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4화(24/388)
24화. 새로운 시작 (4)
예전에 교수였다는 고백.
강짜를 부리는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하지만.
교수라는 명칭과 다른 앳된 얼굴이 문제였을까.
최준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되레 흥분했다.
“뭐?! 근데 왜 속삭여!”
“!”
“뭐야! 당신! 새파랗게 어린 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아, 그게.”
“교수 불러오라니까!!”
도돌이표와 같은 반응.
한숨을 내쉰 진혁이 강하게 나갔다.
“환자분. 동맥혈 채혈은 간호사도 못 하고 의사만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뭔데!”
“정맥하고 다르게 피가 응고되면 조직이 허혈(신체의 조직이나 장기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 되거나 괴사될 수 있어서 그런 겁니다.”
“뭐?”
“자칫 잘못하면 손가락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말 진짜야?”
“네,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최준만이 고개를 내려 제 손목을 바라봤다.
이미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손목.
바늘 자국만 여섯 개다.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민원 넣을 거야!”
“꼭 성공할 겁니다.”
“아주 실패만 해 봐!!”
“왼쪽 손 좀 내밀어 보시겠어요? 주먹 쥐시고요.”
최준만이 손을 내밀자, 진혁이 곧장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먼저, 양쪽 엄지로 Radial Artery(요골동맥)와 Ulnar Artery(척골동맥)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른바 Modified Allen Test(알렌 검사)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 특성상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정석적인 방법이었다.
“주먹 좀 쥐었다 폈다 해 볼게요.”
꽈악.
꽈악.
곧, 동맥 혈류가 차단돼 손바닥이 하얗게 변하자 그대로 Ulnar artery(척골동맥)의 압박을 풀었다.
5초, 10초.
손바닥이 붉게 돌아온다.
정상이라는 말.
동맥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젠 ABGA를 할 차례.
환자의 손목 밑에 쿠션을 가져다 댔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동맥혈이 피부 표면에 가까워지게 하기 위한 잔기술이었다.
진혁이 곧장 최준만의 맥을 짚었다.
Pulse(맥박)가 가장 강한 곳에 니들을 찔러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으음?’
큰소리를 떵떵 쳤건만, 어려운 케이스였다.
순간 고개를 돌린 진혁의 눈에 웃고 있는 오태상이 들어왔다.
* * *
계속되는 촉진.
혹시 맥을 잘못 짚었을까 싶어 계속 확인했다.
‘Radical Artery(요골동맥)가 휜 거 같은데?’
최준만의 나이는 43세.
아직은 젊은 나이다.
한데, 고령 환자처럼 요골동맥이 휘어 있었다.
이럴 경우 맥을 제대로 짚었더라도 동맥의 주행 방향을 놓칠 수 있었고.
천자에 애먹을 수 있었다.
김현수는 이를 고려하지 못했으리라.
‘뭐. 잔뜩 위축돼서 계속 실수했겠지. 롤링(Rolling, 천자 할 때 동맥이 도망가는 현상)이 심했거나.’
이제 상황 파악은 끝.
천자만 남았다.
한데, 그새를 못 참고 최준만이 불만을 토로했다.
“뭐야. 못 하는 거 아냐! 왜 꾸물거려!”
촉진이 길어져 생긴 불만.
여전히 반말인 그를 보며 진혁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해 드릴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덜 아프게?”
“네. 손목은 피부가 얇아서 유독 아프거든요.”
“음.”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
신뢰마저 뚝뚝 떨어진 듯했다.
그 모습에 진혁이 대안을 제시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좀 더 어려운 길을 가면 그만이었다.
“팔꿈치 안쪽에 해 드릴까요? 평소처럼요.”
“뭐?”
“여기에 해 드릴게요.”
“!”
순간 최준만의 얼굴이 밝아졌다.
팔꿈치 안쪽에 채혈할 경우, 별로 아프지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가 살짝 누그러졌다.
“크음. 큼. 해 봐요. 해 봐.”
“안 아프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젠 ABGA를 나비처럼 쏠 차례였다.
* * *
팔꿈치 안쪽 상완동맥(Brachial Artery) 주변을 알코올스왑(알코올 솜)으로 소독하자 반응이 엇갈렸다.
