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7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77화(177/388)
177화. 내가 바로 말리그다 (3)
병원에 입원하면 숱한 검사를 받는다.
과잉 검사가 아니냐고 할 정도다.
환자가 지칠 정도로 체크하고 이를 반복하니, 그럴 만도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왜 아픈지 의사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사를 돌린다.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그런 면에서 운이 없었다.
재수가 없었다.
이진혁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머지않아 대장 내시경을 했을 게 분명했고.
왜 아픈지 밝혀냈을 게 명백했다.
하지만 선수를 뺏겼다.
“시X.”
한참 끙끙거리던 윤중선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정상 수치는 1.6%~2.0%.
고작 0.1% 차이였다.
유의미한 차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애매한 수치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은 이진혁한테 당했다.
당해도 그냥 당한 게 아니라, 된통 당했다.
그래, 어쩌면 빈혈이 있다는 말에 매몰된 탓일지도 몰랐다.
머리가 지끈거린 윤중선이, 이마를 짚었다.
후끈거린다.
열이 없는데, 열감이 느껴진다.
그뿐이랴.
역류성 식도염도 없건만, 가슴마저 화끈거렸다.
스트레스다.
울화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참는 게 이기는 거였다.
그래.
좋게 생각한다면, 이 또한 사랑을 지키는 일이었다.
교수는 돼야 결혼도 하고, 정지혜의 부모님 앞에 우뚝 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오빠진짜실망이야대체왜이러는거야.]액정을 그득 메운 장문의 문자.
답장도 하기 전에 연이어 문자가 날아왔다.
[진짜왜그래] [진짜이러기야?] [정말실망이야] [뭔데?] [나오늘그날인데오빠까지그럴거야?]한 방, 두 방, 세 방, 다섯 방.
띄어쓰기 없는 장문의 문자가 비수처럼 날아든다.
묵직한 펀치가 계속 그를 때린다.
그리고 그 순간,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정지혜를 달래야 한다는 현실이 충돌한다.
“끄으으으윽.”
윤중선이 다시 뒷목을 잡았다.
✻ ✻ ✻
아끼는 후배인 윤중선.
패잔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고개마저 떨군다.
그 모습에 화를 내려던 권문영이, 감정을 억눌렀다.
화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뭘 그렇게 늘어져 있어?”
“⋯⋯.”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치프,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대도.”
“그래도⋯⋯.”
윤중선이 말꼬리를 흐렸다.
저변에 깔린 건 고마움이었다.
내리 갈궈도 모자랄 판.
치프의 아량에 감동한 눈치다.
전투에서 질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는 옛말을 늘어놓자, 윤중선이 저간의 사정을 설명해 왔다.
권문영이 혀를 차며 반문했다.
“그러니까 이진혁이 꼬질렀다는 거네?”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정지혜 선생이 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윤중선이 고개를 떨구자, 권문영이 혀를 찼다.
로미오와 줄리엣.
비극의 주인공이 눈앞에 있었다.
사정이 딱했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그게 윗분들의 뜻이니까.
“정당하게 조지자, 정당하게.”
“정당하게요?”
“그래, 막 갈구지는 말자고.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 아냐.”
“그게⋯⋯.”
윤중선이 말꼬리를 흐렸다.
여자 친구인 정지혜가 또다시 장문의 문자를 보낼 거 같다는 기색이다.
하지만 개인의 사정을 봐줄 만큼 아량이 넓은 조직이 아니었다.
망설임을 눈치챈 권문영의 태도가 바뀌었다.
“중선아.”
“예.”
“조직이 먼저다. 너는 내과 소속이고, 이진혁은 적이야, 적. 윗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잖아.”
“⋯⋯예.”
“공적인 일에 사감을 두지 말라고.”
“알, 알겠습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이진혁을 적으로 규정한 채 사감이 가득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내과였으니까.
허나 윤중선은 반발하지 않았고.
권문영 또한 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조질 때였다.
이진혁 때문에 호흡기내과장이 날아갔고, 그간 반대했던 예산안이 계속 통과되고 있었다.
작은 균열이 댐을 무너트리듯, 그간 쌓아 온 체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 ✻ ✻
일반내과(IM).
거대한 과다.
수많은 분과가 있으니 대(大)과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외형은 일반외과(GS)와 비슷했다.
뿌리나 다름없는 GS를 중심으로 분과가 형성돼 있는 것처럼, IM을 중심으로 여러 분과가 있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그건 그 수가 많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자신 있었다.
모든 과를 아는 건 불가능한 일.
질문을 던졌을 때 제대로 대답할 리 없었고, 이를 빌미로 조지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어떻게?
평소처럼 하면 됐다.
– 공부는 안 하고 인터뷰만 하고 다녀! 어!
– 이 새끼야. 제대로 하라고, 제대로!
