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0화(20/388)
20화. 프리인턴 교육 (11)
어느덧 집에 갈 시간.
올 때와 마찬가지로 진혁은 3호 차를 타려고 했다.
하지만.
빵빵!
어디선가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뭐야. 저 사람이 왜 여깄어.’
아신 병원 홍보팀장 최규재.
그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슨상님~! 퍼뜩 오이소!”
자신한테 볼일이 있는 모양.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원장이 날 싫어한다며? 근데 이것도 홍보한다고?’
장길만으로부터 들었던 병원 사정과는 달랐기에 그가 왜 왔는지부터 헷갈렸다.
하지만, 이야기는 들어 봐야 할 터.
진혁이 발걸음을 돌렸다.
“여긴 왜 오셨어요? 곧, 버스가 출발할 거 같은데요.”
“아따야. 슨상님은 차 타고 가입시더.”
“네?”
“퍼뜩 타이소!”
“무슨 일인지 말씀은 해 주셔야 타죠.”
“아따. 가믄스 말한다 아입니꺼.”
“…….”
“병원장님 지시인데예.”
치트키와도 같은 말.
병원장.
캐리어를 뒷좌석에 싣고는 냉큼 차에 올라탔다.
* * *
최규재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곧장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원주 성심 병원으로 간다 안 캅니까.”
“홍보하시게요?”
“하모예. 사진부터 찍아 뿌고 와야지에.”
뭔가 빙빙 돌아가는 느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원장님이 절 싫어한다고 들었는데요?”
“아따마! 슨상님도 벌써 들었는갑네.”
“…….”
“그 양반이 아주 유명하다 안 캅니까. 의사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카나 뭐래 했심니더.”
“근데 왜 찍으러 갑니까?”
“병원장님은 다르지에.”
“네?”
“하아. 이거 쐬주 먹고 말해야 하는 긴데. 좀 복잡하다 안 캅니까.”
최규재의 설명은 계속됐다.
병원장인 오지호는 외과 출신.
부원장인 부재일은 내과 출신.
여느 종합 병원과 마찬가지로, 외과 계열과 내과 계열이 대놓고 내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흔한 파벌 싸움이었다.
‘뭐, 여기도 마찬가진 건가.’
병원장이 특별히 진혁에게 관심 가질 이유는 없었지만, 부원장이 반대하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말과도 같았다.
“뭐, 높은 분들 일에 제가 낄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요. 그럴 짬도 안 되고요.”
“하모예. 하모예. 지도 안다 아입니꺼. 근데 슨상님 어째 라인 타셨다던데예.”
“네? 제가 무슨 라인을 탑니까. 고작 인턴인데요.”
“CS 간다 안 캅니까.”
“하!”
뜬금없이 나온 CS.
흉부외과 또한 외과 계열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되는 건데!’
황망할 따름이었다.
* * *
한동수가 어떻게 소문을 낸 건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CS(흉부외과) 막내로 찍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인턴이야 잡부보다 못한 존재 아닙니까? 저한테 너무 관심을 두는 게 이상한데요.”
“이 연타 아입니꺼. 이 연타.”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고요.”
“캬. 아주 좋심니더!”
“이건 쓰지 말아 주세요.”
“하모요. 극증 마이소.”
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어떻게 써 댈지 훤히 보였던 탓이다.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론을 몇 번 탔다고 관심을 보이는 것도.
부원장도, 병원장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건 자신에 대한 소문을 낸 한동수도 마찬가지였다.
‘뭐, 내가 지들 장난감인가.’
진혁이 고개를 돌려 말없이 창문 밖 전경을 바라봤다.
뭔가 활력이 없어 보이는 도시.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넘었고, 한평생 회사만 바라보던 이들이 졸지에 직장을 잃고 가정이 해체되고 있었다.
평생을 제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대로 살았던 이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 몫을 묵묵히 다하던 이들이 정치인과 문어발식 확장을 했던 재벌 기업들의 유탄에 시름겨워하고 있었다.
