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0화(260/388)
260화. 강릉 분원 (13)
김무성을 한참 혼냈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놈은 만성이 된 게 분명했다.
항암제가 내성으로 효과를 잃듯.
이런 혼냄 따윈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는 게 명백한 것이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보고서를 제대로 못 썼다는 이유로 엄청 혼냈는데.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주식 창을 확인하는 여느 직장인처럼 돼 버린 것이다.
이를 깨달은 진혁이 혼내는 걸 멈추자, 김무성이 냉큼 고개를 들었다.
이제 다 혼냈냐는 표정.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진혁이 냉랭한 표정을 짓자, 그 순간 표정이 바뀐다.
죄송하다는 눈빛.
입술은 오므리고.
축 처진 것처럼 어깨마저 늘어트린다.
그뿐이랴.
인(人) 자 눈썹처럼 보일 정도로 눈썹에 힘을 푸는 게 보였다.
죄송해 죽겠다는 얼굴.
훈련된 연극일 뿐이다.
나직이 혀를 찬 진혁이 전략을 바꿨다.
“이제 안 가르쳐 준다.”
“네?”
“유창혁이한테 밀리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고.”
“아…….”
“뭐, 그 실력으로 붙어봤자, 뻔할 뻔 자지.”
진혁이 토라진 표정으로 등을 돌렸다.
서신대 CS에서 데리고 있던 유창혁.
그가 진짜 김무성의 여자 친구를 뺏었을 거 같진 않지만, 일부러 김무성을 자극했다.
효과가 있었던 걸까.
김무성이 등을 콕콕 찔렀다.
“아빠랑 약속했잖아요.”
“원래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거야.”
“와…….”
“와는 무슨.”
“진짜 안 도와주실 거예요?”
“어. 됐어. 나도 이제 안 해. 어후, 유창혁이 번호가 어딨더라……. 네가 어떻게 지내나 말이나 해 줘야겠다.”
진혁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전화번호?
있을 턱이 없었다.
삐삐 번호도 잊어먹은 지 오래.
아신 병원에 지원하며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됐다.
하지만.
“으으으!! 안 돼요! 안 돼! 안 된다고요!!”
효과 하나는 직방이었다.
* * *
다섯 가지 약속을 했다.
말투를 고칠 것.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
환자한테 진심일 것.
말이 나오지 않게 행동할 것.
열심히 할 것.
김무성이 애끓은 표정으로 반드시 지키겠다고 꿍얼거렸지만, 페널티 또한 걸었다.
이른바 삼진아웃.
세 번의 기회만 줬다.
그렇게 받아 낸 각서.
사진까지 찍어 증거를 남기자, 김무성이 꿍얼거렸다.
“와, 진짜 너무해요. 너무하다고요.”
“그동안 많이 봐줬다. CS에 오래 있다 보니, 이렇게 물렁해진 거라고.”
“네? GS가 아니라 CS요?”
“아니. 뭐, 그렇다고.”
진혁이 서둘러 제 실수를 수습했다.
사실 실수로 포장했지만, 후배에 목마른 CS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게 영향을 미친 게 분명했다.
계속된 인력난.
도망갈까 봐 잔소리만 했을 뿐, 너그러운 선배가 된 것이다.
허나 이젠 달라질 터.
김무성을 강하게 키울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렇게 한참 정신 교육을 한 뒤에야 돌아온 원내.
어느새 알레르기 내과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 * *
환자를 인계한 다음.
곧장 보고 라인을 통해 보고했다.
의료법 27조.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하고 있었고.
무자격자의 시술은 범법행위로 엄금하고 있었다.
문제가 될까 봐,
친분 때문에,
혹시나 일이 커질까 봐 망설였던 환자와는 입장부터 다른 것이다.
물론 김무성의 말이 걸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때다 싶어 개원의들이 논란을 키울 수 있었고 반발이 심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논할 계제는 아닌 상황.
어떠한 고민도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보고했다.
덕분에 한참 있다 돌아온 기숙사.
김현수가 막 자다 일어난 얼굴로 진혁을 반겼다.
“어디 갔다 왔어요?”
“잠깐 병원에요.”
“왜요?”
“성태선 교수님이 한 것처럼 연극을 하려면 인사를 드려야 해서요.”
“……?”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말씀도 드리고. 약속도 받았어요.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연극을 위한 밑밥 때문에 다녀 왔다는 말에, 김현수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요.”
“……?”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요?”
“뭐……. 멀리 돌아가는 게 때로는 빠를 때도 있죠. 니체가 말했잖아요.”
“니체가 그랬다고요?”
“네, 이것도 유명한 명언인데요.”
“음…….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요?”
김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들어 봤기 때문.
늙다리 귀신이 쓰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애써 감춘 채 그가 노트북을 켰다.
잠시 후 김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니체가 한 말이 아닌데요.”
“그럼요?”
