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02화(202/388)
202화. 새로운 시작 (3)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놀린다.
클램프.
프롤렌.
메젠바움 시저.
모스키토.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손을 내밀면 끝.
척이면 척이다.
순식간에 끝난 상대정맥 삽관.
이를 바로 고정했다.
관류 과정에서 캐뉼러가 빠지거나,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
바쁜데도 밑작업을 했던 이유가 있었다.
곧바로 한동수가 캐뉼러의 캡(푸른색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진혁이 심폐순환기와 연결된 Y자 커넥터를 갖다댄다.
이번에 나선 건 정진석.
시린지로 N/S를 주사한다.
뿌리고.
또 뿌린다.
공기 유입을 막기 위한 일.
색전증만큼 치명적인 일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진혁의 손이 움직였다.
꾸욱 눌러 커넥터와 캐뉼러를 연결하고.
체결 부위를 점검했다.
거즈로 닦아 시야를 확보하고, 버블을 체크하는 것이다.
육안으로 한 번.
손으로 쳐서 한 번.
공기 방울의 유무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이상 없습니다!”
“좋아! 다시 간다!”
“넷!”
다시 하대정맥으로 이동하는 이들.
똑같은 작업이 반복됐다.
✻ ✻ ✻
대동맥, 상대정맥, 하대정맥.
캐뉼레이션이 전부 끝났다.
남은 건 루트 캐뉼러의 삽관.
심정지액이 주입되는 통로다.
좌심실의 팽창을 막고.
Air가 차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 하는 일.
삽관 그리고 연결.
빠르게 끝난다.
한동수가 소리쳤다.
“바이패스 확인해!”
“넷!”
이번엔 체외순환사가 움직인다.
점검하고 또 점검했지만, 다시 점검한다.
탁탁!
탁탁!
도관을 치고 또 친다.
표면에 붙어 있을 버블.
전부 없애야 했다.
공기가 유입되는 순간 죽는다.
탁탁!
탁탁!
다른 이들도 도관을 쳤고.
점검을 도왔다.
그사이.
“헤파린(항응고제) 투약합니다!”
“ACT 바로 확인해!”
“넷!”
심정지액이 투약됐다.
몸 밖으로 나가면 응고되는 혈액.
응고 속도를 늦췄으니.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와 동시에.
“준비 끝났습니다!”
“바이패스 온!”
“바이패스 온!”
“쿨링 다운!”
“쿨링 다운!”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심폐순환기가 돌기 시작했다.
“30초 지났습니다! 체온 34도!”
“체온 33.3도!”
“1분 지났습니다! 체온 29도!”
“18도로 맞춰!”
“옛!”
“60분이야! 60분! 그 안에 끝낸다!”
초저체온으로 수술하겠다는 말.
대동맥 박리 환자를 대상으로 중증도 저체온(28도)으로 수술하는 게 대세가 되는 미래와 다른 방식이었고.
한계는 60분이었다.
한 시간 안에 심폐순환기를 멈추고.
다시 심장을 뛰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ACT 300초입니다!”
“중간중간 보고해!”
“넷!”
“브레인 모니터링 해!”
“아직 괜찮습니다!”
“좋아!”
짧은 대답과 함께 한동수가 손을 놀렸다.
심장이 완전히 멈출 때까진 시간이 있는 상황.
다시 한번 촉진해야 했다.
✻ ✻ ✻
아치 모양의 대동맥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허나 초음파로 봤다.
안쪽 내막이 찢어졌다는 걸.
이번엔 상행대동맥을 촉진했다.
그러자 느껴진다.
벽이 얇아진 게.
가성 루멘(내막이 찢어지며 생긴 새로운 통로)이 있는 게 분명했다.
뭐, 초음파로도 봤으니 정확하리라.
“대동맥궁을 완전히 들어낼 거야!”
“⋯⋯!”
“내막 치환술은 그다음이야! RCP 시작해!”
“넷!”
역행성 뇌관류(RCP).
뇌 혈류에 문제가 생길 테니.
대동맥궁을 치환하기 전에 해야 했다.
순식간에 끝난 RCP.
무명동맥과 좌측 총경동맥에 도관을 추가로 설치해야 했지만, 그 속도는 빨랐다.
손을 떼기 무섭게.
“심장 완전히 멈췄습니다!”
노티가 시작됐다.
“체온은!?”
“17.8도입니다!”
“쿨링다운 스탑!”
“쿨링다운 스탑!”
복명복창이 이뤄진다.
곧바로 기기를 조작하는 체외순환사.
