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33화(233/388)
233화. 미움받을 용기 (2)
“죄송합니다, 교수님.”
진혁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하자, 진종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반발하거나.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어야 했거늘.
저런 반응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트집 잡을 게 없지 않던가.
허나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게 사람.
해야 할 건 해야 했다.
진종욱이 성난 어조로 힐난했다.
“뭐가 죄송하지?”
“제가 미숙했습니다. 모드를 바꾸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대답과 함께 프로브를 내려놓은 진혁이, 초음파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진종욱의 말대로 M-mode로 바꾸려는 거다.
이에 진종욱이 따져 물었다.
“왜, 2D 모드로 했지?”
“M-mode는 기준선의 위치가 좌심벽에 직각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그랬습니다.”
“…….”
“그리고 피검사자의 나이나, 심장 상태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2D로 찍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혁이 공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진종욱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해 봤나? 해 봤어!? 왜, 해 보지도 않고 단정하지?!”
“죄송합니다.”
“LIEF(좌심실 구출률)를 구할 때 M-mode를 주로 쓰는 건, 단순하면서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서야!”
“예, 교수님.”
다시 고개를 숙인 진혁이 손을 놀렸다.
M-mode로 변경한 다음.
프로브를 승모판 끝에 위치시켰다.
그러고선 미세하게 손을 기울인다.
모니터를 보며, 좌심실 격벽과 후벽에 직각이 되도록 손을 놀리는 거다.
그 모습에, 진종욱이 다시 성질을 부렸다.
“기준선 위치 제대로 맞춰! 어!”
“예, 교수님.”
“허허, 아니야. 아니, 아니라고! 좀 더 기울여!”
계속된 트집.
기준선의 위치에 따라, 벽이 두껍게 측정될 수 있었고.
내경 또한 실제 크기와 다르게 계측될 수 있었기에, 진혁이 신중히 손을 놀렸다.
* * *
좌심실 수축 기능 평가는 금세 끝났다.
하지만.
“흐음, 수치가…….”
절로 침음성이 나올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았다.
3년 전에 수술받았던 환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
진종욱을 힐끔 쳐다본 진혁이 다시 모드를 조정했다.
좌심실 이완 기능.
그러니까 좌심방에서 좌심실로 혈류를 보내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 모습에.
진종욱이 눈을 빛냈다.
지금까진 강짜를 부린 거나 다름없었다면, 좌심실 이완 기능 평가는 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완 기능 평가는 도플러 측정값이 중복돼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기 힘들어. 어쩌면…….’
잘됐다며.
눈을 번뜩이는 진종욱.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저었다.
천재로 소문난 이진혁.
능숙하게 구분할지 몰랐다.
R2인데도 R4의 임상 권한을 가진 그.
술기 하나는 기막히게 하는 이진혁이었다.
허나 혹시 모를 일.
그렇게 기대가 교차하며 시작된 좌심실 이완 기능 평가는, 진혁이 프로브를 움직이며 시작됐다.
진혁이 곧장 기준선을 잡았다.
승모판(좌심방과 좌심실 사이 판막) 개폐가 일어나는 곳을 기준 삼아, E 파와 A 파를 측정하는 것이다.
산봉우리처럼 위로 봉긋하게 솟은 E 파.
그리고 A 파.
이를 살피던 진혁이 다시 한참 손을 놀리자, 진종욱이 물었다.
“E/A 값이 0.8로 찍혔는데. 어떻게 평가할 거지?”
E 파와 A 파의 비율이 1보다 작기에 이르는 말.
정상이라면 1보다 커야 했다.
E 파의 산봉우리가 A 파보다 더 커야 하는 것이다.
허나 더 작은 상황.
이럴 땐 세 가지 요건을 더 검토해야 했으니.
복잡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E 값이 50cm/sec 이하라서…….”
진혁이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 가자, 진종욱의 표정이 굳었다.
최고 TR 속도.
좌심방 최대 용적 지수.
그리고 평균 E/e’ 값까지.
까다로운 케이스였건만.