– 넌 벌당이다, 벌당!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군대 얘기처럼, 양념을 듬뿍 친 후 윗분들에게 말씀드리면 된다고 여겼다.
그럼 이쁨받으리라.
다들 귀엽게 봐 주시리라.
잠시 후.
그들은 이진혁과 함께 호흡기 내과로 향했다.
이진혁 때문에 쑥대밭이 된 곳이었기에, 내과 경험이 일천한 그를 조지기에 딱 좋은 곳이라 여겼다.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를 조지는 거.
그만큼 통쾌한 일도 없다고 여겼다.
곧 환자 앞에 선 권문영이 말했다.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잠시 차트 좀 보겠습니다.”
“네.”
빠르게 차트를 확인하는 권문영.
급성기관지염 환자였고.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기침이 잦아든 탓이다.
베드 끝에 달린 고리에 차트를 건 뒤, 권문영이 말했다.
“잠깐 인턴 교육 좀 하려고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교육을 하다 보면 혹독하게 대할 때가 있는데 양해 좀 부탁드려요.”
“회진 때 많이 봐서요. 괜찮습니다.”
이해한다며 어색하게 웃는 환자.
회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어떻게 털리는지 봐 왔기에, 특별한 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교육의 대상을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어어!? 이진혁 선생님?”
“⋯⋯!”
“이진혁 선생님 아니세요?”
환자가 반색했다.
그뿐이면 괜찮았겠지만, 유명인사를 만났다는 기쁨이 그득 담긴 목소리가 이어졌다.
“와, 팬입니다, 팬!”
“감사합니다.”
“아효, 고생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진혁.
그리고 그를 반기는 환자.
권문영과 윤중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른 환자까지 야단법석을 떤다.
“어머, 저도 얼굴 좀 보여 주세요. 어매~ 잘생겼네, 잘생겼어.”
“감사합니다.”
“어효, 겸손도 해라. 선생님, 여자 친구는 있어요?”
“아직 없습니다.”
“혹시 생각 있으면 말해요, 호호.”
“아닙니다.”
환자들과 이진혁의 대화가 길어지자, 권문영과 윤중선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게다가 그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자도 있었다.
“근데 선생님.”
“네?”
“이진혁 선생님도 교육받아야 되는 거예요? 왜 혼내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
“우리 이 선생님은 부족한 게 하나도 없잖아요.”
다른 환자들의 딴지.
이진혁의 명성을 간과한 그 자신의 잘못이었다.
권문영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원래 의학이 끝이 없는 학문입니다. 한참 배워야 할 시기기도 하고, 이 선생만 특별히 대우할 순 없어서요.”
“아⋯⋯.”
“뭐, 이 선생이 잘하는 건 저도 알죠. 하하.”
“⋯⋯.”
“그래도 이대로 두면 방기하는 거밖에 안 돼서요, 단단히 교육하려고 합니다. 의료계의 별이 될 친구 아닙니까, 하하.”
“호호, 그렇지요.”
졸지에 이진혁을 칭찬한 상황.
얼굴이 벌게진 권문영이 서둘러 병실 밖으로 향했다.
✻ ✻ ✻
이진혁이 유명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간 어떻게 라운딩을 돌았나 싶을 정도다.
‘뭐야, 이 새끼. 그동안 병실은 어떻게 돈 거야. 설마 로딩이 걸리는데도 환자랑 대화하고 그런 건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권문영이 고개를 저었다.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R1을 붙잡고 물어보면 그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권문영이 잠시 숨을 골랐다.
엿 먹이려고 했던 이진혁을 칭찬한 상황.
당장 갚아 줘야 했다.
“Acute Bronchitis(급성기관지염) 발병 기전이 어떻게 되지?”
“⋯⋯?”
“왜? 몰라?”
“아닙니다.”
“근데?”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는 재촉.
진혁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이러스성 감염이 대부분입니다.”
“무슨 바이러스?”
“Parainfluenza, RSV, Rhinovirus, Adenovirus, Influenz 등이 있습니다.”
“또?”
“드물게 세균 감염 때문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계속해.”
“Mycoplasma, Streptococcus, Bordetella, Moraxella, Haemophilus, Chlamydia pneumoniae 등이 있습니다.”
순간 권문영과 윤중선의 표정이 흔들렸다.
수석 졸업을 한 것도 아니고, 국시에서 만점을 받은 것도 아닌데.
너무 막힘없이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검사를 하는데?”
“그건⋯⋯.”
순간 진혁이 말꼬리를 흐리자, 권문영이 씨익 웃었다.
그럼 그렇지.
전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인턴이지 않던가.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는 그놈의 능력도 술기에만 한정된 상황.
지식과 임상 경험은 일천한 게 분명했다.
박영진 과장의 테스트?
