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3화(183/388)
183화. 내가 바로 말리그다 (9)
그 시각.
한동수는 라꾸라꾸와 한 몸처럼 굴고 있었다.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서.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자세를 바꿨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빌어먹을!
수술 전후에 마셨던 커피가 문제였다.
아니, 커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한동수가 벌떡 일어났다.
“이진혁! 그래 이진혁 때문이야!”
갑작스러운 혼잣말.
소파에 누워 있던 정진석이 의아한 듯 물었다.
“주무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긴 임마! 몰라서 물어!”
“⋯⋯.”
“아효! 나도 모르겠다!”
한동수가 다시 몸을 뉘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 갔다.
“자식이 부모를 찾지 않는 걸 뭐라고 하냐.”
“네?”
“자식 놈이 연락이 없는 걸 뭐라고 하냐고.”
“불효자식이라고 하죠.”
“그래, 불효자식이지. 우리 중에 불효자식이 있다.”
뜬금없는 말.
정진석의 반문은 즉각적이었다.
“저요?”
“뭐?”
“부모님께 연락 못 드린 지 꽤 됐습니다.”
“⋯⋯얼마나 됐는데?”
“반년? 아니, 일 년쯤 된 거 같습니다.”
정진석의 한탄 섞인 대답.
이에 대한 답은.
“크음, 큼.”
슬픈 헛기침으로 돌아온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얘기.
CS의 현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그러고 보니 교수님도⋯⋯.”
“나도 뭐.”
“같은 처지네요.”
“⋯⋯.”
“연락 못 하고 계시죠? 그보다 사모님, 아니 형수님은요? 전화는 하시는 거죠?”
“크음, 큼.”
한동수의 기침 소리가 커졌다.
마누라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하나뿐인 자식 녀석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몰랐다.
뭐, 잘살고 있겠지.
그보다 이런 반응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이진혁이 불효자식이라고!”
“⋯⋯?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들놈이 아빠를 보러 오지도 않고! 어! 폐 이식 수술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자신 없다고 내빼질 않나! 아주 빠져 가지고! 이 자식을!”
벌떡 일어나 소파로 옮겨 앉는 한동수.
정진석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가 진혁을 변호했다.
“뭐, IM 때문이죠.”
“이놈의 IM을 내가! 어! 아주! 어효!”
“전쟁할 시간도 없습니다.”
“⋯⋯.”
“다들 죽으려 한다고요.”
“하아⋯⋯. 전쟁이고 뭐고.”
“⋯⋯.”
“이제 안 볼란다.”
한숨과 함께한 태세 전환.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네?”
“아들이고 뭐고 안 본다고.”
“⋯⋯?”
“다 필요 없다고.”
“⋯⋯.”
“몰라, 다 필요 없어!”
한동수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소파에 잠긴다.
그 모습에 정진석이 말을 삼켰다.
혹시 갱년기 아니냐고.
무섭다고.
하지만 그는 하늘.
자신은 땅.
정진석이 말을 삼킬 때.
“각서를 괜히 썼어.”
허탈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놈의 각서가 문제라고.”
“⋯⋯약속은 파기하라고 있는 거죠.”
“뭐?”
“꼭 지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상대가 병원장인데?”
“아, 그럼 안 되겠네요.”
“이 자식이! 교수를 갖고 놀아! 너 임마 벌당이야, 벌당!”
“뭐, 상관없습니다.”
“어쭈, 이게!”
한동수가 헤드락을 걸며 정진석을 혼쭐냈다.
사실 그도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수술.
이렇게라도 해서, 팽팽하게 당겨졌던 활시위를 풀어 줘야 했다.
그렇게 투덕거리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진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뻐끔.
뻐끔.
한참 눈을 끔뻑이던 한동수와 정진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진혁을 반기던 한동수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크으음, 크음.”
그 모습이 오지호를 닮았을 정도.
노크 소리도 듣지 못하고 투덕거리던 그들을 향해,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교수님.”
“오냐.”
“저⋯⋯.”
“왜? 폐 이식 수술은 오지도 않더니, 왜 왔어!? 어!”
“죄송합니다.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누가 집도하래~?! 그냥 보기만 해도 되잖아!”
