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화(26/388)
26화. 새로운 시작 (6)
“태상아, 우리 막내 실력 어떠냐?”
“네?”
“센스 있는 놈은 싹부터 다르다더니! 우리 막내 실력이 어떠냐고!”
“아직 모르는 거 아닙니까?”
“뭐?”
“지난번에 CS에서 찍었던 놈도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뭐, 똑같이 도망갈지도 모르죠.”
오태상이 부정적인 말을 내뱉자.
정진석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서?”
“네?”
“그래서 우리 막내도 도망갈 거라고?”
“아, 그건 아니지만…….”
“우리 막내 도망가면 다 너 때문이다.”
정진석의 억지에 오태상이 황당해했다.
“와. 선배님. 저 정도는 다 하는 건데요.”
“진짜 다 한다고? 정말?”
“그, 그건.”
“다른 인턴들도 불러와서 물어볼까?”
“선배님!”
“이야. 오태상이 진짜 많이 컸다. 네가 인턴 때 이 정도로 했다고?”
정곡을 찌르는 말에 오태상이 얼굴을 붉혔다.
사실, 제 말에 설득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상아, 병원 소문 빠른 거 알지?”
“네?”
“누가 우리 막내 갈구면 내 귀로 바로 들어온다.”
“!”
“우리 막내도 누가 갈구면 바로 보고해. 이 선배가 든든한 방패막이 돼 주마!!”
“!!”
진혁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정진석을 보며 오태상이 기막힌 얼굴을 했다.
‘갈구지도 말라고? 대체 이진혁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데…….’
그렇게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진혁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배액병(Chest Bottle)과 연결관을 세팅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장 국소마취를 하려 했다.
그 모습은 마치.
“환자분, 조금 따끔하실 거예요.”
정진석의 말을 못 들은 체하는 거 같았다.
* * *
정진석이 라텍스 장갑을 착용하자.
진혁이 곧장 메스를 건넸다.
그러자 정진석이 손을 놀리며 입을 열었다.
“무작정 인씨전(Incision, 절개)하면 안 돼.”
“!”
“일단 피하조직만 걷어 내는 거야. 겉에만 살짝. 오케이?”
“!!”
사람이 없어 보조를 시키는 걸 떠나.
술기까지 알려 주려는 정진석.
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부담된다. 부담된다고!’
뭐든지 그렇듯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
술기까지 알려 줬는데 CS로 안 왔다더라.
배신하고 다른 과로 도망갔다더라.
뭐, 이런 유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이럴 때 해야 하는 행동은 하나.
진혁이 아무 말 없이 커브드 모스키토 포셉(Curved mosquito forceps)을 건넸다.
그러자 정진석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달라고 안 했는데?”
“…….”
“뭐. 좋아. 아주 좋아.”
곧 정진석이 갈비뼈 위쪽의 피하조직과 근육을 세로박리(splitting dissection)하기 시작했다.
수평으로 절개된 피하조직과 근육을 분리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한 번에 뚫으면 안 돼.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 알았지?”
“…….”
“느낌이 오면 그대로 멈춰. 다시 포셉으로 공간 확보하고. 필요 이상으로 깊게 넣으면 안 돼.”
계속된 설명과 이어지는 술기.
참다못한 진혁이 커브드 롱 켈리 클램프(Curved long kelly clamp)를 건넸다.
술기를 알고 있다고 티 내는 행동이었다.
수술 도구를 건네받고는 손을 놀리는 정진석.
사그락.
사그락.
진혁이 다시 타이밍에 맞게 스트레이트 켈리 클램프(Straight kelly clamp)를 건넸다.
거기에 더해.
피부를 뒤에서 앞으로 당겨 장력을 줄여 줬다.
몸 안쪽에 클램프를 넣기 위한 각도가 나오지 않을 때, 보조자가 처치자를 돕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음……!”
“…….”
“아니다.”
