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1화(181/388)
181화. 내가 바로 말리그다 (7)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그러니까 버티셔야 합니다.”
지극히 덤덤한 어조.
진혁의 대답에, 제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받고 싶었던 보호자가 탄식했다.
“아⋯⋯.”
“진짜 안 좋아지면. 치료가 의미 없는 순간이 오면, 그때 말씀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좀 더 버티세요!”
으레 하는 말.
하지만 진심을 담는다.
버티라고.
좀 더 견디라고.
물론 진혁도 알고 있었다.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걸.
하지만 확률과 가능성만 따지는 의사는 의사라 할 수 없었다.
대답이 됐을까.
보호자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그러고선 다시 환자 옆으로 가 손을 쓰다듬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진혁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자글거리고 쪼그라든 손.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다.
기운이 없어 제대로 주먹조차 쥐지 못하는 저 손으로 아이를 받고.
제 자식이 크는 걸 지켜봤으며, 가장의 무게를 견뎠으리라.
그리고 어느새 다 커 버린 보호자가, 그런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울고.
또 운다.
오열한다.
너무도 익숙한 모습.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그래.
부모님이 쓰러지고 나서야 후회하고, 좀 더 시간을 달라던 우리네 보호자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가족을 챙기지 못하고, 아등바등하는 게 일상이 아니던가.
눈가를 적시는 촉촉함.
진혁이 눈을 끔뻑거렸다.
깜빡이고 또 깜빡인다.
그 자신은 의사.
폭풍우에 휘말린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굳건한 등대가 돼 줘야 했다.
하지만 보호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진혁의 눈시울이 붉게 타올랐다.
“아빠⋯⋯. 조금만 더 힘내세요. 네?”
“⋯⋯.”
“내가 더 잘할게요. 응?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기회 좀 줘요. 알았죠?”
대답 없는 환자.
조금씩 손을 움직일 뿐이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딸이 쥔 손을 잡으려 한다.
그 모습에 보호자가 다시 울먹거렸고, 진혁은 숫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죽음에 익숙했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차가운 심장을 유지해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따뜻했다.
부모님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환자 옆을 지킨다.
그게 자신이었다.
물론 누군간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하리라.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았다.
그렇게 상념이 쌓이고 쌓여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있을 때, 훼방꾼이 나타났다.
DNR 동의서를 받자던 윤보형이었다.
그가 뭐라 말하려던 찰나.
“쉿!”
진혁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며 막아섰다. 그러고는 조용히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넘겨받았다.
✻ ✻ ✻
5분, 10분, 15분.
보호자가 진정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었지만 짧았다.
그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 진혁이 나섰다.
“보호자분, 이건 CRRT 동의서입니다.”
“네?”
“동의서를 먼저 받았어야 했는데, 상황이 급해서 먼저 조치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여기 사인하면 되는 거죠?”
“네. 부작용으로는⋯⋯.”
또다시 시작된 설명.
귀에 들어오지 않는지 보호자는 연신 고개만 주억거렸고.
진혁도 핵심만 간결하게 설명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CRRT의 효능이 뛰어나다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저혈압.
저체온.
전해질 및 산염기 불균형.
등등.
그렇게 사인을 받은 뒤 움직이려던 찰나.
이번엔 MICU(내과계 중환자실) 마크를 달고 있는 간호사가 들어왔다.
진혁이 의아한 듯 물었다.
“초기 세팅은 끝났는데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요, 저희 쪽에서 다루는 장비니까요.”
“⋯⋯.”
“잠깐 볼륨 좀 체크할게요. 아, 전 MICU에서 일하는 윤지은이에요.”
“네, 전 이진혁입니다.”
건조한 인사 뒤에 윤지은이 빠르게 장비를 점검했다.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에서 내부로.
피를 보내고 빼내는 상황.
관리는 필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지은이 다시 다가왔다.
“제가 1시간 단위로 팔로업 할 거예요.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기 전에 차트를 확인해 봤는데요. 루틴 검사 오더 있더라고요. 그럼 저는 이만.”
윤지은이 상큼한 미소를 남기고 자리를 떠나자, 진혁도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ABGA를 비롯해 각종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돌리고, 그 결과치를 보며 Fluid Volume을 조절해야 했다.
물품을 받고 돌아가는 사이.
김석대가 말을 걸었다.
“그래서 아까 보호자를 찾은 거군요. 동의서를 받아야 했으니까요.”
“아, 네. 사실 동의서부터 받고 움직였어야 하는 일입니다.”
“의외네요. 동의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뭐, 그래도 다들 의사니까요.”
“⋯⋯근데 왜 그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진짜 궁금해서 묻는다는 표정.
진혁의 대답은 심플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 정도는⋯⋯.”
“에이, KBC도 사장님이 바뀌면 바로 인사 발령을 내지 않습니까.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의사도 사람이라는 거죠?”
“네. 그나저나 저쪽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 같은데요, 이 피디님한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촬영이 곧 끝날 거라는 함의.
병원장이 허락한 마당에 왜 안 된다는 건지 몰랐던 김석대가 의아해했지만, 진혁은 말을 삼켰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그리고 조직간 암투.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우리네 종합 병원에선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 ✻ ✻
6시간 후.
다른 병동도 돌아야 했지만, 진혁은 짬을 내 계속 63병동을 왔다 갔다 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세 번째 피검사를 마친 뒤에는 환자 옆에 눌러앉을 정도였으니,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사실 피검사 결과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VT(심실빈맥)를 유발했던 혈중 칼륨 농도가 정상치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으으으으.”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진혁은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걱정돼 킵을 섰다.
