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45화(245/388)
245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3)
불과 30분 전.
한동수는 불쾌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건 몸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병문안을 온 동기의 말이 뼈아팠기 때문이다.
“괜찮아. 뭐, 연구직도 괜찮다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고. 밝혀낼 수 있는 게 천지 삐까리라니까.”
“뭐, 자네도 알잖아. 끝이 아니라니까.”
자신을 위로하는 동기.
너무도 불편하고.
거북했다.
정말 마땅치 않았고.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메스를 내려놓아도 된다는 위로만큼 기분을 우중충하게 만드는 말도 없었으니.
정말 최악이었다.
물론 악의는 없었다.
떠나지 말라는 함의.
플랜 B도 있다는 위로일 뿐이다.
허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유전병.
고작 두 번의 수술로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재활하면 된다지만.
평생 관리해야 했다.
그런 연유로 운동한답시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녀도 보고.
와이프의 잔소리가 싫어, 산책도 해 봤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여느 환자처럼 좌절과 실망.
그리고 희망 회로.
다시 좌절이라는 무한 루프에 빠져 허덕이는 게 현실.
그러니 말할 수 없었다.
명품으로 퉁치려다가 등짝 스매싱도 맞았으며, 남자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었지만, 결국 허락받았다고.
그러니 헛소리 좀 작작 하라고.
난 아직 팔팔하다고.
닥치고 꺼지라고.
결국, 지금은.
“여보, 이것 좀 먹어 봐요.”
“응? 어어.”
와이프가 깎아 주는 복숭아나 받아먹는 신세.
동기가 떠난 뒤에 남겨진 제 모습은 허핍했고 처량했다.
그러니 먹고 또 먹는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다시 씹는다.
그러다.
와그작.
뚜욱.
포크를 씹어 버렸고.
얼을 탄 대가는 통증으로 치렀다.
아프다는 생각도 잠시.
눈자위를 지그시 누른 와이프. 그러니까 정혜인이 혀를 차는 게 귓가를 매운다.
“이 양반이 진짜…….”
* * *
얼마 전 ER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신이 나서 난리를 쳤던 한동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기분이 휙휙 바뀌는 한동수를 보며 정혜인이 소리쳤다.
“진짜 이럴 거예요!?”
“왜, 뭐가.”
“몰라서 물어요?”
“몰라, 아파 죽겠는데 뭘…….”
한동수가 얼얼한 턱을 부여잡자, 정혜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대화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젖히고.
어둑하게 눈을 내리까는 한동수.
바보 천치 같은 남편을 달래야 했다.
“손 좀 들어 봐요.”
“응?”
“손 좀 들어 보라고요.”
“아이, 귀찮게…….”
한동수는 꿍얼대면서도 순순히 말을 들었다.
평생 속을 썩였으니.
이 정도는 못 해 줄까 하는 태도.
그의 속내를 뻔히 알았지만, 정혜인이 손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래도 안 떨리네요.”
“뭐?”
“앉아서 수술할 순 있겠다고요. 수전증은 아직 안 왔다니까요.”
“흥. 누가 앉아서 수술한다고 그래?!”
“꼭 서 있어야 돼요?”
“당연하지! 집도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야, 지휘자! 다 휘어잡고 집도해야 한다고. 그러려면 시야가……. 어?!”
스팀이 오른 한동수가 소리를 지르다 멈칫거렸다.
그러고 보니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지팡이를 내려놓는 거야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경피적 시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술 시간도 짧았고.
앉아서 할 수 있었다.
그뿐이랴.
풍선도자를 이용해 교정하는 건 손의 떨림과도 상관없는 일.
중간에 체력이 떨어지며 손이 떨리더라도, 무리 갈 게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매가리 없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여느 환자처럼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던 한동수가 정혜인을 껴안았다.
“여, 여봉!!!”
* * *
남사스러운 포옹.
애교 섞인 목소리.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지만.
뭐 어떠랴.
