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74화(174/388)
174화. 할 수 없는 일 (13)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이 나타난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기적이라 칭할 리 없었고.
저리 좋아할 리 없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이현아는 조심스러웠다.
“소아 뇌사자는 찾기 어렵다고 했잖아요, 기증 의사를 밝히는 사람도 흔치 않고요.”
“그랬죠.”
“근데 그 반응은 뭐죠? 혹시 기증자가 나타난 거예요? 진짜 그런 거예요?”
“그게⋯⋯.”
“잠깐, 잠깐 물 좀 마실게요!”
이현아가 손을 들어 진혁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물을 마셨다.
추측이 반쯤 확신으로 변한 상황.
가슴이 콩닥거리고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일단 제 마음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그도 그럴 게 안수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진혁을 돕는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가기도 했고,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뿐이랴.
실낱같은 인연에 집착하기도 했으니, 모를 수 없었다.
그 가녀린 아이의 딱한 사정을.
곧, 마음을 다잡은 이현아가 말했다.
“준비됐어요.”
“기증자가 나타났어요.”
“⋯⋯!”
“안 그래도 고민하고 계셨는데, 방송을 보고 결심을 굳히셨대요. 그게 딸을 위한 길이라고요.”
“좋아해도 되는 거죠?”
“그럼요.”
“잘됐네요! 정말 잘됐어요!”
“그게 그러니까⋯⋯.”
진혁의 설명이 한참 계속됐다.
뇌사 기증자는 10세 여아.
교통사고로 입원한 지 4년째.
짧으면 3일.
길면 7일.
그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일.
그는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기리면 된다고.
안수현이 평생 고마워하며 기증자가 미처 살지 못한 생을 살면 되는 거라고.
기나긴 설명 끝에, 진혁이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내뱉자, 이현아의 눈이 커졌다.
“고마워요.”
“갑, 갑자기 왜요?”
“호흡기 내과 얘긴데, 『외과의사 24시』에 욱여넣은 것도 고맙고. 뭐, 그거 말고도 고마운 게 많아요.”
“⋯⋯!”
“고맙습니다, 이 PD님.”
처음엔 진지하게.
마지막은 가볍게.
이현아의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 ✻ ✻
눈가는 촉촉해지고.
얼굴은 붉어진다.
귀마저 빨개진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화끈거렸으니까.
물론 이진혁 때문은 아니었다.
고맙다는 저 한마디에 감정이 요동칠 자신이 아니었다. 정아름이라면 모를까.
이현아는 생각했다.
지금, 이 감정은 시청률이라는 빌어먹은 놈한테 쫓기는, 그 자신의 직업적 성취감이 만든 감정이라고.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던 일이 해결됐다는 안도감.
그리고 고양감이 밍글된 게 분명하다고.
그렇지 않다면 이리 감정이 요동칠 리 없었다.
그렇게 제 감정을 정의 내릴 때, 이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왜 그래요?”
“너무 놀랍고 기뻐서요. 아니다, 혹시 심계항진증 같은 게 아닐까요? 심장도 너무 빨리 뛰는 거 같아요.”
제 마음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이현아가 팔을 쭉 내밀었다.
한번 봐달라는 함의.
그녀 나름의 의사 표현이었다.
뭐, 당연하게도 이진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스쳤다는 이유로 팝콘엔 손도 대지 않은 게 분명했으니.
망설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손을 빼지 않는다.
계속 기다린다.
그러자 그가 움직였다.
곧, 이진혁의 왼손이 오른손을 덮는다.
따뜻했다.
온기가 느껴졌다.
환자를 향한 이진혁의 마음마저 전해진다.
곧, 검지와 중지가 제 맥을 잡자,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때요? 저 괜찮아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데요?”
“너무 좋아서 그래요.(당신도 좋아요.) 골방에 틀어박혀 편집한 보람이 있는 거죠.”
“뭐, 저도 좋네요. 사실 언론을 싫어했어요.”
“왜요?”
“너무 정파적인 것도 싫고, 계몽하려는 것도 싫어서요.”
“음.”
“팩트에 기반해서 움직이는 의사랑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여겼죠.”
“그럼 지금은요?”
“그냥 아닌 사람도 있구나, 순기능도 있구나. 뭐, 여기까지만 하죠.”
진혁이 밝게 웃자 이현아가 따라 웃었다.
제 뜻을 알아듣지 못한 게 분명했지만.
뭐, 어떠랴.
이렇게라도 표현했으니.
이거면 됐다.
✻ ✻ ✻
미디움 웰던으로 구워 달라고 했던 스테이크.
딱딱하게 식었지만 맛있었다.
뉴욕에 있는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먹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입가심으로 시켰던 와인은 또 어떤가.
3만원짜리 싸구려 와인이었지만, 샤토 퐁테 가네와 같은 풍미를 풍겼다.
그만큼 기쁜 것이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원효 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가 틀린 게 아니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나온 진혁과 이현아가 향한 곳은 아신 병원이었다.
올림픽대교를 건너는 택시 안에서 이현아가 물었다.
“술 마셨는데 들어가도 돼요? 병원장님이 휴가 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면서요.”
“잠깐 얘기만 하고 가려고요.”
“혼날 수도 있는데요?”
“뭐, PD님 핑계를 대면 되지 않을까요?”
“뭐라고 하려고요?”
“현장 점검을 나온 PD님을 안내하는 거다. 뭐, 이 정도면 될 거 같은데요.”
진혁의 대답에 이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은 더 가까워졌다고 여겼건만, 그놈의 PD님 소리는 너무 딱딱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 자신은 고수.
샌님이나 다름없는 이진혁을 잘 안내해야 했다.
