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70화(170/388)
170화. 할 수 없는 일 (9)
“이런 일로 직을 걸 순 없습니다.”
부재일의 대답에 오지호가 곧장 되물었다.
“왜요? 왜 직을 걸 수 없습니까. 허허, 자신이 없으신 모양입니다.”
“⋯⋯.”
“왜 대답을 못 하십니까.”
오지호의 추궁에 부재일이 제대로 대답을 못 하자, 그를 향한 시선이 변했다.
기대 어린 눈빛에서 실망으로.
다시 경멸로 바뀐다.
그뿐이랴.
고개를 돌리는 이도 있었다.
내과 계열을 대표함에 있어, 그 위엄과 위상이 중요했거늘.
리더쉽에 금이 가고 있었다.
이를 인지한 부재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연축성 발성 장애 환자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직선제로 전환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흠.”
“재단은 지명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우린 자율권을 보장받고자 했죠.”
“⋯⋯.”
“어렵게 쟁취했습니다. 정말 힘들게 투쟁했습니다. 한데 직을 걸다니요. 이런 방식은 아닙니다.”
“직을 거는 행위 자체가 잘못됐다는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리 가볍게 취급할 그런 자리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우리 아신인들의 피땀이 뒤섞인 소중한 자리지 않습니까!”
“⋯⋯.”
“이 또한 아신 병원을 이루는 근간! 시스템입니다!”
“허허.”
오지호가 헛웃음을 켰다.
그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발 물러났다는 항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스템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부재일다운 답변이긴 했다.
하지만 연신 헛웃음을 켜는 오지호 말고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비겁하다 여겼다.
그 모습에 부재일이 눈을 질끈 감았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따로 없었다.
✻ ✻ ✻
후퇴하는 적을 추격할 때 비로소 전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법.
외과 계열의 추격은 매서웠다.
“병원장님을 실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시는 겁니까!”
“괴담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괜한 선동은 그만하라고 난리 치지 않았습니까! 마땅히 책임져야지요!”
“맞습니다! 응당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궐위 상태가 되면 다시 투표하면 그만입니다. 규정이 있지 않습니까!”
계속되는 융단폭격.
앵무새의 지저귐을 듣고만 있었으니, 어찌 참을 수 있을까.
외과 계열의 공세가 끝없이 계속되자, 내과 계열도 반응했다.
그렇게 투덕거림이 계속되자, 오지호가 나섰다.
“자자, 그만들 하십시다.”
“⋯⋯.”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다른 안건이나 처리하고 끝냅시다.”
“아니, 그건.”
“됐어요. 됐어.”
오지호가 굳은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말했다.
“장기이식센터 증축 안에 대해 말이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 회의 때도 결론을 내지 못했지요.”
“⋯⋯!”
“10억, 고작 10억을 더 투자하자는 겁니다. 이미 편성된 예산에서 10억만 더 투자하면 된다 이 말입니다! 반대하시는 분은 거수하세요!”
“⋯⋯.”
“그럼 가결된 거로 하겠습니다.”
땅땅.
오지호가 의사봉을 휘둘렀다.
운영과장인 우용만이 반대했던 사안이었지만 거릴 게 없었다.
이 맛에 병원장을 하는 게 아니던가.
곧, 오지호가 해묵은 주제를 꺼내 들었다.
“GS에서 요구했던 시설 투자안도 논의해 봅시다. 반대하는 분은 없겠지요? 고작 20억입니다. 20억.”
그간 미뤄 뒀던 안건을 전부 꺼내 들 기세.
그 자신이 GS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좌초됐던 안건이었다.
그 모습에 호흡기내과장이 소리쳤다.
“병원장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지난번 회의 때 부결된 안건입니다!”
“그래서 다시 논의해 보자는 겁니다.”
“제가 책임질 테니 그만하시지요. 과장직을 내려놓겠습니다.”
호흡기내과장의 결단에 오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원장님 말씀을 반박하시는 겁니까? 부원장님 체면도 생각해 주셔야지요.”
“과장직은 투표로 정하는 게 아니니 상관없습니다.”
“⋯⋯.”
