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4화(184/388)
184화. 내가 바로 말리그다 (10)
고개가 사정없이 돌아간다.
살피고 또 살핀다.
기계음은 출력값.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환자가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취 중이지 않던가.
하지만.
쿨럭!
가슴이 위로 솟더니 피를 토해 냈다.
‘Hemoptysis(객혈)!’
마스크는 검붉게 변하고.
거품이 인다.
기계 환기 중 생긴 일.
당연한 일이었다.
“Hemoptysis!(객혈)입니다!”
“나도 알아! 정 선생! 상태 체크해!!”
“넷!”
마취과 의사가 손을 놀렸다.
환기 수치를 확인하고.
폐에 무리가 갔는지 체크한다.
하지만.
“환기 수치는 정상입니다!”
“50%로 줄여!”
한동수의 결단은 빨랐고. 압력을 줄이려는 마취과 의사의 손놀림도 번개 같았다.
허나 표정이 어두운 진혁이었다.
체외순환 중 발생한 객혈.
드문 일이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헤파린을 통해 항응고 작용을 일으키는 상황.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는 중에 출혈이 생겼다.
블리딩 포인트(출혈점)를 찾는 것도 문제였지만, 헤파린이 출혈을 부추기고 있는 거다.
진혁의 머리가 휙휙 돌아갔다.
수많은 지식이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너무 많아 특징 지을 순 없었다.
다만 뭘 해야 하는지는 안다.
진혁이 곧바로 자리를 이탈했다.
석션기를 든 채, 검붉게 변한 플라스틱 마스크를 벗겨 냈다. 그러자 기계음이 더 요란스러워졌다.
“앗! 세츄레이션 떨어집니다!! 95% 90%!”
간호사의 외침이 날카롭게 파고들었지만, 멈추지 않는다.
환기 수치를 조절한 일조차 무의미해졌지만, 피를 빨아들이는 데 집중했다.
윙윙거리는 소리.
그륵거리는 소음이 장내를 메운다.
띠띠거리는 기계음은 덤이다.
허나 망설이지 않는다.
선을 넘었다는 것도, 집도의 지시가 없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정답은 모르지만, 살려야 하는 환자였다.
그때 스크럽 간호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로스 심합니다! PIC(급속 혈액 주입기) 돌릴까요!”
“아니, 스테이해!”
“아!”
“아직은 아니야!! 정 선생!”
한동수의 고개가 마취과 의사를 향했다.
“프로타민 160mg 슈팅하겠습니다!”
“서둘러!”
헤파린을 중화시키는 약제를 투약한다.
체외순환기를 돌리고 있으니, 혈전이 생긴다면 손도 못 쓰고 죽을 터.
악수일지 몰랐다.
하지만 진혁의 뜻을 알아챈 한동수가 반응하고 있었다.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조금 더 깊숙이.
빠르게 석션한다.
그때였다.
“로스 300cc 넘었습니다!”
“⋯⋯!”
“BP 떨어집니다! 세츄레이션 87%! 교수님 PIC를!”
“아직 아니야!!!”
한동수가 다시 만류했다.
실혈량이 늘고 있었지만, 혈액을 급속 정주시킨다면 출혈점이 압박받을지 몰랐다.
“소노 가져와!”
“소노(Portable sono, 이동형 초음파) 준비됐습니다!”
“기관지 내시경도 준비해!”
“네!”
간호사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프로브를 손에 쥔 한동수의 손도 춤을 췄다.
출혈점.
출혈점을 찾아야 했다.
그사이.
“ACT(항응고반응) 130초입니다!”
“포타민 추가해!”
“30mg 추가합니다!”
“액트 계속 체크해!”
“넷!”
다들 가만있지 않았다.
항응고 반응을 재며 적정 용량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다.
출혈도 멈추고 혈전도 생기지 않게 해야 하는 상황.
ACT 체크는 필수였다.
그때, 석션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뿜는다.
부르륵.
부르륵.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
헤파린을 중화시킨 보람이 있다는 듯, 출혈이 약해지고 있었다.
초음파를 보던 한동수가 소리쳤다.
“페닐레프린(Phenylephrine, 기관지 혈관 수축제) 100ug N/S(노멀살라인)랑 믹스 해!”
“넷!”
곧바로 건네지는 시린지.
이를 받아 든 진혁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플런저를 힘차게 누른다.
정확하고.
빠르게.
타점은 보이지 않지만, 온힘을 다한다.
그사이 석션기와 연결된 통을 확인한 간호사가 소리쳤다.
“400cc 로스! 선생님!”
