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7화(187/388)
187화. 선택은 어려워 (3)
임상 추론(Clinical reasoning).
이른바 CR.
정보를 처리하고.
결론을 도출하며.
처치하는 걸 뜻한다.
이는 쉬워 보였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개개인의 성격이 다 다르듯, 환자의 병태 또한 각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세우는 가설.
의사는 모델링에 걸러지지 않는 병증을 두고 소설을 쓴다.
그리고 그건.
“혹, 혹시 부적을 태우신 건 아니시죠?”
경험 많은 의사일수록 유리했다.
그간 쌓아 왔던 증례가 머릿속에 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호흡기 치료를 받던 환자의 눈이 커진다.
어떻게 알았냐는 투.
그 모습에 진혁이 탄식했다.
사실 넘겨짚은 일이었다.
회계사라는 직업.
사무직과는 어울리지 않는 병증.
예전에 봤던 증례 논문까지.
퍼즐을 쥐어짜 때려 맞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라 질책할 틈도 없이.
곧장 움직였다.
먼저.
“부적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환자의 엉덩이를 들어 올린 다음, 부적을 빼냈다.
축축하고 냄새가 났지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살핀다.
알을 품은 거북이.
동서남북 네 방위에 한자가 적혀 있었다.
등껍질에 적힌 주문은 또 어떠한가.
섬뜩했다.
당장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징그러웠다.
누군가에겐 마음의 위안이 되는 부적이 흉기로만 보일 뿐이다.
“거북장수대길부? 하아⋯⋯.”
절로 한숨이 나와 깊은숨을 몰아쉰다.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걸까.
환자의 눈이 커지고.
손이 움직였다.
호흡기 치료를 받던 환자가 뭐라고 말을 꺼내려고 하자, 진혁이 이를 걷어냈다.
“숨 쉬는 건 좀 어떠세요? 스테로이드 투약 후 수치는 좋아지셨는데요.”
“괜찮습니다. 저⋯⋯. 그걸 주셔야.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
“어서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
황망한 마음에 진혁의 목울대가 울렁였다.
사실 따끔하게 말하고 싶었다.
죽고 싶은 거 아니냐고.
왜 부적을 태웠냐고.
그러니 화학 물질을 흡입했을 때 생기는 과민성폐장염에 걸린 게 아니냐고.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아직 권위의 상징인 흰머리도 없었고, 주름 또한 없었다.
다시 한숨을 내쉰 진혁이 입을 열었다.
“부적은 왜 태우신 겁니까.”
“몸에 좋다고 해서⋯⋯. 용한 무당한테 얻어 온 겁니다.”
“어디에서, 얼마나 태우신 겁니까?”
“화장실에서 30장 정도 태웠습니다.”
“화장실이면 밀폐된 공간인데요.”
“쪽창을 열고 태웠습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요. 크음, 큼.”
진혁이 따지고 들자, 환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에 다시 숨을 들이켜는 진혁이었다.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기억 속 증례에선 환자가 사망했으니까.
일가족이 단체로 흡입했던 최악의 케이스는 아닌 것이다.
“진사(경면주사)를 갈아서 부적을 만드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확인 좀 해 봐야겠습니다.”
“네?”
“여기 쓰인 한자요. 일반 페인트가 아니라 수은 성분으로 쓴 겁니다. 수은 아시죠?”
“⋯⋯!”
“전화번호 좀 알려 주십쇼. 경면주사(진사)로 쓴 게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네⋯⋯.”
환자가 핸드폰이 서랍에 있다는 말을 하자, 진혁이 서랍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건강소원부.
무병건강부.
건강회복부.
치료부.
등등.
부적 다발이 진혁을 반겼다.
누군간 합리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비이성적인 행위가 결혼이라 일컫지만, 그 말은 틀렸다.
샤머니즘과 민간요법이야말로 끝판왕이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오랜만에 뒷골이 땡겼다.
✻ ✻ ✻
그 시각.
정우택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물론, 그 원인은 분명했다.
이진혁.
이진혁 때문이었다.
물론 호흡기내과장이 직을 내려놓고 과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들 온 힘을 다해 환자를 돌보며 병마와 싸우고 있는데, 혼자 야단 떠는 게 거북했고.
꼴 보기 싫었다.
그래.
그 이유가 분명했다.
저 혼자만 의사인 것처럼 구는 행태가 제 감정을 자극하는 게 명백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뭐가 잘났다고 들락날락한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분과를 왜 지정하지 않았단 말인가.
시스템을 중시한다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의 연속이었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정우택이 다시 차트를 살필 때였다.
“저, 선생님.”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정우택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는 김현수가 보였다.
“왜요. 뭐 할 말이라도 있어요?”
“저, 그게⋯⋯.”
“⋯⋯?”
“상담 좀 할 수 있을까요.”
“⋯⋯!”
