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197화(197/388)
197화 일일 소방대원 (6)
은퇴를 앞둔 노교수인 박정찬은 생각했다.
편견은 무섭다고.
늙으면 이래서 안 된다고.
당연히 그도 알고 있었다.
심방이 파열돼도 멀쩡한 경우가 많다는 걸.
누군간 바로 사망.
누군간 멀쩡해,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병증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새파랗게 어린놈이 뭣도 모르고 소리치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고.
교수님도 아니고, 선생님이라 칭한 것 또한 괘씸했다.
내려올 사람이 없어, 자신이 내려온 것이거늘.
고얀 놈이지 않던가.
해서 혼내고자 했다.
무시하고자 했다.
한데, 이진혁이었다.
소문이 자자한 CS의 희망.
전도유망한 후학이었다.
“허허, 나도 늙었어. 나도 늙은 게야.”
끌끌거리던 박정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살날보단 살아온 날이 많은 자신.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내가 말이야,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
“암, 그렇고말고!”
“CS인이라면 그래야지!”
“인턴 주제에 동기도 도와줄 줄 알고. 마음 씀씀이가 딱이야, 딱!”
칭찬과 독려를 남발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도 한다는 말.
거짓이 아니란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에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진혁은 얼굴을 붉혔지만, 박정찬은 개의치 않아 했다.
시니어의 칭찬.
몸 둘 바 몰라 하는 주니어.
늘상 있는 일이었다.
조그만 일도 칭찬하는 게, CS의 생존 전략이지 않던가.
진혁의 속내를 까마득히 모른 채, 박정찬이 손짓했다.
“여기 한번 봐 봐!”
“예.”
“어때? 보이지? Effusion(삼출액)이 심장을 누르면서 바이탈을 유지시키고 있어. 파열 부위가 작아서 가능한 일이야.”
“⋯⋯.”
“삼출액이 조금만 더 나왔어도 안 좋았어. 운이 좋은 편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교수님.”
“근데 얼마나 유출된 거 같아?”
“⋯⋯.”
“왜, 모르겠어?”
진혁이 침묵하자, 박정찬이 재촉했다.
능력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침대를 보면 눕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 지금은 조금⋯⋯.”
이진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환자를 힐끔거리자, 박정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왜? 환자 때문에?”
“네, 신장 헤마토마(혈종) 혹은 부신 출혈도 의심되는 환자입니다.”
“급하다 이거지?”
“예.”
단호한 대답.
사실 박정찬도 알고 있었다.
응환(응급환자)를 두고 이러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늙은이가 주책을 부렸다 여긴 그가 프로브를 잡았다.
판독 결과를 듣지 못했지만, 초음파로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딸깍.
딸깍.
프로브를 누를 때마다, 모니터를 메우는 화면이 달라진다.
여러 각도에서 찍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장 헤마토마(혈종).”
“헤마토마입니다.”
박정찬과 이진혁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갑자기 혈압이 치솟은 이유를 찾은 것이다.
박정찬의 고개가 다른 사내를 향했다.
“판독 결과지 갖고 와!”
“넷!”
“데미지 레벨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신장의 경우 손상 정도를 다섯 단계로 나누기에 하는 말.
판독 결과지를 뽑기 위해 달려가는 인턴을 뒤로하고, 박정찬이 물었다.
“헤마토마라고 생각한 이유가 뭐지?”
“신장 피막(신장의 바깥쪽 막)에 에코가 확인되고, 로우 레벨인 걸 보면 플루이드(Fluid, 액체)로 보입니다.”
빠르게 대답하는 이진혁.
그가 NS에서 온 의사를 힐끔거렸다.
경막외출혈을 인지시키는 몸짓이다.
“난 놈이야, 난 놈. 암, CS인이면 그래야지.”
박정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심장 천자를 할 시간을 아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답답했다.
교육기관의 역할도 하는 게 종합병원이라지만.
