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72화(172/388)
172화. 할 수 없는 일 (11)
공든 탑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려 하고 있었다.
‘IMF용 영웅 만들기’라는 미디어의 담론적 전략과 그 자신의 욕구가 맞물리며 쌓여 왔던 명성이 전부 흩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전부 바로잡을 테니까.
다시 되돌려 놓을 테니까.
진혁이 다부진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자신을 두고 수군대는 이들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어깨를 쫙 펴고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장실.
비서한테 인사를 건넨 뒤, 곧장 노크했다.
똑똑.
“병원장님, 인턴 이진혁입니다.”
“끄응, 들어와요, 들어와.”
“예.”
진혁이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문을 열었다. 그러자 뜻밖의 인물이 보였다.
운영과장인 우용만.
일반외과장인 최재원.
그리고 한동수였다.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한동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잠깐 맡겨 두는 겁니다. 나중에 배 째라고 나오시면 찾아갈 거라 이 말입니다.”
“한 교수. 그만 하세요, 그만해.”
오지호는 연신 손을 휘저었고 한동수는 뭔가를 받아 내려 했다.
뜬금없는 상황에 진혁이 의아해했다.
그가 조용히 소파에 앉자, 한동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빌려주는 거다, 빌려주는 거.”
“네?”
“꼭 돌아와야 한다고, 어!”
“⋯⋯?”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아끼자, 한동수의 고개가 운영과장인 우용만을 향했다.
“운영과장님은 증인입니다, 증인.”
“한 교수, 벌써 한 시간째입니다, 한 시간째. 귀에 못이 박이겠습니다.”
“운영과장님!!”
“아⋯⋯.”
한숨을 내쉰 우용만이 손을 들어 제 안경을 치켜올렸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오지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과장들이 똘똘 뭉쳐 이 선생을 지킬 겁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그러니 그만합시다.”
“말이야 쉽죠, 뭐, 서면으로 약조해 주시지요.”
“허, 참.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못마땅한 표정의 오지호가 A4 용지를 가져왔다.
그러고는 만년필을 꺼내 휘갈겼다.
GS에서 보드를 딴 이진혁을, CS로 돌려보내겠다는 일종의 서약서였다.
이를 곁눈질로 확인한 진혁의 눈이 커졌다.
그 자신의 거취를 두고 논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것도 오지호의 사퇴를 전제로.
진혁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오지호가 나섰다.
“배움엔 끝이 없다 했습니다. 아니, 의학이라는 학문은 애초에 끝이 없는 학문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 더블 보드를 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의미가 있지요. 암요, 그렇고말고요.”
오지호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길어졌다.
사퇴를 각오한 마당.
애정 어린 염려와 조언이었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저⋯⋯.”
“아아, 아직 결정하지 못한 건 알아, 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저쪽에서 나뿐만 아니라 자네까지 걸고넘어지고 있어.”
“⋯⋯.”
“그러니 일단 GS에 지원해.”
“병원장님, 그게⋯⋯.”
“허어!”
오지호가 진혁의 말을 끊었다.
제 말을 거부한다고 여긴 것이다.
결국 진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해결 방법이 있다고.
원내에 깔려 있는 기자 때문에 말씀을 못 드렸다고.
보안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진혁이 침묵하자, 최재원과 한동수까지 나서서 한참 설교를 늘어놓았다.
통합외과나 다름없는 GS에 가야 한다고.
8명이나 되는 과장이 지켜 줄 거라고.
오지호가 사퇴하는 마당에 어쩔 수 없다고.
보안을 지키려 했던 일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 ✻ ✻
따로 촬영까지 마쳤고.
초원복집 사건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리고 담당자의 회유와 협박은 녹음으로 남겼다.
거기에 더해, 치료비조로 입금된 통장 내역서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카운터를 날릴 준비가 끝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말하는 순간 다들 침음성을 토해 냈다.
“끄으으윽.”
“하아⋯⋯.”
“이 자식을 진짜!!”
반응이 좋지 않았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방증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지호는 사퇴를 결심했고.
한동수는 그토록 집착했던 아들 녀석을 입양 보내는 데 동의했다.
우용만과 최재원 또한 동분서주하며 방법을 찾느라 고생했다.
한데, 다 짜고 친 일이란다.
