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5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54화(254/388)
254화. 강릉 분원 (7)
“왜 대답이 없지?”
진혁의 침묵이 계속되자, 성태선이 재촉해 왔다.
그건 함덕춘 또한 마찬가지.
눈을 치켜뜨며 무언의 압박을 가한다.
한숨을 내쉰 진혁이 고개를 돌려 함덕춘 기자를 직시했다.
“오늘이 첫날인데……. 일단 장례식을 치르는 데 집중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창 정신없을 때가 아닙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겁니다.”
“아뇨. 삼촌이라고 하셨죠? 상주는 지금 경황이 없을 겁니다. 뭐부터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할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
“그러니 가서 도와주세요. 형님, 아니 형수님 곁에 있어야 합니다.”
무어라 반박하려던 함덕춘이 말을 아꼈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뻔히 예상됐기에, 급하게 움직였을 뿐.
졸지에 아들을 잃은 형과 형수는 지금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결국.
“일단 나중에 얘기하시죠.”
함덕춘이 한발 물러섰다.
이에 진혁이 고개를 돌려 성태선을 직시했다.
여리여리한 몸매와 다르게 매서운 눈빛을 띠고 있는 성태선.
그는 여전히 부모를 잃은 아픔에 시름겨워하고 있었다.
종천지통.
하늘 아래 부모를 잃은 슬픔보다 큰 고통은 없다는 말.
옛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하지만.
“환자 상태를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어차피 의미 없다? 인터뷰는 다를 텐데? 뭐, 이것도 죽으면 끝이라고 말할 텐가?”
“네.”
덤덤한 대답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인 걸까.
성태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거……. 회피하는 거 같은데? 아닌가?”
“…….”
“이번엔 다를 거라고 했던 말.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뭐 하러 얘기했지?”
또다시 반복되는 질문.
성태선이 약속을 지키라며 채근했지만, 진혁은 침묵했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와 지금 이진혁 선생의 태도는 대체 뭐가 다르지?”
“…….”
“뭐가 다르냐 이 말이야!”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개떡 같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
어쩌면 그들도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어쩌면 성태선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
일단 시간이 필요했다.
* * *
분원과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빌라.
짐을 정리하고, 김현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숨 쉴 때마다 나오는 하얀 입김.
강원도답게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으으. 춥다, 추워. 어디로 갈까요?”
“영업하는 데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국밥집은 어때요?”
“국밥집이요?”
“네, 소주나 한잔 마시죠.”
“……!”
술을 먹자는 말.
김현수가 놀라 진혁을 바라봤다.
성태선과 면담하고 뒤늦게 나온 이진혁.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잠시 후 도착한 국밥집.
관광지와 떨어져 있었지만, 24시간 장사를 하는 유일한 곳인 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쩌면 강릉 아신 병원과 붙어 있는 음식점이라는 게 클지도 몰랐다.
“이모님,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진혁이 국밥보다 술을 먼저 시키자, 김현수가 조용히 그의 안색을 살폈다.
곧바로 투입된 동기들과 달리 오프인 상황.
술을 마셔도 괜찮았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천재 의사로 소문난 이진혁과 술이라니.
정말 생소한 조합이었다.
김현수가 뒤늦게 문어국밥을 주문한 다음, 진혁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단둘이 술 마시는 건 처음이네요.”
“그러게요.”
“…….”
“…….”
이어지는 건 어색한 침묵.
진혁이 말없이 술을 푸자, 김현수 또한 조용히 대작했다.
한 잔, 두 잔, 세 잔.
여느 외과 의사처럼, 마시고 또 마신다.
환자의 죽음과 긴박한 상황이 주는 스트레스를 술 한 잔으로 푸는 건 오래된 전통.
어색한 공기는 술로 데울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소주병이 쌓여 갈 때, 진혁이 어색한 침묵을 깼다.
“면담은 어땠어요? CS에서 일하기로 한 거죠?”
“다른 동기들은 전부 ER로 배정된 거 같던데……. 뭐, 뻔히 사정 알잖아요.”
“뭐가요? 사람 없는 거요?”
“네, 여긴 더 심하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건 있어요.”
“다른 거요?”
“네, 지금 한창 촬영 중이잖아요. 그래서 뭐랄까. 좀 더 북적인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랬어요.”
김현수의 대답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촬영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의사형제』 몰라요? 주인공이 둘 다 흉부외과 의사잖아요. 드라마 촬영 중이라고요.”
“아…….”
뒤늦은 설명에 진혁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
공전의 히트를 친 의학 드라마가 있었다.
최고 시청률은 35%.
톱스타인 이애영과 장동권.
그리고 손지참이 나오는 드라마였다.
문제는 원 역사와 시기가 달랐다는 거.
진혁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현수가 설명을 이어 갔다.
“환자만 생각하는 열혈 의사. 출세에 눈먼 동생. 시청자들이 열광할 만한 소재죠.”
“흠.”
“뭐, 그렇다고요. 일단 마시죠.”
다시 시작된 어색한 침묵.
진혁은 말없이 술을 따랐고.
김현수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받아 들었다.
서로 한참 충돌했던 사이.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데면데면한 건 여전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병을 비워 내고 국밥도 바닥을 드러냈을 때.
김현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근데……. 성태선 선배가 뭐래요?”
* * *
진혁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레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기차 선로가 있어요. 김 선생은 선로를 변경할 수 있는 선로전환기 앞에 서 있는 거죠.”
“네? 선로전환기요?”