환자 앞이지 않던가.
그래.
어쩌면 프로시저를 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급해도 절차를 밟는 게 수술이었다.
프리옵(수술 전 준비)도 해야 했고.
마취 전 알레르기 검사도 해야 했으며.
동의서도 받아야 했다.
그뿐이랴.
조영술을 할 때도 있었고.
혈액 검사 결과도 봐야 했으며, 다각도로 검토도 해야 했다.
다시 말해,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허나 답답한 건 답답한 거였다.
그리고 그건.
아신 병원이 아니라서 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방인이었으니.
맘 편하게.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렇게 답답해하던 때.
NS에서 온 의사가 끼어들었다.
“교수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OR(수술실)은 NS랑 CS, 둘 다 잡아 놨다고 합니다.”
“영상은 확인했고?”
“네, 결과지는 못 봤지만 중증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급성으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후유증이 심한 경막내출혈보다는 나았지만, 경막외출혈의 경우 임상 경과의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하는 말.
삽시간에 안 좋아질 수 있었다.
박정찬의 대답은 명쾌했다.
“뭐, 따로 할 게 있겠어?”
“그럼⋯⋯.”
“척하면 척이지, 뭘 그래. 한 큐에 끝내자고. 어떻게 진행할 거야?”
“Small craniotomy(소형 개두술)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
“네, 골절도 없으니까 골편을 만들 필요도 없고. 후유증도 적으니까요.”
“여긴 정식으로 진행할 거야. 최 교수가 할 거고.”
다른 이에게 수술을 맡긴다는 말.
진혁의 눈이 커지자, 박정찬이 말했다.
“나 폐식도 파트야.“
그 자신이 폐식도 수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심장 수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 ✻ ✻
한동수는 자신을 일컬어, 완성형이라고 칭한다.
심혈관, 그리고 심장에 대해선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허나 엄밀히 말하면 완성형이 아니었다.
소아 심장.
그리고 폐식도는 다룰 줄 몰랐다.
심혈관 파트에서 평생 근무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뿐이랴.
심장 이식 경험 또한 적었다.
이식을 위해 서울로 가는 환자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때문에 수술 경험도 없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런 처지를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피해 본 아이의 폐 이식 수술에도 안 들어갈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새삼 깨닫는다.
평생을 CS에서 근무한 노교수가 심장 수술을 하지 못하듯.
자신도 이대로 안주한다면, 또다시 전생을 반복할지도 몰랐다.
외과에서 보드를 딴 다음.
다시 흉부외과로 돌아와 폐식도와 소아 심장까지 마스터해야 했다.
그래야 두 번 사는 인생답지 않겠는가.
새로운 목표를 자각한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 ✻ ✻
치프인 윤한섭이 달려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인턴이 세 장이나 되는 결과지를 노티하지 못하는 건 명백한 일.
그가 직접 노티했고.
의사결정은 빠르게 내려졌다.
먼저 복부는, 내과적 처치를 하기로 결정됐다.
경과를 지켜보다, 정 안 되면 추후에 개복하기로 한 것이다.
곧, 이송팀이 달려오고.
다시 부산스러워졌다.
이를 지켜보던 진혁이 읊조렸다.
“꼭 쾌차하시길⋯⋯.”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하는 말.
다른 병원이었으니 당연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주 성심 병원처럼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었고.
중대 병원은 68년도부터 흑석동을 지켜왔던 종합병원이었다.
그렇게 다시 소방서로 돌아가려고 할 때.
진혁의 어깨를 박정찬이 잡았다.
“어디 가려고?”
“일일 소방대원이라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환자가 여깄는데?”
“사실 액팅하기가 조금.”
“조금 뭐.”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뭐? 누가 그래? 과장이 그래?”
“네.”
짧은 대답.
박정찬의 고개가 휙휙 돌아간다.
응급의학과장을 찾는 게 분명했다.