잠시 진혁을 의아한 듯 쳐다보던 정진석이 다시 손을 놀렸다.
그는 클램프를 흉강 안에 넣고는 한참 손을 놀린 뒤, 다시 손가락으로 안쪽 공간과 폐를 확인했다.
삽관하기 전, 마지막 확인 작업이었다.
“이제 삽관한다.”
“네.”
곧장 흉관(Chest tube)을 삽관한 정진석이 클램프를 풀어 호흡(Respiration)에 따라 공기가 흐르는지까지 점검했다.
이젠 수처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Anchoring 수처로 하면 돼. 할 수 있지?”
“네?”
“이제 네 차례라고. 마무리해.”
알려 주려는 태도에서 한 발 더 나간 상황.
진혁의 태도에 기시감을 느꼈는지, 정진석은 숫제 테스트를 하려 했다.
‘보수적인 병원이라며? 이렇게까지 한다고?’
당황한 것도 잠시.
자신이 실패하길 바라며 복수천자를 시켰던 오태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일이 자신한테만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었다.
아무리 보수적인 병원이라지만, 수습할 자신이 있으면 시킨다.
누군가는 이를 교육의 장으로.
누군가는 이를 혼내기 위한 목적으로 썼지만 말이다.
사실 시키지 않아도 문제였다.
배움의 기회가 없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뭐, 이 정도는 상관없겠지.’
곧, 진혁의 손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공을 정하는 건 제 뜻대로 할 생각이었다.
* * *
진혁의 손놀림을 보며 정진석은 혀를 내둘러야 했다.
‘대체 어디서 배우고 온 거야.’
진혁이 타이까지 깔끔하게 끝내자.
간호사가 해야 할 일마저 시켰다.
“흉강흡인기(Thoracic wall suction)는 18cmH2O로 맞추고 마무리하자.”
“알겠습니다.”
곧, 진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다.
흉관이 움직이지 않도록 환부를 테이핑한 다음 배액병을 연결했다.
그 뒤는 일사천리다.
Y자 관에 흉강흡인기와 흡입조절병을.
다시, 흉막삼출액은 배액병으로. 흉막 안에 차 있는 공기는 흉강흡인기로 빼낼 준비를 금세 끝냈다.
그렇게 순조롭게 모든 게 끝났건만.
배액병에 쏟아지는 액체의 색깔을 보고 다들 침음성을 토해 내야 했다.
“으음?”
“어, 이건!!”
“!!”
Primary Spontaneous Pneumothorax(일차성 자연 기흉)로 진단하고 처치한 상황.
하지만, 혈액이 배액되고 있었다.
기흉이 아니라 Hemopneumothorax(혈흉)이라는 말.
정진석이 당황한 얼굴로 따져 물었다.
“트라우마(Trauma, 외상)는 없었다며?”
“분명 확인했는데요.”
떨떠름한 오태상의 대답.
정진석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환자분, 혹시 충격이 있었다거나, 외상을 입을 만한 일이 있으셨습니까?”
“없, 없었습니다. 무,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환자가 겁을 먹자, 정진석이 대화를 중단했다.
하지만, 정적이 흐른다.
숫제 진단부터 다시 해야 할 판이었다.
.
.
.
침묵이 계속되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Spontaneous Hemopneumothorax(자연성 혈기흉)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chest PA(흉부 X-ray 영상)엔 air-fluid level(공기액체층)이 없었는데?”
“희귀 케이스 같습니다.”
“에이. 설마.”
정진석이 고개를 저었다.
일차성 자연 기흉이 자연성 혈기흉으로 발전할 확률은 2%에서 7%.
극히 낮은 수치였다.
게다가 엑스레이를 찍어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피가 흉강막 내에 고여 있었다면, 좌측 폐야에 공기액체층이 보여야 했다.
‘혹시 내가 실수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섣불리 판단하지 못하는 정진석을 보며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R3. 아니, 어제까진 R2였다.’