‘정중신경(Median Nerve)을 찌르면 더 아플 텐데.’
‘넌 죽었다. 정맥혈을 채혈하기만 해 봐라.’
‘다행이다. 너도 실패해라, 이진혁.’
요골동맥을 천자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
정중신경이 상완동맥 주변으로 평행하게 지나고 있어, 잘못 찌르면 더 아플 수도 있었다.
그뿐이랴.
통상적인 채혈이 팔꿈치 안쪽에서 이뤄지는 이유는 정맥혈이 지나기 때문.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동맥혈이 아니라 정맥혈을 채혈할 수도 있었다.
허나 진혁의 손놀림은 재빨랐다.
검지와 중지로 상완동맥을 확인한 뒤, 시린지(주사기)를 45도로 기울여 그대로 찔러넣었다.
얕은 신음도 내지 않는 최준만.
혹시 모를 동맥의 롤링을 우려해 부챗살로 휘저었다.
“안 아프시죠?”
“그렇긴 한데……. 음.”
“금방 마무리하겠습니다.”
혈관을 뚫는 특유의 느낌.
그대로 손을 멈췄다.
이제는 시린지의 플런저가 밀려 나올 차례.
보통은 동맥압에 의해 저절로 피가 차오르며 밀려 나오지만, 플런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김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상완동맥에 ABGA를 할 수 있을 리 없지. 초턴이잖아.’
초턴한테 뭘 기대한 거냐며 자리를 옮기려던 순간.
진혁이 플런저를 잡아당겼다.
니들이 가늘면 플런저가 밀려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곧, 붉은 혈액이 딸려 나온다.
놀랄 기색도 없이.
시린지(주사기)를 빼낸 뒤 곧바로 플런저를 밀어 공기 방울을 제거하고 밀봉을 끝내 버렸다.
진혁이 벙찐 표정의 김지연에게 말했다.
“김 선생님, 5분 뒤에 지혈대 좀 풀어 주세요. 저 검사실 좀 다녀올게요.”
“네, 제가 챙길게요.”
김지연은 여전히 얼떨떨한 눈빛이었다.
* * *
동맥혈 가스분석검사(ABGA).
동맥혈의 산도, 산소 분압, 이산화탄소 분압 등을 알 수 있어 호흡 장애와 대사 장애가 있는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검사다.
채혈 후 곧장 검사를 돌리지 않으면 정확성이 낮아졌기에 진혁은 바로 검사실로 향했다.
곧, 따끈따끈한 결과지를 건네받은 오태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 번에 ABGA를 꽂았다고? 그것도 상완동맥을? 김현수가 여섯 번이나 실패한 환자였는데……. 하, 진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결과.
오태상이 고개를 흔들어 댔다.
다른 인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고 있건만, 이진혁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결국, 그의 선택은 하나.
실수할 때까지 계속 오더를 내리는 거였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진혁은 Phlebotomist(채혈사)가 된 것처럼 시키면 시키는 족족 채혈하러 다녔다.
어차피 ABGA는 인턴이 가장 많이 하는 술기.
많게는 하루에 수십 건.
적게는 십여 건을 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특별할 것도 없었다.
나비처럼 날아 ABGA를 꽂는다.
이른바 던지면 꽂히는 수준.
한 명, 두 명, 다섯 명, 열 명.
그 수가 스무 명을 넘어가자 오태상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던지면 꽂힌다는 속어를 자랑하는 건 레지던트나 돼야 가능하건만.
그런데 인턴이.
그것도 초턴이 그 속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성공률 100%.
이젠 너무 황당해 말이 안 나왔다.
* * *
몇 시간 후.
담당 구역이 다르건만, 이태희가 다가왔다.
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이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주변을 의식한 존댓말.
진혁이 곧장 되물었다.
“뭔데요?”
“64번 베드 ABGA 있어요.”
“실패했어요?”
“네.”
“왼쪽 손목에 해 봐요.”
“이미 해 봤어요.”
“그럼 오른쪽 손목에 다시 해 봐요.”
“그쪽도 해 봤어요.”
“아…….”
헬퍼를 가면 그만이었지만, 진혁은 망설였다.
이 또한 언젠가 넘어야 할 산.