졸지에 고자질을 한 셈.
아니, 사고를 치는 걸 수도 있었다.
해서 만류하려고 했다.
하지만.
– 환자 앞에선 망설이지 마.
흉부외과장의 당부가 떠오른 진혁이 조용히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뒤.
진혁의 옆으로 다가온 박정찬이 소리쳤다.
“뭐 해! 움직이지 않고!”
액팅하라는 지시.
응급의학과장을 찍어 눌렀다는 말이었기에, 진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킨다.
다른 이들을 돕고.
처치를 했지만, 주도적으로 지시하진 않았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행복했다.
아파하는 환자를 지켜만 보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와⋯⋯ 이진혁이 진짜 소문대로네.”
솜씨에 감탄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다들 말턴이라 손이 빨랐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채혈하는 속도도.
라인을 잡는 것도.
임프레션을 하는 것도.
너무도 빠르고 깔끔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일 때.
박정찬이 진혁을 불렀다.
곧,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 앞에선 진혁이, 프로브를 움직였다.
딸깍.
딸깍.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는다.
눈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
계속 손을 놀린다.
곧.
“Effusion(삼출액)이 좌심실이랑 우심방 쪽에 고여 있습니다. 깊이는 2cm 이상. 대략 500mL로 보입니다.”
“전부 삼출액이 아닐 텐데?”
“조영제도 흘러 들어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또.”
“흡기시에 E파가 40% 증가하고, 승모판에선⋯⋯.”
한참 계속된 노티.
박정찬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야. 봐 봐. 플로우(Flow, 혈류 흐름)랑 프로브(초음파 기계 탐촉자)랑 얼라이먼트(Alignment)가 예술이다. 어!”
다른 이를 붙잡고 시작된 호들갑.
긴박한 상황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가히 늙은이의 주책이라 할 만한 정도였다.
사실 인턴이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혈류 흐름을 디텍션할 때, 얼라이먼트를 맞춰야 제대로 된 파형이 나오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판독도 어려웠고.
사람마다 체형도 다 달랐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중대 병원으로 이송된 환자들의 처치가 모두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시점에 박정찬이 소리쳤다.
“CS에 흥복이로다!!”
✻ ✻ ✻
어느덧 다시 돌아가는 길.
교통비를 지원해 준다는 말에 택시를 잡아 탔다.
편하게 카메라를 내려놓은 김석대가 물었다.
“근데 일반외과로 가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일단 그렇죠.”
“그럼 실망이 크겠는데요?”
“⋯⋯.”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데,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배신감에 뭐, 보복하거나 그러진 않겠죠?”
“에이, 설마요.”
진혁이 손을 내둘렀다.
바쁘디바쁜 CS.
그럴 리가 없었다.
홍복이라며 좋아하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할 리 있겠는가.
그러다 문득.
은사이자 췌장암 투병 중인 최지봉 교수님이 떠올랐다.
항암 치료는 잘 받고 계실까.
다른 데로 전이되진 않았을까.
여러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그때.
거짓말처럼 전화가 왔다.
“네, 교수님! 저 진혁입니다!”
[과장님이라고 부르라니까!]“건강은 좀 어떠신지⋯⋯.”
진혁이 말꼬리를 흐렸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몰라 하는 행동.
침을 삼키며 대답을 기다릴 때였다.
[네가 내 마누라냐? 건강 챙길 거 없고. 그나저나 약속은 지켜야지. 뭐, 책도 출판 예정이라며?]“네?”
[동기들 보라며 초판을 돌렸다며, 아니야?]“아, 그게.”
[엄마, 흉부외과가 가고 싶어요! 아주 잘 지었어, 어! 이진혁이, 아주 잘했어.]아이처럼 좋아하는 교수님.
어떻게 들었는지 따지고 들 틈도 없이.
소리 없이 기함해야 했다.
아, 어쩌지.
진짜 큰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