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4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47화(247/388)
247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5)
심장내과장실.
진혁과 통화를 끝낸 레지던트가 급히 들어왔다.
그의 설명에, 심장내과장이 어이없어했다.
“모르는 일이다?”
“예, 이진혁 선생은 그냥 복귀 이벤트를 열려고 했을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CS는?”
“CS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논의했던 행사일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하!”
심장내과장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승모판과 대동맥 질환.
심장중격결손증과 협심증.
그리고 부정맥까지.
심혈관의 다양한 질환을 다루는 심장내과건만, 이러다 경피적 시술을 뺏기게 생겼다.
내과적 치료만 전담하게 생긴 것이다.
“박영진 과장은?”
“직접 물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치프인 장길만 선생을 통해 확인했는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다고? ER이 1차 관문이야, 관문! 환자 상태에 맞게 뿌려 주는 곳이라고! 근데 어쩔 수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심장내과장이 당장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흉부외과야 그렇다고 쳐도, ER은 대체 왜 저런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한동수가 문제였다.
위급 상황을 대비해 외과에서 시술해야 한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궁지에 몰리진 않았으리라.
당장 기자들이 대서특필까지 했으니.
안팎의 처지가 곤궁했다.
사실 그로선 개소리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상황이 터지면, 응당 흉부외과를 부를 터.
만일을 대비해 모든 시술을 흉부외과에서 해야 한다니, 정말 개뼈다귀 같은 소리나 다름없었다.
열이 뻗칠 대로 뻗친 그가 분노해 소리쳤다.
“옛날에는 말이야. 외과 의사들은 이발사였어, 이발사. 당장 동네 이발소를 가 보라고. 간판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말이야!”
시대에 맞지 않는 비하 발언.
CV 소속 레지던트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나가도 한참 나간 발언이기 때문.
그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심장내과장이 소리쳤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흰색은 붕대. 이발소 앞 입간판을 보라고! 옛날에는 의사로도 안 쳐 줬다고!!”
천하디천한 처지라는 말.
뭐, 옛날엔 닥터라는 말도 쓰지 못하게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외상 치료에 대한 중요성이 드높아진 뒤에야 인정받기 시작한 게 외과 의사지 않던가.
한참 인신공격을 뇌까리며 분을 참지 못하던 심장내과장의 성토는 30분이나 계속됐고.
결국 분을 못 이긴 그가 벌떡 일어났다.
“한 교수는 몰라도 박영진 과장은 만나야겠어! 만나야겠다고!”
* * *
박영진은 당분간 이진혁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경고를 줄 만큼 주기도 했고.
상황판 설치 안건을 가져와, 흡족하기도 했으니, 당분간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뭐, ER 소속도 아니라 GS 소속이기도 했고.
참의료지원단 파견을 철회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런 만큼 심장내과장을 접견한 박영진의 태도는 고까웠다.
“허허, 과장님. 이렇게 흥분할 일이 아닙니다만.”
“아니, 박 과장. CS랑 시술을 반반씩 하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나. 장비 도입 시점부터 의사결정된 사항이라 이 말일세.”
“그야 그렇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음?”
심장내과장이 미간을 좁혔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박영진.
저럴 이유가 없는데 왜 저러나 싶은 눈치다.
하지만.
“안 그래도 찾아오실 거 같아, 차트를 뽑아 놨습니다. 읽어 보시지요.”
박영진이 서류를 건넸다.
뭉텅이나 다음 없는 서류 뭉치.
이를 한참 살핀 심장내과장이 짙은 침음성을 쏟았다.
“이건.”
“뭐, 이진혁 선생이 밉보인 건 알고 있습니다만, 심하셨습니다. 한참 방송국에서 참의료지원단을 촬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인계를 거부하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그건.”
심장내과장이 무어라 변명하려고 했지만, 박영진이 냉큼 그의 말을 끊었다.
“보름 전, 유채환 환자, 이진혁 선생이 7번이나 전화했습니다. 근데 20분 뒤에야 내려오셨죠.”
“그, 그건.”
“9일 전에 김인식 환자도 똑같았지요. 5번 넘게 전화하다가 장혁준 선생이 대신 전화하니까 내려왔더군요.”
“…….”
“7일 전에도 마찬가집니다. 이태희 선생이 대신 전화해서 내려왔습니다. 근데 이번엔 어떻게 하셨습니까? 김무성 선생이 대신 전화해도 무시하셨지요. 다른 내과 계열이 보이콧한 것과는 정도가 다르다 이 말입니다!”
