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0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09화(209/388)
209화. 참의료지원단 (6)
영수회담의 주인공을 언급해서 놀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당장 박영진이 따져 물었다.
“김대중 대통령이야 그렇다고 쳐도, 이회창 총재는 그런 적이 없는 걸로 아는데?”
“⋯⋯제가 착각했습니다.”
“그래? 흐음.”
박영진의 눈매가 좁아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 자신을 훑는다.
위.
아래.
다시 위.
그 모습에.
진혁이 속으로 혀를 찼다.
미래에서 왔다는 게 이럴 땐 안 좋았다.
불출마를 번복하고 대선 3수에 도전한 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한데 그런 소릴 했으니.
의아할 만했다.
하지만.
“일단 불출마를 조건으로 협의해 보고. 뭐, 나중에 번복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자신의 주장을 반복했다.
합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할 테지만.
뭐, 어떠랴.
환자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 ✻ ✻
첫째 날보다 둘째 날이.
다시 셋째 날이 환자가 더 몰린 상황.
오지호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ER부터 로딩이 걸리고 있으니.
외과에서 사람을 파견했다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는 것이다.
물론.
“허허,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습니다.”
큰소리를 땅땅 쳤다.
불과 얼마 전에 연임한 상황.
2년 뒤에 있을 선거엔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바보가 아닌 이상 쉽게 믿지 못하는 부재일이였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나 오지호입니다. 오지호.”
“그래서 묻는 겁니다만.”
“크음, 큼.”
감정이 쌓일 대로 쌓인 둘.
너무도 노골적인 발언에 오지호가 헛기침했다.
허나 병원장다운 페르소나를 보여 줘야 할 때.
오지호가 얼굴을 굳혔다.
“뭐, 정 못 믿겠으면 운영회의에서 밝히겠습니다. 다음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만.”
“뭐, 모양새가 조금 그렇지요. 우리 부원장님이 환자를 볼모 삼아 협박한 느낌이지 않습니까.”
“협박이라니요!”
“그렇게까지 발끈할 건 또 뭡니까. 말이 그렇다 이 말입니다.”
오지호가 싱긋 웃었다.
이에 분노한 건 부재일.
허나 방법이 없었다.
다 같이 파업하는 건 마찬가지.
한데 외과 계열이 사표 투쟁을 한다는 이유로 내과 계열만 욕먹고 있었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물론 그 대상은 달랐다.
의료계에서 욕먹는 건 외과 계열.
국민한테 욕먹는 건 내과 계열.
서로 다른 상대가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부재일이 심술보를 씰룩쌜룩거리며 노여움을 참자, 오지호가 나섰다.
“요즘 녹음기가 참 다양하게 나온답니다.”
“뭐요?”
“이미 녹음하고 계신 거 아닙니까?”
“⋯⋯!”
“그거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부재일은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허. 뭐, 요즘 떡처럼 생긴 것도 나온답디다.”
이런 말을 했을 뿐이다.
✻ ✻ ✻
내과 계열까지 사표 투쟁에 합류하며 다시 안정을 찾는가 싶었지만.
환자는 끝없이 몰려왔고.
다들 악을 써야 했다.
그건 서울 본원도.
지방에 있는 분원도 마찬가지였다.
본원 출신에겐 유배지나 다름없는 분원이었지만, 지방의 거점 병원인 분원.
본원에서 지원 인력을 보내왔다지만, 다들 학을 뗄 정도로 힘들어했다.
진짜 끝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당장.
“야야! 어떻게 좀 해 봐!”
“왜 이렇게 우리만 고생인데!”
“다른 데는 가입 안 한대!?”
뭐,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참의료지원단.
의료계의 공격이 아신 병원에게만 집중되는 걸 막기 위해 오지호가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확산이 잘 안 되고 있었다.
이 또한 원 역사와 달라진 일.
영수회담에서 의료계의 편을 들어 주며 약사들의 반발을 끌어냈던 일이 무산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진혁은 환자 진료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초음파 좀 찍어 보겠습니다.”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정신을 차리고 프로브를 놀린다.
앉았다가 일어서면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환자.
나이도 나이였지만,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곧, 프로브를 내려놓은 진혁이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딸깍.
“선생님, 저 진혁입니다.”
[왓츠 업~! 맨~!]“79세 남환, 흉부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고.”
[오우 쉣! 본론만! 본론만 말해!]“네, 랭곤 선생님!”
[웁쓰. 너까지 진짜! 한 교수님이 내 이름을 잊어먹은 건 아닌지 의심된다니까! 오케이?]최두일이 한탄했다.
한동수로 인해 퍼진 별명.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었다.