김현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혁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냥 가정을 해 보자는 거예요.”
“…….”
“그대로 두면 선로에서 일하는 노동자 열 명이 기차에 치여 죽게 되죠.”
“…….”
“근데 선로전환기 버튼을 눌러서 선로를 바꾸면 세 명만 죽을 수 있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뜬금없는 질문.
김현수가 고개를 모로 젓다 뒤늦게 대답했다.
“선로를 바꿔야죠.”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서요?”
“네.”
너무도 간단한 대답.
다시 술잔을 기울인 진혁이 질문을 바꿨다.
“똑같은 상황이에요.”
“…….”
“다만 김 선생이 직접 누군가를 밀면 기차를 멈출 수 있다는 게 달라요.”
“직접 누군가를 밀어야 한다고요?”
“네, 왼쪽 선로 세 명. 오른쪽 선로 열 명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거죠.”
“음…….”
“한 명만 밀면 끝나는 거예요. 이번엔 어떻게 할 거예요?”
“그야…….”
김현수가 대답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선로전환기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그러니까 자신의 손을 직접 더럽혀야 하는 게 망설임을 불렀다.
생명의 무게를 정량적으로 계량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선택인 것이다.
그 모습에 진혁이 쓰게 웃었다.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
대다수는 김현수처럼 대답했고.
선로전환기를 조작하는 것과 달리 직접 한 사람을 밀어 없애는 걸 망설였다.
마침 자신이 지금 망설이는 것처럼 말이다.
김현수가 한참 침묵하자, 진혁이 성태선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은…….”
* * *
이진혁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김현수의 얼굴은 무거워졌다.
그가 무슨 의도로 선로전환기 문제를 꺼냈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직접 나서자니, 가해자의 가족이 걸린다는 거죠?”
“그렇죠. 뭐, 기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뻔히 보이니까요.”
“자극적으로 보도하겠죠. 어쩌면 가해자의 보호자를 찾아가서 인터뷰하려 들 수도 있고요.”
“갓난아기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찍어서 보도할 수도 있겠죠. 처음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냥 응징하고 바꿔야 한다고만 생각했죠.”
“…….”
“음주운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계속 양산되고 있으니까요.”
곧바로 술을 들이켜는 이진혁.
김현수 또한 소주를 털어 넣었다.
지금 이진혁은 망설이고 있었다.
직접 나서자니 아직 어린 보호자의 가족이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음주운전으로 인한 피해가 누적될 상황.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되는 걸 막기 위해선 나서야 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수가 침묵하자, 이진혁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 말했죠.”
“뭐? 누구요? 마이클 샌델이 누군데요?”
“공리주의적 정의가 정말 옳은 걸까요?”
“…….”
“선로전환기 버튼은 쉽게 누르고. 자신이 직접 누군가를 미는 건 망설이는 인간을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
“부작위 앞에 쉽게 그 태도를 정하고. 작위 앞에 망설이는 게 인간인데. 뭐가 정의고, 뭐가 옳은 거죠?”
계속된 넋두리.
김현수가 술을 들이켜다 말고 탄식했다.
그가 처한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이진혁은 진짜 별종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뭐랄까.
20대 중반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태도랄까.
노교수의 영혼이 씌인 게 분명했다.
* * *
어느덧 소주 6병을 비웠다.
이태희와 술을 마실 때면 이 정도쯤은 가뿐하다며 술부심을 부렸던 진혁도 취기가 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고.
그건 김현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현수가 벽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내일 분원장님하고 면담도 해야 하잖아요. 그만 일어나죠.”
“아뇨. 그보다……. 뭐가 옳은 걸까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태선 교수님도 그렇고. 그 기자분도 그렇고. 오래 못 기다릴 거예요.”
“으으. 나도 몰라요. 모르겠다고요.”
김현수가 방법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감쌌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지만, 해결책을 쉽사리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혁이 또다시 엉뚱한 말을 꺼냈다.
“갑자기 전염병이 전 세계에 퍼졌고 팬데믹이 선언됐어요.”
“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스페인 독감을 말하는 거예요?”
“네. 뭐, 그렇다고 치죠.”
진혁이 고개를 주억거린 다음 설명을 이어 갔다.
“백신을 맞으면 전염병 위험성이 현저하게 떨어지죠. 그런데 부작용이 있어요.”
“…….”
“그래도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대부분 백신을 맞았죠. 혹시라도 아이한테 옮길까 봐. 혹시 애한테 전염될까 봐 걱정된 거죠.”
“그런데요?”
“근데 아이들의 접종률은 떨어졌어요. 성인 접종률의 10%도 못 미쳤죠.”
“왜요?”
김현수가 의아한 듯 되묻자, 진혁이 쓰게 웃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래에 벌어진 일.
김현수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접종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아…….”
“부작위(Omission)로 일어난 일과 작위(Commission)로 선택한 책임은 그 무게부터 다르니까요.”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으로 아이가 죽는 건 견딜 수 없었기에 그런 선택을 내렸다는 말.
다시 말해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일까 봐 접종을 망설였다는 말이었다.
그 함의를 뒤늦게 깨달은 김현수가 쓰게 웃었다.
“아까 그 딜레마 문제랑 똑같은 거군요.”
“그렇죠.”
“지금 회피하고 싶은 거죠?”
“……맞아요. 비겁하지만 그러고 싶네요.”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고뇌.
김현수는 한참 말이 없었고.
진혁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
“저……. 선로전환기 버튼. 그거, 제가 누르면 안 될까요?”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