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2화(182/388)
182화. 내가 바로 말리그다 (8)
새근새근 잠이 든 환자.
얼굴엔 평안함이 깃들어 있었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늘어져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섬망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평생 공장에서 일하셨다니⋯⋯.’
이를 지켜보는 진혁의 눈엔 감정이 서려 있었다.
사연 있는 환자였다.
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딨을까만은.
가슴이 시리고.
신경이 쓰였다.
그도 그럴 게, 종소리만 울려도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굴었던 환자였다.
한평생 일했다던 공장.
제어 모듈 경고음으로 착각해 반응한 게 분명했다.
물론 그 전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다지만, 인이 박혔으리라.
습관이 됐으리라.
습성으로 자리 잡았으리라.
그렇게 된 이유야 뻔했다.
가족.
가족 때문이었다.
경고음에 즉각 반응할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고 살았던 거다.
한참 환자를 살피던 진혁이 입을 열었다.
“MICU에 가는 건 안 될 거 같습니다. 기계음도 심하고, 알람도 자주 울리는 곳이라서요.”
“중환자실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괜히 옮겼다가 면회도 제한되고, 섬망 증세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보호자는 영 힘이 없었다.
진혁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인기척이 들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당황한 표정의 주치의.
진혁의 노티에, 최재율이 한숨을 쉬었다.
“하⋯⋯. 일단 교수님께 말씀드려 볼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주치의 뒤에 지정의가 있는 건 알죠? 해 보는 데까진 해 볼 테지만, 잘못돼도 내 탓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윤중선이 시켜서 그런 거라고 변명하던 때와 같은 모습.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부러트려야 하는 건가.’
“촬영 중이었습니다.”
“아직 논의한다고 들었는데⋯⋯. 그, 그럼 방송에 나가는 겁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다 찍었어요?”
진혁이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김석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일 바로 내보낼 겁니다.”
“내, 내일이요?”
“네.”
“보통 편집하지 않나요? 어떻게 바로⋯⋯.”
“못 찍게 할 수도 있다니까, 지금 찍은 거라도 빨리 내보내자고 하시네요.”
이현아의 지시라는 말.
최재율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편집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육중한 카메라를 들고 있던 김석대가 쐐기를 박았다.
“MICU인가 뭔가로 보내면, 그것도 찍죠, 뭐.”
“일단 교수님께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무슨 뜻인지 아시죠?”
‘난 잘못 없어요!’라고 외쳤던 최재율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의욕 없던 사람도 춤추게 하는 게 방송이었다.
✻ ✻ ✻
MICU에서 케어하는 게 좋을 수 있었다.
집중치료실 역할도 겸하니까.
하지만 환자 상태.
보호자의 요구.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스테이시키는 게 낫다고 여겼다.
다른 병원도 아니고 아신 병원.
일반 병실도 CRRT 장비를 쓸 정도로 인프라가 구축된 병원이었다.
그뿐이랴.
교수들의 수준 또한 최정상급.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 자신의 판단일뿐.
어떻게 될지 몰랐다.
해서 회진이 시작되자, 빠르게 움직였다.
먼저 한 일은 종양내과 행렬에 합류하는 것.
담당 구역이 없어 애매한 처지.
이럴 땐 자유로울 수 있어, 좋았다.
23호실, 24호실, 25호실.
기나긴 행렬이 지나간다.
곧, 27호실 앞에 행렬이 도착하자, 최재율이 무리에서 튀어나왔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김철영 환자의 경우 보호자가 일반 병실에서 치료받길 원하고 있습니다. 방송국에서 촬영도 했기 때문에⋯⋯.”
한참 계속된 보고.
그 함의를 알아챈 종양내과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렇게 들어간 병실은 6인실.
입구부터 시계방향으로 돈다.
곧.
“보호자분,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MICU로 가는 게 더 좋으실 텐데요. 심장 기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아빠 옆에 제가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음.”
“중환자실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고 들어서요.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뭐, 그럼 그럽시다. 최 선생은 CV(심장내과)에 협진 의뢰하고. 아직 심장이 안 좋아.”