이를 기다리지 않고.
한동수가 메스를 잡았다.
세팅이 끝난 상황.
병변을 박멸할 차례였다.
✻ ✻ ✻
대동맥궁 치환.
아무나 할 수 없었다.
그 모양이 아치 형태를 띠고 있었고.
무엇보다 연결된 가지들이 많았다.
인조혈관으로 치환한 다음, 다시 연결해야 할 혈관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죽상판의 모양 또한 전부 달랐다.
콜레스테롤 때문에 생긴 덩어리(죽상판)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혈관을 비좁게 만들고 있었으니.
치환할 때도 다 다르게 이어 붙여야 하는 것이다.
허나 속도를 높이고.
또 높인다.
빠르게 절제하고.
작업을 이어 간다.
절제, 석션, 세척까지.
모든 이들이 손을 놀리고.
또 놀렸다.
그렇게 걷어 낸 대동맥궁.
이를 트레이에 옮긴 순간, 진혁이 자리를 이탈했다.
집도의가 문합하며 커스터마이징(인조혈관을 혈관 모양에 맞게 성형)해도 됐지만.
그렇게 하면 속도를 낼 수 없었다.
60분이라는 제한 시간도 있었지만.
예후도 중요한 상황.
시간을 절약할수록 좋았으니, 눈치를 볼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커스터마이징.
한마디 할 법했지만, 한동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간호사도 당연하다는 듯이 인조혈관을 건넸다.
최두일로선 어이없는 상황.
하지만 말할 틈이 없었다.
“랭곤! 집중 안 해!!”
귀신같이 한동수가 샤우팅을 터트렸다.
속도를 못 맞추기에 하는 말.
다시 정신을 차린 최두일이 빠르게 손을 놀렸다.
그사이.
“몇 분 남았어!?”
“30분 남았습니다!”
“이진혁이 뭐 해!”
“다 끝나 갑니다!”
“서둘러!”
“넷!”
짧은 대화가 오간다.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일 때.
커스터마이징이 끝난 인조혈관(Graft)이 건네졌다.
그러자 다른 부위를 건드리고 있던 한동수가 포셉과 니들홀더를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문합.
한 땀, 두 땀, 세 땀.
니들이 들락날락할수록 점점 견고해진다.
이식편이 불룩하게 튀어나올 수 있고.
마음이 급해 실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때로는 단단문합을.
때로는 측단문합을 한다.
쉽게 말해 끝과 끝.
아니면 옆과 끝을 이어 붙이는 거다.
정교한 손놀림.
균일한 간격.
타이와 수처하는 속도까지.
이를 지켜보던 최두일이 질려 했다.
손재주 하나만큼은 뛰어나다는 한국인.
한동수는 일반인을 넘어선 괴물.
괴물에 가까웠다.
✻ ✻ ✻
내막, 중막, 외막.
3중 막으로 구성된 대동맥.
중막이 장축으로 찢어져서 진성 내강(원래 피가 흐르던 공간)과 가성 내강(박리로 인해 새로 생긴 공간)으로 분리됐으니.
상행대동맥 또한 손봐야 했다.
어느새 복귀한 진혁이 클램프로 상행대동맥 양쪽을 겸자했다.
절개 부위보다 살짝 위.
그리고 아래.
총 두 군데를 겸자한다.
마치 절제할 부위를 아는 것처럼.
위아래 각각 2cm의 간격을 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정석적인 방법.
‘뭐, 이런 놈이⋯⋯.’
최두일이 탄식하던 순간.
절제가 시작됐다.
파열된 부분을 드러낸 다음.
문합부의 죽상반.
그리고 동반된 혈전을 제거한다.
그 순간.
정진석이 드래프트를 건넸다.
일자 형태의 혈관.
커스터마이징이 필요 없었다.
이젠 문합할 차례.
한동수가 소리쳤다.
“이진혁이!”
“넷!”
“위쪽을 맡아! 니들홀더! 포셉!”
“여깄습니다!”
도구를 받아 든 한동수가 손을 놀리기 무섭게, 진혁 또한 손을 놀렸다.
먼저 이식편의 후면부터 봉합하기 시작한다.
그다음은 좌측 2/3 지점.
다시 우측을 연속 봉합했다.
✻ ✻ ✻
독수리의 눈.
사자의 심장.
여자의 손.
영국 속담에서 유래된 말.
훌륭한 외과 의사가 갖춰야 할 조건이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대범하고 강인하며.
동시에 부드러워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물론 양립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속담이라는 게 늘 그렇듯.