CS 기준으로는 아직 한참 배워야 할 연차.
펠로우는 돼야 제 몫을 할 수 있는 게 흉부외과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진석의 연차는 낮았다.
“정 선생님!”
“?”
“배액 속도부터 일단 조절하겠습니다. 압력을 줄여야 할 거 같습니다.”
“오케이. 일단 반으로 줄여.”
“네.”
진혁이 곧장 흡입조절병의 압력을 낮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흉강흡인기 내 버블링이 줄어들며, 배액병으로 쏟아지는 혈액 또한 확연히 줄어드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는 일차적인 조치일 뿐.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었다.
곧, 정진석이 입을 열었다.
“일단 수혈부터 하자!”
“네!”
그의 오더가 떨어지기 무섭게 진혁이 움직였다.
수혈팩을 갖고 온 다음 곧장 IV 라인(정맥 줄)에 연결했다.
이대로 계속 혈액이 배액 되면 저혈량성 쇼크가 올 수도 있을 터.
출혈이 있는 만큼 상응하는 혈액을 공급해 줘야 했다.
환자를 지켜보는 사이.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CT부터 찍는 건 어떨까요.”
“지금 바로 찍자고?”
“네. Congenital Vascular Malformation(선천성 이상 혈관)이 찢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
일차성 자연 기흉이 혈기흉으로 발전한 기전까지 짚어 내자,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 * *
선천성 이상 혈관이 찢어졌을 거라니!
CT도 찍어 보지 않고 어떻게 안단 말인가.
환자가 듣지 못하도록 진혁을 잡아끈 오태상이 뒤늦게 분노를 토해 냈다.
“인턴이 뭘 안다고 떠들어!”
“……!”
“누가 인턴 보고 생각하라고 했어!”
“……!!”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인턴이야!”
“죄송합니다.”
선을 넘은 건 사실.
진혁이 깔끔하게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오태상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고, 으르렁거림은 한참 동안 계속됐다.
결국, 보다 못한 정진석이 나섰다.
“오태상이. 내가 막내 갈구지 말라고 했지!”
“!”
“일단 교수님께 전화하고 올 테니까 기다려.”
“알겠습니다.”
정진석이 자리를 뜨자.
오태상이 고개를 휙 하니 돌렸다.
* * *
진혁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환자의 상태도 걱정됐지만, 인턴이라는 제 지위를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써 답답하면 안 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턴의 현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자신만만하게 액팅을 했고 정진석의 호의를 부담스럽게 여겼건만.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자, 마음이 심란했다.
‘이걸 어떻게 한다.’
한참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통화를 마친 정진석이 달려왔다.
“일단 CT부터 찍자. 블리딩이 멈출 수도 있지만 확인부터 하자고 하시네.”
일단 검사부터 하자는 결정.
다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응급으로 다짜고짜 밀어 넣은 CT.
덕분에 곧장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대미지를 입었다고?”
“그러네요. 하필 이 부분에 혈관이…….”
묘한 침묵과 감탄.
탄성이 어우러진 장내.
고작 인턴에 불과한 진혁의 의견이 사실로 증명되자, 정진석이 진혁을 직시했다.
“왜 Spontaneous Hemopneumothorax(자연성 혈기흉)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한데.”
“증상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혈액이 배액됐기에, 증상 그대로를 설명했을 뿐이라는 말.
정진석이 눈을 갸름하게 떴다.
“그걸 묻는 게 아닌데?”
“…….”
“왜 묻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그냥 네 생각이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봐.”
“…….”
“CT도 안 찍어 봤는데 왜 벽측늑막(parietal pleura)과 장측늑막(visceral pleura) 사이에 있는 이상 혈관이 손상됐을 거라고 생각했냐니까.”
침묵 뒤에 이어진 정진석의 집요한 물음.
대답이 궁색해진 진혁이 그럴듯한 핑계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