“예, 교수님.”
간단한 지시.
움직이자는 신호나 다름없었기에, 행렬이 꿈틀거렸다.
조용히 그 뒤를 따르던 진혁이 고개를 돌려 보호자를 바라봤다.
다시 올 테지만 안심하라는 눈인사는 하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고.
잘하신 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무언의 위로를 계속 건넨다.
사실 그 자신도 정답을 모른다.
끝까지 살리려고 노력하는 게 맞을까?
치료 중에 겪는 환자의 고통.
보호자의 어려움.
이를 다 무시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맞을까?
여전히 뭐가 맞는지 모른다.
아는 건 단 하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 ✻ ✻
심술보.
심부볼(Buccal fat)에 지방이 축적되면 생긴다.
한번 생기면 없어지지 않고.
볼 속 깊은 곳에 있는 심부볼은 살을 뺀다고 빠지는 것도 아니었으니, 한번 심술보가 생긴 사람은 인상이 계속 나빠지기만 한다.
그런 면에서 부재일은 한층 심술궂어 보였다.
“고작 MICU(내과계 중환자실)입니다. 거기로 보내는 것도 어렵다는 말입니까.”
“시청자 반응이 너무 좋아서 탈입니다. 병원장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흐음.”
“MICU로 보내도 촬영할 기세입니다.”
“에잇, 쯧쯧.”
부재일이 혀를 차자, 내과장이 진땀을 흘렸다.
“저쪽에서 너무 빨리 움직였습니다. 듣기로는 밤새 편집한 다음, 하루 만에 내보냈다고 합니다.”
“결국, 건드릴 방도가 없다는 말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끄으음.”
부재일이 짙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치프는 내과장에게.
내과장은 자신에게 보고했다.
해서 지시했다.
MICU로 보내라고.
촬영을 못 하게 막으라고.
MICU는 격리된 공간.
명분도 있었고.
쉽게 해결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현아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촬영을 못 할 거 같다는 진혁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은 덕분이다.
“이제 와서 뺄 수도 없고. 방송에 권문영 선생도 나왔다고 했지요? 괜히 헛바람 들지 않게 단단히 단속하세요.”
“안 그래도 따로 불러 단단히 일렀습니다.”
“우린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프로세스 하에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말입니다.”
“예, 부원장님.”
“에잇, 쯧즛.”
부재일이 다시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게 『외과의사 24시』에 이진혁의 모습이 너무 멋있게 나왔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모습.
환자 위에 올라타 CPR 하는 장면.
보호자와 대화하고.
이슈를 해결하는 모습까지.
내과를 돌며 사라졌던 진혁의 모습에, 시청자는 열광했고.
시청률 또한 최고점을 찍었다.
이는 외과 계열엔 희망을.
내과 계열엔 절망을 선사했다.
쳐 내야 하는데.
내보내야 하는데.
되는 일이 없었으니.
어찌 그러지 않을까.
그렇게 부재일이 혀를 찰 동안.
진혁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만 36시간이 흘렀지만, 김철영의 예후는 좋지 않았다.
심장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약물을 투약하고 있었지만, 수술해야 할지 몰랐다.
병실을 나온 진혁은 CS로 가려고 했다.
만약 수술한다면, 그 자신도 참가할 생각.
하지만 앞을 막는 이가 있었다.
최재율과 이름이 비슷한 최재성이었다.
“이,, 선,,생.”
“음?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게,,”
여전히 말을 저는 최재성.
진혁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뭔데요? 술기가 어려워서요?”
“잠,깐, 시간, 되,면,,,.”
“뭐, 가 보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모양.
진혁은 곧 다른 환자 앞에 서야 했다.
그의 나이는 75세.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환자였다.
“환자분, 몸은 좀 어떠세요?”
“안 좋아, 아직도 아파.”
“어디가 아프신데요?”
“기운도 없고 온몸이 쑤셔.”
“잠깐 청진 좀 하겠습니다.”
빠르게 청진을 시작했다.
먼저 심음을 듣는다.
두웅. 둥.