도와주기 시작하면 실력이 늘기 힘들었고.
원래 깨지면서 배워야 실력이 빠르게 느는 법이었다.
‘나도 꼰대인 건가?’
진혁의 망설임이 길어지자.
이태희가 목소리를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와, 너 진짜 이럴래? 오 선생님한테 부탁드릴 거야.”
한 번 더 말하면 도와줄 생각이었건만.
이태희가 휙 하니 가 버리자,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다 곧.
“이 선생님, 여기 블러드컬쳐(혈액배양검사) 있어요.”
“네! 갑니다!!”
정말이지 응급실은 쉴 틈이 없었다.
* * *
이진혁에게 뭐라 말을 걸던 이태희.
그녀가 용건을 밝히자 오태상이 싸늘하게 반문했다.
“ABGA 하는 걸 도와달라?”
“네, 선생님. 64번 베드입니다.”
“그걸 왜 저한테 말하죠?”
“네?”
“이 선생한테 도와달라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아, 그건…….”
“인턴 잡(Job)은 원래 인턴끼리 헬퍼 뛰는 거 몰라요?”
싸늘한 오태상의 반응.
이태희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지던트들이 업무에 도움도 안 되는 인턴들을 귀찮게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첫날부터 이럴 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오태상도 마찬가지.
그도 부아가 치밀어 올라 화를 참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감히 나한테 떠넘겨?’
진혁의 실력을 확인한 상황.
이태희의 헬퍼 요청을 거부하고 거꾸로 자신한테 보냈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태희 선생님.”
“네.”
“혼자 다시 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이태희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 * *
하루 24시간 풀 근무를 서는 상황.
교대로 돌아가며 밥을 먹어야 했고.
그 시간 또한 극히 짧았다.
식판을 앞에 두고 이태희가 깨작거리자, 진혁이 의아해했다.
“입맛이 없어요?”
“하아. 짜증 나, 짜증 나. 짜증 나 죽겠어.”
“?”
“오 선생님 때문에 짜증 난다고!”
“!”
갑자기 나온 오태상의 이름.
그 이유가 짐작된 진혁이 얼굴을 굳혔다.
“아까 안 도와줬어요?”
“응. 아주 진짜. 내가 콱!”
“콱. 뭐요.”
“그냥 콱!!! 어! 아주! 진짜!”
“그러다 치겠네. 치겠어.”
“너나 오 선생님이나 똑같거든? 너도 안 도와줬잖아!”
갑자기 날아온 화살.
진혁이 다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바빠서 그랬죠.”
“내가 다 봤거든? 여유롭게 걸어만 다니더라!”
“그건…….”
“할 말 없지?”
“…….”
사실 걸어 다니긴 했다.
업무 로딩이 걸릴 때는 뛰어다녀야 했지만, 오더가 오는 족족 다 액팅하며 쳐 냈기에 여유가 있었다.
이젠 수저를 아예 내려놓은 이태희가 말했다.
“알려 줘.”
“?”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 알려 달라고.”
“원래 깨지면서 배우는 거예요. 레지던트한테 찾아도 가고. 그러면서 혼도 나고. 그래야 빨리 배우죠.”
꼰대처럼 대답하는 진혁.
말투는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생각은 여전했다.
늙다리 마인드인 거다.
순간 이태희가 섭섭하단 표정을 지었다.
“와. 너 진짜 이럴래?”
“흠.”
“아까 안 도와줘서 이미 맘 상했거든?!”
“…….”
“그리고 뭘 알아야 깨지면서 배우는 게 의미라도 있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야.”
실습을 하고 왔으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순간 ‘내가 좀 심했나?’라는 생각이 든 진혁이 스탠스를 바꿨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진혁이 설명을 한참 늘어놓았다.
ABGA를 하며 주의해야 할 일부터 실수할 만한 것들을 상세하게 푸는 거다.
5분. 10분. 15분.
밥도 먹지 않고 한참 그만의 노하우를 펼쳤다.
그렇게 설명이 끝났을 때.
이태희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고마워, 나 먼저 갈게!”
“밥은요.”
“빨리 가서 해 봐야지!”
“……!”
한참 열정적인 시기.
혼자서 부리나케 달려가는 이태희를 보며 진혁이 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