저렇게 좋다는데.
정혜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고.
한동수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경피적 시술이라는 게 말이야. 개복을 안 한다는 거야. 가이드 와이어를 혈관에 찔러 넣고, 벌룬으로 교정하는 거라고.”
“수술대는 낮추는 게 힘든데. 이건 CAT실에서 하는 거라서…….”
“그래도 할 만하다니까. 어차피 모니터를 보면서 하는 거라고. 복강경? 에이, 복강경이랑은 또 다르지.”
“관상동맥도 시술할 수 있고, 말초혈관이랑 대동맥도 가능하다고. 타비(TAVI)도 할 수 있고…….”
군대에서 축구를 하다가 탄피를 잃어버려서 혼난 이야기처럼, 개연성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이야기.
끝없이 계속될 거 같던 한동수의 수다는 최두일이 들어오고서야 그쳤다.
최두일의 설명에, 한동수가 기막히다는 듯 소리쳤다.
“뭐? 뭐라고?”
* * *
심심할 게 분명한 한동수에게 가십거리를 전하러 왔지만, 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다시 말해 보라는 한동수의 고성에, 최두일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 진혁이가 라이브 수술을 기획했습니다. 곧, 시작할 겁니다.”
“뭐? 갑자기 왜?”
“심장내과에서…….”
한참 계속된 얘기.
전말을 전해 들은 한동수가 기막혀했다.
“이 사고뭉치 자식이 또…….”
“네? 왜 그러시는지…….”
“하. 너 인마. 내 말 못 알아들어? 이진혁이 소속이 어디야!”
“GS에서 수련 중이죠. 참의료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그럼 CV에서, 아니 내과 계열에서 뭐라고 생각할 거 같아? 어?”
“…….”
“기자들을 불러 놓고, 심도자실은 CS 거라고 선언하는 행동을 두고 뭐라고 생각할 거 같냐고!”
삼자나 다름없는 이진혁이 끼어들어 판을 세팅하고.
CS 편을 들며 CV를 엿 먹이는 걸 안 좋게 볼 거라는 말.
안 그래도 이진혁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수두룩한데.
또다시 말이 나올 거라는 뜻이었다.
물론 그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CV가 움직이지 않자 벌인 일.
기왕 이렇게 된 거, 영역 다툼에 쐐기를 박을 생각인 게 분명했다.
허나 자신이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을 터.
한동수가 소리쳤다.
“어디야, 어디! 내가 갈 거야!”
“아…….”
“그리고 랭곤! 너 임마! 내숭 떨지 마! 안 어울린다고!”
한동수의 와이프가 있다는 이유로 정상인인 척하던 랭곤 선생, 최두일이 코를 긁적였다.
* * *
다시 돌아와.
적막이 흐르는 심도자실.
다들 기함하며 무어라 말을 꺼냈지만, 한동수가 손을 휘저었다.
“김 간호사, 미안한데 지팡이 좀 치워. 컨타(감염) 될 수 있다고.”
“아……. 예, 교수님.”
“정 간호사는 옷 좀 입게 도와주고.”
“옙.”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
한동수가 손을 내뻗자 수술 가운과 수술 모가 씌워진다.
경피적 시술에 불과해 일반 수술과 달랐지만, 수술복을 입자 한동수의 얼굴에 평안이 깃든다.
평상복보다 더 많이 입은 수술복.
이보다 편한 옷도 없었다.
곧, 누군가 의자까지 세팅하자 그가 지팡이 없이 몸을 움직였다.
쩔뚝.
쩔뚝.
힘겨워 보였지만.
스스로 움직이다.
한 발, 두 발, 세 발.
내디디고.
또 내디딘다.
당장 진혁과 김윤택이 그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한동수의 표정이 너무 엄숙했다.
게다가.
“혼자 할 거야. 이건 내 복귀식이라고.”
“……!”
“아들 녀석이 이런 이벤트를 열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안 그래?”
소감을 밝히는 한동수.
