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53)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53화(253/388)
253화. 강릉 분원 (6)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말.
보호자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며 간신히 붙들고 있던 정신줄을 그대로 놓아 버린 것이다.
“흐으으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초점도 잃은 채 고개를 조아리고 또 조아린다.
예후가 좋지 않건만, 일단 살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모습.
진혁이 설명을 이어 갔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설사 회복된다 한들 심장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만큼 위중했기에 하는 말.
냉정하지만 환자의 상태를 그대로 전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그 끝은 오열로 귀결됐다.
“흐으으윽. 흐윽.”
보호자가 꺼이꺼이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사고를 친 남편.
미우나 고우나 아이의 아빠였다.
한 집안의 가장인 것이다.
“흐으윽. 선생님, 남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저는, 저는 어떻게 하죠. 우리 애들은요!”
“엄마! 울지마! 으아아아앙!”
“선생님! 흐으윽.”
한참 계속된 오열.
진혁은 쉽사리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 * *
보호자한테 설명을 마친 다음 탈의실로 향했다.
다시 강릉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
말없이 옷을 갈아입을 때.
김현수가 적막을 깼다.
“표정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음, 무슨 표정이요?”
“지금 이 선생 표정이요. 조금 그렇잖아요.”
“……?”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는 표정 얘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아함에 휩쌓인 진혁이,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옷장 안에 있는 거울.
크기는 작았지만, 표정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아.”
순간 진혁이 탄식했다.
정말 표정이 안 좋았기 때문.
이건 뭐랄까.
기분 나쁜 찝찝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게.
미간은 일그러져 있었고.
입술은 비틀려 있었다.
눈썹에도 잔뜩 힘주고 있어, 누가 본다면 김현수처럼 물어볼 수밖에 없는 그런 표정이었다.
놀람도 잠시.
진혁은 거울을 보고 한참 또 바라봤다.
왜 일그러져 있을까.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을까.
예후는 좋지 않았지만, 손도 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환자를 살렸거늘.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면을 관조하며,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진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계속 자문하고 또 자문한다.
울부짖던 보호자가 마음에 걸려서?
아빠를 찾는 아이들 때문에?
정확한 건 알 수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타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모르는 게 인간이었다.
* * *
김현수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봤지만, 진혁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연어가 고향을 찾듯, 타임라인을 돌려 마음의 변화를 떠올렸다.
자문과 자답.
그 후에는 관조.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
처음엔 성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음주운전 사고로 잃었다는 사정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사감을 앞세운 의사.
정말 최악이었다.
환자는 오롯이 환자로 봐야 옳지 않겠는가.
한데 중간에 기준이 흔들렸고 마음이 출렁였다.
망망대해 위에 띄워진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몸을 뉘었다.
그건 울부짖으며 항의하는 유가족.
그리고 솜방망이 같은 처벌이 계속될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1등만 하고, 사법시험도 가볍게 패스했으며, 연수원 성적 또한 30등 안에 들었기에 판사가 된 이들은.
대중과 동떨어진 상식을 가진 놈들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살린 다음에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는 건 피하자고.
그리고 저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처벌탄원서를 내자고.
하지만.
– 선생님, 우리 애 아빠는요!!
– 흐으윽, 선생님!!
– 으아아앙! 울지마 엄마!
– 흑흑, 우리 그이가 죽으면 저는, 아니 애들은 어떻게 하죠.
보호자의 절규를 접한 뒤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환자도 가족이 있었고.
부양할 어린아이가 세 명. 아니 갓난아기까지 합치면 네 명이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처벌탄원서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기자들이 달려들 테고.
남은 가족에게는 가혹한 일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상황에 따라 줏대없이 흔들렸던 마음.
이 모든 게 영향을 준 게 분명했다.
“하…….”
진혁이 나지막하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의사라고 자부했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려 다니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변화무쌍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게 자책과 책망.
헛웃음을 켜고 있을 때.
최지봉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감과 양심이 교차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최지봉.
혹시 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
그러니까 철칙과 같은 마음의 기둥을 세워도 시시때때로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 * *
한참 계속된 침묵과 한숨.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김현수가 말을 걸어왔다.
