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2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29화(229/388)
229화. 참의료지원단 (26)
인슐린종의 위치 파악.
전이 여부 확인.
비장의 유착 정도.
여러 이유로, 숱하게 검사했다.
CT 촬영.
초음파.
혈관 조영.
혈액 검사까지.
뭐, 일반인도 아니고.
한동수였으니.
말 다 했다.
한데.
췌장 미부에 있어야 할 종양.
그러니까 유착이 심해 비장까지 들어내야 할 종양 외에 또 다른 종괴가 보였다.
그 크기는 1cm 이하.
크기가 작아 놓친 게 분명했다.
10%, 혹은 30%까지 놓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니.
특별한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 개나……. 흐음.”
“아래쪽에도 있습니다.”
“그렇군.”
“…….”
“잠깐, 여기도 있어.”
“아…….”
진혁이 탄식을 내뱉었다.
췌장 두부 표면에 밀착된 종괴.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미부만의 문제라고 생각했건만.
아닌 것이다.
당장 진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췌장 수술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다시 고개를 털어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다.
그 자신은 베테랑 의사.
친분과 감정을 배제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한동수와 동기인 김희재 또한 이를 악물고 있으니.
같은 생각인 게 분명했다.
“유 선생. 비켜 봐.”
“넵.”
세컨 어시를 밀어낸 김희재가 텔레스코프를 잡았다.
직접 카메라를 움직여 확인할 생각.
말로 지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다시 움직이는 카메라.
진혁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래스퍼로 조직을 밀고.
때로는 당기며 집도의를 도왔다.
그렇게 췌장 두부에 있는 종괴를 확인하고.
그 표면을 촬영할 때였다.
“디아족사이드는 투약한 지 얼마나 됐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래?”
“네. 스트렙토조신 또한 투약 중이고. 소마토스타틴은 3일 전부터 슈팅했습니다.”
“흐음.”
집도의가 얕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종괴의 크기를 줄이는 약물을 제대로 투약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카메라 다시 잡아.”
“넷.”
다시 자리로 복귀한 김희재.
그가 복강경 클린치로 종괴를 잡았다. 그러곤 살짝 힘을 준다.
거짓말 같지만, 단단함을 가늠하는 거다.
다시 꽈아악.
다시 한번 꽈악.
손으로 직접 촉진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김희재가 말했다.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아.”
“그럼 일단 절제를…….”
“나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그보다, 가스트린 수치는 얼마였지?”
“1,250pg/mL이었습니다.”
“그래? 내부는? 내부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예, 내시경으로 확인했을 땐 괜찮았습니다. 체중 감소도 없었고. 구토나 설사 증세도 없었습니다. Z-E(졸링거 엘리슨 증후군)라고 하기엔…….”
“가스트린종은 아니라는 말이군. 그래도 조금 이상한데…….”
가스트린을 과다 분비하는 가스트린종이 아니라고 하기엔 수치가 너무 높은 상황.
김희재가 재차 물었고.
진혁은 바로 대답했다.
하루에도 숱한 수술이 예정돼 있었고.
모든 수치를 기억할 순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자신이 맡은 부신절제술에만 집중했을 테니까.
한참을 고심하던 김희재가 말했다.
“하는 데까지 해 보지. 보비(소작기).”
* * *
원래 계획과 어긋난 일.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악성일 수 있었으니까.
물론, 다음 타자에게 넘길 수도 있었다.
허나, 시간이 지체될 터.
부신 절제를 맡았던 의료진 또한 찝찝함에 시달릴 테고.
무엇보다 한동수가 낙담할 수도 있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시간만큼 두렵고 무서운 순간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췌장 수술은 많이 해 보지 않은 김희재가 이를 악문 채 손을 놀렸고.
진혁 또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췌장 두부 직상부에 있던 종괴.
그것들을 하나씩 절제해 나간다.
하나, 둘, 셋, 넷, 여섯.
비장과 유착되지 않았고.
단단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
눈에 보이는 모든 종괴를 절제하고 이를 꺼낸 다음, 집도의가 손을 멈췄지만, 진혁은 계속 움직였다.
동결 절편 검사를 해야 했기 때문.
검사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을 수 있었다.