다 계획하에 움직인 거란다.
반박 기자 회견만 하면 된단다.
당장 오지호가 뒷목을 잡았다.
“끄으윽.”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이진혁 또한 마음고생이 심했을 테니까.
그 모습에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한동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와, 이 자식을 진짜!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대로 죽여 버리죠. 아니다, 죽일 순 없고 이 자식을, 하⋯⋯.”
“⋯⋯.”
“넌 안 되겠다, 너! 인마! 어!”
벌떡 일어나 진혁을 향해 다가가는 한동수.
그의 발걸음이 멈춘 건 최재원 앞이었다.
“일단 양보한 겁니다?”
“⋯⋯!”
“이건 저희 쪽에서 보관해야겠군요.”
“아닙니다, 찢어 버려야죠. 이건 사기입니다, 사기!”
“허허,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빨리 찢어 버리시죠.”
나중에 CS로 돌려보내겠다는 서약서를 두고 한동수와 최재원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오지호마저 참전하며, 투덕거림이 커졌다.
✻ ✻ ✻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는 능력.
모의 수술로 입증했고.
간 이식 수술로 증명했다.
그러니 욕심을 부리는 것이리라.
허나, 자신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린애 같아 보였다.
투덕거리는 이들을 뒤로하고, 진혁의 고개가 우용만을 향했다. 그러자 그가 안경을 스윽 올렸다.
“일단 병원장님의 사퇴 기자 회견이라며 기자를 모아야겠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반박 회견을 한다고 하면 부원장 쪽에서 움직일 거야. 뭐, 이사장님께 직보하려 들겠지.”
“…….”
“홍보팀장한텐 내가 통보하지. 그건 그렇고 기자 회견엔 안정호 씨가 직접 나서는 게 좋겠군.”
진혁이 잠시 잠깐 침묵했다.
뭐가 더 유리한지 생각하는 거다.
그러다 고개를 털었다.
지금은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제가 하는 게 좋겠습니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버티고 있지만, 안정호 씨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리고 기자 회견도 저녁에 하는 게 좋겠습니다. 생중계가 될 수 있도록 컨택해 보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그러니까⋯⋯.”
한참 계속된 논의.
옆에서 싸우거나 말거나.
우용만과 진혁은 계획을 보완하는 데 열중했다.
✻ ✻ ✻
그날 저녁.
오지호의 사퇴 기자 회견이 잡혔다.
대국민 사과까지 할 예정이라고 문자를 돌린 상황.
방송사에선 촬영팀을 보냈고.
숱한 기자가 아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부재일은 활짝 웃었다.
“일이 이렇게 풀리다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부재일이 제 속내를 드러내자, 오인지가 맞장구쳤다.
“허허, 앓던 이가 다 빠지는 느낌입니다. 이젠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병원장이 궐위되면 부원장이 그 직을 승계하지 않습니까. 전부 되돌려 놔야겠지요.”
“어디까지 쳐 내실 겁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일단 일괄 사표를 받아야겠습니다.”
“사표라고 해 봐야 보직만 내려놓는 겁니다.”
“뭐, 그걸로 충분합니다.”
부재일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교수는 함부로 자를 수 없었다.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나가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상관없었다.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보직장.
비워진 자리에 제 사람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단숨에 조직을 장악해야 합니다.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전임자의 흔적은 싹 지워 버리시지요. 그래야 눈치만 보며 박쥐처럼 움직이는 임상 계열이 겁을 먹고 따를 겁니다.”
“그래야지요. 이건 시스템을 지키는 일입니다.”
부재일이 흡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곧, 그의 시선이 벽걸이 시계를 향했다.
“자자, 기자 회견 할 시간입니다. 같이 구경이나 합시다.”
“그러시지요.”
곧바로 TV를 켜는 오인지.
리포터의 목소리가 울렸다.
– 저는 지금 아신 병원 대강당에 나와 있습니다!
– 정찬우 리포터!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은 만큼 관심이 뜨거운데요, 어떻게 진행될 예정입니까.
– 일단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아신 병원장이 사퇴를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 지금 아신 병원장이 장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곧, 무거운 얼굴의 오지호와 이진혁. 그리고 관계자들이 단상에 서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부재일이 박장대소했다.