“왜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요.”
“아직 한참 먼 거 같아서요.”
“뭐가요? 내 실력이요?”
“아뇨.”
진혁이 고개를 내저은 다음 말을 아꼈다.
허나 너무 짧은 대답이었을까.
김현수의 표정이 굳는 게 보였다.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상황.
자신이 그어 놓은 선을 여러 차례 넘었고.
완전히 아웃이라고 생각했던 김현수였지만, 진혁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 마음을 가리켜 천변만화라고 하죠. 워낙 변화무쌍하니까요”
“하루에도 천 번 바뀌고 만 번 변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네, 복잡다단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가변적이고 때로는 심층적이죠. 뭐, 때로는 표면적이기도 하고요.”
“갑,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표층 심리와 심층 심리 얘기는 왜 나오는 건데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얼굴이다.
진혁이 쓰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처벌탄원서를 쓸 생각이었어요.”
“유가족 때문에요?”
“뭐, 그것도 그렇지만 성태선 선생님한테 말했거든요. 이번엔 다를 거라고. 다른 판결이 나올 거라고요.”
한참 계속된 얘기.
그 끝은 김현수의 표정 변화로 귀결됐다.
* * *
질린다는 표정.
딱 그 표현이 어울릴 만큼 김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야 했다.
이진혁과 자신은 동기.
심지어 나이 또한 같았다.
한데 노친네들이 할 법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동나이가 맞나 싶을 정도.
아니 이건 뭐랄까.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아니라, 늙다리 노교수가 젊은이의 탈을 쓴 것처럼 보였다.
수양이 부족하다고 중얼거리고, 정신 수양을 더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똑같이 생각할 게 분명했다.
깨달음을 갈구하는 괴물이라니.
저건 괴물이 아니지 않던가.
김현수가 나직이 혀를 찼다.
그래.
어쩌면 귀신이 쓰인 걸지도 몰랐다.
틀딱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고 있었다.
* * *
최지봉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다음 1층으로 내려왔다.
곧바로 분원으로 갈 생각.
하지만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가 보였기 때문.
한참 눈물을 흘렸던 그녀는 1층 원무과에서 수속을 밟고 있었다.
문제는 짧은 탄성을 내뱉은 그녀도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거.
수속을 밟던 그녀가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의아함도 잠시.
아이의 손을 꽉 잡은 채, 그녀가 말했다.
“저, 선생님.”
“네, 보호자분.”
“저……. 제가 강릉에 살고 있어서요. 애를 돌봐줄 사람도 없고. 기왕이면 큰 병원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요.”
“아.”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면, 바로 병원을 옮기는 게 어떨까요.”
어느새 이성을 차렸는지, 오열하고 주저앉아 어쩔 줄 몰라 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고 그녀가 지금 묻고 있었다.
병원을 옮기는 건 어떻겠냐고.
뭐, 당연한 일이었다.
KTX를 타고 빅5를 찾는 환자가 쌔고 쌘 게 현실.
성심 병원보다 큰 병원.
그리고 집과 가까운 곳.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처지.
강릉 아신이 딱이었다.
하지만.
“저, 일반 병동으로 옮기더라도 그냥 여기 계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문.
진혁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동을 부렸던 유가족은 삼일장을 치른 뒤 떠나겠지만, 다른 피해자의 가족이 있다는 말을 했다.
병실을 오가며 마주칠 수 있다는 말.
급격하게 안색이 어두워진 보호자가 허리를 숙였다.
“선생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해요.”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가 연신 허리를 숙였다.
경황이 없어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 * *
강릉 분원은 여전히 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일하는 동기들이 보였고.
그들과 눈인사를 한 다음 곧바로 면담을 해야 했다.
분원의 원장님을 뵙고 인사도 드리고.
여러 과를 돌아다녀야 했지만 시간이 늦었기에 간략하게 진행된 면담은 ER의 과장이 대신했다.
“그래, 수술까지 하고 왔다고?”
“예, 과장님.”
“흐음.”
커피를 훌쩍 마신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이진혁 선생이 일을 잘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데 말이야.”