이에 상관치 않고 진혁이 말을 이어 갔다.
“Tric uspid valve regurgitation(TR, 삼천판 역류증)으로 보입니다.”
[그래?]“네, A4C(Apical 4 chamber, 심첨 4방 단면도)에서 우심방과 좌심방이 확대된 게 보이고. TR Vmax는 4.53m/s로 확인됩니다.”
[RVSP(우심실 수축기압)는?]“23.55mmHg입니다.”
[CV(심장내과)로 보내!]“랭곤 선생님!”
진혁이 빼액 소리를 내지르자, 최두일이 조크라며 웃어 보였다.
힘들어 죽겠는데,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진혁이 서둘러 이송팀을 향해 소리쳤다.
“CS로 옮기세요!”
✻ ✻ ✻
진혁과 전화를 끊은 최두일이 씨익 웃었다.
사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려보내라고 했어도 됐다.
그만큼 이진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괴물인지 말이다.
폐나 식도 쪽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심장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게 웃고 있을 때.
“최 교수님! 이럴 때가 아니에요! 이번엔 8번 수술실이에요!”
간호사가 그를 재촉했다.
방금 수술실에서 나왔거늘.
다시 들어가라는 말.
최두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우, 쉣. 이제 못해요, 못해. 아이 캔 두잇!”
“할 수 있다고요?”
“아니, 못 한다고요! Can이랑 Can’t랑 발음 똑같은 거 모르세요? 오케이?”
“아,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한 교수님 말씀 못 들으셨어요! 죽더라도 수술실에서 죽으라고 하셨잖아요!”
“왓 더 퍽!”
최두일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솔직히 체력이 달려 죽을 지경이었다.
잠도 못 자고 벌써 며칠째란 말인가.
최두일이 조금이라도 뺑끼를 부리던 그때.
“어이! 랭곤! 뭐 해!”
한동수가 나타나 소리쳤다.
그 모습에.
“예, 예. 갑니다요!”
최두일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미꾸라지는 사라지고.
거꾸로 CS에 물들어 버린 최두일이었다.
물론.
“오우 쉣!”
영어를 섞어 쓰는 거로 정체성을 지키고 있었다.
✻ ✻ ✻
“끄으으윽! 선생님! 선생님!!”
복부를 붙잡은 채 비명을 내지르는 환자.
근처에 있던 진혁이 달려갔다.
뭐라 물을 틈도 없이, 김지연이 말했다.
“인턴 쌤이 체크한 환자인데요. AUR 같아요.”
“AUR(Acute urinary retention, 급성 요폐)? 근데 왜 조치 안 했어요?”
“그게⋯⋯.”
“폴리부터 삽입하게 카테터 좀 주세요!”
“네!”
김지연이 쌩하고 달려가자, 진혁이 문진과 시진, 촉진을 다시 했다.
3일 전부터 불편감을 느꼈다는 환자.
하루 전부턴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육안으로 보기에도 방광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조금만 눌러도 비명을 내질렀다.
곧바로 시작된 초음파 검사.
프로브를 놀리며 화면을 확인했다.
방광이 풍선처럼 늘어나 배꼽을 침범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전립선이 커져 요도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있었으니.
소변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으아아아악!”
환자가 앓는 소리를 냈고.
진혁이 그를 달랬다.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
“네네! 으으으으!”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
진혁의 고개가 휙휙 돌아갔다.
아무리 인턴이라 한들.
폴리도 넣지 않다니.
뭐라 한 소리 하려 했다.
하지만.
“선생님! 여기 카테터요!”
김지연이 달려와 시야를 가린다.
따져 물을 틈도 없이 빠르게 커튼을 친 다음 환자에게 경고했다.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지, 지금 죽을 거 같습니다. 제발요. 빨리요.”
“잠시만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젤을 바른 뒤 그대로 삽관.
“으아아악!!”
비명과 함께 오줌이 쏟아졌다.
소변 백을 메우는 오줌을 보며,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
그나마 다행인 건.
‘혈뇨가 보이지 않아.’
“혹시 드시는 약이 있습니까?”
“으으. 혈압약을 먹고 있습니다.”
“무슨 약인데요.”
“뭐라더라. 자트뭐시기랑, 베지케인가 였는데⋯⋯. 지금도 너무 얼얼한데요.”
한결 편해진 목소리.
진혁이 빠르게 정정했다.
“자트랄이랑 베지케어 같은데요. 요폐를 유발할 수도 있어서요. 다른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아⋯⋯.”
“원내 약국에서 접수하신 다음에 약 받으셔서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에? 아이고. 저 조금 전까지 죽을 뻔했습니다.”
