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2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23화(223/388)
223화. 참의료지원단 (20)
자궁외임신.
수정란이 자궁 몸통의 내강에 착상되지 않고.
다른 곳에 착상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임신 소식을 듣고.
잔뜩 상기된 채 자신을 바라보는 보호자와 환자.
이를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하지만 흰 가운을 입은 이상.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자궁외임신 같습니다.”
“아…….”
“산부인과 선생님을 바로 콜하겠습니다.”
진혁이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건 허망한 표정을 짓는 30대 부부를 향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부인과에서 의사가 내려왔고.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자궁 내 수태낭이 없는 건 너무 눈에 띄니까.
졸지에 응급 수술을 하게 된 상황.
20대 여자 환자와 달리 아무렇지도 않게 생리 기간이 불규칙하다고 말했던 환자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보호자 또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물론 그 모습에 진혁과 김무성은 말없이 자리를 피할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김무성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잘한 거 맞죠?”
“응. 잘했어.”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하죠?”
“……응급 수술을 안 했으면 오히려 위험할 뻔했어. 자궁외임신은 그냥 두면 안 되는 거라고.”
“그건 알죠. 그래도 찝찝해서요.”
묘하게 찝찝한 기분.
어떤 느낌인지 알기에, 진혁이 말없이 김무성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아주 조금씩.
그러니까 아주 조금씩 그도 성장하고 있었고.
가르치는 보람이라는 게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여자 환자의 경우 임신 가능성을 꼭 확인해야 한다는 격언.
이를 그대로 실천한 김무성이 아니던가.
문제는.
“혹시 임신하신 건…….”
여자 환자만 보면 계속 임신 가능성을 묻는다는 거.
한번 성공했다고 똑같은 질문만 계속 던지는 그를 보며 진혁이 소리쳤다.
“무성아!! 야! 김무성!”
* * *
다시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김무성이 있던 베드에서 큰 소리가 나자, 진혁의 고개가 돌아갔다.
다른 환자를 살피던 상황.
그건 반사적인 움직임이었다.
한데.
“뭐! 혹시 임신한 거 아니냐고! 이 새끼야! 우리 애가 몇 살인 줄 알아!”
“너! 임마! 너 인턴이지!”
“감히 우리 애한테 이딴 걸 물어봐!”
김무성의 멱살까지 잡는 중년 사내.
그리고 교복을 입은 채 누워 있는 환자.
어떤 상황인지 짐작된 진혁이 혀를 찼다.
짧은 탄식도 잠시.
진혁이 달려갔다.
“보호자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넌 또 뭐야! 어! 이 자식이 우리 애한테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임신 여부를 물어본 게 아닙니까!”
“뭐! 그래서 잘했다는 거야! 어!”
보호자가 김무성의 멱살을 풀지 않자, 진혁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일단 놓으시죠.”
“뭐라고!”
“놓고 말씀하시라고요!”
“와. 이 자식이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나 부들부들 몸을 떠는 보호자.
진혁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X-ray나 CT를 찍기 전에 임신 여부를 묻게 돼 있습니다.”
“뭐!”
“혹시 몰라서 확인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화내실 게 아니라고요!”
사실 방사선 노출 때문에 물어본 걸 수도 있었고.
임신 때문에 실신했던 환자 때문에 물어본 걸 수도 있었다.
자궁외임신이라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임프레션을 성공적으로 한 경험일 테니까.
강하게 말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납득한 걸까.
보호자가 손을 풀자, 진혁이 김무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잔뜩 상기된 얼굴.
억울하다는 표정이 그득했다.
그를 달랠 틈도 없이.
보호자한테 진혁이 소리쳤다.
“일단 사과부터 하세요!”
“뭐! 사과하라고!?”
“그럼 멱살까지 잡고 그냥 지나치실 생각이셨습니까!”
진혁이 언성을 높이자, 김무성이 나섰다.
“전 괜찮습니다.”
“가만있어.”
“그래도.”
“가만있으래도!”
김무성을 단속한 진혁의 고개가 다시 보호자를 향했다.
“다들 파업하는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일하고 있습니다! 사과부터 하세요!”
