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92화(192/388)
192화. 일일 소방대원 (1)
일일 소방대원이라니.
전생엔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허나 잠깐 다녀오란다.
하루면 된단다.
의문도 잠시.
산적같이 생긴 흉부외과장이 웃어 보였다.
“방송에도 내보낸다고 하고. 병원장님도 이 선생을 지목했어.”
“⋯⋯.”
“그러니까 다녀와. 휴가 같은 거야.”
“저 혼자 가는 겁니까? 아니면⋯⋯.”
“각 병원당 한 명씩이고. 다른 병원도 올 거야. 소방 재난 본부랑 협의도 끝났어.”
“아⋯⋯.”
“아는 무슨 아야. 괜히 힘자랑할 필요 없어. 쉬다 와.”
“감사합니다.”
괜한 경쟁은 피하라는 말.
다른 병원을 짓밟아 주고 오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흉부외과장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산적처럼 생긴 외형으로 순박하게 웃을 뿐이다.
그 모습에.
“감사합니다, 과장님.”
진혁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사실 과장실로 호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온 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함의.
고마웠다.
감사했다.
일종의 포상 휴가가 아니던가.
곧, 어깨를 툭툭친 흉부외과장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환자 앞에선 망설이지 마.”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쉬다 오라는 말과 배치되는 전언.
CS다운 말이었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식탁은 반찬들로 그득했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이었으니.
뭐 당연한 일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천천히 먹어.”
“네!”
감사 인사도 잠시.
게 눈 감추듯 흡입하기 시작한다.
갈치 조림부터.
장아찌.
그리고 오이소박이까지.
빠르게 반찬을 욱여넣는다.
구내식당에서 먹는 밥도.
로젯 옆에 있는 수술방 전용 식당도 물리던 상황.
정말 꿀맛 같은 맛이었다.
뭐, 풍성마트에서 급하게 사 온 거 같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그 모습에.
“어머, 얘가! 천천히 좀 먹어!”
“너무 맛있어서요. 오랜만에 먹었더니 진짜 맛있어요.”
“그래도 꼭꼭 씹어 먹고.”
“네.”
어머니의 성화가 이어졌다.
이 또한 반가운 일이었기에, 진혁의 입꼬리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정정하신 부모님.
두 번 사는 인생인 만큼,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머니, 잘할게요.’
소리 없는 다짐과 함께.
다시 수저를 놀리기 시작한다.
허나 그 속도는 빨랐고.
어머니의 성화는 계속됐다.
사실 조절이 되지 않았다.
구내식당만 가도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가 구분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전의 식사 속도는 빠른 게 정상.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가 쌍심지를 켜자,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고치려고 노력할게요.”
“고치려는 게 이상한 건데⋯⋯. 그나저나 오늘은 일찍 들어오니?”
“네. 아마 5시에 퇴근할 거 같아요. 근데 간단하게 식사하고 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
“다른 병원에서도 온다고 해서요. 잘 모르겠어요.”
정확한 일정은 듣지 못한 상황.
이현아한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곧 알게 될 테니까.
그때, 어머니가 매번 하던 질문을 해 왔다.
“참한 아가씨는? 만나는 사람은 없어?”
“아직은 없어요.”
“그래?”
“네.”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지방 출장을 간 아버지가 그리운 순간!
침을 꼴깍 삼키며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수정이 엄마가 그러는데, 잘못하면 노총각이 될 수도 있대. 까딱하면 끝이란다, 끝.”
“⋯⋯.”
“빨리 누구라도 만나야 하는데⋯⋯.”
“뭐,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는데요.”
“그놈의 외과 때문에⋯⋯. 그놈의 외과가 문제야.”
또다시 불똥이 튄 외과.
흉부외과를 돌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지만, 싸잡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순간 진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놈의 외과에 지원할 예정이지 않던가.
‘외과에 지원할 거라고 말하면 충격이 크시겠는데⋯⋯.’
