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08화(208/388)
208화. 참의료지원단 (5)
영수회담.
그렇고 그런 정치인 간의 만남은 아니었다.
무려 한 나라의 대통령.
그리고 야당 총재가 만나, 의약분업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한데 안 만난다.
파토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원 역사와 다르게 파업이 계속될 거라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나운서의 멘트가 울렸다.
[영수회담 결과에 따라 파업 철회도 할 수 있다고 했던 의협은 어떤 입장입니까?] [강경 투쟁을 이어 가겠다는 입장입니다! 여권뿐 아니라 야권을 대상으로 비난 성명을 발표했으며⋯⋯.] [동네 병·의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파업에 동참하는 병·의원 또한 늘고 있습니다. 성북구는 동네 병·의원 211곳 중 127곳이. 관악구는 214곳 중 122곳이 문을 닫았으며, 용산구는⋯⋯.]한참 계속된 멘트.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원 역사에선 3일 만에 멈췄던 3차 파업.
7차까지 띄엄띄엄 진행됐던 파업이 장기화되고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곧, 화면이 바뀌고.
앵커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삼선 병원의 경우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을 제외한 모든 과가 파업에 들어갔는데요. 다른 병원은 어떻습니까?] [세부란스의 경우 외과는 운영하고 있지만, 내과의 경우 전임강사조차 일반 진료 환자를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에⋯⋯.] [아신 병원은 참의료지원단을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곳은 어떻습니까?] [네, 아신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며 현재⋯⋯.]한참 이어진 보도.
자신 때문에 역사가 개변됐을지도 모른다며, 자책 반 후회 반으로 뉴스를 지켜보던 진혁의 눈이 커진 건 핸드폰이 울리고 나서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계속해 울리는 핸드폰.
기자들의 전화였다.
가만히 액정을 내려보던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그 자신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참의료지원단은 원 역사에서도 결성되지 않았던가.
그 자신이 한 거라고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만들었다는 거.
전공의 위주로 진행됐던 참의료지원단에 교수들까지 참여하게 됐다는 거밖에 없었다.
뭐, 영향이 있었다 한들 상관없었다.
지금 당장은.
“예, 기자님, 잘 지내시죠? 아, 그게 일반내과에서 말입니다.”
언론부터 이용해야 했고.
벌어진 일을 수습해야 했다.
✻ ✻ ✻
정치인을 가리켜 쓸데없는 놈들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지만.
뭔가 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문제는 영수회담 결렬이,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들한테까지 좌절을 불러일으켰다는 거.
거기에, 조금만 아파도 응급실을 찾는 특유의 심리까지 더해지자 난리가 났다는 거다.
지금 당장.
“아아! 진짜 배가 아프다니까요! 접수 좀 해 주세요!”
“저는 머리가 아파요. 신경통이 재발한 건지 모르겠지만 죽을 거 같다고요!”
“비켜! 비키라고!”
“우리 애가⋯⋯.”
접수대부터 난리가 났고.
줄은 점점 길어졌다.
응급실 옆 흡연장.
흡연장 옆 장례식장까지.
대기 줄이 끝도 없이 생겼다.
이 모든 건 영수회담 결렬 속보가 방송된 지 고작 2시간.
논의 결과에 따라 파업 철회도 검토하겠다던 의협이 강경 투쟁을 선언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원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장길만이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치프! 어떻게 할까요!”
“그, 그게⋯⋯.”
“빨리 과장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과장님도 아실 텐데⋯⋯.”
“그래도 지침을 받아야죠! 오프인 애들 불러와야 합니다!”
“아⋯⋯.”
장길만이 길게 탄식했다.
사실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렇게 사람이 몰린 적도 없었을뿐더러.
자율 파업을 한답시고 내과 쪽에서 협조를 해 주지 않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뾰족한 수가 있겠나 싶었다.
외과에서 인력을 지원받았으니.
할 만큼 한 게 아니던가.
하지만.
“치프!”
후배들의 성화가 계속되자, 장길만이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무겁고 또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무릇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는 이슈만 보고할 게 아니라, 대안도 제시해야 했거늘.
아무런 대책없이 ‘큰일났습니다!’라는 말만 해야 할 판국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천천히 과장실로 가며 주변을 훑는다.
뭐, 다시 본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들 싸우느라 정신없었으니까.
“받아 줄 사람이 없다고? 야! 장난해! 여기도 없어! 오프 중인 놈들 콜해! 뭐 하는 거야! 어! 자율 파업이고 나발이고! 여기도 죽겠다니까!”
