Fine dry crackle, 드르륵거리는 소리)이 확인됐습니다.”
“그만! 그만!!”
꽈앙.
주취 감형 판결을 하는 판사처럼 부재일이 책상을 내리쳤다.
그러자 진혁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렸다.
대체 왜 이러냐는 듯한 얼굴.
부재일이 기막혀했다.
“하, 안 되겠습니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습니다. 안수현 환자의 상태에 대해 브리핑받는 자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허허.”
“맞습니다. 컨퍼런스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다들 바쁜 사람들입니다. 쯧쯧.”
일제히 진혁을 비난하는 내과 계열 의사들.
외과 계열 의사들의 반박이 터져 나와야 했지만, 다들 침묵했다.
그들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동, 불안감 조성. 사실 호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늘어놓아 보호자를 현혹했다고 하셔서 증례를 갖고 온 겁니다.”
진혁의 태도는 달랐다.
그가 오퍼레이터를 직시하자, 환자의 이름이 화면에 띄워졌다.
[환자 성명 : 오수아] [관계 : 안수현 환자의 모친] [검사 병원 : 카톨릭 병원]순간 대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당연히 안수현의 상태를 읊고 있다고 여겼건만, 아니었다.
* * *
침묵.
또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보호자 또한 폐에 문제가 있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6살 아이와 아직 30대 중반인 모친이 동시에 문제가 생길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다들 알고 있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반전될 때였다.
“우연일 뿐이야! 고작 두 명이라고!”
“…….”
“이걸로 인과 관계가 입증됐다고 할 순 없는 일이야!”
진혁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다음!’을 외쳤다.
그러자 또다시 화면이 바뀐다.
루틴 검사에서 정상으로 보였던 안정호의 CT 영상이 띄워진 것이다.
사실 그의 상태는 경증에 가까웠다.
조영증강 CT를 찍어서 확인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안수현 환자의 부친인 안정호 씨의 CT 영상입니다. 경증이긴 하지만 렁(폐)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그러자 다시 정적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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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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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또 침묵이었다.
이진혁은 지금 말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증거가 있다고.
그러니 확인해 보자고.
그게 의사로서 할 일 아니냐고.
그리고 그 순간.
아무런 귀띔도 듣지 못했던 오지호가 일어났다.
[+10강] 육모방망이.풀스윙할 차례였다.
부웅.
부웅.
다 때려잡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