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1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19화(219/388)
219화. 참의료지원단 (16)
병원장실.
서관 최상층에 있어 함부로 오갈 수 없는 곳이다.
허나 진혁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12층 버튼을 눌렀고.
넋이 나간 김무성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내린 12층.
비서실 앞에서 김무성이 말을 더듬거렸다.
“저, 저는 굳이 갈 필요가⋯⋯.”
“아니, 아니지.”
“왜, 왜요.”
“네가 외과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가서 인사도 드리고 해야지. 병원장님도 기특하게 생각하실 거야.”
“그, 그래도요.”
김무성이 연신 고개를 젓자, 진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겪은 김무성이라면.
“얍얍! 제가 바로 아신대 39기! 김무성입니닷!”
뭐, 이런 말을 해야 했다.
어깨도 쭉 펴고.
배도 쭈우우욱 내밀고.
힘을 팍 준 다음.
내가 바로 차관 아들입니다!
뭐 이런 말도 해야 하는 것이다.
허나 공치사할 자리에 초대했건만.
저런 반응이라니.
이상한 걸 넘어 수상했다.
“왜? 너 혹시 거짓말을⋯⋯.”
“아, 아뇨. 그건 아닌데요.”
“아버님이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데?”
“그, 그게⋯⋯.”
김무성이 한참 설명을 늘어놓자.
진혁이 표정을 구겼다.
그도 그럴 게.
사진을 다시 보냈단다.
바리깡과 치즈.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본 김무성의 부친.
그러니까 보건복지부 차관은 뒤집어 졌단다.
안 그래도 다시 파업하겠다고 흉흉한 협박과 겁박이 계속되는 이때.
진혁이 입장을 바꾸거나.
정부 정책을 비난하면 큰일이기 때문.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진혁이 씨익 웃었다.
“무성아. 그래도 고맙다.”
“아⋯⋯.”
“진짜 고마워.”
“아니, 이러실 필요는⋯⋯.”
“아니야. 진짜 내가 모든 걸 다 전수해 줄게. 잘 안돼도 상관없어. 원래 물꼬를 트는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아니, 아니라고요.”
“아니, 괜찮다니까! 원래 물꼬를 트는 게 제일 중요한 거라고!”
김무성이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진혁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성적도 그렇고.
본인 희망도 그렇고.
전부 외과를 가리키는 상황.
제대로 사람을 만들어 놔야 했다.
그게 선배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 ✻ ✻
오지호는 연신 허허거렸다.
수술 수가의 정상화.
그리고 이진혁의 일본 이적설.
결국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잘 끝났다.
물론 그 또한 알고 있었다.
파업이 끝난 건 아니라고.
불씨가 꺼지진 않았다고.
정부와 약협.
의협이 다시 대화하고 있었지만.
공전하고 있었으니.
모를 수 없었다.
허나, 좋은 건 좋은 일.
오지호가 당장 김무성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허허! 그래. 춘부장께선 뭐라고 하시나?”
“구체적인 건 협의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그으으래?”
“넹!”
순간 오지호의 눈이 커졌다.
김무성은 평소 하던 대로 대답한 거였지만.
오지호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네’도 아니고 ‘넹’이라니.
병원장 직함을 단 후로 처음 들어 보는 대답이었다.
그 모습에 진혁이 옆구리를 쳤고.
김무성이 뒤늦게 제대로 된 대답을 했다.
하지만.
“크음, 큼.”
오지호의 얼굴이 붉어진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당황했기 때문.
곧, 정신을 차린 오지호가 말을 이어 갔다.
“그래. 뭐, 실무적인 거야 TF를 구성해서 진행하면 되고. 얘기를 들어 보니까, 외과를 희망한다지?”
“넵!”
“왜 외과에 가고 싶지? 환자를 살리고 싶거나. 수술이 하고 싶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닙니다!”
“그래? 뭐, 그럼, 평소에 우리 이진혁 선생을 보면서 로망을 품었다거나 그랬나?”
“아닙니다!”
“으음, 그래? 그럼 『외과의사 24시』를 보면서 꿈이라도⋯⋯.”
“그, 그게 아니라⋯⋯.”
“허허, 편하게 말해. 편하게.”
“성적이 안 됩니다!”
“⋯⋯!”
너무도 솔직한 대답.
순간 오지호의 표정이 굳었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기 때문.
허나 혼낼 수도 없는 일.
원래 요즘 X세대는 그렇다는 말을 되뇌며, 오지호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 이게 참.”
“⋯⋯.”