* * *
원래 별의별 일이 다 있는 응급실.
의사 뺨을 때리거나.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냐며 고성을 내지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래선 안 됐다.
여기 있는 이들은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었다.
보호자가 마지못해 사과하자.
진혁이 곧바로 차트를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환자는 실신으로 내원했고.
그래서 물어본 게 분명했다.
아니, 당연히 물어봐야 했다.
한두 번 검사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방사선 노출에 민감한 이들이 많았으니까.
진혁이 환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근에 실신을 세 번 넘게 했는데요.”
“네, 선생님.”
“몸무게가 41kg인데. 원래 이렇게 말랐나요?”
“아무래도 곧 수능이라서요.”
“다른 증상은요?”
“아까 말씀드린 거랑 똑같아요. 구토도 심하고. 배도 아프고. 기운도 없고. 걷기도 힘들고요.”
“제대로 못 먹은 진 얼마나 됐어요?”
“하루에 한 끼도 못 먹었어요.”
스트레스성 위염.
그리고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빈혈까지.
여러 병명이 스쳐 지나갔지만, 루틴 검사를 해야 했다.
누군간 응급실에서 돈벌이에 혈안돼 X-ray와 피 검사를 하는 게 아니냐고 할 테지만.
병명을 밝혀내기 위한 최소한의 검사였다.
그렇게 끝난 검사.
다시 베드에 몸을 뉘이던 여고생이 몸을 휘청이자,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 말하려던 그때.
“우리 애가 고등학생입니다.”
“네?”
“그리고 여자애고요.”
“……!”
“신경 좀 써 주세요.”
보호자가 여고생인 걸 강조하자, 진혁이 빠르게 김지연을 불렀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보호자.
굳이 자극할 필요도 없었고.
일단 수액부터 놔야 했다.
* * *
진혁이 곧바로 김무성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장혁준이 케어하는 게 보이자, 고개를 돌렸다.
김무성만 살피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탓.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김지연의 호출에 진혁이 여고생 환자를 찾았다.
“좀 어때요?”
“괜찮아진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음.”
“근데 배는 아직 아파요.”
“그래요? 잠깐 촉진 좀 할게요.”
진혁이 환자한테 양해를 구한 뒤 촉진을 시도했다.
먼저 상복부.
다시 배꼽 근처.
그리고 하복부까지.
구역을 9개로 나눠 손으로 누르며 압통과 반발통을 확인했다.
환자가 침음성을 토한 부분은 우측 하복부.
순간 떠오르는 병명만 십수 개가 넘었다.
게실염, 과민성대장증후군, 췌장염, 방광염, 충수염, 담석증, 담낭염까지.
이번엔 진혁이 청진을 시작했다.
사실 순서가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보통 문진을 먼저 하고.
시진한 다음 타진하고.
청진과 촉진을 한다.
한데 처음부터 그 자신이 봤던 환자도 아니었고.
보호자의 난동 또한 있었기에.
꼬일 수밖에 없었다.
곧, 심음을 듣던 진혁이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이른바 말달림 율동(Summation gallop)이 들린 탓이다.
* * *
환자가 증상을 호소했던 것과 다르게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확인된 상황.
이런 일이 드문 건 아니었다.
아니 빈번했다.
허나 보호자의 난동에 빨리 캐치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고.
진혁이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청진판을 환자의 가슴에 갖다 댔다.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두쿠덩.
말이 빠르게 달리면서 바닥을 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린다.
판막에 이상이 있거나.
심장 혈류에 문제가 있을 때 생기는 현상.
진혁이 청진기를 내려놓고 빠르게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PACS 시스템을 통해 X-ray 영상을 확인했다.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허나 추가로 검사해 보면 알 터.
다시 베드로 돌아온 진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호자한테 말했다.
“일단 심전도를 찍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심전도요?”
“네. 잠깐이면 됩니다. 여자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잠시 후.
이태희가 달려와 EKG 전극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인한 심전도.
저전위(Low voltage) 현상이 확인됐다.
심전도는 P파와 QRS파.
그리고 T파로 나뉘는데.