“기다려! 이진혁이 비켜!”
“넷!”
진혁이 튕기듯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내시경을 집어 든 한동수의 손이 춤을 춘다.
검은 뱀과 같은 몸체.
그 끝에 달린 카메라.
사정없이 밀어 넣는다.
측와위를 해야 했지만, 바꿀 시간도 없었다.
개흉 중 일어난 일.
포지션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곧,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를 향한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굴곡성 기관지 내시경.
빠르게 침하한다.
상처가 날 수 있었지만, 거침없다.
파고들고.
또 파고든다.
살색과 혈흔이 뒤덮인 굴곡을 계속 따라 들어간다.
1분 1초가 아쉬웠으니.
당연했다.
잠시 후.
주름이 가득한 곳이 보인다.
우측 주기관지다.
카메라가 진입하는 순간 보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빨간색 핏물이 이를 삼켰다.
“아!”
누군가의 탄식.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시야마저 제한됐고.
바이탈이 요동쳤지만, 한동수는 멈추지 않았다.
핏물로 뒤덮인 카메라 속 작은 창을 통해 지혈을 시도한다.
순식간에 끝난 지혈.
이번엔 다시 후진이었다.
빠르게 내시경을 빼낸다.
그러고는 곧바로 진입한다.
좌측 주기관지가 타겟이다.
똑같이 혈흔이 보였다.
하지만 거품이 보이지 않는다.
심각하지 않다는 뜻.
그때.
“세츄레이션 79%까지 떨어졌습니다! 뇌파도 흔들립니다!”
간호사가 비명을 내지르자, 한동수의 손놀림이 바뀌었다.
당기고 또 당긴다.
빠르게 당긴다.
출혈점을 잡는 걸 포기한 움직임.
냉정한 결단이다.
어느새 검붉게 변한 내시경 카메라가 모습을 드러내자, 진혁이 움직였다.
새로 교체한 마스크를 환자 입에 씌운 것이다.
“펌프 온!”
“펌프 온! 기계 환기 시작합니다!”
곧바로 마스크에 김이 서린다.
다시 산소를 밀어 넣는 상황.
한동수가 소리쳤다.
“PIC 돌려! 혈액 풀드립 해!”
“넷!”
“ACT 240초입니다!”
“ACT 시간 조절해! 뭐 해!”
“헤파린 투약합니다!”
다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고령의 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사달을 냈고.
응급조치를 했다.
아마도 그 원인은.
‘체외순환 전에 한 일 때문에⋯⋯.’
폐동맥 카테터를 5cm 정도 후진시킨 게 문제를 일으킨 게 분명했다.
수술을 위한 사전 작업이었으니.
탓할 사람도 없었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의 몸이 버티지 못한 것뿐이다.
곧, 진혁이 머리를 뒤흔들었다.
지금은 원인을 따지고 들 때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수가 소리쳤다.
“속도 더 높일 거야!”
“넷!”
곧바로 재개된 수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이고 다들 빠르게 손을 놀렸다.
클램프로 우폐동맥의 양쪽을 잡자, 절개가 시작됐다.
우폐동맥을 폐문부까지 박리한다.
그와 동시에.
“으음.”
침음성이 터졌다.
폐동맥의 입구. 그러니까 심장과 폐를 연결하는 동맥의 입구나 다름없는 우심실 유출로의 상태가 형편없었다.
조영증강 CT로 확인한 것보다 심각한 것이다.
탄력은 없고.
흐물거린다.
완전히 섬유화된 게 분명했다.
이유?
이유야 뻔했다.
고령도 문제였고.
항암 치료 탓도 있었다.
표적 항암제가 없으니, 정상 세포까지 다 죽인다.
결국, 암에 걸리지 않는 게 최선.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손을 놀렸다.
한동수가 섬유화된 조직을 긁어 내는 사이, 진혁도 가만있지 않았다.
스크럽 간호사가 건넨 판막 도관의 길이를 잰다.
이를 자른 뒤, 이미 박리된 폐동맥 아랫부분을 절개했다.
가로로 길게.
횡 절개였다.
“6-0 나일론.”
“여깄습니다.”
봉합사와 니들을 받은 진혁의 손이 춤을 췄다.
스크래퍼를 들고 있는 한동수의 손과 겹치지 않으면서, 횡 절개를 한 폐동맥과 문합했다.
한 땀, 두 땀, 세 땀.
계속 손을 놀린다.
물론 완벽한 재건은 아니었다.
그저 폐동맥 역류를 막기 위한 작업.
그러니까 최소한의 조치였다.