이완기 승모판륜 조직 속도(e’)까지 언급하는 이진혁은 막힘이 없었다.
흠잡을 데가 없는 것이다.
결국, 진종욱이 강짜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봤을 땐 각도가 조금 이상했어. 그러니 다시…….”
* * *
미움받을 각오가 돼 있던 진혁의 표정이 굳었다.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 없다는 말.
그 말만큼 안 좋은 말도 없기에, 참으려 했다.
어리숙한 태도를 가장하며, 차트로 선배들을 조졌던 것과는 상대도 달랐고.
그 자신의 위치 또한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강짜를 부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저러는 게,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나 들이받을 순 없는 일.
상대는 부교수였고.
자신은 레지던트였다.
게다가 ER에서 트리플 보드까지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진혁이 김지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숨을 골랐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지. 지혜롭게, 슬기롭게 넘기자.’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온 진혁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크음. 큼. 제대로, 제대로 보란 말이야!”
“예.”
짧은 대답.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진혁의 시야에 환자가 들어왔다.
3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고.
몸이 좋지 않아 응급실을 찾은 중년 사내.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해진 지 오래였다.
그 자신을 두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교수가 성질을 부리고 있었고.
참의사라고 소문난 자신은 연신 허리를 숙이고 있었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는 것이다.
이에,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 때문에 환자가 불안해한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입술을 앙다문 진혁이 다시 손을 놀렸다.
빠르고, 정확하게.
어떠한 흠도 잡지 못하게 프로브를 찍었다.
그렇게 끝난 이완 기능 평가.
결과값을 확인한 진혁이 말했다.
“일단 CS를 콜하겠습니다.”
“뭐? 아직 CT도 안 찍었어!”
“…….”
“자네, ER의 역할을 잊었나? 최대한 스크리닝해서, 환자를 거르고 거른 다음에 넘기는 게 옳아! 그래야 다른 과에 로딩이 걸리지 않는다고!”
“죄송합니다. 바로 CT실 예약 잡고. 동의서를 가져오겠습니다.”
“하! 미리미리 준비했어야지! 이걸 참, 쯧쯧.”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안 든다는 표정.
진혁이 입술을 깨물며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 * *
컴퓨터단층촬영(CT)에 대한 동의서.
이른바 퍼미션(동의서)을 받는 건 주로 인턴이 할 일이었다.
그러니 CT 촬영 오더를 내고.
예약을 잡는 일 또한 김무성이나 다른 인턴에게 시키면 됐다.
푸시 또한 인턴이 할 일이 아니던가.
허나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술기에 익숙하지 않고, 로딩이 걸리는 초보나 퍼미션을 갖고 다니는 것이거늘.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고 욕하는 건 진짜 과한 반응이었다.
그러니 김지연이 이런 말을 해도 반박할 수 없었다.
“제가 조심하라고 했죠.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수쌤(수간호사)한테 말씀드려 볼까요?”
“아뇨, 과장님 귀에 들어가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됩니다.”
“어머, 어머! 그럼, 계속 당하고만 계실 거예요? 원래 타겟이 되면, 피곤한 거 아시잖아요!”
“꼭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서요.”
“네? 방법이요? 무슨 방법이요?”
김지연이 눈을 빛냈다.
그 자신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한 모양.
진혁이 말없이 서류를 챙기고, 다시 돌아가려고 하자 그녀가 따라붙었다.
“카메라 감독님을 이용하려고요? 저분, 김석대 VJ라고 하셨나요? 전담 VJ라 친하시잖아요.”
“아뇨. 지금도 찍고 있었는데……. 계속 그러셨는데요.”
“그럼요? 차트로 조질 거예요? 왜, 예전에 한참 그러셨잖아요.”
“에이~! 지정의도 아니고. 그런 방법은 소용없죠.”
“그럼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
계속 말을 걸던 김지연이 짧은 침음성과 함께 어색하게 웃었다.
진종욱이 노려보기 때문.
그녀가 속삭이듯 외쳤다.
“기대할게요! 아니, 파이팅!”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한 김지연이었다.
* * *
진혁이 CT 퍼미션을 받는 사이.