오래전 얘기를 들먹이다 최근 일까지 언급하는 박영진.
그가 할 말이 없다는 듯 멍한 얼굴을 하는 심장내과장에게 쐐기를 박았다.
“병원장님이, 아니, 기자들이 알면 참 좋아라 하겠습니다. 대체 환자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 이봐 박 과장!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리스크는 오롯이 제가 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당분간은 이대로 진행해야겠습니다.”
박영진이 축객령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자, 심장내과장이 터덜터덜 움직였다.
단순히 이진혁만 생각해서 저러는 게 아닐 터.
상황판을 설치하겠다고 운영회의에 안건을 올리더니, 그새 예산을 빌미로 누군가와 협의한 게 분명했다.
응급의학과 과장실을 나온 심장내과장이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았다.
“끄으으으윽.”
* * *
작심삼일이라는 말.
결심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려 시대 때는 고려공사삼일로.
조선 시대 때는 조선공사삼일로 불렸으니.
얼마나 오래된 말인지 능히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늘상 그렇듯, 명맥이 끊기지 않고 오랜 시간 내려오는 격언이란 건 인간 본성을 오롯이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흡연자는 다시 담배를.
도박꾼은 다시 도박을.
재수생은 다시 게임을 하며 3일 전에 했던 결심도 금붕어처럼 잊어버리는 게 사람이었다.
그런 면에서 진혁은 팔딱팔딱거리며 돌아다니는 김무성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고작 고등학교 때 첫사랑.
순식간에 지나 버린 세월.
뭐, 얼마나 가겠는가.
세상의 절반은 여자.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데.
“얍! 얍!!”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김무성은 여전했다.
불타오르고.
또 불타오른다.
심지어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거나 논문을 뒤지는 기적 같은 행동마저 하고 있었다.
그러니 김지연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쌤,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 뭐, 협박이라도 하신 거예요?”
“네? 협박이요?”
“아니, 김무성 선생님이요. 말리그가, 아니, 이게 진짜……. 음, 이런 경우는 처음 봐서 그래요. 갑자기 개과천선한 것처럼 굴잖아요.”
“아…….”
차마 불쌍한 놈이라고 할 순 없는 상황.
진혁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김지연이 새초롬한 표정으로 진혁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빨리 좀 말해 보세요. 뭔데요. 뭔데 저렇게 변한 건데요.”
“곧 돌아오겠죠. 뭐, 얼마나 가겠어요. 길어야 일주일이죠.”
“에이, 진짜 이번엔 다른 거 같다니까요. 자기 꿈도 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CS에 갈 거라던데요?”
“엥? 그래요?”
처음 듣는 말.
진혁이 황망한 표정으로 눈을 뻐끔거렸다.
CS에 지원할 예정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던가.
진혁이 애써 웃어 보였다.
“저놈 저거. 드립이에요, 드립.”
“드립이요?”
“네, 혼날 거 같으면 꼭 선수 치잖아요. 비인기과인 거 뻔히 알면서 지원할 거라고 말하는 게 저놈 특기라고요.”
“아이참, 제가 드립도 구분 못 하겠어요? 진짜라니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랭곤 선생님이 CS로 턴표 바꿨다고 난리 친 게 얼마 전인데요.”
“아, 진짜라니까요. 간식 내기 하실래요?”
갑작스러운 제안.
간식 내기야 빡빡한 원내 생활의 한 줄기 희망.
못 할 것도 없었다.
“콜입니다. 콜.”
* * *
여유가 넘치던 진혁이 김무성을 찾았다.
물론 김지연도 그 뒤를 졸졸 따랐다.
“무성아.”
“넹!”
“너 혹시 CS 간다고 했니?”
“아, 가야죠. CS로 가야죠.”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는 김무성.
하루에도 수십 번 지원 과를 바꾸며,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인턴이라지만, 너무도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였다.
외과에 간다더니.
언제 또 마음을 바꿨단 말인가.
진혁이 급히 되물었다.
“CS 싫다며. 그때 울려고 했잖아.”
“그땐 유창혁이 CS에 지원할 줄 몰랐으니까요. 학회에서 만나려면 그놈이랑 같은 과를 가야죠.”
“가서 뭐 하게?”
“밟아 줘야죠. 술기든 논문이든 뭐든 복수해야죠.”
서신대 후배인 유창혁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한참 바람을 넣은 건 그 자신.