그 시선은 카메라를 향해 있었다.
복귀식을 열 의도는 없었기에 진혁이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지금 한동수는 프레임을 전환하고 있었다.
GS 소속인 이진혁이 CS와 CV 사이에 끼어든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해 행사를 기획했을 뿐이라고.
이건 초집도식.
혹은 복귀식 같은 거라고.
그가 다시 발을 내디뎠다.
여전히 시선은 카메라다.
쩔뚝.
쩔뚝.
“경피적 시술을 두고 심장내과랑 아규가 있긴 한데……. 이 기회에 보여 드리죠.”
“뭐, 누가 하는 게 중요할까마는. 시술도 수술의 일종이니 흉부외과에서 하는 게 맞겠죠.”
그레이한 영역을 지우고.
흑과 백을 나눈다.
이진혁이 행하고자 했던 의도를 자신의 주장으로 포장하며 그를 보호한다. 그러고는 다시 움직였다.
한 발, 두 발, 세 발.
조금씩.
다시 조금씩.
발을 내디딘다.
경건해 보이는 한동수.
얼핏 본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거로도 보였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아직 할 수 있다고.
끝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했지만 복귀할 수 있다고.
그러니 일단 경피적 시술로 시작하겠다고.
여느 환자처럼 희망과 절망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고 있지만 할 수 있다고.
쩔뚝.
쩔뚝.
한동수가 끝내 제힘만으로 자리에 앉았다.
경탄과 탄식도 잠시.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카메라에 있었다.
“수술은 PMV(경피적 풍선판막 성형술)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죠. 뭐, 절개술로 진행하는 게 좋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예후에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회복도 빠르고 장점도 많지요.”
“좌심방의 전후 지름은 6.5cm로 심하게 확장돼 있고 석회화 침착도 보이며…….”
한참 계속된 브리핑.
여느 라이브 수술과 다르지 않은 시작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평소 말투가 아니라는 거.
타칭 랭곤 선생인 최두일이 그랬던 것처럼, 한동수도 기자들 앞에서 내숭을 떨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심장의 떨림을 감추기 위한 블러핑일 수도 있었다.
* * *
브리핑을 끝낸 한동수의 고개가 환자를 향했다.
의료기관의 사정에 따라 집도의가 변경될 수도 있다는 동의서에 사인했을 테지만.
당황했을 터.
설명은 해야 했다.
“시술은 보통 1시간에서 2시간이 걸립니다. 상태에 따라 다르죠. 제가 갑자기 들어온 이유는…….”
한참 계속된 설명.
그사이 긴급 호출을 받은 김윤택이 심도자실을 나가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CS다운 행태가 계속됐지만, 다들 말을 아꼈다.
얼마 있지 않아.
3차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
한동수가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물론 진혁 또한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나선 게 분명한 한동수.
그와 자신.
그리고 환자와 CS.
이 모두를 위해 멱살을 잡고서라도 캐리할 생각이었다.
상념도 잠시.
한동수의 우렁우렁한 성량이 심도자실을 메웠다.
“뭐 해! 바로 시술 들어갈 거야! 마취부터 진행해!”
* * *
승모판막의 석회화 정도.
판막의 두께.
변형 정도.
환자의 바이탈 상태.
시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인을 가늠한다.
손을 놀리면서도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버든을 최대한 줄인다.’
짧은 상념도 잠시.
전신마취가 끝났다는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가 들리자 진혁이 움직였다.
빠르게 드랩(소독)한 다음, 늘상 그렇듯 대퇴동맥과 대퇴정맥에 천자 했다.
표면에 혈관이 있어 접근도 쉬웠고.
직경이 커 가이드 와이어를 쉽게 삽입할 수 있는 대퇴동맥과 대퇴정맥.
심장과도 연결돼 있으니.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렇게 세팅을 끝낸 다음.
진혁이 가이드 와이어를 집어 들었다.
집도의가 할 일이었지만 자신이 할 생각.