“그래도요.”
“그래도는 무슨.”
한동수가 입을 삐죽 내밀자, 진혁이 그를 달랬다.
“심혈관 분야가 CS의 꽃이지 않습니까. 폐식도 파트는 좀⋯⋯.”
“좀, 뭐.”
“멋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그게 할 소리냐! 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이라고!”
한동수가 헤드록의 대상을 바꿨지만, 팔에 힘이 없었다.
하지만.
“교수님. 숨 막힙니다.”
아픈 척을 한다.
그러자.
“숨 막히라고 하는 거다, 임마! 어!”
“저 심장 수술 하고 싶습니다.”
“⋯⋯!”
순간 한동수의 눈이 커졌다.
이는 정진석도 마찬가지.
항상 자의 반 타의 반 수술실에 들어왔던 진혁.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곧, 한동수의 입가가 쭈우우욱 찢어졌다.
가출했던 아들이 돌아왔다.
✻ ✻ ✻
EMR을 확인한 한동수가 침음성을 내뱉자, 진혁이 노티를 시작했다.
“간문부 담관암(Hilar cholangiocarcinoma) 환자로, 2주 전에 항암 치료를 마쳤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수치가 안 좋아? Hyperkalemia(고칼륨혈증)은 또 뭐고.”
“ACE 억제제(ACE inhibitor,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저해제)를 투약한 게 원인으로 보입니다.”
“기저질환으로 고혈압도 있어? BP(혈압) 잡으려다 사람 잡았다는 거 아냐.”
“네.”
혈압을 낮추기 위해 썼던 약물.
그것이 고칼륨혈증을 유발했고.
VT(심실빈맥)로 이어졌다.
원래 한쪽을 찍어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법이다.
“CRRT도 돌렸는데⋯⋯. 음, 서 교수한테 배정된 환자잖아?”
“네, 고칼륨혈증은 잡았지만, 리도카인(항부정맥제)이랑 프로카인아마이드(항부정맥제)를 슈팅해도 EKG가 계속 튀고 있습니다.”
“흠.”
“EKG상에 RBBB(우각차단)가 확인되고, 좌측 흉골연을 따라 심잡음이 들립니다.”
“오른쪽이 문제네. 혈류 흐름도 낮다는 거고. EPS(전기생리검사)는?”
“Josephson site(우심실 유출로, 우심실에서 폐로 가는 혈관인 폐동맥 입구)에 문제가 있습니다.”
“잠깐.”
딸깍.
딸깍.
EPS는 전기 자극을 통해 심장 이상을 확인하는 검사.
한동수가 계속 손을 놀렸다.
심도자 검사 결과까지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우심실압도 60을 찍었고. 폐동맥 역류도 보이네?”
“그나마 다행인 건 좌심실 조영상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플레카이니드(Flecainide, VT 치료제 중 하나)는?”
“베타차단제랑 같이 슈팅하다가 QRS 파가 넓어지고 쇼크가 와서 중단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따지고 드는지 알지? 수술 후에 다른 쪽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맞는 말이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
두더지 게임을 하는 거 같았다.
한쪽을 때리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고.
때려도 가라앉지 않는 순간이 올 수 있었다.
진혁이 고개만 주억거리자, 한동수가 물었다.
“근데 왜 나야? 이거 서 교수한테 간 환잔데, 왜 나냐고.”
“사실 그게⋯⋯.”
진혁의 설명이 시작됐다.
두 명의 보호자와 환자를 만난 얘기.
한쪽은 확신이 없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한쪽은 확신을 갖고 포기했다.
끝내 설득해, 정밀 타격 중이었지만 말이다.
정답을 여전히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자, 한동수가 말했다.
“정답을 뭐 하러 찾아! 그냥 살리면 그만이야!”
“예, 교수님.”
“뭐 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이게 IM에 있더니 아주 느려 터졌어! 어!”
함께 수술해도 좋다는 함의.
그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진혁이 환히 웃었다.
역시 우리 CS였다.
✻ ✻ ✻
IM턴을 도는 진혁.
그를 배려해 수술 시간이 잡혔다.