“그냥 일본 번역가가 잘못 번역한 거래요. 와전된 거라고요.”
“아…….”
“악법도 법이라고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다는 희대의 번역 오류처럼, 전혀 없는 사실이라고요.”
“그래요? 그럼 니체가 원래 뭐라고 한 거래요?”
“모든 것은 구부러진 채 목표에 다가간다고 했어요.”
김현수가 따지고 들었지만, 진혁은 대꾸하지 않았다.
서울로 보내 달라고 하는 환자가 계속 있을 게 분명한 상황.
그 자신이 옳다고 여겼다.
* * *
3일 후.
강릉 주무진항 횟집.
오프일이 같은 이들만 모였다.
일종의 바람을 쐬러 온 셈.
불 켜진 항구가 가져다준 분위기와 달리, 장혁준이 볼멘소릴 했다.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장혁준 죽네. 장혁준 죽어.”
특유의 엄살.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너무도 장혁준다웠으니까.
하지만 뒤늦게 최재성이 대꾸했다.
말은 절지만, 마음씨 하나만은 착한 거북이.
아니 토끼가 된 거북이였다.
“장, 선,생, 갑,자,기, 왜 그래?”
“아니 강원도 사투리도 못 알아듣겠고. 툭하면 서울로 보내 달라고 하잖아. 야, 재성아. 너는 안 그러냐?”
“뭐, 나,도, 그,렇,지.”
“아효. 답답해. 답답해 죽겠다고.”
“뭐? 내,가?”
“아니, 너 말고. 환자들 말이야. 아후, 짜증 나.”
아신대 동기답게 반말을 찍찍하던 장혁준이 가슴을 탕탕 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 묘한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본다.
말없이 풍경만 바라보는 그.
괜히 심통이 났다.
“2호 동지, 지금 내 말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럼요.”
“방금 뭐라고 했는데요?”
“아이고 죽겠다고요.”
진혁이 다 들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대답하자, 장혁준이 툴툴거렸다.
“어후, 정이 안 가. 진짜 정이 안 간다고요.”
“왜 또 심술이에요.”
“그나저나 교수님들은 어떻게 구워삶았어요?”
“뭐가요?”
“아니, 왜, 그 연극이요.”
“아…….”
“어제도 연극한 거 맞죠? 갑자기 최종우 교수님이 내려와서 혼내는데, 정말 식겁했다니까요.”
진혁이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서울로 보내 달라는 환자.
한바탕 연극으로 가볍게 처리했다.
김현수는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했지만, 이보다 빠른 길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앞설 수 있는 게 우리네 삶.
모든 좋은 것은 구부러진 채 목표에 다가간다는 니체의 말도 크게 보면 결이 같았다.
방긋 웃은 진혁이 술잔을 기울였다.
“장 선생도 아는 사람 많잖아요.”
“아는 사람이야 많긴 한데…….”
“그럼 한번 시도해 봐요.”
“그게 좀 문제가 있어요.”
“……?”
“진짜 친한 건 같이 학교 다녔던 선배들밖에 없고. 교수님들은 대하기 어렵다고요. 진짜 혼을 낸다니까요.”
몇 번 따라 하려다, 처치에 실수가 있었고.
진짜로 혼났다는 말.
연극도 준비된 자만 할 수 있었다.
진혁이 나직이 혀를 차자, 장혁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에이, 퉤퉤. 더러운 세상. 가진 자만 더 가지고. 진짜 불합리하다고요.”
“……?”
“그 뭐시기. 『의사형제』 주인공들이 술기 가르쳐 달라고 했다면서요? 근데 싫다고 했고요.”
“아, 그건.”
“참 내, 진짜 그러는 거 아니라고요.”
괜한 불똥이 튀자,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연수 작가의 부탁을 거절했고.
그게 소문이 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뭐 한참 촬영 중인 상황.
장혁준이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혁이 의아한 낯빛을 띠었다.
“근데 그게 왜……. 장 선생이랑 무슨 연관이 있는데요.”
“아우, 나라도 소개시켜 주지. 진짜 그러는 거 아니라고요. 『의사형제』가 요즘 얼마나 핫한데요.”
“아…….”
“아는 또 무슨 아예요. 태희 누님! 아니, 이 선생님!”
“응?”
가만히 있던 이태희가 뒤늦게 반응하자, 장혁준이 젓가락을 들었다.
“눈치도 없고 애늙은이처럼 구는 이진혁 선생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사형이지.”
“으잉? 사형이라고요?”
“어.”
이태희가 생뚱맞은 반응을 보이자, 장혁준과 최재성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건 진혁도 마찬가지.
잘못한 게 하나도 없건만, 왜 이런단 말인가.
* * *
다음 날.
갑작스레 운영회의에 불려 온 진혁이 주위를 살폈다.
본래 참석자가 아닌 상황.
궁금증은 억누른 채, 조용히 구석에 앉았다.
‘왜, 나를 부른 거지?’