ER에서 낸 괴소문이 분명했다.
하지만.
“원인균이나 바이러스를 밝히기 위한 검사는 진행하지 않습니다.”
“뭐?”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잘 생각해. 바꿀 기회를 줄 테니까.”
“바꾸지 않겠습니다.”
진혁이 단호히 대답하자, 권문영과 윤중선이 아쉬워했다.
과거와 미래의 처치가 달라졌을까 봐 잠시 망설였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뿐이랴.
흉부외과장 출신이라 호흡기 질환에 강하다는 것도 몰랐다.
권문영이 다시 쏘아붙였다.
“증상이 비슷한 질환이 있을 텐데.”
“네, COPD(만성폐쇄성폐질환)와 Pneumonia(폐렴), Bronchiectasis(기관지확장증) 등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확인하지?”
“Sputum Smear(객담 도말) 검사를 진행하고⋯⋯.”
진혁이 해야 할 검사를 줄줄이 읊자, 권문영이 바로 되물었다.
“안티(항생제)는 뭘 쓰는데?”
“쓰지 않습니다.”
“뭐?”
“쓰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
권문영이 나직이 한탄했다.
범용적인 항생제의 이름을 말할 줄 알았건만, 함정 질문을 또다시 피해 갔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때.
이진혁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성인 환자와 다르게 소아 환자의 경우 아세트아미노펜을 처방합니다.”
그의 대답에 권문영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X발.
말리그가 똑똑하기까지 했다.
✻ ✻ ✻
인기도 많고 똑똑한 이진혁.
인정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아직 인턴.
방대한 내과 계열의 모든 처치와 처방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권문영은 진혁을 계속 끌고 다녔다.
물론 윤중선은 슬슬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환자 투어가 계속됐지만, 권문영의 표정도 윤중선을 닮아 갔다.
그도 그럴 게.
가는 병실마다 이진혁을 반겼다.
환호하고.
또 열광했다.
그 모습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병실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자신도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닌 상황.
차트를 먼저 확인한 뒤 질문을 던져야 했는데, 병실마다 저런 반응을 보이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한 번은 밟아 줘야 했으니까.
이렇게 물러설 수 없었으니까.
만성 기관지염.
폐렴.
결핵.
천식.
만성 폐쇄성 폐 질환.
계속 질문을 던졌고.
이진혁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결국.
“안 되겠다. 따라와.”
권문영은 행로를 바꿨다.
잠시 후.
그들은 심혈관 내과에 도착했다.
심혈관 질환의 경피적 치료를 두고 CS와 다투는 곳이었으니, 이 또한 적당한 곳이라고 여겼다.
안정 협심증.
심부전.
이상지지혈증.
기립성 저혈압.
계속 질문을 던졌지만, 이진혁이 막힘없이 대답했다.
심지어 때로는 그 자신도 모르는 부분까지 대답했다.
그러자.
“어디서 봤는데?”
“미국에서 발행된 논문에서 봤습니다.”
“논문 제목이 뭔데?”
“네, 그게⋯⋯.”
“하⋯⋯. 너 내가 펍메드에서 찾아본다. 없으면 죽는 거야.”
“네, 그러셔도 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됐고.
도저히 이길 방법이 없다고 여긴 권문영은 이진혁을 버려 둔 채 당직실로 향했다.
✻ ✻ ✻
의국으로 갈 순 없었다.
로딩이 걸릴 대로 걸려 있을 테고.
누군가 당장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권문영은 치프였다.
교수님들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레지던트의 업무를 어레인지해야 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았고.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당장 확인해야 했다.
이거라도 확인해서 이진혁을 조져야 했다.
하지만.
“하⋯⋯.”
이진혁이 말했던 논문. 그리고 그 내용마저 정확히 일치하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갈구기는커녕 된통 당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 서 있던 윤중선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문자를 보여 줬다.
[오빠진짜이럴래?] [지금나랑장난해?] [심장내과는왜갔는데.] [지금실시간으로내귀에들리고있어.]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
윤중선이 끄으윽거리는 소리와 함께 뒷목을 잡자, 권문영이 나직이 탄식했다.
되는 일이 없다고.
말리그를 괜히 말리그라 부르는 게 아니라고.
하⋯⋯.
정말 되는 일이 없었다.
✻ ✻ ✻
소화기내과를 비롯해 다른 분과를 갔다면, 큰코다칠 뻔했다.
그래서 더 과하게 답했고.
권문영과 윤중선을 찍어 눌렀다.
짧디짧은 한숨을 내쉬던 진혁의 눈에 곧 조미혜 간호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전 아무것도 몰라요’ 신공을 펼치며, 말을 걸어오자 진혁이 씨익 웃었다.
살생부에 줄을 그을 차례였다.
안녕?
난 말리그야.
찐한 인사를 해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