“이사장님께 보고드릴 때, 모양새가 좋을 거라고 여겨집니다만.”
“허허.”
헛웃음을 켠 오지호가 숨을 골랐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사장.
병원장직을 거는 걸로도 부족할지 몰랐다.
곧, 결심을 굳힌 그가 말했다.
“좋습니다. 20억 투자안을 마지막으로 하지요.”
“아니, 그건!”
“이 건만 통과시키고 끝내겠다 이 말입니다. 반대하는 분이 없다면 가결된 거로 하겠습니다.”
땅땅.
또다시 오지호가 의사봉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위엄 있는 표정으로 주위를 아울렀다.
“공석이 된 호흡기내과장 자리는 차후 논의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냅시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원장님.”
30억이나 되는 전리품.
외과 계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고.
운영과장인 우용만과 내과 계열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회의가 끝나자 진혁이 먼저 움직였다.
논의를 더 해야 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할 터.
일단 나간 뒤에 부르면 다시 올 생각이었다.
곧, 대회의실 밖을 나선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R과 GS. 그리고 CS 소속 선배들이 서 있었다.
“여길 어떻게⋯⋯.”
“진혁아 어떻게 됐어! 뭐래? 징계한대?”
“야야, 속 시원히 말 좀 해 봐.”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제 입만 바라보는 이들.
그 표정에 한결같이 걱정이 묻어 있었다.
순간 진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신대 출신도 아니건만.
자신을 아끼는 이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말이지 감사했다.
그도 그럴 게 자신도 계속 자문자답하고 있었다.
지난날의 잘못을 되풀이할지도 모른다며, 그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졌고.
잘하고 있다고 애써 자위했다.
하지만 자신이 걱정돼 달려온 이들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있었다.
아니, 확신할 수 있었다.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모이지 않았을 터.
오지호마저 병원장직을 걸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술기 능력이 뛰어나고 기괴한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살 순 없었으니, 잘 지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진혁이 속으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중얼거릴 때.
뒤늦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똥 씹은 표정의 내과 계열.
밝게 웃는 외과 계열.
그리고 애써 웃음을 참는 임상 계열까지.
그 모습에.
“어어어어!!”
“와⋯⋯!!”
“진혁아!”
탄성이 터졌다.
어떤 결정이 내려졌는지 알게 된 것이다.
곧, 고년차들이 저년차를 단속했다.
“누가 시끄럽게 떠들어!”
“조용! 조용히 해!”
약올릴 때가 아니라는 판단.
사실 하늘 같은 교수님이었다.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못마땅해할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퇴청하는 내과 계열 과장들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동수가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부른다고 다 튀어오면 어쩌라는 거야! 지금부터 일 분 준다! 모두 원대 복귀!!”
“네, 교수님.”
짧은 대답과 함께 달려가는 이들.
곧, 그들이 굳게 닫힌 비상구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바보짓이었다.
그 모습에 씨익 웃은 한동수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 제 영향력이 이 정도입니다, 이 정도.”
“끄응. 고얀 놈들.”
“제가 불러서 왔다니까요. 전화를 돌렸더니 바로 달려오지 뭡니까. 하하. 그럼 살펴 가십쇼.”
그 자신이 소집한 거로 무마하려는 한동수.
어처구니없는 행태였지만, 다들 말을 아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었다.
곧, 한동수가 진혁을 끌고 대회의실로 향했다.
“감동했냐?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
“한창 바쁜 시간인데 다들⋯⋯.”
“그래서 감동했다?”
“네.”
“더 선택이 어려워진 건 아니고?”
“⋯⋯.”
“어쭈! 이 자식 봐라! 배신하려고 마음먹었다 이거지! 이걸 진짜!”
한동수가 곧장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진혁의 목을 휘감고.
그대로 무게를 싣는다.
헤드록이었다.
“으으, 숨 막힙니다.”
“나도 숨 막힌다 인마. 맨날 사고만 치고. 어! 넌 인마 아주 딱이야, 딱. CS가 딱이라고!”
“⋯⋯.”
“사고 치는 거로 우리 과를 따라올 곳이 없다 이거야!”