버든을 줄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해. 사정 봐주지 말라고.”
한동수의 목소리가 내리깔리자, 진혁이 움찔거렸다.
거기에 더해.
“너까지 환자 취급이냐. 어!”
타박까지 들려오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재기를 꿈꾸는 한동수.
자칫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가이드 와이어 내놔.”
“여깄습니다.”
곧바로 가이드 와이어를 건네는 진혁.
이를 받아 든 한동수가 움직이지 않자, 진혁이 물었다.
“저, 교수님?”
“어, 왜.”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알아. 근데……. 음……. 너무 좋아서 그래. 너무 좋다고.”
“……!”
포츠포셉과 메스를 오랜만에 잡고 감동했던 자신처럼,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동수.
그 순간은 지극히 짧았지만, 절로 코끝이 간지러웠다.
곧 상기된 얼굴의 한동수가 움직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이드 와이어를 밀어 넣는다.
빠르고.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니터를 보며 손을 놀린다.
가이드 와이어를 넣는 작업이 끝나자, 한동수가 손을 내밀었다.
“스완 간(Swan-Ganz) 카테터.”
“여깄습니다.”
폐동맥압을 측정할 수 있는 카테터. 자그마한 압력 센서가 달려 있다.
이어지는 건 피그테일(Pigtail) 카테터의 삽입.
심장 및 대혈관의 압력.
산소포화도.
심박출량.
동맥압의 변화까지.
모니터링 준비가 전부 끝나자, 진혁이 움직였다.
“조영제 들어갑니다.”
“바로 시작해.”
짧은 대답.
곧 조영제가 퍼지며 모니터에 비치는 혈관이 더 뚜렷해졌다.
승모판 성형을 위한 벌룬의 길이.
그리고 직경을 결정하기 위해 한참 모니터를 훑은 한동수가 말했다.
“8mm로 가지.”
“여깄습니다.”
미리 넣어 둔 가이드 와이어를 따라 들어가는 벌룬 카테터.
좌심방으로 카테터를 밀어 넣기 무섭게 지시가 떨어졌다.
“헤파린 투약해.”
“바로 들어갑니다.”
“액트 반응 보고하고.”
“300초입니다.”
“혈압은?”
“아직 괜찮습니다.”
살짝 고개를 주억거린 한동수가 다시 손을 놀렸다.
푸시 앤 풀.
넣었다가 다시 잡아당기고.
다시 넣고는 이를 한참 반복한다.
좌심방에서 좌심실 안쪽으로 벌룬을 밀어 넣기 위한 행동.
J자 모양의 스타일럿까지 이용해 계속 반복했지만 쉽지 않았다.
판막 끝이 비후돼.
진입로가 비좁은 탓.
아니, 애초에 가장 어려운 구간이기도 했다.
위로 단순히 밀어내는 것과 다르게 다시 끝부분에서 아래로 내리깔아야 했으니까.
1분, 3분, 5분, 7분.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한동수가 금세 땀을 흘렸다.
평소라면 어림없는 일.
허나 체력이 떨어진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도, 마취과 의사도, 간호사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거즈로 이마를 닦아 주고.
한동수가 성공하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끝내 좌심실 내로 벌룬 카테터를 유도해 내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그건 한동수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것도 잠시.
그가 다시 손을 놀렸다.
이른바 Balloon Inflation.
풍선도자에 바람을 집어넣어 승모판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인플레이션 한 번당 15초라는 시간이 소요됐고 그때마다 다들 소리쳤다.
“폐동맥압 아직 정상입니다!”
“바이탈 멀쩡합니다!”
그건 마치 한동수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할 수 있다고.
꼭 재기하라고.
우리한텐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다들 목청 높여 소리칠 때.
갑자기 한동수의 표정이 굳었다.
바람이 빠져야 했거늘 풍선 도자가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아…….”
짧은 탄식.
진혁 또한 무섭게 얼굴을 굳힌 건 말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