뜬금없는 고백.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정우택이 꾹 눌러 참았다.
아신대 후배이지 않던가.
잠시 후.
정우택이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건넸다.
사적인 자리인 만큼 편하게 말하는 그였다.
“나가서 개업하는 게 어떻겠냐고? 현수야. 미안한데, 하나만 물어보자.”
“예, 선배님.”
“너 돈 많냐? 집에서 건물 한 채 해 주신대?”
“아, 아뇨.”
“그럼 어렵다. 밖에 나가도 다 경쟁이야, 경쟁. 뭐, 페닥으로 몇 년 굴러 보는 것도 좋은데. 그럼 못 돌아온다.”
나이 때문에라도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말.
맞는 말이었다.
까마득한 후배를 선배로 모시고 레지던트 생활을 하는 게 어디 쉽던가.
김현수가 침묵하자, 정우택이 그의 어깨를 쳤다.
“어차피 내과 계열은 힘들 테고. 잘 고민해 봐.”
“내과 계열은 왜 힘든 겁니까?”
“너 성적 좋아? 그것도 아니잖아. 너도 말리그라고 소문났어. 이진혁이랑도 그렇고. 그레이하다고, 그레이.”
“⋯⋯.”
“뭐,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니니까, 담아 두진 말고.”
정우택이 다시 그의 어깨를 쳤다.
사실 냉정하지만, 꼭 해 줘야 할 말이었다.
괜히 엄한 곳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피를 본다.
모교 병원을 두고 다른 병원에 지원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보다 이진혁이 걔는 대체 뭐냐.”
“네?”
“걔는 대체 뭐냐고. 그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정우택이 털어놓았다.
그러자 오태상과 그 일이 있고 난 뒤 한참 방황했던 김현수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원래 그렇습니다.”
“뭐가 원래 그런데.”
“원래 환자한테 진심인 놈입니다.”
“⋯⋯우린 그럼 가짜로 돌보냐?”
“그게 아니라⋯⋯.”
“어효, 됐다. 됐어.”
정우택이 나직이 혀를 찼다.
그러다 해 줄 수 있는 말이 생각나 말을 이어 갔다.
“여하튼 최대한 리스크를 헤징해. 다른 병원에 가는 것보단 나으니까 미달된 과를 가라고.”
“⋯⋯.”
“술기 연습도 할 수 있고, 손놀림도 가다듬을 수 있는 데로 가면 되잖아.”
“⋯⋯.”
“당장 개업할 거 아니면 그게 나을 수도 있어. 개업이야 나중에 하면 그만이라고.”
안전빵을 택하라는 말.
외과에 가라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미세 술기 능력이 필요한 일반 성형외과는 서전 출신을 선호한다.
민항기 조종사를 뽑을 때 공군에 있는 파일럿을 뽑아가는 것과 비슷했다.
정우택의 조언을 들은 김현수는 한참 말이 없었다.
물론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김현수가 나직이 혀를 깨물 때, 거짓말처럼 진혁이 나타났다.
✻ ✻ ✻
간호사에게 물었다.
정우택 선생은 어디 계시냐고.
답변을 들었고.
당장 휴게실을 찾았다.
그런 연유로 서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을 수 있었다.
해서 진혁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그레이하다는 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없이 치졸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자신과 김현수는 데면데면한 사이지 않던가.
진혁이 나직이 입술을 깨물며 모습을 드러냈다.
선을 한참 넘었던 김현수였지만, 오태상한테 부조리를 당했던 그.
자신 때문에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얘기하죠.”
뭐라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정우택이 손사래부터 쳤다.
자신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몸짓.
쓴웃음을 지을 것도 없이 말없이 등을 돌렸다.
다만 부적 다발을 자연스럽게 떨어트릴 뿐이다.
일부러 놓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정우택과 김현수의 눈이 커졌다.
병원과 부적 다발.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았다.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부적 다발을 주워 들고 핸드폰마저 꺼내 들었다.
정우택이 그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에 하는 모션.
아니나 다를까.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정우택이 말을 걸어왔다.
“뭔데요, 뭔데 그래요.”
“아, 아닙니다.”
“아니, 뭐냐니까요.”
또다시 사고를 칠까 싶어 우려되는 얼굴.
진혁이 입을 연 건 한참 후였다.
“과민성폐장염 환자 관련해서 노티드릴 게 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스테로이드 슈팅하고 있잖아요. 반응 보고 메틸프레드(메틸프레드니솔론) 오더도 냈는데, 뭐가 문제인데요.”
“저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정우택과 김현수가 황당해했다.
“부적을 태웠다고요?”
“예, 점집에 전화해 확인까지 했습니다. 수은 증기를 흡입한 게 분명합니다.”
“하⋯⋯.”
정우택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거까지 알고 있냐는 눈치였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증례를 많이 봤다고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일단 검사부터 돌려요.”