진종욱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처음엔 병원장인 오지호 때문에 망설였고.
박영진이 꿀을 바른 것처럼 굴었기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진혁을 왜 괴롭히냐고 따진다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원래 조수석에 앉으면, 운전석과 시야가 다른 법.
그러니 각도를 두고 문제 삼을 수 있었다.
프로브를 직각으로 눕혀 제대로 찍으라고 해도, 별말 할 수 없는 거다.
제 눈엔 삐뚤게 보였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모드로 시비를 걸었던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반사음의 강도.
음영의 크기.
진폭의 높낮이까지.
모드에 따라 달라지는 게 초음파 영상 기법.
좌심실 수축 기능 평가의 경우, 주로 M-mode로 촬영하고 평가하니.
2D로 찍으려던 이진혁에게 가르침을 내렸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뭐, 때로는 2D가 정확할 때가 있다지만.
제 판단이 그랬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뿐이랴.
스크리닝에 대한 범주 또한 정해지지 않았고.
의사마다 각 과에 노티하는 시점도 각기 달랐기에, 혼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CT도 찍지 않고 노티한다니.
신속성보다 정확성에 초점을 뒀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파업 때문에 로딩이 걸리고 있으니.
퍼미션을 가지러 간다는 말에 짜증을 부린 것도 순전히 강짜라고만 치부할 순 없었다.
오지호의 귀에 들어가거나, 박영진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변명할 거리가 있는 것이다.
한때는 이진혁을 이뻐했기에,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미안함.
그리고 오지호와 박영진을 의식했던 찝찝함이 사라지자,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제대로 괴롭혀 주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밑밥을 까는 걸 잊지 않았다.
진종욱이 말했다.
“환자분, 제가 조금 언성이 높았지요?”
“아……. 아닙니다.”
“크음, 큼. 사실 종합 병원이 말입니다. 교육기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
“잘한다고 칭찬만 하고 우쭈쭈만 할 순 없다 이 말입니다.”
“그, 그렇죠.”
환자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진종욱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니 혼낸 겁니다. 이게 다 이진혁 선생이 잘되라고 하는 일이지요. 안 그런가? 이 선생.”
“맞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진혁이 깔끔히 고개를 숙이자, 진종욱이 그의 어깨를 쳤다.
김석대가 찍고 있던 카메라와 환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혼낼 땐 혼내고.
다시 풀어 줄 땐 풀어 주는 참된 스승처럼 보일 정도.
그리고 그 순간.
진혁의 반격이 시작됐다.
* * *
교육기관이라 혼낼 수 있다는 말.
거꾸로 교육기관이라 물어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교수님, 30분 뒤에 CT실은 어레인지 했습니다. 근데……. 저, 여쭤볼 게 있습니다.”
“으음?”
“혈액 검사 결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371mg/dL, 중성지방은 80mg/dL,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32mg/dL로 지질 혈증 소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뭐?”
“오시기 전에 찍어 본 심전도에서, Q wave 소견 또한 확인됐습니다. 방금 확인한 EF(좌심실 구출률) 또한 28%로 낮은 편인데요.”
한참 계속된 설명.
요는 혈관에 지방이 축적됐고.
이에 따라 심장 기능이 저하된 거 같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다음 질문이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뭐?”
“보통은 경색 부위를 찾아 절개하고, 심첨부의 혈전을 절제한 다음, 승모판륜까지 손보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승모판까지 보통은 성형하지.”
“하지만 3년 전에 이미 심장 수술을 받았던지라…….”
“……!”
“단순한 접근 방식으로는 좌심실 장력을 줄이고. 심장 허혈을 개선시키는 게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요.”
이후 스텝을 알려 달라는 말을 마친 진혁이 눈을 빛냈다.
그건 학구열에 불타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PK 실습생처럼 순수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자, 대답해라.
어서.
아, 응급실 전문의 아니냐고?
뭐, 어떤가.
그 자신은 레지던트인데.
그가 대답한다면 대답을 못 할 때까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이럴 땐 교육기관이라는 게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