“근데 생체 폐 이식은 왜 어려운 거예요?”
“일단 레퍼런스 자체가 거의 없어요. 크기도 크고 간처럼 다시 자라는 것도 아니고. 심장도 멈춘 채로 해야 하니까, 더 어렵죠.”
“아무튼, 안 된다는 거죠?”
“네.”
짧은 대답을 끝으로 진혁이 말을 삼켰다.
곧 있으면 법으로 금지될 만큼, 생체 폐 이식은 위험성이 큰 수술이었다.
하지만 법을 위반하고 수술을 감행한 병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생체 폐 이식.
감옥에 갈 각오로 나선 의료진.
언론의 대서특필까지!
그 의사들의 소속은 아신 병원이었다.
CS의 폐식도 파트가 나선 것이다.
허니, 가서 말해야 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지만 잘 부탁한다고.
꼭 성공시켜 달라고.
뇌사자 폐 이식 또한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잠시 후.
택시에서 내린 진혁과 이현아가 향한 곳은 중독분석실이었다.
환자가 내는 신음과 보호자들의 애원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중독분석실에는 김상혁이 있었다.
“PD님은 오랜만에 뵙네요. 잘 지내시죠?”
“어머, 그럼요. 치프 선생님은 어떠세요?”
“뭐, 진혁이 때문에 많이 바쁘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우리 막내 선생님이 사고뭉치긴 하죠. 호호.”
“그러니까요.”
김상혁의 너스레와 이현아의 화답.
스몰토크가 한참 이어졌다.
진혁이 끼어든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선배님, 혹시 언제쯤 가동될까요?”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할 거야. 임상센터랑도 미팅 끝냈어.”
“R&R은요?”
“따로 또 같이 전략이지 뭐, 그쪽은 동물 실험도 추가해서 진행한다네. 그게⋯⋯.”
김상혁의 설명이 계속됐다.
운영회의 때 병원장이 지시한 일을 제대로 팔로업하고 있다는 말.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마저 이어졌다.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듯, 꽤 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잘 부탁드립니다.”
하나뿐이었다.
물론.
“야야, 우릴 어떻게 보고 그래! 인마!”
“아, 그게.”
“이 자식이! 진짜! 어! 우리가 ER이라는 거 확실히 보여 준다! 우리 구호가 뭐냐!”
“우리는 환자를 살린다!”
“그래, 인마! 어!”
김상혁은 펄쩍 뛰었다.
그런 그를 보며 진혁이 밝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혹시 다른 병원에도 이런 케이스가 있는지 공문을 보내 보는 건 어떨까요?”
“어?”
“같이 공동 연구를 해도 좋고. 꼭 우리가 독점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요.”
“그쪽에는 시설이 없잖아?”
“대신 증례는 있겠죠.”
“사례를 모아 보자는 거지? 나중에 민사 소송 걸 때도 유리할 거라는 거고. 오케이. 일단 과장님께 보고드려 볼게.”
김상혁의 대답에 진혁이 허리를 굽혔다.
항상 그 자신을 믿어 주는 치프.
고마웠다.
곧, 진혁과 이현아는 CS로 향했다.
폐 이식 일정을 확인한 뒤, 다시 호흡기 내과에 들러 안정호와 오수아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감, 감사합니다.”
“제가 한 것도 아닌데요.”
“아,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안정호는 또다시 오열했고.
진혁은 밝게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며칠 전과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진혁의 표정은 밝았다.
할 수 없는 일.
두 가지를 전부 해냈다.
물론 그 자신이 혼자 한 일은 아니었다.
그간 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뤄 낸 성취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말해 주는 거 같았다.
잘하고 있다고.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래.
자신은 잘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고, 의심한다.
그 자신의 행보가 맞는지.
이게 맞는지.
정말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이젠 의심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다시 사는 인생.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부디 검증이 잘 끝나고 검사 결과가 제대로 나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었다.
✻ ✻ ✻
푸르른 잎사귀는 어느새 형형색색으로 물든다.
뜨거웠던 태양은 지고.
하늘은 높이를 더해 간다.
어느새 가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사인방.
아니 오인방이 한자리에 모였다.
소아외과를 돌았던 이태희.
마마보이지만 그늘진 얼굴의 김현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최재성.
그리고 장혁준과 이진혁.
진혁을 제외한 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중환이 많고 고령의 환자가 많은 만큼 언제나 빡빡하기로 유명한 ‘내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혁준이 당장 앓는 소리를 했다.
“인계장 봤냐? 봤어? 이게 사람이 살 곳이 아니야. 외과보다 더 하다고. 으으.”
“나도 내과가 ‘내 과’가 될 줄 몰랐는데.”
“하아.”
“그,,게,,,.”
저마다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인턴들이었다.
그들은 진혁이 속해 있다는 이유로 오인방과 멀어지고자 했다.
그도 그럴 게.
“야야, 괜히 엮이지 말자. 어, 이진혁이 때문에 지금 다 벼르고 있다고.”
“선배들이 지금 전투태세 돌입했다고 난리더라. 다 죽여 버린다고 하더라.”
“이진혁이랑 얽히면 다 같이 골로 갈 수 있다고 하는 선배도 있었어.”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
곧 그들 중 누군가 소리쳤다.
“야 장혁준! 너 진짜 거기 서 있을거냐?”
“뭐?”
“아신대 출신이 왜 거깄는데. 걍 일로 와.”
“아, 꺼져.”
장혁준이 생까자, 그들은 김현수를 꼬득였다.
하지만 그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진혁을 싫어하는 건 여전했지만, 그가 도와준 걸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통합내과나 마찬가지였기에 선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됐다.
이른바 이진혁 죽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