‘누구한테 끌려다니고 싶지 않다.’
어차피 다시 사는 인생.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고 싶지도 않았고.
타인의 의지대로 일할 마음도 없었다.
‘이번에는 내 의지대로 살 거야.’
진혁이 피곤한 듯 눈을 감아 버렸다.
* * *
아신 병원에서 어떻게 연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환자실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진혁은 곧장 차트부터 확인했다.
피버(열)는 정상.
세츄레이션(산소포화도) 또한 정상.
그 외 각종 수치도 확인했지만 깨끗했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이 정도면 수술이 잘됐는데.’
진혁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일 때.
김진철이 살짝 눈을 떴다.
“으음.”
얕은 신음을 내뱉던 그의 눈이 커졌다.
진혁을 알아보고 잠에서 완전히 깬 것이다.
“선생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고, 고맙습니다.”
“숨 쉬는 건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가족한테 들었습니다. 저 때문에 곤란하시다고요.”
“저보단 회복에 신경 쓰세요. 얼른 퇴원하셔야죠.”
“당분간 중환자실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뼈가 붙으려면 시간이 걸리기야 하겠지만. 중환자실에 오래 있을 정도는 아닌데요. 일반 병실로 옮기셔야죠.”
“기자들 때문에요.”
“아.”
자신을 취재하려는 시도 때문이라는 말.
진혁이 말을 돌렸다.
“빨리 일어나셔서 멱살부터 잡으셔야죠.”
“네? 아! 아들놈들 멱살 한번 거하게 잡겠습니다.”
구급차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진혁.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는지 김진철이 희게 웃었다.
“나중에 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은 곧장 중환자실을 나왔다.
아직 충분한 시간을 두고 회복해야 할 터.
환자를 방해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김진철과의 인연이 계속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 길.
사진 찍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최규재가 이곳까지 따라온 이유를 알기에 진혁이 입을 열었다.
“사진은 안 찍으시네요?”
“환자 아입니꺼. 환자.”
“아.”
“퍼뜩 가입시더.”
멀리서 뒷모습을 찍은 거로 대신한다는 말.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의료계에 종사해서 기본은 한다는 건가.’
곧, 차가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동해에 있던 환자를 보러 가는 길.
그것 또한 홍보의 일환이었고.
진혁 또한 세신사와 중년 사내의 상태가 궁금했기에 반발하지 않았다.
* * *
그렇게 며칠 후.
진혁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아신 병원에서 내보낸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간지 때문이었다.
[환자만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걸 감내할 수 있어.] [괜찮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진짜 이 양반이.”
사진은 뒷모습만 나왔지만, 타이틀이 문제였다.
부산 사투리와 대구 사투리를 섞어 쓰는 만큼 최규재의 업무 처리 또한 혼종이었다.
* * *
일주일이 지났지만 언론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곧 있으면 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할 시기.
정권이 뒤바뀌는 혼란기 속에 얼마 전까지 여당 소속이던 육선재는 조리돌림을 당했고.
그 여파는 진혁에게도 미치고 있었다.
띠리리링.
“아이. 진짜 우리 애가 날 닮았다니까. 어? 호호. 얘도 참.”
숱하게 걸려 오는 전화.
어머니의 끊이지 않는 자식 자랑은 계속됐다.
그뿐이랴.
아버지 또한 달라졌다.
“아.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이 정도야. 어? 뭐라고? 엄마를 닮았다니. 날 닮은 거지.”
은퇴 후 기운 없어 하던 아버지.
요새는 등산도 가지 않고 전화만 기다렸다.
자식 자랑만큼 신나는 게 어딨단 말인가.
다들 한참 흥이 돋아 있었고.
오늘처럼 싸우는 날도 있었다.
“아니, 날 닮았는데 무슨 당신을 닮아요.”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아니긴 무슨! 아들은 엄마 닮는 거 몰라요?”