QRS파의 R파가 정상 높이보다 훨씬 낮게 형성되는 거다.
반대로 ST분절은 광범위하게 상승해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진혁의 표정이 굳자, 보호자가 물었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심장 초음파를 찍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네?”
“아직 정확한 건 모릅니다. 이 선생! 소노(초음파) 찍어 보자.”
“어, 어.”
잠시 후.
이태희가 진혁을 대신해 프로브를 손에 쥐고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 * *
보호자가 예민하게 굴기도 했고.
여고생이었기에 커튼을 친 상태로 검사하는 상황.
진혁이 한 걸음 물러서서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 김무성이 다가왔다.
궁금해서 온 게 분명했기에.
기특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김무성이 먼저 속삭였다.
“쌤.”
“왜.”
“멋있었습니다.”
“지금 농담이 나오냐.”
“크윽. 그래도요.”
“괜찮지?”
“그럼요. 사과도 받았는데요.”
살짝 코끝을 긁는 김무성을 보며 진혁이 그의 어깨를 쳤다.
사고뭉치나 다름없었지만.
책임지기로 한 이상.
끝까지 데려갈 생각.
그렇게 말없이 김무성을 격려할 때.
검사를 끝낸 이태희가 커튼 밖으로 나왔다.
“이 선생이 직접 확인할 거지?”
“어, 내가 직접 보려고.”
“아후, 난 봐도 모르겠던데.”
“일단 찍긴 찍었지?”
“어. 근데 되겠어? 라이브로 보는 것도 아니고. 돌려 보는 거잖아.”
“괜찮아.”
스냅샷으로 찍은 영상만 볼 수 있기에 하는 말.
진혁이 개의치 않고 휴대용 초음파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곧, 버튼을 누를 때마다 사진이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운동성이 저하돼 있는데?”
“그게 보여?”
“여기 봐 봐. 수축이랑 이완이 매끄럽지 않잖아.”
“실시간도 아니고. 난 안 보이는데.”
이태희와 김무성이 눈을 크게 떴지만,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진혁이 다른 영상을 확인했다.
“심실 중격 두께는 14mm인데…….”
“어.”
“좌심실 후벽 두께가 16mm로 비대한데.”
“음.”
“휘도 상승도 있고.”
“그리고.”
“심낭액이 저류돼 있는데. 잠깐.”
“…….”
“탐폰(심낭 압전)은 아닌데. 그래도 12mm 정도 저류돼 있고. 좌심실 구출률(왼쪽 심실에서 펌핑되는 혈액 비율)도 41%로 떨어져 있어.”
심근염이 의심되는 상황.
당장 입원해야 했기에, 보호자를 향해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 * *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기에 보호자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왜 심장이…….”
“원래 심근염이 감기나 위장병 같은 증상으로도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 그래요?”
“네. 일단 심장내과 쪽으로 가셔야 하고. 선생님이 내려오실 거니까 입원 수속 밟으시면 됩니다.”
“수술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CT도 찍어 봐야 하고. 심내막 심근 생검부터 해야 할 게 많습니다.”
더 확인해야 한다는 말.
진혁이 곧바로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저……. 죄송합니다.”
보호자가 계면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진혁이 뒤에 서 있던 김무성을 앞세웠다.
“이 친구한테 하십쇼.”
“아…….”
“아깐 제대로 사과하신 게 아닌 거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아, 넵.”
뻘쭘한 상황.
김무성이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고.
보호자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진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쉴 때.
내려오라는 심장내과가 아니라 엉뚱하게 CS에서 연락이 왔다.
[진혁아! 한동수 교수님이 쓰러지셨어!]* * *
다다다다.
다다다다.
진혁이 정신없이 달렸다.
목적지는 CS.
자신의 고향 같은 흉부외과다.
사실 한동수가 제 기억에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흉부외과 학회에서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다.
초집도의 상시화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가 쫓겨난 거 같다고.
해서 어떻게든 인력을 충원했고.
지금껏 잘 버텨 왔다고 여겼다.
한데 쓰러졌다니.
당장 달려가서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한동수.
그는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