의아함도 잠시.
운영회의가 시작되자, 하품이 몰려오는 걸 참아야 했다.
그 달의 수익.
예상되는 내원객 수.
각 과의 이슈까지.
써전 출신이면서 이런 회의를 매번 하는 오지호가 존경스러울 정도로 딱딱한 보고가 한참 이어졌다
그렇게 지루함을 참고 있을 때.
무면허 시술을 받고 입원한 환자.
그러니까 성형 중독에 준하는 그녀의 상태가 브리핑 됐다.
“김영아 씨의 경우 필러 제거 수술 후에도, 레프트 첵(Left cheek, 왼쪽 뺨)에서 PUS(고름)가 배액 되고 있으며, 버팔로 험프(Buffalo hump) 또한 확인됐습니다.”
“버섯 증후군(버팔로 험프)이라는 게 참……. 목이 물소 혹처럼 툭 튀어나와서 생긴 별칭 아닙니까.”
“그렇지요.”
“제거 시술을 받았는데도 그렇다는 겁니까?”
“알레르기에 의한 염증 반응. 그로 인한 비정상적인 조직 성장 및 변화로 생긴 거라……. 일단은 지켜봐야 합니다.”
알레르기 내과장이 협진했던 이들을 한번 훑더니 설명을 이어 갔다.
“쿠싱고이드 피처(Cushingoid feature, 쿠싱 양상) 또한 확인됐지만, 코르티솔 레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뭐, 그건 다행이군요. 원인은 밝혀졌습니까?”
“네, 외인성 약물에 의한 이차성 부신 기능 부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당분간 우울증약은 중단시켜야겠군요.”
“일단 용량을 줄이고, 다른 거로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계속되는 브리핑.
언론의 관심이 쏠린 데다, 우울증을 겪고 있어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다.
친분이 있었던 무면허 시술자가 간호사 자격증이 있었다는 것도 거짓으로 밝혀진 상황.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환자였다.
얼마 있지 않아,
분원장이 나섰다.
“그건 그렇고 요새 참 시끄럽습니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분원장.
진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김무성의 우려처럼 피부 미용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개원의들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번 일을 증폭시키고.
시끄럽게 하는 것이다.
최초 신고자인 진혁을 한참 바라보던 분원장이 헛기침을 했다.
“그건 그렇고, 이진혁 선생은 말이야.”
“예, 병원장님.”
“그 협조 요청 다시 생각해 볼 순 없겠나? 드라마 주인공들한테 술기 가르쳐 주는 거 말이야.”
“아…….”
“홍보도 되고, 시끄러운 것도 잠재울 수 있고. 아주 좋은 기회 같은데 말이야.”
박연수 작가의 제안대로 하라는 말.
진혁은 그제야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개적인 곳에서 제안하면, 거절할 수 없기에 하는 행태.
이런 자리에서 물어본다면 괜히 힘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뭐, 체면 때문에라도 거절하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편지와 반찬을 건네주면서도 자신을 의심하던 보호자가 마음에 걸렸던 진혁이 다른 제안을 했다.
“그 일이라면 적임자가 있습니다.”
“음?”
“이태희 선생이 아신 병원 여신으로 불리고 있는데, 장혁준 선생과 같이 술기 교육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뭐?”
“그게 그러니까…….”
한참 계속된 설명.
이태희야 미모 때문에 워낙 유명했고.
장혁준은 인지도가 없었지만, 인턴 필독서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상황.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지만, 분원장이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결국, 거절인 셈이니까.
하지만 그때.
피부과 과장인 김운혁 교수가 끼어들었다.
“저도 그 생각에 찬성합니다만. 요즘 이진혁 선생은 말이 많지 않습니까?”
“음!?”
“뭐, 등에 칼을 꽂은 것도 그렇고. 그래 놓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자격자를 신고한 것도 그렇고. 이거 참, 얼굴을 들 수 없어 학회도 갈 수 없을 지경입니다.”
뜬금없는 저격.
진혁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김운혁의 성토는 한참 계속됐다.
“피부 미용 시장을 개방하고, 무자격자한테 시술을 허용하면, 저 환자처럼 될 거라는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개소리나 다름없는 말.
의대 정원을 늘리면 이공계에 지원하는 학생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원을 늘리면 안 된다는 말처럼.
단편적이고, 일부의 부작용을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 *
그렇게 끝난 회의.
진혁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평소처럼 지냈다.
하지만 엉뚱한 소문이 돌자,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거.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면서 정작 집도는 안 했다는 거.
모의 수술 외에 보여 준 게 없다는 말이 돌았다.
피부과에서 낸 악의적인 소문.
사실 초집도 외에는 항상 보조만 했기에 진실에 가까웠지만, 진혁은 다시 분원장을 찾았다.
Ultrasound Case Discussion.
이른바 초음파 증례 토의를 열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 소문이었지만, 자신을 음해하는 이들을 개박살 내 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