“…….”
“어디서 근무할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겠어.”
“예?”
“지금 GS(일반외과)에서 수련 중이니까, 일반외과에서 일하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이 말이야.”
일견 타당한 얘기.
진혁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외람되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든 편하게 말해도 돼. 뭐가 궁금하지?”
“같이 파견 나온 친구들은 전부 ER에 배정됐습니다. 아무래도 일선 대응에 로딩이 걸리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복귀하는 인력의 빈자리를 대체한다는 개념으로 온 거니까요.”
“뭐, 그야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나도 욕심이 나. 명분도 충분하고, 그냥 내 밑에 데리고 있고 싶다 이 말이야.”
“근데 왜…….”
“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야.”
순간 그 함의를 깨달은 진혁이 침묵했다.
ER의 펠로우인 성태선.
그가 걸린다는 말이었다.
사실 무슨 과에서 근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과장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GS에서 수련한다면 GS에서 근무하는 게 당연한 일.
끝없이 이어지는 파업 때문에 일이 틀어져도 보통 틀어진 게 아니었으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무성이 마음에 걸리는데.’
또라이 인턴이라 불리는 김무성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는 상황.
그를 혼자 내버려 두는 건 불안했다.
진혁이 한참 말이 없자, 과장이 다시 커피를 홀짝였다.
“자자, 피곤할 테니까 일단 들어가고. 어디서 일할지는 원장님과 면담할 때 정할 테니까. 뭐, 일단 가 보라고.”
축객령이었다.
* * *
운영과에 들러 기숙사를 배정받고 짐을 옮기려 했다.
다른 동기들은 이미 했을 터.
김현수와 같이 뒤늦게 움직였다.
하지만 성태선이 찾아오자, 진혁은 당장 얼굴을 굳혀야 했다.
혼자 왔다면 몰라도.
낯선 사내도 있었기 때문.
성태선이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했다.
“잠깐 대화 좀 했으면 하는데. 아, 김현수 선생은 자리 좀 피해 줬으면 좋겠고.”
심각한 얘기라는 말.
김현수가 자리를 피하자, 성태선 대신 그 뒤에 서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진혁 선생님이시죠? 저는 종앙일보의 함덕춘 기자입니다.”
뜬금없는 기자의 등장.
진혁의 눈이 커지자, 그가 무거운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그놈을 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서울에 혼자 나와 살긴 했지만, 조카 놈을 각별히 아꼈습니다.”
“아, 유가족이신 거군요. 그 환자는, 음. 아직 예후가 좋지 않아 지켜봐야 합니다.”
“뭐, 이진혁 선생님이 하신 일이니, 어련히 살겠지요.”
가족을 잃은 슬픔과 회한.
그 속에 숨겨진 자신을 향한 분노도 느껴졌지만, 진혁이 허리를 굽혔다.
“그보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런 얘기는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순덕이 고작 15살이었습니다.”
한참 계속된 넋두리.
조카 놈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가 구구절절한 사연에 담겨 있었고.
그의 신분이 기자였기에, 진혁은 한참 침묵해야 했다.
함덕춘 기자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처벌탄원서를 써 주십쇼. 그리고 저랑 인터뷰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여기 성태선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이진혁 선생님이 이번엔 다를 거라고 했다고. 성태선 선생님도 저랑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성태선이 겪었던 아픔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과조차 받지 못했지만, 집행 유예가 나온 현실.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놈이 공탁금을 기탁했지만, 성태선은 이를 찾아가지 않았고.
판결 후에는 그놈이 공탁금까지 회수해 갔다고 했다.
한참의 얘기 끝에 그가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그렇고. 열혈 의사로 국민적 신망이 높으시죠. 이진혁 선생님이라면 이번 일도 충분히 공론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자신도 그럴 생각이었다.
AI가 해도 판사 놈들보단 훨씬 나은 판결을 내릴 테니까.
하지만 사고 친 놈의 보호자, 그리고 그 가족이 생각나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이에 성태선이 나섰다.
“뭘, 망설이지? 나한테 이번엔 다를 거라고 한 거, 그거 거짓말이었나?”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