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화(18/388)
18화. 프리인턴 교육 (9)
기자들은 프론트로 달려가 소란을 피웠다.
“혹시 이진혁 선생님 보셨습니까!!”
“어제 일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몇 호실에 묵고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프런트를 담당하던 직원이 대답할 틈도 없이 질문을 쏟아 내는 기자들.
당황스러움도 잠시.
안 그래도 신문을 통해 진혁의 존재를 알고 있던 직원이 커피숍을 가리켰다.
“아까 커피숍으로 가셨어요.”
감사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커피숍으로 달려가는 기자들.
그들은 진혁을 향해 저돌적으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인터뷰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건만, 질문부터 쏟아 냈다.
“지금 어떤 심정이십니까!!”
“무섭지는 않으셨습니까!”
“얼마 전 북한이 미사일을 쐈습니다. 육선재 의원은 국방위 소속인데도 한가하게 골프를 쳤는데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하신 겁니까.”
“육선재 의원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까?”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질문.
장길만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질색했지만, 진혁은 이를 두고 빙긋 웃었다.
어차피 조용히 살기는 그른 몸.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 * *
호텔 측의 배려로 만들어진 임시 기자 회견장.
사실, 컨퍼런스 룸을 빌려 기자 회견을 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워낙 많은 관심이 쏠렸기에 급하게 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진혁이 단상에 서자 질문이 쏟아졌다.
“당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우리 아신 병원은 생명 존중의 정신을 제일로 삼는 병원입니다. 저는 아신 병원 소속 의사답게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기자들이 이를 재해석해 타이틀을 달았다.
[아신 병원 설립 이념을 따랐을 뿐.] [생명 존중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이진혁.] [몸에 밴 설립 이념! 환자만 생각하다!]누군가 또 다른 질문을 해 왔다.
“구급차를 타고 따라가신 이유는 뭡니까?”
“아신 병원 소속이라면 다른 선생님들도 저처럼 했을 겁니다. 응급 환자 옆에서 킵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기자들이 재빨리 이를 재해석했다.
[아신 병원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 [배운 대로 했을 뿐이다. 겸손한 이진혁.] [응급 환자를 살피는 건 의사의 본분!]또 다른 누군가 질문을 해 왔다.
“육선재 의원이라는 건 모르고 계셨습니까!”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보좌관이 알려 주더군요. 저는 아신 병원 소속 의사답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질문은 한참 동안 계속됐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장길만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 일 년 뒤에 나갈 거라고 언질을 줬는데, 이진혁은 모든 공을 병원에 돌리고 있었다.
“이, 이게…… 진짜.”
장길만 입장에선 어처구니없는 상황.
아마 부원장 또한 황당하리라.
‘그만하라고! 그만해!’
소리 없는 절규 끝에 찾아온 마지막 질문.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권력자 앞에서 두렵지 않았냐고요? 그때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렵습니다.”
“!!”
“저도 의사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혹시 불이익을 받아 레지던트를 지원도 하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잊혀진다면 언젠가는 보복하려 들 게 분명합니다.”
환자의 목숨을 위해서 겁 없이 불의에 맞섰던 이진혁.
그가 겁난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신이 났다.
[레지던트가 되지 못할까 두려워!] [권력자의 보복에 떨고 있는 백의의 천사!] [무섭고 떨린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나.] [지금은 보복 못 해. 하지만 일 년 뒤는?]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식 기자 회견을 끝낸 진혁이 뒷말을 덧붙였다.
“전 아신 병원을 믿습니다.”
“……!”
“아신 병원이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병원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
결국, 장길만이 뒷목을 부여잡았다.
“끄으윽.”
안 그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원장의 직위.
자신이 속한 응급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내과 계열의 부원장이 계속 연락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이제는 이진혁까지 감당이 안 됐다.
* * *
기자 회견을 마치고 다시 올라가는 길.
진혁은 싱긋거리며 웃었다.
원래 한 대 맞으면 열 배로 갚아 줘야 하는 게 세상살이.