“예, 선생님. 저⋯⋯.”
“⋯⋯?”
“디 페니실아민(D-penicillamine)은 어떻게 할까요.”
“500mg으로 오더 낼 테니까 슈팅해요.”
“예.”
진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뜨려는 모션을 취했다.
그러자 정우택의 표정이 변했다.
생각해 보니 병력 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한 그의 잘못이 있었다.
히스토리 테이킹만 했어도 잡아낼 수 있는 환자였고.
지금 당장은 경증으로 보였지만, 2주 뒤에 큰 문제로 비화할지 몰랐다.
호흡기계, 소화기계, 간 기능 장애, 신경까지.
수은 중독의 경우 뒤늦게 반응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잠, 잠깐만요.”
“⋯⋯.”
“컬쳐(혈액배양 검사) 결과가 아직 안 나와서 그런 거예요.”
“⋯⋯.”
“일주일 걸리는 거 알잖아요.”
“MRSA(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가 검출됐을 거라는 말씀이신 거죠?”
진혁의 반문에 정우택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진혁이 부적 다발을 내밀었다.
“저,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
“정 선생님 지시로 히스토리 테이킹을 했고.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아니, 그냥 정 선생님이 확인하신 거로 하셔도 됩니다.”
“⋯⋯!”
갑자기 달라진 태도.
정우택이 눈을 뻐끔거렸다.
말리그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다.
✻ ✻ ✻
흔치 않은 사례였다.
하지만 윗선도 그리 생각할까.
아니, 아니었다.
당장 이진혁이 밝혀냈다는 게 드러날 테고.
곤란한 지경에 처할 게 분명했다.
해서 손을 덥석 잡았다.
자존심도 버린 채, 작별의 선물을 받아 들었다.
하지만.
“저⋯⋯. 사실 김현수 선생이랑 초반에 충돌이 있었습니다.”
말리그가 이상한 말을 해 왔다.
그것도 당사자가 있는 앞에서.
김현수도 흠칫거렸고.
이를 듣는 정우택도 영문을 몰라 했다.
그러자.
“근데 저 때문에 그레이하다고⋯⋯. 선택까지 제한받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재고해 주십쇼.”
“내⋯⋯.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래요.”
“그래도 위에 잘 말씀드려 주실 수는⋯⋯. 사실 아무도 안 나설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은 죄송했습니다.”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이진혁.
정우택의 눈이 커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망둥이가 갑자기 왜 그런단 말인가.
정우택이 혀를 찼다.
“왜요, 갑자기 동기를 챙기는 이유가 뭔데요.”
“한 번뿐인 인생이고⋯⋯. 지난 6년, 아니 7년간 치열하게 살아왔을 겁니다.”
“⋯⋯.”
“그런데 저 때문에 선택을 제약받으면 좀 그럴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탁한다고요?”
“예⋯⋯. 거래라고 생각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하아⋯⋯.”
정우택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제 손에 들린 부적의 무게를 가늠했다.
한없이 가벼운 부적 뭉치다.
하지만 무거웠다.
말리그가 내미는 손을 잡아야 할지 고민됐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후배 앞에서 무슨 생각을⋯⋯.’
김현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엉망이 된 몰골.
어두운 표정.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눈가 주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진 자세히 모르지만, 오태상이 분원으로 간 것과도 연관이 있을 터.
미우나 고우나 모교 후배였다.
다만.
“우리도 의사예요, 의사.”
“⋯⋯.”
“너무 악마화하고, 안 좋게만 보지 말라고요.”
“예, 선생님.”
“됐어요, 일단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가 봐요.”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정우택이 자리를 뜨자, 진혁의 고개가 김현수를 향했다.
✻ ✻ ✻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잘 생각하라는 말.
뭘 하고 싶은지 깊은 고민을 해 보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렇게 다음 날.
CS에서 턴을 돌게 된 진혁이 기함했다.
분명 오리엔테이션. 그러니까 환영회 따위는 없어야 했건만 A4용지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선배는 땅, 후배는 하늘]정반대되는 격언.
내과 의국에는 [선배는 하늘, 후배는 땅]이라는 A4용지가 붙어 있었건만, CS에는 정반대되는 격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 탄식하는 게 들렸다.
“누, 누가 이런 걸 붙여 놔.”
“그러니까.”
“반대로 쓴 거 아니야? 선배는 하늘, 후배는 발톱의 때. 보통 이렇게 써야 정상이잖아.”
“야야, 여기 또 있다.”
[우린 후배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후배 한 명이 아쉬운 CS다운 격언.
이를 보던 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게 받아들이기보다 얼마나 힘들면⋯⋯. 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이러면 누가 좋아할까?
다 도망가게 생겼다.
아, 오히려 악영향이라고.
악영향.
책을 든 바바리안은 여전히 무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