“소변 백은 때가 되면 갈아 주시면 됩니다. 김 간호사님! 여기 안내 좀 부탁드려요!”
진혁이 빠르게 자리를 비웠다.
환자가 밀려오는 상황.
평소처럼 할 시간이 없었다.
집에서 소변 백을 갈아끼는 거야 혼자서도 할 수 있지 않던가.
곧바로 다른 환자 앞에 선 진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봤던 환자.
그리고 지금 눈앞에 환자.
둘 다 김무성이라는 인턴이 초진을 봤고.
마무리가 안 돼 있었다.
‘김무성? 이 자식이 진짜.’
뒷마무리가 안 돼 있기에 혀를 찬 진혁이 주변을 훑었다.
매달 바뀌는 인턴.
누가 김무성인지 알 수 없었고.
결국, 문진과 시진을 다시 해야 했다.
잠시 후.
“발을 들어 보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다음 환자의 발과 무릎을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린다.
단순한 행동.
환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전형적인 Heel drop sign이었다.
발끝으로 서 있다가 뒤꿈치를 내렸을 때 복통이 발현되는 현상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음⋯⋯. 허리에 손을 대기만 해도 아프다고 하셨죠?”
“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요.”
“잠시만요.”
이번에도 발을 들어 올린다.
하지만 바로 내리지 않는다.
무릎의 바깥쪽에 저항을 줘 대퇴부의 회전을 유도하면서 발을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또.
“아악!”
환자가 고통을 호소했다.
Obturator sign.
골반강 내 염증이 있는 게 분명했다.
충수염이 의심됐기에 진혁의 촉진은 계속됐다.
이번엔 좌측 하복부를 밑에서 위로 누른다.
쓸어 담듯이.
그러자.
“아앗!!”
“어디가 아프신 거죠?”
“여기, 여기요.”
환자가 우측 하복부를 가리켰다.
미간을 찌푸린 진혁의 손이 우측 하복부가 아니라 우측 대퇴부를 촉지했다.
그러자 반응이 똑같았다.
이번엔 환자의 자세를 바꿨다.
좌측와위 자세.
옆을 보게 한 다음 촉진한다.
“으윽!”
또다시 통증을 호소했다.
이것으로 끝.
진혁이 빠르게 설명했다.
“급성충수염 같은데요. 일단 CT를 찍어 보시죠. 수술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분한테 말씀하시고요.”
“네?”
“어서요!”
“알겠습니다!”
환자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진혁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CT실로 옮길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곧.
‘잡았다 요놈!’
일을 대충 마무리한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 ✻ ✻
인턴인 김무성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유명한 이진혁이 손가락을 까닥거렸기 때문이다.
‘싸움닭이라고 했지⋯⋯. 아니. 그게 아니야. 꼰대라고 했는데⋯⋯.’
환자 앞에 가차 없기로 소문난 천재 의사.
하필 평범하고도 평범한 그 자신과 대면하게 생겼다.
이진혁이 뭐라 말하려던 찰나.
김무성이 선수 쳤다.
“선생님!! 저도 외과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으음?”
“아⋯⋯. 사실 CS에 가고 싶습니다!!”
순간 진혁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부터 뺑끼를 부리는 게.
장혁준 같지 않던가.
✻ ✻ ✻
김무성을 잔뜩 혼내 준 다음.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끝난 하루.
당직실로 돌아와 장혁준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자.
“와! 리틀 장혁준이라니요! 진짜 2호 동지! 이러깁니까!”
2층 침대에 있던 장혁준이 날뛰었다.
그뿐이면 좋았겠지만.
“2호 동지 별명이 뭔지 알아요?”
“뭔데요?”
“꼰대라고요, 꼰대. 그것도 젊은 꼰대!”
“으음?”
그 자신의 별명조차 들을 수 있었고.
진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거렸다.
젊은 꼰대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으으. 쉬는 날에도 술기 연습하자고 하지. 맨날 환자만 챙겨야 한다고 말하지. 술 먹자고 해도 안 먹지.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만 하지. 토요일에 등산 가자고 하는 교수님보다 더 심하다고요!”
장혁준이 쐐기를 박아 버렸다.
결국, 참다못한 진혁이 최재성을 불렀다.
“최 선생! 뭐라 말 좀 해 봐요.”
“그,,,게,,,”
“누구 말이 맞는 거예요? 진짜 내 별명이 꼰대예요?”
“네,,,,,”
“하⋯⋯.”
진혁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꼰대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아, 원래 꼰대는 그 자신이 꼰대라는 걸 모른다고 했나.
✻ ✻ ✻
그리고 그날 새벽.
뜬금없이 최두일이 그 자신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