거기에 더해, 병원 내 정치질은 자신도 경험이 많았다.
‘어떻습니까? 날 자를 수 있겠습니까?’
부원장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 * *
그날 저녁.
진혁은 아무 말 없이 장기자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들 학예회를 지켜보는 교수님의 마음이 이런 걸까.
공연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귀엽네, 귀여워. 이래서 공연하는 건가.’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을 바라보니 다들 흐뭇하게 공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추억을 회상하게 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추억이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쌓을 필요가 없는 추억도 있지.’
여장을 한 채 춤추는 거라든지.
여장을 한 채 여자 노래를 부른다든지.
이런 건 굳이 추억이라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정말 질색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자리는 센터.
심지어 인터뷰한답시고 연습도 제대로 못 했다.
어느덧 14조가 준비할 차례.
갈아입어야 할 옷을 든 진혁이 질색했다.
“춤도 못 배웠는데 꼭 해야 하는 겁니까!”
그 모습에 장혁준이 웃었다.
“그러니까 해야죠.”
“왜요?”
“못 추면 더 재밌거든요.”
“!”
“근데 멀뚱멀뚱 서 있으면 진짜 별로거든요? 꼭 뭐라도 하셔야 해요. 킥킥.”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당부.
옆에 있던 다른 이들도 키득거렸다.
“꼭 해야죠. 안 그래요?”
“아신 병원의 수제자! 캬. 제대로 하세요.”
“와. 난 부끄러워서 그런 말은 못 했을 텐데. 춤도 열심히 추세요.”
응원이긴 한데 저주처럼 들려왔다.
순간 진혁이 고개를 돌려 이태희를 바라봤다.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달라고!’
하지만, 그녀가 휙 하니 고개를 돌렸다.
이태희는 버스에서 있던 일을 잊지 않고 있는 게 분명했다.
* * *
그렇게 시작된 공연.
반주가 시작되기 전부터 진혁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음악이 계속될수록 잘 익은 홍시처럼 익어 가기만 했다.
– 오직 나뿐인 거야 oh~!! 내 사랑~~!!
“푸하하하.”
“하하하.”
로봇처럼 딱딱한 움직임.
관절이 저마다 따로 놀았고, 박자 또한 엇박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관객들은 포복절도했다.
‘제발. 제발 그만하라고!’
절규도 통하지 않는 일.
음악은 계속됐다.
– Your girl. my baby~~! 내 품으로 와~!
“푸하하하.”
“쟤 일부러 저러는 거냐!”
“뭐야. 하하하.”
옆 사람을 따라 하며 열심히 춤을 췄지만 엉망진창.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주 제대로 망가지고 있었고, 좌중은 환호했다.
사실, 졸지에 유명인이 된 진혁의 춤이라 더 웃겼는지도 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운혁이 장길만의 허리를 쳤다.
“어때? 이진혁이 괜찮지 않아?”
“뭐가?”
“열심히 하잖아.”
“아니, 난 쟤 별로야. 무서운 놈이야.”
“무섭다고? 인턴이 뭐가 무서워? 우리 밑에 들어올 놈인데.”
“그냥 가까이하지 말자.”
장길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진혁의 인터뷰 장면을 생생히 목격한 장길만이었기에 그가 무섭게만 느껴졌고,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럽기만 했다.
하지만, 조운혁은 달랐다.
“저놈 면접 볼 때 같이 있었거든.”
“그래? 쟤 면접은 잘 봤어?”
“면접 잘 봤지.”
“? 야마(족보)도 없었을 거 아냐.”
“뭐, 없어도 잘하더라.”
“설마.”
“진짜라니까. 아마 CS로 갈걸?”
맥락 없이 나온 CS.
조운혁이 설명을 이어 갔다.
“한동수 교수님이 완전히 찍었어. 대놓고 CS로 오라고 꼬시더라.”
“뭐, 본인이 다른 과 지망할 수도 있지.”
