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8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89화(189/388)
189화. 선택은 어려워 (5)
장혁준은 축 늘어져 있었고.
이태희는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다가가자, 장혁준이 실눈을 떴다.
“왜요?”
“잠깐 얘기 좀 합시다.”
“하암~! 내일 해요, 내일.”
“잠깐이면 돼요.”
진혁의 재촉에 장혁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뻐끔거리더니,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엔 이태희 차례였다.
“이 선생.”
“음?”
“이 선생도 잠깐.”
“나도?”
“어, 잠깐이면 돼.”
진혁의 재촉에 이태희도 일어선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일.
곧, 공용 휴게실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환자도 오는 곳이었지만, 밤늦은 시간.
휴게실은 한적했다.
“하암~! 뭔데 그래요? 뭐, 비밀 얘기 할 거라도 있어요? 혹시 연애 상담? 둘이 그렇고 그런데, 비밀 지켜 달라⋯⋯. 뭐 그런 거예요?”
이태희도 같이 불렀기에 하는 말.
블랙커피를 음미하던 이태희가 쌍심지를 켰지만, 진혁이 먼저 선수 쳤다.
“인턴필독서 때문에요.”
“음?”
“아직 완성은 안 됐지만, 지금까지 작성한 거라도 나눠 주려고요.”
“누구한테요?”
“짝턴들한테요.”
뜬금없는 말.
장혁준과 이태희의 눈이 커졌지만, 진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러자 이태희가 상황을 정리했다.
“도와주고 싶다는 거지?”
“어, 선배들이 저렇게 나서는데, 뭐라도 하고 싶어서.”
“근데 괜찮을까? 출판사에 컨펌도 받아야 하고, 조금 복잡하잖아. 선인세도 받았는데⋯⋯.”
이태희가 우려를 표하자, 장혁준이 거들었다.
“나도 반대예요.”
“왜요?”
“잘 생각해야 한다고요.”
“⋯⋯.”
“인턴이 인턴을 위한 책을 쓰고 있다? 이거 이슈라고요, 이슈! 불법 제본 이슈도 있잖아요!”
“뭐, 야마(족보)처럼 나돌 수도 있긴 한데⋯⋯. 꼭 손해는 아닌 거 같아서요.”
“⋯⋯?”
“나중에 어차피 이슈될 문제고.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했어요. 그리고⋯⋯.”
진혁의 설명이 한참 계속됐다.
페이스북.
하버드에서 먼저 유행했고.
전 세계로 번졌다.
하버드라는 이름값도 성공에 기여한 것이다.
물론 이를 언급할 순 없는 일.
아신 병원에서 반응이 좋으면 도움이 될 거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그러자.
“흐음. 뭐⋯⋯. 육선재인가 육사발인가 그놈이 나설 수도 있으면, 차라리 먼저 이슈화시키는 것도 좋겠네요. 근데 출판사 사장님한텐 뭐라고 하게요?”
“뭐, 설득해 봐야죠. 어차피 아버님 지인이시잖아요.”
강한 어조.
선명한 톤.
진혁이 확신 어린 표정으로 나서자, 장혁준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태희 또한 태도를 바꿨다.
“오케이, 그럼 나도 찬성.”
“고마워.”
“고맙긴, 나야 얹혀 가는 입장인데. 그럼 제본하는 걸 도와주면 돼?”
“어. 일단 출력부터 하자.”
미리 준비하자는 말.
밤늦은 시간이라 피곤했지만, 다들 군말 없이 움직였다.
물론 장혁준은.
“아이고, 내 팔자야.”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제본 작업은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최재성까지 도와줬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음 날.
완성본을 제공하자는 것도 아니고.
뒷부분이 궁금해서라도 구매할 거라는 말로 출판사 사장을 설득한 뒤 이를 배포했다.
그러자.
“이, 이게 뭐예요?”
“와, 대박. 이걸 언제⋯⋯.”
“이거 이 선생이 만든 거예요?”
“고, 고마워요.”
“나만 볼게요. 돌려 보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말아요.”
난리가 났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시험을 위한 OSCE와는 다른 실전 임상 술기가 적혀 있었고.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내용과.
인턴이라면 무조건 알아야 하지만, 대부분 몰랐던.
그러니까 경험적으로 사후 습득해야 하는 내용이 초짜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근데 책 제목이 조금⋯⋯.”
떨떠름해하는 이도 있었다.
진혁이 개의치 않고 물었다.
“왜요?”
“『엄마 흉부외과가 가고 싶어요』가⋯⋯. 책 제목이에요? 조금 그렇지 않아요?”
“그게 어때서요. 흉부외과도 괜찮아요. 정도 넘치고, 사람도 좋고, 보람도 있고.”