곧, 한동수의 손놀림도 바뀌었다.
섬유화된 조직을 전부 걷어 낸 뒤 판막 도관을 건네받아 이를 덧댄다.
그리고 그 순간.
마취과 의사의 눈이 커졌다.
진혁도 유출로의 근위부와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허공에서 손이 교차한다.
아슬아슬하게 손이 스치듯 지나친다.
하지만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리듬이었다.
그래.
이건 리듬이 분명했다.
서로 쌍으로 교차하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폭주하고 있었고.
다들 눈을 크게 떴다.
순식간에 끝난 문합.
누군가 소리쳤다.
“BP 다시 흔들립니다!”
“더 속도 올려!”
“넷!”
“세츄레이션 97% 호흡은 안정적입니다!”
“액트는?”
“130초입니다! 포타민 추가 슈팅합니다!”
항응고 반응을 다시 조절하고.
문을 닫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끝난 작업.
한동수가 소리쳤다.
“바이패스 오프!”
“바이패스 오프합니다!”
다시 심장에 그 역할을 맡기는 그 순간.
다들 침을 꼴깍 삼켰다.
최선을 다했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디 그런 환자가 한둘이던가.
하지만.
“BP 올라옵니다!”
바이탈이 안정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체온 치료를 위해 타겟으로 했던 BP는 80/60.
조금씩 정상 혈압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때.
“어어!”
EKG 그래프가 춤을 췄다.
P파가 사라지고.
QRS파가 좁아진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문제는 QRS파 이후 ST결절 저하가 있다는 것.
거기에 더해.
“BP 다시 떨어집니다! 75/50!”
올라가던 혈압마저 급전직하했고 심박수는 분당 180회로 치솟았다.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이었다.
진혁이 움직인 건 그 순간이었다.
환자의 오른쪽 목에 손을 가져갔다.
목빗근 안쪽. 턱 밑에 있는 내경동맥을 누른다. 그러고는 원을 그리듯 마사지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경동맥 마사지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경고음이 사라지고 심박수가 가라앉았다.
진혁이 손을 뗀 건 그 순간이었다.
곧 장내가 침묵에 휩싸인다.
진혁도.
한동수도.
이를 보던 마취과 의사도.
다들 말이 없다.
홀로 응급 조치를 했으니.
그럴 수밖에.
“⋯⋯.”
“⋯⋯.”
“⋯⋯.”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한동수였다.
“뭐 해! 닫아!”
다시 정신을 차린 이들이 빠르게 복부를 닫기 시작했다.
✻ ✻ ✻
간 이식 수술에도 퍼스트 어시를 섰다.
그래서 허락했다.
한동수도 원했고.
당사자도 원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지켜봤다.
지켜보고 또 지켜봤다.
하지만.
“허허.”
절로 헛웃음이 인다.
대체 저 움직임은 뭐란 말인가.
경동맥 마사지로 흔들리는 심박수를 잡다니.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에 가까웠지만, 급박한 순간에 생각해 낼 이들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완성형.
그래 완성형에 가까웠다.
이진혁은 완성형이었다.
오지호가 연신 헛웃음만 켜자, 외과장이 말했다.
“흐음, 이게 참⋯⋯.”
“허허.”
“1시간 30분이나 단축됐습니다.”
“허허, 그렇습니까?”
“네, 타이머 좀 보십쇼.”
외과장이 가리킨 곳을 향해 오지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수술실 안쪽에 있는 타이머.
정확히 1시간 29분 30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만큼 남았다는 말.
이 또한 속도전이라고 일컬었던 한동수가 더 짧게 세팅했던 시간이었으니.
엄청난 속도라 할 수 있었다.
마치 흉부외과 과장 두 명이 동시에 수술한 거 같지 않던가.
오지호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각서고 뭐고 이제 필요 없는 일 아닙니까?”
“네?”
“아니, 저렇게 잘하는데. 뭐 하러 CS를 도냐 이 말입니다.”
“아⋯⋯!”
외과장이 얕은 침음성을 토해 내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레지던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막내를 병원장이 강탈하려고 하고 있었다.
정진석이 당장 움직이려던 찰나.
오지호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른 과를 돌며 배우는 게 더 이득이라 이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해서 정진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참관실 아래쪽.
그러니까 수술실 안쪽에서 이진혁이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의 이진혁이었다.
이에 먼저 반응한 건 오지호.
그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외과장 또한 똑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레지던트들은 침을 삼켜야 했다.
잠시 잠깐 잊고 있었다.
막내의 별명이 변종이라는 걸.
아, 더 많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