내과에 전화해 지랄하는 3년 차.
“판독은 언제 되는 겁니까! 지금 난리라고요! 아! 사람없는 건 다 똑같다니까요!”
영상의학과에 푸시를 넣는 4년 차.
“뭐 하자는 겁니까! 네!”
연신 소리를 지르는 2년 차까지.
통화 상대가 선배라면 사정을 했고.
후배라면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환자를 밀어 올리려 애쓰는 것이다.
잠시 잠깐 발걸음을 멈춘 장길만의 시선이 이번엔 진혁을 향했다.
그도 똑같겠지.
싸움꾼이나 마찬가지니까.
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아⋯⋯.”
아니었다.
이진혁의 행태를 지켜보던 장길만이 후다닥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이진혁 또한 똑같았다.
✻ ✻ ✻
그 시각.
진혁은 정신없이 환자를 올려보내고 있었다.
협의?
협의는 없었다.
화도 내 보고, 애원도 해 보고, 협박도 해 보고, 인맥에 의존도 해 봤다.
허나 시간 낭비였다.
자율 파업이고 뭐고.
첫날보다 더 밀려든 환자를 살리고 봐야 했다.
“이윤재 환자 소화기내과로 올려보내요!”
“넷!”
“정철영 환자는 신경내과입니다!”
“알겠습니다!”
“김인태 환자는 일반내과로 가 주세요!”
“넵!”
빠르게 움직이는 이송팀.
그들을 이용해 쳐 내고 또 쳐 냈다.
물론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
그러니까 나이롱에 준하는 이들은 돌려보냈다.
진짜 급한 환자.
당장 처치가 필요한 환자만 올려보내는 거다.
그렇게 10명 넘게 쳐 냈을 때.
장길만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가 신경 쓰였지만, 멈추지 않았다.
“스텝 레더 사인(Step ladder sign, 장폐색에 의한 증상)이 보이는데요. 항문외과로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희미하게 보이긴 하는데 지주막하 출혈이 의심되니까 이 환자는 신경외과로요!”
“넷!”
내과 외과를 가리지 않고 계속 올려보낸다.
물론, 걱정하는 사내도 있었다.
나이가 찰 대로 찬 이송팀 직원이었다.
“진짜 이대로 올라가도 될까요? 외과야 상관없는데 내과는 조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올려보내세요.”
“만약 안 받아 주면요.”
“그냥 놓고 오세요.”
“⋯⋯.”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단호한 어조.
이송팀 직원이 마지못해 움직이자, 진혁도 다른 베드로 향했다.
그렇게 계속 협의 없이 환자를 올려보내자, 결국 전화가 왔다.
일반내과에서 일하는 의사.
그나마 친분 있는 선배였다.
딸깍.
[야, 이진혁이! 너!]“선배님. 진짜 급해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장 고개부터 숙이고 본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금 네가 보낸 환자가 몇 명인 줄 알아! 어!]“죄송합니다. 여기도 전쟁이라서요.”
[하⋯⋯. 우리도 사람 없다니까! 정문성 환자는 뭐야! 이 사람은 그냥 돌려보내도 되는 거잖아!]“아뇨, 발열, 두통, 몸살, 구역 증상이 있고.”
[아니, 심전도는 이상 없잖아! 초음파도 멀쩡하던데! 뭐 하자는 거야! 어!]그 자신의 말을 끊고 화만 내는 선배.
진혁이 차분하지만 빠른 목소리로 노티했다.
“양쪽 계늑부(측면 하복부)에 압통이 있습니다. 늑골척추각(등 뒤 맨 아래 갈비뼈와 척추가 만나는 부분)에도 통증이 있고요. 급성신우신염으로 임프레션 했습니다.”
[하⋯⋯. 그럼 이치도 환자는 뭔데!]“선배님, 죄송한데 차트를 확인해 주시면⋯⋯.”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어! 뭐, 뭐야! 기자들 막아! 막으라고!!]뚜욱.
곧바로 끊긴 전화.
진혁이 쓰게 웃었다.
그냥 무작정 올려보내긴 했다.
기자까지 딸려 보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 ✻ ✻
난장판.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필수 의료 인력만 남은 내과.
아무리 자율 파업이라 한들.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있었고 그들마저 외면할 순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소송에 휘말릴 테니까.
한데 ER에서 환자를 밀어내고 있었다.
안 된다고 해도.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었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이송팀 직원이 베드만 놓고 사라지기까지 했다.
거기서 그쳤다면 모를까.
간호사들도 난리였다.
“감 선생님! 빨리 오더 주세요!”