“하하하, 직접 저 자리에 갈 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곧 그들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단상에 선 오지호가 고개를 숙일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스크린에 PPT 화면이 띄워졌다. 그러고는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 안정호 씨, 회사를 위한 일입니다.
– 하지만, 제 가족이⋯⋯.
– 허허,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이겁니까!
– 그, 그래도⋯⋯. 분명 가습기 살균제를 쓴 다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 명이 동시에 이렇게 된 건 문제가 있습니다!
– 치료비를 전부 지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왜 이러시는 겁니까. 10년, 10년 동안 일했습니다. 제 청춘을 다 바친 곳입니다!
– 허허, 가습기 살균제만 파는 것도 아니고 다른 제품까지 팔고 있지 않습니까. 매출 타격이 큽니다.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하지만⋯⋯.
–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말이 많습니다. 해사 행위를 한 게 아닙니까!
회유와 협박이 담긴 녹음.
바보가 아닌 이상 그 함의는 분명했다.
회사의 협박에 못 이겨 가습기 살균제를 쓴 적이 없다고 밝힌 게 분명한 것이다.
다시 한번 녹음 파일이 재생되자, 오인지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고.
부재일의 볼살이 파들파들 떨렸다.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아니, 이건 카운터였다.
그 자신이 당했던 일과 똑같지 않던가.
✻ ✻ ✻
그 시각, 기자 회견장.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뭐야, 협박한 거였어? 문제가 있으니까 협박한 거 아니야.”
“아, 시X, 우리 집도 살균제 쓰고 있는데.”
“이거 뭔데.”
웅성거리는 이들.
사회자가 장내를 진정시키는 대신, 동영상을 틀었다.
그러자 웬 비좁은 사무실이 보인다.
흰색 벽지와 앵글에 잡힌 카트가 원내라는 걸 보여 줬다.
곧, 안정호가 의자에 힘없이 앉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 저, 저는⋯⋯.
안정호라고 합니다.
고작 제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영상 속 안정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의 침묵.
다시 입을 열던 안정호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한참 찌푸린다.
애써 마음을 다잡으려는 게 역력해 보였다. 그 자신마저 무너지면 안 됐으니까.
하지만.
– 끄으윽, 끄으으윽.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피가 솟구치며, 그의 얼굴이 조금씩 뻘게지고.
다시 이를 악무는 게 보인다.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거다.
– 끄으으윽.
– 다시 찍어도 됩니다. 나중에 하시죠.
– 아, 아뇨, 지, 지금 하겠습니다. 끄으윽.
안정호가 팔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카메라를 직시했다.
– 저는 안정호입니다. 아직 6살밖에 안 된 안수현 환자의 아빠입니다.
– 가습기 살균제를 쓴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신제품이 나왔다며 회사에서 나눠 줬습니다. 그, 그런데⋯⋯. 그런데⋯⋯. 끄으으윽.
다시 화면 속 안정호가 흔들렸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그의 모습이 출렁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자.
그리고 의료진.
관계자들까지.
다들 눈시울을 붉혔다.
어떤 심정일지.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이해됐기 때문이다.
곧, 어깨를 들썩거리던 그가 무너져 내렸다. 의자에서 넘어지듯 내려온 그가 무릎을 꿇었다.
– 도와주십쇼, 살려 주십쇼, 제발 우리 수현이 좀 살려 주십쇼,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 제가⋯⋯. 제가 가습기 살균제를 가져와서⋯⋯.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쇼.
– 몰랐습니다, 진짜 몰랐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제대로 놀아 주지 못해서 몰랐습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 제발. 제발 도와주십쇼.
영상 속 안정호는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우리 수현이랑 오수아가 다시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 모습에 누군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상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덧 안정호의 갈라진 목소리가 대강당을 울렸다.
–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당장 3시까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협박을 할 거 같습니다.
– 그래서 녹음을 하려고 합니다. 초원복집 사태처럼 불법 녹음이라고 저를 비난하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또다시 울부짖는 안정호.그 장면을 끝으로 스크린이 꺼졌다.
✻ ✻ ✻
기자 회견을 생중계하는 상황.
방송 사고가 일어났다.
하지만 다들 방송을 끊지 않았다.
왜?
시청률이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곧, 이진혁이 나섰다.
그의 손에 들린 건 통장 내역서.
이제 확인 사살을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