“그래도⋯⋯.”
“그래도 뭐!”
“⋯⋯.”
“그래도 뭐냐니까!!”
한동수가 대답을 재촉했지만, 말을 아꼈다.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이들.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 제 길을 가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제 앞길을 떠올릴 때.
오지호가 다가와 같은 말을 했다.
✻ ✻ ✻
오지호는 당장 마음이 급했다.
이사장한테 보고도 해야 했고 기자 회견도 해서 그 결정을 알려야 했다.
개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병원 차원의 대응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생은 GS에 어플라이할 거예요. CS는 그다음입니다. 그다음.”
이진혁을 움켜쥐고 있는 한동수를 향해 기어코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자 한동수의 표정이 굳었다.
“차라리 절 죽이십쇼.”
“미국도 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GS에서 레지던트를 한 뒤에 CS를 지원한다 이 말입니다.”
오지호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CS에 간 뒤 GS로 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허나, GS에서 보드를 딴 뒤 CS에 가는 건 괜찮은 루트였다.
아니, 꼭 CS에 갈 필요는 없었다.
GS에도 세부 전문의를 할 수 있는 과가 많았다.
그가 한참 그 이유를 설파했지만, 한동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오지호가 결정적인 이유를 들었다.
“이대로 물러설 부원장이 아닙니다.”
“⋯⋯!”
“거대한 댐도 자그마한 균열 하나에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선 이 선생이 균열이나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
“⋯⋯.”
“오늘 보지 않았습니까. 제 체면보다 시스템을 중시하는 양반입니다.”
“꼭 GS에 있어야 지켜 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한동수의 대답에 오지호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말이 일반외과지 사실상 통합외과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과장만 해도 8명이에요, 8명. 무게가 다르다 이 말입니다.”
“⋯⋯!”
“이 얘기는 나중에 합시다.”
곧, 오지호의 고개가 진혁을 향했다.
그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보호자는 어디에 있나? 카톨릭 병원에 입원시킨 건 아니겠지?”
“제생 병원에서 1차 검사를 한 뒤 카톨릭 병원에서 재검을 받았을 뿐입니다. 지금은 안수현 환자 옆에 있습니다.”
“제생 병원?”
“네, 그게 그러니까⋯⋯.”
진혁이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2차 병원에서 비급여로 촬영한 뒤 일이 커지자 카톨릭 병원을 다녀왔다는 말.
검사 결과에 권위를 싣기 위함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자.
“허허,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럼 바로 입원 오더 내고 매주 협진 회의를 하는 거로 하지.”
“괜찮다면 정신과 진료도 받았으면 합니다.”
“정신과?”
“네, 사실 검사를 받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게⋯⋯.”
또다시 시작된 설명.
오수아를 설득하는 데 애먹었기 때문에,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 후속 조치가 논의됐다.
✻ ✻ ✻
얼마 뒤, 보도 자료가 나갔고.
곧바로 기사화됐다.
[가습기 살균제 검증에 나선 아신 병원!] [병원 차원에서 대응 결정!] [임상센터와 중독분석실이 나선다!] [가습기 살균제 뭐가 문제인가?] [이진혁 지키기에 나서나? 아신 병원의 반격!]그간 쏟아졌던 비난 기사를 반박하는 기사.
이사장의 컨펌까지 받았기에 보도자료는 거칠었다.
그뿐이랴.
임상센터는 곧바로 연구에 착수했고.
중독분석실 운영 또한 앞당겨졌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 있는 수십 개의 신문사.
다들 사주가 있었고.
대부분 기업이었다.
[반기업 정서가 횡횡해!] [세계 최초로 출시한 가습기 살균제! 수출길 막혀!] [한국에서 발명한 가습기 살균제! 앞길이 막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 도대체 왜 이러나!]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수출길이 막혔다는 기사.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뒤섞여 있는 만큼, 대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정호, 안수현의 부친이자 경증 환자로 분류된 그를 소환한 것이다.
✻ ✻ ✻
그 자신을 찾아온 안정호가 고민을 털어놓자 진혁이 곧장 말했다.
“잠시 드릴 게 있습니다. 잠시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