“⋯⋯.”
“기왕 바이탈과에 갈 거면 빡세게 하는 것도 좋죠. 일단 명예가 따르잖아요. 사람은 돈만 보고 살 순 없다고요.”
진혁이 태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물론 이를 지켜보던 장혁준은 혀를 끌끌 찼다.
어느새 영업 사원으로 변모한 이진혁이 광을 파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선배들을 향해 그래 봤자 소용없다던 이진혁이 외치고 있었다.
엄마!
흉부외과가 최고예요!
✻ ✻ ✻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소문을 듣고 흉부외과 병동을 찾아오는 이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는데, 나침반이 등장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기본서를 20회독 하고 시험장에 가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이들이건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채 몸빵하고 있었으니.
말턴이 된 이들마저 욕심부렸고.
당장 복사해 달라고 성화였다.
“『엄마 흉부외과에 가고 싶어요』 좀 복사하자고!”
하지만.
“야야, 이거 페이지마다 이름 적어 놨다고. 내가 적은 것도 아니야. 애초에 이 선생이 적은 다음에 줬다니까.”
“화이트로 지운다니까.”
“야, 이게 퍼지면 당장 확인하려고 들 텐데. 조금 그렇잖아.”
“야이씨, 치사하다. 치사해.”
“아, 암튼 좀 그렇다고.”
CS턴을 도는 이들은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거절하기 바빴다.
스프링 제본 서적을 받은 이는 소수.
바로 뒤통수를 때리기엔 조금 그랬다.
그도 그럴 게.
‘이진혁이라고, 이진혁.’
‘보복할 수도 있다고.’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몰라.’
말리그가 건넨 선물이지 않던가.
사실 말리그든 말리그가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간 이진혁이 내과 계열을 상대로 벌인 행각을 전부 알고 있었으니, 괜히 피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
“퍼지면 죽는다. 어! 어떻게든 찾게 돼 있어!”
한동수마저 엄포를 놨다.
물론 단순한 엄포였다.
하지만 야마(족보)를 유출할 경우 끝까지 범인을 찾는다는 걸 아는 이들은 몸을 사려야 했다.
그렇게 점점 원내에 소문이 일자, 진혁은 예상치도 못하게 곤욕을 치르게 됐다.
교수님들마저.
“허허, 그래. 역시 이 선생이야⋯⋯.”
“아니, 어떻게 이런 생각을⋯⋯.”
“책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들어.”
입을 떡하니 벌리며 반겼다.
망해 가는 흉부외과를 위해 이런 책을 출판한다니.
과장되게 말하면 저마다 눈물을 글썽였고.
감동받았다며 벅찬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검수의 명단에 내 이름 올려!”
“인사말은 내가 써 주지.”
“아니야, 이건 내가 쓰지.”
“야야, 비켜. 나 흉부외과장이야.”
다툼까지 벌였다.
책의 일면을 누가 먼저 장식하냐를 두고 투덕거리는 것이다.
당장 병원장인 오지호는.
“아니, 외과가 아니라 왜 흉부외과야!!”
라고 소리쳤으니, 말 다 했다.
그렇게 일이 점점 커지자, 진혁과 장혁준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게.
『엄마, 성형외과에 가고 싶어요』로 계약했고.
거액의 선인세를 받았다.
그뿐이랴.
돈을 벌려면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제목을 써야 했다.
허나, 눈을 희번덕거리는 이들 앞에서 사실대로 고백할 순 없는 일.
“아, 그, 저⋯⋯.”
그저 말을 더듬을 뿐이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진퇴양난.
속된말로 하자면.
X됐다.
✻ ✻ ✻
교수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레지던트는 인턴을 붙잡기 위해, 몸을 갈아 넣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책만 쥐여 주면 끝일까.
아니, 아니었다.
물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젊은 의사들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방관자로 남을 순 없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잠을 자다 전화를 받고 몸을 일으키자, 진혁도 벌떡 일어났다.
“왜요? 어디예요?”
“하아암. ER이에요, ER. 오늘 당직은 저니까 더 자요.”
“음.”
“두 명이라는데⋯⋯. 일단 나중에 얘기해요.”
김대호가 가운을 챙겨 입자, 진혁도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옷장을 열었다.
“같이 가요.”
“으음?”
“두 명이라면서요, 같이 가자고요.”
“고, 고마워요.”
김대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혁은 개의치 않아 했다.
업무 버든을 덜어 주기 위해 하는 일.
심리적인 부채를 남기기 위한 일이었으니.
당연히 해야 했다.
그렇게 도착한 ER.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달려온 건 김상혁이었다.