잠시 후.
수저를 내려놓은 진혁이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사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어머! 그래?!”
“네.”
“누군데? 누구야? 의사니? 아니면 간호사? 엄마가 언제 밥이라도 사 줄게.”
“아⋯⋯.”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홍조가 서리며 눈을 반짝이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왠지 실수한 거 같았다.
하루하루가 명절이나 다름없었다.
1998년.
참, 보수적인 시절이었다.
✻ ✻ ✻
용산 소방서 앞.
낯익은 얼굴이 보이자, 진혁이 인사를 건넸다.
“유나혜 선생님이시죠?”
“제 이름 기억하세요?”
“그럼요.”
“와, 의외인데요.”
“에이, 기억을 못 할 수 없죠. 춘계 학술 대회 때 인사했잖아요.”
“그래요?”
유나혜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멀쩡하게 인사를 건네던 진혁이 어색해했다.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던 그녀의 미모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자 의사라는 희소성도 한몫했지만.
하얀 피부라든지.
짧은 단발이라든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진혁이 어색하게 웃기만 하자, 유나혜가 말했다.
“사실 치프 선생님께 엄청 졸랐어요.”
“네?”
“일일 소방대원이요. 꼭 가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따낸 거예요. 저, 잘했죠?”
“아, 네.”
“왠지 이진혁 선생님이 오실 거 같았거든요. 뭐, 촬영도 한다고 하니까요.”
“하하. 네.”
진혁이 또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연애 세포가 죽었다지만, 모를 수 없었다.
지금 이건.
‘뭐지, 나한테 호감이 있나?’
명백한 호감 신호였다.
하지만, 곧 머리를 뒤흔든다.
뭐, 몇 번이나 대화했다고 호감을 품는단 말인가.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이 있다는 그녀.
배움에 대한 열망과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그득해 그런 걸 수도 있었다.
술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잠시 후, 소방서 내부로 들어서자, 구급대원이 그들을 반겼다.
“이진혁 선생님이시죠?”
“네네.”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출석 체크를 해야 해서요.”
“네.”
볼펜을 쥔 진혁이 빠르게 명단을 훑었다.
아신, 삼선, 카톨릭, 서운대, 세부란스까지.
빅5 병원의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물론 참석자는 제한적이었다.
‘병원당 한 명씩 온 건가.’
“참석자가 많은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적은 거 같기도 하네요.”
“아무래도 공간이 협소하니까요. 일단 휴게실로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네.”
짧은 대답 후 옮긴 휴게실.
낯익은 VJ들이 보였고.
촬영 장비 또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출동에 동행한다니.
뭐, 당연한 일이었다.
전담 VJ인 김석대와 눈인사를 나눈 뒤, 이미 도착해 있던 이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인연.
막내니 만큼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게 도리였다.
“안녕하십니까, 아신 병원에서 수련 중인 인턴 이진혁입니다.”
정중한 인사.
다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혁을 반겼다.
다시 자리에 앉기 무섭게, 구급대원의 브리핑이 시작됐다.
“선생님들, 촬영은 의식하지 말아 주시고요. 출동 신호가 울리면 저희랑 같이 움직이시면 됩니다.”
“그럼 출동이 없을 땐 어떻게 하면 됩니까?”
“편하게 쉬고 계시면 됩니다.”
“오, 그거 좋네요.”
“순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뭐, 출석부 명단대로 나가죠.”
이름순으로 나가자는 말.
깔끔하게 상황이 정리되자, 다들 몸을 축 늘어트렸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쉬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세부란스에서 온 의사가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했다.
“생각보다 출동이 별로 없는데?”
금기시되는 발언.
옆에 앉아 있던 구급대원의 눈이 커지던 그 순간.
삐이이이이잉-
삐이이이이잉-
경보가 울렸다.
✻ ✻ ✻
갑자기 울린 출동 경보.