* * *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다.
그저 흔히 확인할 수 있는 낭종성 병변.
그러니까 소낭성 낭선종.
그리고 점액성 낭선종이었다.
악성이었다면 재발을 우려해 종괴 주변 조직까지 드러내야 했기에.
모두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고생하셨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한 교수님이…….”
서로를 격려하는 의료진.
분위기가 풀어지자, 김희재가 그들을 단속했다.
“다시 집중하지. 일단 닫고 2차 수술에서 마무리하는 거로 하자고.”
“옛.”
다시 손을 놀리는 김희재.
수술은 금세 끝났다.
진혁이 Z 모양의 수처로 근막에 꼬리표를 달아 두었으니.
트로카(투관침)를 거치하기 위해 절제했던 수처야 금방 끝날 수밖에 없었다.
절제된 잔존물을 꺼내기 위해 그 크기를 키웠다지만.
미래에 유행했던 술기.
그러니까 개선된 술기를 이길 순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한동수는 회복실로 옮겨졌다.
30분에서 1시간.
마취과 소관인 회복실에 있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카아웃(Car-out)을 하는 인턴에게 여러 당부를 하던 진혁은 뒤늦게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 김희재가 보인다.
가볍게 인사한 뒤.
말없이 손을 씻고.
수술모를 벗었다.
그렇게 같이 로젯 밖으로 나왔을 때.
“아…….”
진혁이 침음성을 토해 냈다.
한동수의 부인인 정혜인이 맞이할 줄 알았건만.
CS 소속 의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전에도 도열했던 그들.
수술이 끝날 시간에 맞춰, 다시 달려온 게 분명했고.
뭐라 말하기 전에.
그들이 중구난방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교수님! 잘 끝난 거죠?”
“한 교수님은요? 괜찮으신 거죠?”
“프로즌 섹션 바이옵(동결절편 생검, Frozen section biopsy) 했다고 들었는데요.”
“잠깐. 야야. 교수님이 말씀하실 시간은 드려야지. 오케이!?”
어수선한 장내를 랭곤이라 불리는 최두일이 정리하자, 김희재가 입을 열었고.
진혁은 이를 지켜봤다.
군의관 생활로 머리를 민 정진석.
오타쿠처럼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 김윤택.
미꾸라지처럼 굴 거라고 여겼던 최두일.
아니, 랭곤.
후배는 하늘, 선배는 땅이라며 항상 후배를 아끼는 다른 선배들까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필수과에 근무하며, 바보처럼 일하는 이들이었다.
한동수가 120시간.
아니 140시간 가까이 일하다 쓰러졌다지만.
저들 또한 마찬가지.
그러니.
“바보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고.
이를 들은 최두일이 입을 쩍 벌렸다.
물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다들 기함해 진혁을 바라봤다.
너무 생뚱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아…….”
다들 침음성을 터트렸다.
천재라 칭해지며.
트리플 보드에 도전하는 이진혁.
CS의 영원한 막내인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어색한 침묵도 잠시.
다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원래 바보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는 법.
그들은 감히 자신들을 바보라 칭했던 이진혁을 몸으로 응징했다.
헤드락을 걸며.
같은 바보한테 말없이 소리쳤다.
잘했다고.
잘 부탁한다고.
이대로만 하라고.
바보 같은 교수님 한번 제대로 살려 보자고.
남은 수술도 잘 부탁한다고.
* * *
그날 밤.
CS 병동 휴게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머머리 장혁준이었다.
“헤이요! 2호 동지. 허엇!!”
“……?”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어요.”
“일단 사람들 오면 얘기할게요.”
“으으. 얘기할 거 없어요. 저 진짜, 가 볼게요.”
“…….”
“으잉? 안 붙잡아요?”
몸을 일으키던 장혁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이 정도로 장난을 치면.
보통은 잠깐이면 된다거나.
조금만 도와주면 끝난다거나.
뭔가 반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진혁이 무거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의아함도 잠시.
장혁준이 손을 휘적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에이, 재미없네. 재미없어. 대체 뭔데 그래요.”
“잠깐이면 돼요.”
“흐음.”
“…….”
진혁이 말을 아끼자.