응급 수술이나 할 법한 시간대였지만, 저녁 7시에 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퍼스트 어시로 들어간 진혁이, 참관실을 힐끔거렸다.
그곳엔 오지호가 있었다.
IM에 보내 놓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안달복달하던 그였으니.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게 분명했다.
이번엔 진혁의 고개가 그 옆을 향했다.
그러자 오지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외과장.
그리고 좀비처럼 흐물거리는 CS 소속의 레지던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간 이식 수술을 제외하면, 퍼스트 어시로 들어온 건 처음.
없는 시간도 쪼개 구경 온 게 분명한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고작 인턴인 자신을 믿어 준 그들을 향해 당연히 올려야 할 감사의 표시였다.
곧, 진혁이 타임아웃(신원 확인)을 했다.
“김철영 환자분 맞으시죠?”
“네⋯⋯.”
“우심실 유출로 재건술을 할 건데, 생일이 어떻게 되세요?”
“⋯⋯.”
환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섬망 증세가 심해져 제 딸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계속됐으니, 그럴 수밖에.
진혁의 고개가 마취과 의사를 향했다.
“팔찌 확인됐습니다.”
“포지션부터 잡고 세팅부터 끝내죠.”
“예.”
짧은 대답 후 빠르게 움직인다.
환자를 수술대 위에 옮긴 뒤.
인튜베이션을 했다.
마취를 위한 사전 작업이다.
그뿐이랴.
라인을 정리하고.
바이탈을 측정할 수 있도록 연결 작업을 한다.
거기에 더해 스트레처카를 정리하는 작업까지 했다.
그러자.
“티오펜탈(전신마취제) 300mg,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50mcg, 리도카인(국소마취제) 80mg 슈팅해요.”
“예, 선생님.”
마취가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는 환자.
진혁도 가만있지 않았다.
좌측 요골동맥에 거치된 카테터를 압력변환기를 통해 심전도 장치랑 연결한다.
곧, 그들의 시선이 모니터를 향했다.
바이탈이 언제 춤을 출지 몰랐다.
하지만.
“BP 130/90으로 스테이블합니다.”
“오케이. 교수님 콜해요.”
“예.”
불행 중 다행으로 환자의 상태는 안정적이었다.
진혁이 수술대 왼편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퍼스트 어시로 들어왔지만, 그 자신은 인턴.
본분을 잊지 않았다.
잠시 후,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양손을 치켜든 한동수가 들어왔고.
간호사의 도움으로 수술복을 챙겨 입은 그가 집도의 자리에 섰다.
“그럼 가 볼까!”
“잘 부탁드립니다!!”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이들.
집도의에 대한 예우도 잠시.
한동수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김철영 환자, 우심실 유출로 재건술 시작합니다! 메스!”
한동수의 우렁찬 외침에 반응하듯 모두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언제 어떻게 안 좋아질지 모르는 환자.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고.
진혁도 망설이지 않았다.
김윤택을 돕던 옛일은 그저 추억.
모든 힘을 다한다.
그러자 한동수의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말을 하지 않아도 도구를 건네고, 눈짓만 보여도 손을 움직이니, 당연한 행태였다.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심장.
붉디붉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감상을 내뱉는 이는 없었다.
오로지 속도.
속도가 우선이다.
곧바로 상행대동맥에 도관을 삽입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뚝뚝.
딱딱.
공기를 터는 소리.
그리고 체외순환사의 외침이 시작되자 모든 이들이 손을 멈췄다.
지금은 체외순환사의 시간이었다.
“쿨링다운 시작합니다! 32도! 31도, 30도!”
“27까지 내리지.”
“예!”
“29도, 28도, 27도입니다!”
“쿨링다운 스탑!”
“쿨링다운 스탑합니다!”
체외순환사의 외침과 함께 한동수가 입을 열었다.
“우폐동맥을 박리할 거야.”
“예.”
“폐동맥은 그대로 넘길 거고.”
재건하지 않겠다는 말.
진혁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든 걸 건드릴 순 없었다.
지금은 그저 우심실 유출로에 섬유화된 조직을 제거하고 재건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때.
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
안정적으로 버티던 바이탈이 사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