“의협심이 강한 건 날 닮은 거라니까!”
서로 자신을 닮아 그런 거라는 주장.
진혁은 이를 뿌듯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런 게 효도지, 뭐.’
물론, 조용히 살기는 그른 상황.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것 또한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이 저렇게 행복해하시니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다녀오겠습니다!”
“벌써 가려고?”
“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일찍 가야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니, 이 사람아. 학교도 아닌데 뭘 그래.”
“어머, 지금부터 잘 보여야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도 몰라요?”
사랑싸움이 길어지자 진혁은 그대로 현관문을 열었다.
* * *
집 밖으로 나온 뒤, 곧장 둑방길로 향했다.
마을버스를 타면 한참 돌아가야 했기에, 차라리 걷는 게 더 빨랐기 때문이다.
둑방길에 올라서자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인 2월 중순.
조금씩 날이 풀리며 꽃이 개화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인 건가.’
오늘로써 2차 원내 교육도 끝나기에 하는 말.
곧, 시작될 인턴 생활.
일 년 동안 어떤 과를 돌게 될지 결정되는 날이기도 했다.
* * *
2차 교육 마지막 날이었지만, 지루했다.
1차 교육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인턴이 해야 하는 일.
그러니까 기본적인 처치부터 술기.
EMR(전자 의무 기록) 사용법부터 소양 교육이 이뤄졌지만, 다 아는 내용이니 그럴 수밖에.
어느덧 마지막 시간.
졸음을 쫓기 위해 자판기 앞에 섰다.
‘자판기 커피도 맛있단 말이야.’
동전을 집어넣기 무섭게, 이태희가 다가와 하품했다.
“난 블랙.”
“블랙? 밀크커피가 아니라?”
“여자는 블랙이지.”
“그건 또 무슨 논리야?”
“그냥 내 취향이거든.”
그렇다는데 뭐라 말하랴.
딸깍.
종이컵을 뽑아 든 이태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 쓰다, 써.”
“밀크커피는 맛있는데.”
“나도 알거든?”
“근데 블랙을 먹어?”
“인생을 미리 맛보려고.”
“?”
“블랙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종잡을 수 없는 헛소리.
그래. 그래야지 이태희다웠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와 좀 더 친해졌기에, 말도 어느 정도 놓을 수 있었고.
그녀의 성격도 대충은 알게 됐다.
딸깍.
진혁은 밀크커피를 홀짝거렸다.
달달한 프림 맛이 입에 퍼지며 스트레스가 절로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스벅이 없어도 살 만하단 말이야.’
그렇게 맛을 음미하고 있을 때.
이태희가 말을 걸어왔다.
“넌 안 떨려?”
“?”
“오늘 우리 뽑기 하잖아.”
“뭐. 그 정도야.”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
이태희가 도끼눈을 떴다.
“그 해탈했다는 표정 좀 어떻게 해 줄래?”
“?”
“이럴 때는 와 나도 떨린다, 무슨 과를 첫턴으로 돌고 싶냐, 잘 나왔으면 좋겠다, 뭐 이런 말을 하는 거거든? 됐다. 너랑 말하는 내가 바보지.”
민감한 반응에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그녀가 예민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필수과는 무조건 돌아야 한다.
문제는 나머지 과다.
누군가는 경험하지 못한 과를 누군가는 경험해야 했고, 그 결과에 따라 희비마저 엇갈리는 것이다.
인턴 생활이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빡빡한 과에 배정받는 거랑 처음부터 첩첩산중을 마주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랐으니까.
물론, 자신은 아무 과든 상관없었다.
한동수가 있는 CS만 아니라면.
‘그 양반이랑 3월부터 드잡이질하긴 싫다고.’
그렇게 한참 커피를 홀짝이고 있을 때.
교육수련부 직원이 뽑기 박스를 들고 오는 게 보였다.
여럿을 울릴 운명의 뽑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