“선생님! 바이탈이 안 잡혀요!!”
“빨리요! 어떻게 할까요!”
오더만 기다리는 간호사.
당장 사람이 없었기에 다들 당황해했다.
한데, 뭐라 말할 틈도 없이.
기자들마저 몰려와 질문을 쏟아 냈다.
“지금 자율 파업을 하고 계신데요! 이렇게 방치하다가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환자는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과는 참의료지원단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쏟아지는 질문.
누군가 대답해야 했지만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자의 등장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기만 했다.
물론.
“여기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당장 나가세요! 뭐 해! 내보내!”
정신을 차리고 지시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잠깐만요!!”
“대답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아악! 선생님!”
특종에 목마른 기자들을 이겨 낼 도리가 없었다.
결국, 아수라판이 된 일반내과.
누군가 소리치려고 했다.
어차피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정식으로 환자를 인계받기 전까진, 응급실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원래 그런 거라고.
하지만 방송국 카메라마저 모습을 드러내자, 다들 기함해야 했다.
이러다 환자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뒤집어쓸 판이었다.
✻ ✻ ✻
결국, 내과 계열도 파업 중인 의사들을 불렀고.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파업했지만.
그들도 의사는 의사.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일하는 이들이었다.
돈?
돈을 좇았다면 진즉 개업했으리라.
괜히 ‘내 과’가 아니길 바란다는 농담이 있는 게 아닐 만큼 빡세기로 유명한 내과지 않던가.
결국.
“바로 생검 진행하고! 골수 흡인 검사 진행해!”
“넷!”
“소변 배양 검사에서 E.coli가 동정됐어? 뭐 해! 항생제 치료 시작해!”
“알겠습니다!”
“기저 질환으로 당뇨가 있습니다.”
“합병증에 유의하고! 용량 조절해!”
“1차 병원에서 Ceftezole이랑 netil-myscin을 투약받았다고 합니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빨리 히스토리 테이킹 진행해!”
“넷!”
빠르게 상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박영진한테 호출당한 진혁은 뜬금없는 소식에 놀라 하고 있었다.
✻ ✻ ✻
시스템을 중시한다던 부재일.
부원장이자 내과 계열에 강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
그 자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건 여전했다.
물론 그 시발점은 언론을 등에 업고 의사의 본분을 저버렸다는 이유 때문이었고.
그런 그가.
“자율 파업 철회를 조건으로 병원장님의 사퇴를 요구한다고요?”
오지호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뭐라도 얻어 내려는 속셈.
박영진이 혀를 차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 뭐, 반쯤은 복귀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명분이 필요하다 이거야. 그냥 빈손으로 회군할 수 없다 이거지. 뭐, 좋은 방법이 없겠나?”
“⋯⋯.”
“병원장님도 야심이 있으시긴 하지만, 환자를 우선시하시는 분이야. 이대로 사퇴하실 수도 있다 이 말이야.”
“⋯⋯.”
“뭐, 자네도 별수 없겠지.”
진혁이 계속 침묵하자, 박영진이 혀를 찼다.
사실 여전히 ER의 왕처럼 군림하는 그가, 고작 레지던트인 진혁에게 이런 일까지 의논할 이유는 없었다.
어른들의 세계.
주니어들이 낄 자리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트리플 보드까지 하겠다고 나선 이진혁.
주머니 속 사탕을 움켜쥔 마당에 이 정도는 알려 줄 수 있다고 여겼기에 한 말이었다.
자칫 도망가면 큰일이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한참 말이 없던 진혁이 입을 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음?”
“사퇴가 아니라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는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네. 이대로 병원장 자리가 궐위된다면 재선거를 해야 할 테고. 외부 세력의 입김이 작용할지도 모릅니다.”
“⋯⋯.”
“명분이야 충분하고. 협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됩니다.”
“흐음⋯⋯.”
얕은 침음성을 내뱉은 박영진이 책상을 쳤다.
토옥.
톡.
토옥.
다음 선거에 나오지 않는 조건.
부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다.
게다가.
“병원장님이 안 계시면 많은 게 바뀔 거야.”
부재일이 병원장이 된다면 어떤 보복이 있을지 몰랐다.
그건 이진혁에게도.
임상 계열임에도 외과 계열의 편을 들었던 자신에게도 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선거는 2년 뒤입니다.”
“⋯⋯.”
“원래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거고요.”
진혁이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죠.”
“선례? 누구? 누구 말인가?”
“이회창과 김대중. 둘 다 불출마를 번복하지 않았습니까?”
“으음?”
박영진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