“원래 이런 건 내가 나섰어야 했는데. 일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요, 정신이. 뭐, 살림도 챙겨야지. 일도 해야지. 회의도 많지. 뭐, 아무튼 말이야.”
“⋯⋯.”
“크음, 큼. 고맙네. 고마워.”
오지호가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를 45도로 돌리며 김무성의 손을 잡았다.
그만큼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었다.
망해 가는 외과.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고 있었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요즘같이 실감 나는 때도 없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공공수가제가 시행되면서 적자는커녕.
외과도 흑자과가 됐고.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게 됐다.
그러니 사람도 조금씩 더 들어올 테고.
업무 강도도 낮아질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 더해 PA 간호사 합법화라니.
암암리에 쓰고 있는 간호사들을 대거 충원한다면 이젠 고생도 끝일 터였다.
물론 그 자신 또한 보건복지부에 아는 사람이 많았다.
허나 의약분업으로 흉흉한 작금의 사태.
대놓고 요구할 순 없었다.
한데 비공식 루트로.
그러니까 외과 계열마저 파업에 동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정부한테 건의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니 당장 이런 말이 나왔다.
“그래, 뭐 힘든 건 없고? 내가 말이야. 크음, 큼. 힘닿는 데까지 해 줄 수 있어. 말만 해! 크음, 큼.”
“정, 정말입니까?”
“그럼! 허허.”
“진짜죠?”
“내가 이래 봬도 병원장이야!”
“진짜⋯⋯.”
“허어! 진짜라니까!”
“사람이 힘듭니다!”
대답과 함께 김무성의 고개가 휙 하니 돌아갔다.
그 대상은 이진혁.
오지호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진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 ✻ ✻
김무성은 몰랐다.
오지호한테 이진혁의 존재가 얼마나 값진지.
물론 양아들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러니까 너무 빡세게 가르친다?”
“넵!”
“흐음. 지금 한창 배워야 할 때야. 배워야 할 때.”
“저⋯⋯.”
“허어! 춘부장께서도 사람 만들어 달라고 했다면서! 아니 그런가?”
“맞습니다.”
진혁이 옆에서 맞장구를 치자, 김무성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순간의 사탕발림.
그러니까 원하는 건 뭐든지 해 줄 것처럼 말하는 오지호 때문에 당사자인 이진혁 앞에서 고자질한 셈이 돼 버렸다.
물론 이진혁이 때리진 않았다.
그저 논문을 읽어 오라고 시키고.
진짜 읽었는지 물어보고.
또 물어볼 뿐이었다.
대답?
대답을 못 해도 혼내진 않았다.
그저 다른 숙제를 내 주고.
같이 다니며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니 그가 힘들어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건 계속된 잔소리.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한 액팅이었다.
천재도 아니고.
둔재인 자신.
천재 옆에 있다 보니.
답답해 숨도 못 쉴 정도다.
한데, 저런 반응을 보이는 병원장이라니.
당장 후회가 앞섰고.
어떤 숙제를 내줄지 몰라 걱정이 앞섰다.
어느덧 자신을 내버려 두고 PA 간호사 합법화를 논하는 이진혁과 오지호를 보며.
“끄으으으응.”
김무성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게 다 장혁준 때문이었다.
✻ ✻ ✻
김무성이 앓는 소리를 내며.
구석에서 처박혀 있을 때.
우용만이 들어왔다.
사실 선객이 있으면 다른 시간에 찾아오는 게 도리.
비서가 말려 봤지만, 살아 있는 황금 거위인 이진혁.
그리고 인질이나 다름없는 김무성이 있다는 소식에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PA 간호사 합법화 소식을 듣지 못한 우용만이 당장 결재판을 꺼내 들었다.
“엄마 시리즈를 정식으로 런칭하자는 기획안입니다.”
“으음?”
“전공의, 수련의들을 위한 책을 출판하자는 기획서입니다.”
“아아, 그래요. 어디 한번 봅시다.”
빠르게 기획안을 넘기는 오지호.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너무 의사답지 않은 제목이었다.
품위도 없었고.
볼품도 없었다.
“아니, 『응급실, 이젠 두렵지 않다』 뭐, 이런 제목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 써야 하는 겁니까?”
“그런 제목은 별로입니다. 별로.”
“해서요.”
“『엄마, 응급실에서 3교대 할래요!』 이런 제목이야말로 괜찮지 않겠습니까.”
“허허.”
“ER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만, 다들 교대근무가 강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용만이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자, 오지호가 다른 책 제목을 확인했다.
저마다 인턴.
그리고 레지던트의 니즈가 담겨 있었다.
성형외과를 희망하는 이들을 위해.