중의적인 표현을 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노인들이 하는 말이지.’
말하길 좋아하는 윗분들이 아래 연차를 붙들고 저런 얘길 한다.
그래야 한다고.
저래야 한다고.
한데.
‘이걸 이렇게까지⋯⋯.’
한동수가 하고 있었다.
섬세하고, 빠르고.
대범하게.
폭넓은 시야로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손을 놀린다.
그는 집도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정도를 넘었다.
선을 넘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랐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뿐이랴.
이진혁도 만만치 않았다.
중간중간 문합 부위를 바꾸고 있는데.
2/3 지점에서 멈췄던 좌측과 우측이 이어지자, 연결 부위가 정확히 일치했다.
찌그러질 수도 있었건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원형으로 봉합한 것이다.
게다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한다.
주름봉합.
이른바 Plication suture.
얇아진 동맥벽을 보완하는 작업도 거뜬했다.
거기에 더해.
정진석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시를 하면서,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루페(확대경)로 좁아진 시야.
집도의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시선을 가리지 않으며,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러니 혼란스러웠다.
어지러웠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던가.
고작 인턴과 레지던트지 않던가.
물론 초집도의 상시화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었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레지던트한테 집도를 맡긴다니.
미친 짓이었다.
한데, 집도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맨날 수술만 하는 열악한 환경 때문일까.
지금 보니, 똑같은 괴물들이었다.
✻ ✻ ✻
이젠 점검만이 남은 상황.
상행대동맥을 잡고 있던 클램프를 푼 다음, 이식편의 양 갈림 끝을 캘리 클램프로 겸자했다.
피가 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아무 문제도 없을 줄 알았건만, 피가 스며 나온다.
커스터마이징을 했다지만, 완벽히 일치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우징(Oozing)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 정도는 괜찮아. 정진석이!”
“넷!”
“뭐 해! 빨리 조치해!”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정진석이 손을 놀렸다.
피가 스며 나오는 정도(Oozing).
트롬빈을 적신 젤폼을 붙이며 지혈했다.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선 재빨리 다른 부위도 점검한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확인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체외순환사가 소리쳤다.
“10분 남았습니다!”
“체온 조금씩 올려!”
“넷!”
“지금부터 다시 닫는다! 다들 각오해!”
스텝들을 독려한 한동수가, 다시 손을 놀렸다.
우심방을 닫고.
캐뉼러를 지지하고 있던 토니켓을 제거한다.
그뿐이랴.
그간 해 놨던 일들을 전부 되돌려 놓는다.
순식간에 끝난 작업.
한동수가 소리쳤다.
“체온은!”
“34도입니다!”
“바이탈 괜찮나!?”
“괜찮습니다!”
“긴장 풀지 마!”
“넷!”
“바이패스 오프!”
“바이패스 오프!”
복명복창과 함께 심장을 일깨우는 약물이 주입되고.
심폐순환기가 작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이탈 아직 괜찮습니다!”
마취과 의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긴장된 표정으로 한참 상태를 지켜보던 이들이 다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 ✻ ✻
어느새 끝난 수술.
스텝들이 고개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수고했어!”
심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최두일은 생각했다.
멋있다고.
간지가 철철 흐른다고.
때로는 재촉할 줄 알고.
분위기를 풀 줄 알았으며.
능력 또한 완벽했다.
강약중강약.
4/4박자를 잘 지키는 의사 같았다.
그 자신이 조언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
우물 안 개구리라고 평가했던 그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아니, 이 정도면.
‘랭곤에서도⋯⋯.’
미국에서 만났던 의사 중에서도 탑급에 가까웠다.
그렇게 감탄과 경악,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된 최두일이 개수대로 향했다.
그렇게 손을 씻을 때.
한동수가 말했다.
“어이, 랭곤!”
“최두일입니다!”
“알아, 알아. 양키보다 낫잖아? 안 그래?”
“그건⋯⋯.”
“됐고. 어때?”
“네?”
“소감이 어떠냐고? 야야. 우리가 말이야. 이 정도라고, 이 정도.”
갑자기 호들갑을 떠는 한동수.
그 모습에 정진석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고.
진혁은 말없이 웃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았거늘.
아니, 더 멋있었거늘.
이 타이밍에 호들갑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옙~! 요~! 맨!”
뜬금없이 영어를 쓰며 반응하는 최두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래, 어쩌면 별종들이 살아가는 곳이 CS일지도 몰랐다.
제정신이 아니라면 버틸 수 없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