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3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37화(237/388)
237화. 미움받을 용기 (6)
원내로 들어가야 했지만, 이태희는 한참 서성거렸다.
두고두고 이불킥을 할 만한 일을 벌였기 때문.
동성동본이라고 당황해 자리를 피한 자신의 행동도 쪽팔리기 그지없었고.
도발에 못 이겨 고백했던 일이 떠올라, 낯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뜬금 고백이라니.
감정에 치우친 순간적인 행동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술 먹고 사귀자고 했던 선배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으으. 술 먹고 고백하는 게 제일 싫다고 했는데. 진짜 바보같이…….’
후련함 뒤 찾아온 후회.
어떻게 이진혁을 봐야 할지 모르겠고.
동성동본이든 뭐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했다는 또 다른 후회마저 마음을 적셨다.
그렇게 응급실 주변을 한창 돌아다닐 때, 낯익은 얼굴이 자신을 불렀다.
“이 선생! 뭐 해! 비상이야, 비상!”
응급 상황이었다.
* * *
이태희가 서둘러 원내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삐 움직이는 이들이 보인다.
트리아지 구역을 정리하는 레지던트.
소생실 외에도 제세동기를 추가로 배치하는 인턴.
그리고 온콜(Oncall, 상시 대기 중인 당직) 당직을 부르는 소리까지, 정말 요란스러웠다.
문제는 퇴근 후 한창 잘 시간이라는 거.
스테이션 앞에서 다들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뭐야? 왜? 누군데?”
“김수현 선생인데, 연락이 안 됩니다!”
“김수현이면 기숙사에 살잖아! 당장 관리실에 연락해!”
“넷!”
정신없이 움직이는 이들.
이태희 또한 간호사의 호출에 대응하고.
후배들까지 챙기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쉼 없이 움직이던 이태희가 진혁이 있어야 할 A 구역을 훑었다.
당연히 돌아왔을 거라고 여겼건만, 이진혁이 보이지 않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벌써 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대체 뭐 하는 거야.’
나직이 혀를 차며 움직이던 찰나.
뒤늦은 깨달음에 이태희가 몸을 움찔거렸다.
‘설마 연락을 안 했어? 원내 방송을 들었을 거라고 여기고, 아……!’
오늘은 이진혁의 근무일.
당연히 원내에 있어야 했고.
틈만 나면 시끄럽게 울리는 코드블루 방송처럼, 비상 호출 방송에 달려오고 있다고 여겨 연락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면 로딩에 허덕이는 게 일상.
구내식당, 혹은 지하식당 외에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이다.
당장 김무성을 찾은 이태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김 선생, 이진혁 선생한테 연락했어?”
“아뇨. 잠깐 어디 간 거 같습니다.”
“……!”
“그래도 방송을 들었을 테니까 오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럼 벌써 오고도 남았지!”
“뭐, TF에 가셨을 수도 있고. 병원장님이랑 상담 중일 수도 있고. 뭐, 바쁘시잖아요.”
다른 주니어와 다르지 않냐는 말.
평소라면 용인될 수 있는 행태였다.
허나 진종욱이 벼르고 있기에, 이태희가 김무성을 재촉했다.
“빨리! 빨리 연락해!”
* * *
뒤늦게 사정을 들은 진혁은,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흐업. 흐업.”
숨이 차오르고 커피숍 사장이 건넨 유리병 또한 짐처럼 생각됐지만, 꾹 참고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병원은 가까워질 줄 몰랐고.
등산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산 정상을 보는 것처럼.
한없이 멀리 있는 병원을 마주 보고 달리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니 가빠지는 숨소리만큼 힘이 빠지고.
달리는 속도 또한 조금씩 늦어진다.
체력이 생명이라며 헬스장을 꾸준히 다녔지만, 감당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그때.
요란스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구급차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타고 있는 통학 차량까지 교통사고에 휘말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클랙슨을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
이를 본 진혁이 숨을 참으며 속도를 높였다.
물론 택시를 타도 됐다.
허나 좁디좁은 2차로.