『엄마, 성형외과에서 건물 올릴게요!』라든지.
피부과에 가는 걸 희망할 이들에겐.
『엄마, 레이저 시술로 효도할게요!』라든지.
안과를 희망하는 이들에겐.
『엄마, 라섹 수술로 부자 될게요!』라든지.
너무도 자극적이고.
저렴한 제목이 줄지어 쓰여 있었고.
우용만이 이진혁 또한 봤던 제목이라는 말을 덧붙이자, 오지호가 혀를 끌끌 찼다.
“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
“이건 좀 아닙니다만.”
“병원장님. 아직 살림이 빠듯합니다. 그러니 매출 중심으로 제목을 지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게 참.”
오지호가 다시 혀를 차자, 우용만이 엄마 시리즈의 창시자인 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선생.”
“예, 과장님.”
“얼마를 벌었지? 10억, 20억. 말이 많던데 말이야.”
“아. 그게⋯⋯.”
“허어, 우리끼리 비밀로 할 것도 없지 않나.”
“인세는 얼마 안 되는데 매출만 따지면 10억이 조금 넘습니다.”
“⋯⋯!”
순간 오지호의 눈이 커지고.
우용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출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매출이 10억이 넘는다니.
작가한테 들어오는 인세야 얼마 안 되겠지만, 직접 출판하면 달라지는 문제였다.
게다가.
“이게 미국이랑 유럽에도 같이 출판하는 바람에⋯⋯.”
진혁이 쑥스럽다는 듯 엉뚱한 말을 해 오자, 오지호가 벌떡 일어났다.
미국에도 번역 출판했다는 말.
처음 들어 봤다.
그 모습에.
“미국에선 흉부외과 의사 연봉이 제일 높아서 책이 잘 팔렸습니다.”
진혁이 부끄러운 듯 눈을 감았다.
✻ ✻ ✻
PA 간호사 합법화를 위한 TF의 발족.
출판사업부 또한 만들어졌다.
타겟은 한국과 유럽.
그리고 미국 시장이었다.
문제는.
“킥킥.”
병원장실을 나온 순간부터 김무성이 자신을 볼 때마다 저렇게 웃는다는 거였다.
그 모습에.
“스읍! 야, 무성아!”
“넹!”
“왜 웃어!”
“제목이 너무 웃겨서요!”
“아니, 이게 내가 처음 쓴 제목이 아니라⋯⋯.”
“네엡, 네엡. 알고 있습니다용.”
“하⋯⋯.”
다시 킥킥거리며 웃는 김무성.
진혁이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선.
“사실 이거 장 선생이 쓴 제목이야.”
“헙!”
“⋯⋯? 왜? 왜 이렇게 놀라?”
“아, 아뇨. 그게 아니라요.”
“⋯⋯?”
“아닙니다.”
장혁준 때문에 일이 전부 꼬였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김무성이 이번엔 서글프게 웃었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집.
불이 켜져 있었기에, 진혁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엄마~! 저 왔어요!”
“⋯⋯.”
“엄마!?”
진혁이 다시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건 걱정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 자신으로 인해 한동안 시끄러웠고.
너무 바빠 집에 들어오질 못했다.
그냥 당직실에서 잔 것이다.
하지만.
“어어, 진혁이 왔어?”
자신을 반겨야 할 어머니가 어색한 표정을 짓자,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
저 표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뭔가 떨떠름해 하고.
미안한 기색이 한가득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어어, 아니야.”
“으음?”
“얼른 와. 밥 식겠다.”
“네⋯⋯.”
서둘러 부엌으로 가는 어머니.
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이런 어머니가 아니었다.
오히려 망할 놈의 외과에 왜 갔냐고 구박하거나,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해야 했다.
잠시 후.
샤워를 끝낸 진혁이 식탁 앞에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진수성찬.
그러니까 풍성마트에서 사 온 반찬이 식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장조림부터 장아찌.
그리고 순두부찌개.
계란찜까지.
그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하지만.
“진혁아⋯⋯.”
어머니가 또다시 말을 절자, 숟가락을 들었던 진혁의 가슴이 철렁거렸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간신히 설득해 건강 검진을 받게 했지만, 혹시 증상이 일찍 발현된 걸 수도 있었다.
영수회담조차 취소됐으니.
걱정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허나.
“천만 원 기부한다고 했잖아.”
“넵.”
“근데 어쩌지⋯⋯. 어, 엄마가 돈이 없어.”
“으잉?”
엉뚱한 얘기를 들어야 했다.
『엄마 시리즈』로 번 돈은 전부 부모님께 드렸건만.
야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