놀라는 것도 잠시.
누군가 달려왔다.
“선생님들 출동입니다! 전부 움직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강변북로에서 다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상자만 10명이 넘습니다!”
“⋯⋯!”
놀랄 틈도 없이.
의료진들이 전부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출동하기로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계단을 점프하듯 뛰어 내려가는 구급대원들.
붉은 물결에 휩쓸려 같이 움직인다.
그렇게 구급차에 올라타기 무섭게.
에에에엥-
에에에엥-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클랙슨 소리가 뒤따른다. 그러자 차들이 움직인다.
소방서 앞 도로를 메우던 이들이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다.
뭐, 교통 체증이야 상수였으니.
이들을 탓할 시간도 없었다.
곧, 도로 위에 들어선 구급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신호를 무시하고.
아슬아슬한 운전을 계속한다.
곡예 운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
그때.
구급대원이 무전기를 들었다.
치익.
“한강 대교 북단 교차로에서 진입 예정입니다! 상황 공유 부탁드립니다!”
– 진입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회 도로 파악된 곳 있습니까!”
– 없습니다. 그냥 밀고 들어가세요!
“알겠습니다! 계속 상황 공유 바랍니다.”
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를 내려놓는 구급대원.
공간이 협소해 쪼그려 앉은 진혁을 향해 그가 소리쳤다.
“선생님, 뜀박질 잘하십니까?!”
“네?”
“뛰어야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중환자를 이송하려면 차를 붙여야 하는데요.”
“혹시 몰라서 그렇습니다!”
“네.”
짧은 대답.
진혁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갓길이 있거늘.
왜 뛸 수도 있다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따지고들 틈이 없었다.
그사이 구급차는 달리고 또 달렸다.
빠아아아앙-.
클랙슨 소리가 진동했고.
사이렌 소리는 연신 다급함을 외치고 있었다.
– 출동 중입니다! 비키세요! 9983번! 비켜요!
길을 터 주는 이들.
얼마 전에 방영된 다큐멘터리로 구급차의 길을 막은 사내가 곤욕을 치른 걸 본 탓일까.
생각보다 수월하게 길이 열렸다.
하지만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강변 북로를 타려면 들어가야 하는 회전 교차로.
1차선인 만큼 꽉 막혀 있었다.
애초에 갓길이 존재하지 않는 구역이 있는 것이다.
– 선행 차량! 움직이세요! 출동 중입니다! 갓길로 올라가세요! 출동 중입니다!
구급대원이 연신 소리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차량.
앞차가 움직여야 움직일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누군가 차에서 내렸다.
진혁이 탄 차량보다 앞서 달리던 구급차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차량 유도를 위해 나간 겁니다.”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일단 기다려 보시죠.”
뜀박질을 잘하냐고 묻던 구급대원의 대답.
그도 판단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선행 차량.
그러니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앞차를 뺀다면, 달리는 것보다 오히려 빨리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혹시 제가 보이면 중간에 태워 주십쇼.”
“⋯⋯!”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안전벨트를 푼 진혁이 구급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챙긴 왕진 가방을 들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다다다닥.
하얀 가운이 휘날리고.
가방은 요동친다.
하지만 계속 달린다.
뒤에서 유나혜의 목소리가 울렸지만,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같이 가요!!”
자신이 내리는 걸 보고 차에서 내린 모양.
VJ들도 뒤따르는 가운데.
정신없이 교차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강변 북로에 들어서자 도로를 꽉 메우고 있는 차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던 차량을 유도하는 구급대원마저 눈에 들어왔다.
곧, 상황을 파악한 그가 소리쳤다.
“현대 한강 아파트 앞입니다! 여기서 400m만 더 가면 됩니다!”
대답할 틈도 없이 계속 달리는 진혁.
숨이 목 끝까지 찼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저 멀리 사고 현장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처참한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오자, 진혁이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우선 처치 대상자를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