암세포를 죽이기 위한 항암 치료.
정상 세포마저 죽였다.
VT는 또 어떠한가.
심장도 타격받았다.
그리고 이는.
“으으으.”
섬망을 불러왔다.
고령의 환자.
왕왕 있는 일이었다.
환자가 계속해 몸부림 친다.
보호자가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다.
밀고, 또 밀어낸다.
분명 손잡을 힘도 없어 했건만, 섬망 환자 특유의 움직임을 보인다.
그 모습에 점검을 위해 올라와 있던 윤지은이 소리쳤다.
“MICU로 옮기는 게 어떨까요. 섬망(Delirium) 때문에 안 될 거 같아요!”
“아뇨, 일단 버텨 봅시다.”
“네?!”
“면회가 제한돼서⋯⋯. 최대한 버팁시다!”
“아⋯⋯.”
반신반의하는 보호자를 위해 하는 말.
이대로 MICU(내과계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아버지를 볼 수조차 없었다.
정해진 면회 시간은 지극히 짧았으니까.
그 모습에 윤지은이 탄식했다.
이진혁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진혁이 소리쳤다.
“미다(미다졸람, 진정제) 슈팅합시다!”
“네?”
“어서요!”
“그, 그래도 주치의 선생님이⋯⋯.”
“오려면 한참 남았습니다. 어서요!”
43병동에 있다던 주치의.
노티를 했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윤지은은 망설였다.
이진혁이 임상 권한을 잃었다는 걸 알고 있던 탓이다.
허나, 이는 찰나의 고민.
MICU에 근무하며 병마와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빠르게 스테이션으로 향하는 그녀.
남아 있는 이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환자분!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아빠! 아빠!”
환자의 정신을 일깨우려고 애쓴다.
하지만.
띠띠띠띠.
띠띠띠띠.
요란스럽게 울리는 경고음.
이에 반응한 걸까.
환자의 발버둥이 심해졌다.
“놔아아아아-.”
“환자분! 여기 병원입니다!”
“놔아아아-!”
“환자분!!”
“놓으라고-!!”
어디서 이런 힘이 나는 걸까.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아니, 환자의 섬망 증세가 심해진 건 갑자기 경고음을 쏟아 내는 CRRT 장비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진혁의 고개가 뒤를 향한다.
빨갛게 변한 화면.
그리고 경고음.
몸부림치는 환자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고, 상호 작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
더 이상 몸부림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다.
곧, 윤지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곧바로 수면진정제를 IV에 슈팅하는 그녀.
그 뒤를 따라 다른 간호사도 모습을 보였다.
“억제대 체스트 채울게요! 꺄악!”
“으으으!”
“환자분! 잠시만요!”
난장판이 된 상황.
수면진정제의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았고.
띠띠거리는 기계음이 계속될수록 환자의 몸부림은 거칠어졌다.
윤지은이 소리쳤다.
“Return pressure(반환 압력)에 문제가 생겼어요!”
“그게 뭡니까!”
“일단 카테터 좀 봐 주세요!!”
“네!”
베드 오른쪽에 있던 진혁이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케모포트를 통해 연결된 카테터를 확인한다.
“라인도 꼬였고. 다시 세팅해야 할 거 같습니다!”
“일단 스탑할게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클램프! 클램프 잡아 주세요!”
장비에 대한 건 모르는 상황.
그녀의 외침에 진혁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빨간색 라인과 파란색 라인.
CRRT 장비 옆에 꽂혀 있던 집게로 겸자했다.
“스탑해도 됩니다!”
윤지은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움직이며 말할 뿐이다.
바로 멈추겠다고.
타다닥.
타닥.
장비 설정 버튼을 연달아 누르는 그녀.
곧 ‘스탑 완료됐습니다!’라는 외침이 들리자, 진혁도 움직였다.
빨간색과 파란색 라인.
이리게이션을 한다.
공기와 만난 피를 전부 빼내는 행위다.
하지만.
“놔아아아-!”
환자가 다시 몸부림쳤고.
이리게이션을 끝냈지만, 다시 연결하긴 힘들어 보였다.
발목과 손목에 억제대를 했지만 소용없는 것이다.
“뭐 합니까! 잡아요!”
환자에게 달려드는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까지.
그사이 빠르게 손을 놀린다.
카테터를 연결한 뒤 테이핑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다시 가동해요!”
외침과 동시에 윤지은의 손이 움직인다.
하지만, 장비는 여전하다.
붉은색 화면과 경고음이 반길 뿐이다.
“대체 뭐가 문젭니까!”
“Access line patency 에러예요! 잠시만요!”
당황한 기색의 윤지은이 다시 장비를 훑는다.
라인을 확인하고 카테터마저 살핀다.
“Flow rate에는 문제없는데⋯⋯.”
“빨리요! 환자가 소리에 반응합니다!”
“리셋해 볼게요!”
오류 버튼 누르는 그녀.
깜빡거리며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고.
CRRT 장비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러고 다시 켜지는 장비.
침을 꼴깍 삼키는 것도 잠시.
CRRT가 잠잠해지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허나 긴장의 끈을 놓치진 않는다.
또다시 알람이 울릴지 몰랐다.
그리고 그때.
“아빠⋯⋯. 아빠 여기 공장 아니야! 공장 아니라고! 제발, 제발!!”
미다졸람의 효과일까.
아니면 보호자의 말 때문일까.
난리를 치던 환자의 움직임이 조금씩 멎어 간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