진혁이 허망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라뇨!! 제가 얼마나 상처받은 줄 아세요? 와…….”
“…….”
“진짜 CS로 갈 거예요. 아, 근데 그놈이 마음을 바꿔 먹으면 안 되는데. 유창혁이 CS 가는 거 맞죠?”
다시 확인해 달라는 말.
진혁이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반겨야 맞았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CS.
당장 반기고.
잘해 줘야 했다.
하지만 마땅치 않았다.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고 떵떵거리며 약속했지만, 고향이나 다름없는 CS가 걱정되는 건 왜 그런 걸까.
게다가.
‘지원 동기가 그게 뭐냐고.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환자를 살리고 싶다거나.
써전이 되고 싶다거나.
심장 만지는 게 좋다거나.
여러 이유가 있어 지원하거늘, 너무도 유치했다.
하지만.
“이 쌤, 카드 주세요. 카드.”
김지연이 싱글벙글거리며 손을 내밀자, 진혁은 결국 지갑을 꺼내야 했다.
* * *
의국 안에서 벌어진 냉동 파티.
편의점에서 사 온 냉동만두.
스팸, 돈가스, 호빵.
3분 카레와 햇반까지.
다들 왁자지껄 웃으며 간식을 흡입했다.
교대로, 틈틈이, 짬이 날 때마다 들어와 게 눈 감추듯 먹고 사라진다.
24시간 교대 근무 체계.
자리를 전부 비울 순 없어 벌어진 일이었다.
진혁이 소보로 빵을 먹는 김무성에게 물었다.
“한 교수님이 아들로 삼은 사람 중에 몇이나 남은 거 같냐.”
“글쎄요. 한 열 명?”
“여섯 명, 고작 여섯 명이라고.”
“서른 번째라고 하시더니……. 다들 도망갔나요?”
기자 회견에서 한동수가 한 말을 기억하고 용케 되묻는 김무성.
진혁이 혀를 찼다.
“그래. 다 도망갔다고. 이게 그렇게 쉽게 정할 게 아니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고 싶은 게 없다고요. 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요.”
“그래서 고작 찾은 게 그거냐.”
“고작이라뇨.”
김무성이 도끼눈을 뜨고 버릇없이 방방 뛰자, 진혁이 탄식했다.
SSAT로 말 잘 듣고 팔로워쉽이 뛰어난 애들을 일차적으로 거르는 모 대기업과 다르게, 별난 사람이 많은 게 병원이었다.
잘 살펴보면 평범한 애들이 별로 없는 것이다.
당장 거지 몰골을 한 채 간식을 먹는 후배들만 해도 그랬다.
‘저놈은 컴퓨터 게임 중독이라고 했지. 저놈은 일본 애니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했고. 저놈은 바람둥이……. 저놈은 으으.’
정말 다들 평범치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야 뻔했다.
공부만 하다가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히거나, 저만의 세상에 빠지는 거다.
예전에야 예과 2년 때 미친 듯이 놀며 사회 경험을 쌓았다지만, 지금은 인기과에 가려고 혈안인 상황.
예과 때부터 공부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렇게 혀를 차며 의국을 나올 때.
갑자기 군대가 생각났다.
그래, 군대가 있었다.
고작 6주밖에 훈련을 안 받는다지만, 거꾸로 매달아야 겨우 지나가는 국방부 시계를 고려한다면, 사람이 되고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하하…….”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때.
EICU 지박령인 윤희철과 마주한 진혁이 당장 허리를 숙였다.
간식을 먹으러 나온 모양.
고개를 살짝 숙여 답례한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공수래공수거이거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건데, 뭘 이렇게……. 허허.”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
흰소리를 늘어놓고 지나가는 그를 보며 진혁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윤희철은 왜 군대에 가지 않은 걸까.
진혁이 그를 붙잡았다.
“저, 윤 선생님.”
“어어, 진혁아.”
“혹시 군대는 언제 가실 계획이세요?”
“응? 군대? 나 면제인데?”
“아…….”
신의 아들이라는 말.
군대를 두 번 가게 생긴 진혁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러다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뒤늦게 따라 나오는 김무성. 진혁이 서둘러 다가가 물었다.
“무성아. 너 혹시 면제는 아니지?”
“엥? 저 면제인데요?”
“……!!”
절로 욕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신의 아들이 왜 이렇게 많단 말인가.
거, 참. 부럽게시리.
아니, 그보다 야단났다.
우리 CS를 위해서라도 이놈을 제대로 사람 만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