두우웅. 둥.
미약하고 느리게 뛰는 심장.
나이만 보여 줄 뿐.
특이 사항은 없었다.
다시 청진판이 움직인다.
우폐 하엽.
우폐 상엽.
그리고 다시 좌폐 상엽.
다시 좌폐 하엽을 향한다.
그 순간.
“어⋯⋯.”
진혁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좌폐 하엽에서 수포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당뇨도 있고, 뇌졸중에 따른 편마비도 있고. 음⋯⋯. 폐도 약해질 대로 약해진 건가.’
곧 복부까지 청진을 마친 진혁이, 종이 차트를 손에 쥐었다.
BP는 130/80.
맥박은 110회/분.
호흡수는 32회/분.
산소포화도는 85%.
폐 기능이 저하된 게 분명할 정도로 산소포화도가 낮았다.
X-ray 영상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놓친 부분이 없는지 다시 살핀다.
혈청요소질소.
크레아티닌.
간 기능 검사.
전해질 검사.
등등.
전부 정상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D-Dimer 검사(혈전과 관련된 질환 검사)에서 이상치가 발견됐다는 것.
‘1.95mg/L면 꽤 높은 편인데⋯⋯. 왜 CT를 안 찍었지?’
진혁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선 최재성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메로페넴(폐렴 치료제)이랑 테이코플라닌(항생제) 슈팅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요. 주치의 선생님이 CT 오더를 안 내서 그래요?”
“아,,뇨,,.”
“⋯⋯?”
“보,호,자,가,,,.”
“아⋯⋯!”
보호자가 반대한다는 말.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CT를 찍어 볼 수 없으니,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최재성이 찾아온 이유가 있었다.
✻ ✻ ✻
보호자가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를 편히 보내 드리고 싶다는 이유.
하나밖에 없었다.
병원에 온 이유?
그 이유도 명백했다.
진통제를 맞기 위해서다.
그런 만큼 보호자는 격렬히 거부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살 만큼 사셨습니다.”
“그래도 검사를 해 보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합니다. 아버님이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괜히 제가 더 힘들게 하는 거 같아서 싫습니다. 진통제를 더 놔주세요.”
50대 중년 사내.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입을 꽉 다물었다.
그 모습에 진혁이 다시 설득에 나섰다.
어쩌면 보호자의 말이 맞을지 몰랐지만, 이대로 방기할 순 없었다.
검사를 거부하는 보호자를 설득하지 않는 건,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폐에 혈전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D-dimer 수치가 정상치를 벗어난 상태입니다.”
“네? 혈전이요?”
“찌꺼기가 뭉쳐 혈관을 막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 수술해야 하는 겁니까? 저는 아버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 배양검사 같은 것도 했는데, 큰일은 벌이고 싶지 않습니다.”
“혈액배양검사(Blood culture)는 결과가 나오려면 10일 정도 걸립니다. 원인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흠⋯⋯.”
“폐 쪽에 혈전이 생겨서 산소포화도가 떨어진 거라면 수술이 아니라 내과적 치료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자가 망설이자, 이를 파고들었다.
김철영의 보호자가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처럼.
그도 확신하지 못할 테니까.
정답은 몰랐지만, 해야 한다고 믿었다.
✻ ✻ ✻
보호자를 설득해 CT를 찍었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좌측 하엽의 음영 증가.
대엽성 폐렴.
폐정맥 혈전까지 확인됐다.
치료는 즉각적이었다.
곡사포의 영점을 잡고.
그대로 쏜다.
그전까지의 치료가 융단폭격이었다면.
정밀 타격이나 다름없었다.
“에녹사파린(항응고제) 슈팅하고 계속 팔로업해. 3일 뒤에 다시 CT 스케줄 잡고.”
“네,,,.”
“다비가트란(혈전용해제 중 하나) 110mg씩 슈팅하고. 경과 보고해.”
주치의의 지시에 최재성은 즉각 움직였고.
진혁은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술 날짜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철영의 심장이 사달을 낸 것이다.
오랜만에 수술실에 들어갈 차례.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