“에이. 지원한다고 받아 주겠냐? 다른 과 교수님들한테도 다 약 쳐 놨을걸?”
결국, CS로 갈 확률이 높다는 말.
장길만은 말없이 진혁을 직시했다.
– 너와 나의 사랑을 지켜봐 줘~!!
노래에 맞춰 엉망진창으로 추는 춤.
저 행동 또한 고도의 계산하에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라면, 가까이해선 안 될 무서운 인턴이었다.
‘무섭다, 무서워. 피해야 할 놈이야.’
그 순간 장길만은 이진혁이 응급실 인턴으로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 * *
흥겹게 끝난 조별 장기자랑.
진혁은 곧장 옷부터 갈아입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사진을 찍고, 난리부르스를 췄지만 진혁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치욕이다, 치욕. 흑역사야, 흑역사.’
이태희가 해 준 화장마저 지워 버린 뒤, 냉큼 자리에 앉았다.
‘빨리 끝내지 대체 언제까지 하는 거야!’
하지만, 계속되는 장기자랑.
진행을 맡은 레지던트가 무대 위에 섰다.
“자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인전 시간입니다.”
“와아아아!”
“기다렸습니다!”
어린애처럼 고성을 내지르는 이들.
곧 다가올 고된 인턴 생활의 두려움을 떨쳐 내기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 모습에 진혁이 하품했다.
‘졸리다, 졸려. 그냥 방에 돌아가고 싶다.’
지루해하는 모습을 눈치챈 건지, 이태희가 말을 걸어왔다.
“수처 술기 대회래. 어제 알려 주더라.”
“?”
“누가 빨리 봉합하나 자신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대결하는 거야.”
“그런 걸 왜 하는 건데?”
“와. 너 진짜 아저씨처럼 굴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재미없어하고.”
이태희가 타박해 왔지만, 의욕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애들의 재롱잔치처럼 여겨졌던 장기자랑도 여장 공연을 한 뒤 재미없어진 것이다.
“관심 없어. 애도 아니고 저런 걸 왜 나가.”
“뭐래? 너도 애거든?”
“난 아닌데?”
“그럼 나만 나가 볼까.”
“나가든가.”
“점점 말이 짧아진다?”
“아까 날 외면한 벌이야.”
“이게 진짜!”
이태희가 때릴 것처럼 손을 들자 진혁이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때, 사회자가 다시 소리쳤다.
“자자. 교육수련부에서 상품까지 지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 박수!!”
짝짝짝!
짝짝!
“여러분 기대되시죠?”
“네!!”
“네에~!”
환호하는 인턴들.
‘뭐, 세탁 세제나 휴지, 크록스 그런 건가. 우리 병원도 상품을 걸긴 했었는데.’
서신대 병원에서도 매번 이런 교육을 했고 이름뿐인 상품을 걸었다.
1등은 크록스.
2등은 세제.
3등은 휴지.
사실, 인턴의 필수품인 크록스만 걸어도 그들은 환호했다.
98년도인 지금도 크록스가 있는진 몰랐지만 말이다.
하지만, 곧.
진혁이 입을 턱 하니 벌렸다.
* * *
“자, 1등에게는 핸드폰을 드립니다. 2등은 MP3 Player. 3등은 삐삐입니다.”
어마어마한 상품.
잊고 있었지만, 아신 병원은 재단에 돈이 많았다.
“와아아아아! 핸드폰이래!”
“나도 나간다!”
“와. 한번 도전해 본다. 밑져야 본전 아니야.”
열기는 뜨거웠다.
아직 핸드폰이 없는 이들이 많은 상황.
다들 환호성을 내지르며 좋아했고, 저마다 1등을 자신했다.
“지원자 받겠습니다. 지원자는 무대 앞으로 나와 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숱한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이태희도 마찬가지.
진혁마저 얼굴이 상기돼 일어서자 이태희가 황당해했다.
“뭐야. 관심 없다며.”
“나도 하려고.”
“애들이나 하는 거라며.”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정말이지 핸드폰은 위대한 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