“야야, 좀 내려오라니까.”
“너무 바빠서요.”
“바쁘긴 뭐가 바빠. 책 쓸 시간도 있으면서. 중독분석실 돌아가는 것도 봐야지.”
“예, 선배님.”
진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김상혁이 진혁의 어깨를 친 뒤 곧바로 자리를 비웠다.
여전히 바빠 보이는 그를 뒤로하고, 진혁은 김대호와 함께 베드로 향했다.
그러자 ER에서 근무 중인 인턴이 노티했다.
“두 명이나 내려올 일은 아닌데⋯⋯.”
“환자가 두 명이라면서요.”
“음, 먼저 조환태 환자부터 보죠. 3일 전부터 체스트 페인(흉통)이 있었고. NRS(환자의 주관적인 통증 정도)도 9점으로 심해요.”
동기라서 편하게 노티하는 그.
진혁이 말없이 차트를 살폈다.
그러고는.
“시프로플록사신(Ciprofloxacin)을 먹고 있네요.”
“네, UTI(요로감염)로 진단하고, 1차 병원에서 처방받은 모양이에요.”
“유린(소변 검사) 찍어 봤는데 나오는 건 없고⋯⋯. 음.”
“뭐, 약 먹고 있으니까요. 일단 영상부터 보죠.”
“네.”
EKG 그래프까지 확인한 진혁이 김대호와 함께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확인한 CT 영상.
진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CT ratio가 튀는데⋯⋯.”
“Cardiomegaly(심장비대)로 보이고 폐울혈(Pulmonary congestion, 폐모세혈관에 혈액이 정체되는 증상)도 보여서요.”
“일단 베드부터 옮길게요.”
STEMI(급성심근경색)일 수도 있는 상황.
아직 불분명했지만, 관상동맥 조영술을 하면 확실해질 터였다.
물론 미래에는 CV로 가야 했지만, 아직 영역 다툼 중이었기에 거리낌 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용역 직원이 베드를 옮기는 사이.
다른 환자까지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고 곧바로 당직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고, 고마워요.”
재수 없게 CS에 걸렸다고 고백했던 김대호가 사의를 표했다.
진혁이 침대에 몸을 뉘며 말했다.
“아니에요.”
“근데 왜 이렇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냥, 동기잖아요.”
“아⋯⋯.”
“뭐, 헬퍼는 당연한 거죠.”
진혁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잠결에 눈을 뜬 장혁준이 기함했다.
“와⋯⋯. 원래 깨지면서 배우는 거라고 했으면서⋯⋯.”
“⋯⋯!”
“⋯⋯!”
갑자기 적막해진 장내.
뻘쭘해진 진혁이 곧장 코를 고는 척했다.
뭐, 언제까지 꼰대질할 순 없지 않던가.
아, 너무 뻔뻔한가?
뭐, 어쩔 수 없었다.
우리 CS가 아니던가.
✻ ✻ ✻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났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분위기가 싱숭생숭했다.
그건 당장.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몇몇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장 김대호마저 죽상을 하고 앉아 있으니, 진혁이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커피나 한 잔 하죠.”
“그, 그래요.”
그렇게 이동한 휴게실.
김대호가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혁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커피 마시자고 해서 놀랐죠?”
“아, 뭐 그렇긴 하죠.”
“사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요?”
“표정이 별로 안 좋던데,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아⋯⋯. 내일 모탈리티 열려서요⋯⋯.”
김대호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진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M&MC.
풀네임은 Morbidity & Mortality Conference.
수술 중 사망한 환자의 원인을 파악하는 세미나였다.
김대호가 달달한 밀크커피로 속을 달랬다.
“전폐절제술 중에 손 쓸 틈도 없이 테이블데스 났어요. 갑자기 바이탈이 흔들리더라고요.”
“⋯⋯.”
“그냥, 음. 뭐, 그렇다고요. 그건 그렇고 진짜 할 말이 뭐예요? 단순히 표정 때문에 말을 건 게 조금⋯⋯.”
김대호가 말을 흐리자, 진혁이 손사래 쳤다.
“그냥 힘들어 보여서요.”
“⋯⋯.”
“힘내요.”
“⋯⋯고마워요.”
김대호가 쓰게 웃자, 진혁이 혀를 찼다.
훌훌 털어 버리라고.
이런 일은 어차피 비일비재하다고.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 순간.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내과에서 환자가 죽는 거랑⋯⋯. 외과에서 죽는 거랑 다르지. 꼭 내가 죽인 거 같으니까⋯⋯.’
테이블데스.
외과 계열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슈가 눈앞에 있었다.
아,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한참 생각에 잠겼던 진혁이 눈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