병원을 왕래하는 차량과 뒤섞인 구급차마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뛰는 게 나았다.
“흐업. 흐업.”
여전히 숨은 가빴지만, 이전과 다르게 바닥만 보며 달리는 진혁.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건 바로 후회였다.
사실 이런 일을 대비해, 행선지를 말해야 했다.
하지만 악마의 편집을 주도했다고 의심받는 상황.
그러니 이현아를 만나러 간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사고뭉치 김무성을 믿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그간 쌓아 온 행태가 불러온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뼈아플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됐을까.
드디어 흰색 선이 보였다.
병원 정문 앞 횡단 보도에 도착한 것이다.
다시 힘을 내 언덕길을 따라 쭈욱 올라간 다음 간신히 도착한 ER.
유리병을 접수처에 맡긴 다음.
숨 고를 틈도 없이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그러자 곳곳에 소아 환자가 보인다.
소아전문구역에서 따로 담당하건만.
케파가 넘쳐 무의미해진 상황.
어쩔 줄 몰라 하는 김무성을 확인한 진혁이 서둘러 다가갔다.
“김 선생, 어떻게 된 거야!”
“방, 방금까지 멀쩡했는데요! 근데, 갑자기. 아, 이게 왜…….”
“정신 똑바로 차려! 제대로 노티하고!”
진혁이 짧게 일갈하자, 김무성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춘 채 말을 이어 갔다.
“트리아지 구역에서 교수님이 경증으로 분류했습니다! 단순 골절이었는데, 갑자기 디스네아(Dyspnea, 호흡 곤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노티하는 김무성.
엉망진창이었지만, 탓할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페이션트 모니터를 확인하고.
세츄레이션까지 체크한 진혁이 소리쳤다.
“ABGA(동맥혈가스분석) 다시 돌려!”
“넵!”
“서둘러!”
“알겠습니다!”
김무성이 ABGA 키트를 가지러 간 사이.
진혁이 다시 환자를 살폈다.
갑자기 상황이 악화됐다면 이유가 있을 터.
그 이유를 찾아야 했건만, 육안으로 보이는 건 없었다.
의구심과 답답함 속에 끝난 시진.
이젠 촉진과 문진을 해야 했다.
하지만.
“흐읍. 흐읍!!”
많아야 4학년, 적게는 2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위로 내뻗으며 숨을 껄떡인다.
그 정도가 심해지자,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김 선생님! 바로 호흡기 달아야 할 거 같습니다!”
“잠시만요!”
다른 베드에서 일하던 김지연을 호출한 진혁이 곧바로 아이를 다독였다.
“괜찮아. 선생님이 금방 고쳐 줄게.”
“흐읍. 흐읍. 엄, 엄마!”
“괜찮아!”
“흐으읍!”
이젠 경련까지 하는 아이.
숨이 가쁘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또 다른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 * *
마스크를 씌우고 기계 환기를 시작했다.
그뿐이랴.
곧바로 ABGA 채혈까지 끝냈다.
진혁이 검사실로 뛰어가는 김지연을 뒤로하고, 차트를 들어 올렸다.
“좌측 쇄골 골절. 양측 상완골 골절. 흐음.”
“둘 다 디스네아랑 상관없는 곳인데요.”
“당장 CT실부터 어레인지해!”
“그게……. 조금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
짧은 대답과 함께 김무성이 ER에 딸린 CT실을 가리켰다. 그러자 줄지어 서 있는 베드가 보인다.
아직 이동형 CT가 나오기 전.
시대적 한계는 어쩔 수 없었고.
속절없이 기다릴 판이다.
다시 고개를 돌린 진혁이 숨을 골랐다.
내색하려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숨이 가쁜 상황.
급할수록 천천히 가야 했다.
“일단 X-ray부터 찍자.”
“아…….”
“왜, 그것도 안 돼?”
“아닙니다!”
곧바로 움직이는 김무성.
잠시 후 그가 포터블 엑스레이 기계를 가져오자, 촬영이 시작됐다.
