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6화(186/388)
186화. 선택은 어려워 (2)
선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하지만, 항문외과에 지원하라는 말에는 반응이 없었던 장혁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와, 나보고 고래만 잡으라는 거예요? 비뇨기과는 무슨 비뇨기과예요.”
“고래만 잡으라는 게 아니라⋯⋯.”
“아, 됐어요. 됐어. 안 가요, 안 가. 개업했다간 바로 망해 버릴 거라고요.”
“⋯⋯나중에 인기과가 될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미래에서 왔으니까 알지.
또다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힌 진혁이 나직이 혀를 찼다.
사실 작금의 비뇨기과는 인기가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보건복지부에 얘기해, 전공의 TO를 줄여 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래야 폐원하는 곳이 줄어든다는 이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전립선 비대증.
포경 수술.
그리고 성병 치료로 진료 범위가 작았다.
십수 년 넘게 고생했는데 다른 사람의 성기나 보고 있으니, 지원자도 적었고 매출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엔 성형외과나 다름없게 변모하지.’
미래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다.
집에 계수기를 갖다 놓은 비뇨기과 의사도 많았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괜히 다른 과에 어플라이했다가 떨어지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다른 병원에 지원하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래도 싫어요.”
“그럼 항문외과로 와요.”
“아, 몰라요. 몰라.”
아직 결심이 서지 않은 모양.
엄두가 나지 않는 거 같았다.
하지만 장혁준의 성격에 진득하게 앉아 있는 임상 계열도 어울리지 않을 터.
진혁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냥 같이 돌면 좋을 거 같아서요.”
“⋯⋯.”
“도와줄 수도 있고. 『엄마 성형외과에 가고 싶어요』도 작업해야 하잖아요.”
“그래도요. 아, 그거 안 그래도 계속 연락 오던데. 한동안 작업 못 했잖아요.”
“뭐, 최대한 서둘러야죠.”
인턴 필독서.
이에 대한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는 말을 하자, 김현수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책을 쓰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기에 생긴 반응.
이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진혁이 말했다.
“뭐, 인생은 셀프니까요.”
“⋯⋯?”
“모든 책임과 결과는 본인이 져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흐음.”
“잘 생각해 봐요.”
더 이상의 강요는 불필요한 일.
진혁의 고개가 김현수를 향했다.
“김 선생은 어떻게 할 거예요?”
“⋯⋯.”
“생각해 둔 과는 있어요?”
“⋯⋯.”
김현수 또한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되레, 그 자신한테도 물어볼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 ✻ ✻
수없이 많은 갈림길 중 하나.
그 길을 정하는 순간 이탈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고민이 됐다.
아니, 그보다.
‘나한테 말을⋯⋯.’
묘한 태도로 대하던 진혁이 말을 걸었다는 것에 오히려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현수는 침묵했고.
또 침묵했다.
사실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게, 그 자신한텐 자세한 얘기도 털어놓지 않았고.
중요한 얘기도 하지 않았던 이진혁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었다.
박쥐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김현수가 침묵하자, 어색한 공기가 차오른다.
이를 참지 못한 건 장혁준이었다.
“왜, 엄마가 뭐래? PS 아니면 안 된대?”
“아니.”
“이제 포기하신 거야?”
“그냥 의원도 괜찮을 거 같대.”
“의원? 아⋯⋯.”
장혁준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고.
그건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의료법상 일반의와 전문의 모두 개업할 수 있었다.
전문 과목이 아니더라도, 다른 진료 과목으로 개업 후 진료할 수 있는 거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의원 진료 과목 성형외과』이런 식으로 간판을 달면 된다.
하지만.
“야야, 성형은 좀 그래. 다들 알아보고 오잖아. 요새 의원이랑 의원 아닌 곳이랑 구분하는 법까지 올라온다고.”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뭐, 인턴까지는 해야 페닥으로 일하기 쉽다지만, 네 이름으로 개업하긴 좀 그렇다고.”
“⋯⋯.”
“천리안이나 이런 데서 평판 보고 오던데.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면허 빌리게? 아서라, 아서. 쉽지 않다고.”
날카로운 장혁준의 말.
김현수도 알고 있는 문제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자신은 이미 C턴이나 마찬가지.
방법이 없었다.
김현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차피 C턴이야, C턴. 결과야 뻔하고 갈 곳도 없다고.”
“야,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몰라. 엄마도 모르겠고. 나도 모르겠어.”
“⋯⋯.”
“모르겠다고.”
김현수가 나직이 탄식했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엄한 아빠를 대신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줬던 엄마.
그녀의 말대로 사는 게 정답인지.
진짜 그렇게 사는 게 맞는지.
정말 헷갈렸다.
그냥 엄마의 뜻대로 의대에 왔고 성형외과를 꿈꿨던 것뿐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 ✻
공부를 잘해서.
돈을 잘 벌어서.
의사가 되면 멋있을 거 같아서.
여러 이유로 의사가 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일수록 방황한다.
왜?
목적의식이 없으니까.
차라리 돈을 좇았다면 모를까.
김현수의 경우처럼 부모님의 뜻대로 움직인 경우가 가장 방황을 많이 했고, 유급을 거듭하다 자퇴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말없이 피자를 먹었고.
족발을 뜯었다.