장혁준이 탁자에 놓인 결재판을 꺼내 들었다.
거기엔 4차 파업에 따른 정부의 동향.
의협의 요구사항.
그리고 PA 간호사 합법화 TF에 대한 서류까지.
주니어들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말들.
그러니까 정치적인 구호와 요구안이 복잡하게 쓰여 있었다.
운영과에서 준비한 게 분명한 서류.
탄식을 내뱉은 장혁준이 그대로 결재판을 내려놨다.
인턴 혁명.
아니, 레지던트 혁명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어려운 건 딱 질색이었다.
그사이 이태희가 들어왔고.
다시 김현수와 최재성.
그리고 사고뭉치 인턴 김무성까지 영문도 모르고 들어오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좀 바꿉시다.”
* * *
몇 년 전 외과 춘계학술대회 때 실컷 들었다.
외과는 망했다고.
이제 필수과는 끝이라고.
그리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IMF로 인한 세태 변화.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오롯이 돈이 없으면 죄인이 되고.
돈만 좇는 사회가 되는 게 한국 사회의 미래였다.
돈 돈 돈.
돈이 없으면 행복이 창문으로 빠져나간다는 유대인 이야기를 중학생도 하고 있었고.
다들 자아실현이나 임원을 향한 포부 따위는 포기한 채.
재테크나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니 사명감에 일하는 의사도 점점 줄어들고.
필수과를 외면하는 건 별다른 일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일반인도 그럴진대.
뭐, 의사라고 다를까.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버는 돈의 규모가 달랐고.
빌딩을 올리고.
건물에 투자하며.
법인 명의로 리스한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물론 그들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었다.
저마다의 삶.
각자의 인생이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 가치관 차이에 따른 행동을 비판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고 여겼고.
집채만 한 파도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듯이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쓰러진 한동수.
그를 애타게 바라보는 CS 소속 의사들.
환자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뭐라도 해야 했다.
과거로 회귀한 그 자신만이 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가만히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공공수가 제도도 도입해, 필수과의 수가를 현실화했고.
김무성의 부친.
그러니까 복지부 차관도 만나 PA 간호사 합법화 관철을 위해 노력했다.
그뿐이랴.
운영과장인 우용만을 만나, 출판을 통한 수익 사업 또한 제언했다.
허나, 각종 검사로도 확인되지 않았던 췌장 두부에 있던 종괴처럼.
알게 모르게 필수과 의사들을 좀먹는 일들이 숱하게 있을지 몰랐고.
근원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야 저 바보들이 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번아웃을 겪어 메스를 내려놓거나.
현타가 왔다며 필드를 떠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진혁이 말했다.
“한 교수님이 쓰러진 이유야 다들 알 테고. 설명 안 해도 되지?”
“뭐, 지난번에 설명해 줬으니까, 우리도 알지. 그나저나 2차 수술도 받아야 한다며.”
“뭐, 그건 몸 좀 회복하신 다음에. 2차 수술은 한참 있다가 할 거야.”
“그래?”
“어. 그보다, 일단 정원 축소 이야기가 나왔거든.”
진혁이 운영과장인 우용만이 건넨 서류를 펼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정부와 강하게 대립하는 협회.
저마다 요구하는 게 달랐다.
의협은 정원 축소를.
병원장협의회는 약제 마진을 건강 보험 수가에 녹여 넣기를 원했고.
개원의협의회 또한 그랬다.
원 역사와 달라진 게 있다면, 정부가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끝없는 파업 끝에 결국 요구안이 관철될 수도 있었다.
진혁의 설명이 끝나자,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원 문제야……. 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왜, 필수과에 지원하는 애들이 줄어들 거라서?”
“뭐, 그것도 그렇고…….”
“그럼? 그럼 뭔데? 설마 이것도 반대하자고?”
이태희를 비롯한 이들의 눈이 커졌다.
김무성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다른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몇 번을 같이 작업한 상황.
진혁이 다른 이들을 모은 이유를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혁의 설명이 계속되자 다들 입을 떡 하니 벌렸다.
필수과를 살리려면 다른 과를 조져야 했거늘.
이진혁이 말하고 있었다.
피부 미용 쪽을 조져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