곧, 모니터를 보며 김무성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 이게 왜……. 기관이 시프트된 거 같은데요. 아까는 안 그랬습니다. 진짜, 진짜 안 그랬다고요.”
“뒤늦게 영향을 준 거 같은데……. 흠. 잠깐, 잠깐 조용히.”
진혁이 가볍게 김무성의 입을 막은 다음 다른 영상을 확인했다.
그러자 왼쪽 폐에 진한 검은 음영이 보인다.
정상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다른 폐사진 대비 검은색 음영이 너무 찐했다.
“Pneumothorax(기흉)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확인되면 흉관삽관부터 할 거야. 바로 준비해!”
“넷!”
김무성이 군말 없이 스테이션으로 달려가자, 진혁도 가만있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기흉이라면 늑막강안에 공기가 고여 호흡 곤란을 유발한 게 분명한 상황.
외부 충격에 의한 거로 보고, 흉관삽관으로 공기를 빼 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상황이 악화된 게 마음에 걸렸기에, 진혁이 이동형 초음파 기계부터 챙겼다.
곧, 환자 앞에 선 그가 아이의 옷을 풀어헤쳤다.
가슴이 함몰된 흔적 또한 없었고.
기계 환기에 따라 강제로 움직여지는 들숨과 날숨 또한 안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오래 할 수 없는 기계 환기.
당장 원인을 찾고 제거해야 마땅했다.
곧, 진혁이 양쪽 유두에 가상의 선을 긋고.
4번과 5번. 그리고 6번 늑간을 따라 평행하게 프로브를 놀리기 시작했다.
폐 활주 징후.
그러니까 장측흉막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바깥쪽 벽측흉막의 움직임을 살피는 거다.
기흉이라면 공기가 유입돼 따로 움직일 터.
폐 활주 징후가 없어야 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흔히 말하는 폐 활주 징후(Lung sliding sign)도 보이지 않았고.
혜성 꼬리 허상(Comet tail artifact)이라 불리는 특유의 움직임 또한 관찰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기흉이 분명한데……. 근데 기관이 시프트한 게 이상한데……. 흠.’
얼굴을 굳힌 진혁이 이번엔 가상의 유두 선을 따라 뒤쪽 겨드랑이 선까지 프로브를 놀렸다.
폐 활주 징후가 보이지 않는 곳부터 바닥까지의 높이.
다시 전체 흉곽의 높이를 측정해 기흉의 크기를 재는 거다.
그렇게 손을 놀리는 사이.
검사실을 다녀온 김지연이 달려와 소리쳤다.
“이 쌤!! 검사 결과 나왔어요!”
“주세요!”
“넷!”
프로브를 내려놓고 확인한 결과지.
분명 처음엔 멀쩡했건만, 수치 또한 엉망이었다.
그리고 그때 아이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갑자기 피를 토한 것이다.
* * *
한 번, 두 번, 세 번.
가슴이 크게 울렁이며 피를 세 번이나 토했고.
기계 환기 중이던 마스크는 곧바로 피범벅이 됐다.
이를 확인한 김지연이 당장 기겁해 소리쳤다.
“이 쌤!! Hemoptysis(객혈)이에요!”
“석션하게 바로 준비해 주세요!”
“넷!”
당황한 김지연과 달리 진혁이 빠르게 마스크를 벗겨 내며 손을 놀렸다.
피가 기도를 막고 있는 상황.
당장 피를 빼내 숨부터 쉬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 피를 토해 내는 아이.
진혁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이 정도면 기관 파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야 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석션기로 아무리 피를 빨아들여도 피가 멈추지 않았고, 호흡 곤란이 극에 달하자 아이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갑자기 무너지던 바이탈이 버티지를 못하는 거다.
“선생님 어, 어떻게 하죠!”
김무성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곧, 이를 확인한 이들이 대경실색해 달려왔다.
이진혁이 환자를 맡고 있기에 안심하며 중증 환자를 케어하고 있던 교수들이었고.
그중에는 당연히 진종욱 또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