그러다 문득 해 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ER에 갔는데요.”
“⋯⋯?”
“왜, 더블 보드 하시는 교수님 계시잖아요. 소아과랑 ER.”
“아⋯⋯.”
이태희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소아전문구역에 있었던 그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멋진 분이시지.”
“어, 진짜 멋진 교수님이더라.”
그녀의 대답에 진혁이 말을 편하게 했다.
반존대와 반말이 뒤섞일 수 있어 이태희가 반말을 그렇게 싫어했던 거였지만.
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태희가 말했다.
“왜, 뭐라고 하셨는데? 사실 나도 궁금했거든. 시간 낭비라고 여길 수도 있잖아. 지금이야 기간을 줄인다는 말이 나오지만, 8년이라고, 8년.”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진혁이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오지호가 판을 깔지 않았더라면, 그 자신도 더블 보드에 도전하는 걸 망설였을지 모를 만큼 기간이 길었다.
8년의 레지던트 생활.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해서 찾아갔고.
그 이유를 물어봤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살아 주는 게 아니니까. 그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가족이라도. 결국, 내 인생이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시는 거래.”
“아⋯⋯.”
“환자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고. 전문성도 확보할 수 있고. 뭐,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종교가 없으신가?”
“아니, 종교는 있으시대.”
다시 족발을 하나 쥐어 들며 진혁이 대답하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족발을 우물거리던 진혁이 한참 뒤에 말했다.
“불교야, 불교. 절 다니시더라.”
“뭐야, 근데 어떻게⋯⋯.”
“나도 몰라. 뭐,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지.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제 뜻대로 사는 게 인생을 대하는 태도여야 맞지 않을까.”
그 자신이 한 말이 아니고.
교수님이 했다는 말을 덧붙이는 진혁.
좌중의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간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간 무슨 이런 개똥 같은 철학이 다 있냐며 혀를 찼다.
그 모습에 진혁이 희게 웃었다.
사실 그 자신도 뭐가 정답인지 몰랐다.
두 번째 삶을 사는 그 자신도 끊임없이 반문하고,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계속 자문자답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말해 주고 싶었다.
연장자로서, 아직 20대 중반인 그들에게 뭐라도 해 주고 싶은 건 너무 꼰대 같은 마음인 걸까.
아, 모르겠다.
✻ ✻ ✻
벽걸이 달력을 뜯어 낼 날도 3일밖에 남지 않는 시점이었다.
곧 있으면 10월.
드디어 10월인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10월이었지만, 진혁은 고향에 돌아가는 연어가 된 심정으로, 두근거리고 뭘 해도 집중이 되질 않아 애먹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그냥 심장이 떨리고.
잠도 오지 않았다.
짐작이 가는 건.
‘드디어 CS에 가는 건가.’
곧 있으면 CS를 돈다는 것.
그 이유 하나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한 뒤, 진혁이 움직였다. 그가 들른 곳은 호흡기내과 병동이었다.
레지던트가 아니면 주치의를 할 수 없었기에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해 병동을 돌았다.
곧, 그의 눈에 환자가 들어왔다.
마라톤을 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환자였다.
‘기침이나 객담도 없고. 피버도 가라앉았는데. 음⋯⋯.’
차트를 살피던 중.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왜요?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아⋯⋯.”
고개를 돌린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충돌했던 정우택이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뭐, 피차 안녕하냐고 할 사이는 아닌 거 같고. 뭔데요? 걸리는 거 있으면 말해요. 괜히 엿 먹이지 말고 앞에서 말하라고요.”
“아⋯⋯.”
사무적으로 변한 정우택.
아니, 사무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 저변엔 공격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호흡기내과장까지 날아갔으니, 당연한 태도이리라.
“피버는 가라앉았는데, 호흡 곤란 증세가 계속돼서, 조금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벌써 입원한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뉴모니아(폐렴)로 진단하고 안티 썼잖아요.”
“수치를 보시면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음.”
정우택이 짧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그냥 무시하기엔 이진혁의 이력이 만만치 않았고,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몰랐다.
“일단 CT 스케줄 잡아요.”
“아⋯⋯.”
“아는 무슨 아예요. CT 스케줄 잡고 바로 돌려 봐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EMR을 확인하며 정우택이 말했다.
“GGO(Ground glass opacity, 유리간질음영) 보이죠? 이거 과민성폐장염 같은데요.”
반복적으로 먼지나 화학제를 흡입하면서 생기는 염증 반응.
진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왜요? 가습기 살균제를 쓰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는데요.”
“환자 직업이 회계사인데⋯⋯. 조금 그래서 그렇습니다.”
“일단 스테로이드 투약해 보죠. 뭐, 걸리는 거 있어요?”
“아닙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혁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Chest PA상 전폐야에 망상결절성(Reticulonodular)한 폐 침윤이 관찰됐고.
좌측 상부 또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왜?
어째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회계사가 화학 약품을 흡입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결국 진혁의 행동이 달라졌다.
누군가 찾지 않아도 호흡기내과 병동에 들렀다.
그렇게 이틀 후.
환자의 상태를 체크할 때.
그의 엉덩이 쪽에서 붉은색 글자와 노란색 종이가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붙어 있었다.
대체 이게 왜 있단 말인가.
진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