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2화(262/388)
262화. 초음파 증례 토의 (2)
두 번째 문제는 혈관종과 연결된 간낭종 문제.
세 번째 문제는 만성 간 질환 및 비장 낭종 환자에 대한 문제.
네 번째 문제는 지방간 및 국소적 지방침윤 문제였다.
각각의 주제는 쉬웠지만, 영상의 난이도는 어려웠다.
영상의학과 교수들.
그리고 복부초음파 세부 전문의 자격을 갖춘 교수들이 작정하고 문제를 낸 탓이었다.
쉬운 증례도 아니었고.
특이케이스만 고르고 골라낸 문제.
하지만 영상만 확인한 채.
부저를 누르고.
뒤늦게 문제를 듣는 걸 되풀이한다.
이에 좌중의 표정이 점점 변해 갔다.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혹은 등칼을 꽂았다고 여기는 이들.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이들이 전부 합죽이가 된 것처럼 할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게.
순서가 거꾸로였다.
문제를 먼저 듣고.
자신 있으면 부저를.
자신 없으면 가만있어야 했다.
심지어 대답 또한 신중히 해야 했다.
영상의학과 교수의 질문은 날카로웠고.
러프한 대답은 용인하지 않고 있었다.
대충 대답하면 추가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감점만 받고, 검증을 요구하는 이들한테 까일 수 있었다.
심지어 방송에 그대로 나간다면,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거늘.
아무렇지도 않게.
부저를 누르고.
또 누른다.
이는 상식을 벗어난 행태.
진혁이 다섯 번째 영상을 보자마자 똑같이 부저를 누르자, 다들 난리가 났다.
“와……. 진짜 뭐 하는 거야!”
“또 짜고 하는 거 아니야?”
“방송 나간다고 유출이라도 했나?”
“와, 시발 이게 말이 되냐.”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감탄사.
물론 그 반응은 엇갈렸다.
누군간 욕설을.
누군간 감탄을.
누군간 의심했다.
하지만 문제를 들은 뒤에도 진혁이 침묵하자, 다들 열망에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거침없이 문제를 풀어 가던 진혁이 처음으로 위기를 맞이했다.
* * *
가장 신난 건 사회자였다.
그가 당장 소리쳤다.
“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진혁 선생이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감점입니다, 감점! 감점은 –20점! 애써 쌓은 점수를 그대로 날리게 됩니다!”
사회자의 호들갑.
다들 흥분된 얼굴로 이진혁을 바라봤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자, 그새를 못 참고 입을 터는 이들도 생길 정도였다.
“그럼 그렇지! 평이하게 낼 리가 없다고!”
“야야! 이진혁이 깝치다가 뒈지는 거 실화냐!”
“푸하하. 감점받으면 두 개밖에 못 맞힌 게 되잖아.”
“와, 속이 다 시원하다.”
잘됐다며 꼬시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
누군간 왜 이렇게 싫어하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기득권을 포기하자고 외쳤으니, 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외과 계열 선배들은 다들 진혁을 응원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좌중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영상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영상으로 돌아가면 되겠나?”
“셋 다 다시 보고 싶습니다.”
“뭐, 그러지.”
영상의학과 교수가 마우스를 조작하자, 진혁이 다시 스크린을 바라봤다.
담낭 제거술을 받았던 환자.
소화 불량을 주소로 내원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세 장의 라이트 키드니(우측 신장) 영상이 있었다.
이를 한참 바라보자.
영상의학과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시간을 줄 순 없어.”
“…….”
“자, 다시 묻겠네. 수신증으로 보이나?”
콩팥의 신우와 신배가 늘어나 있는 상태로 보이냐는 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래? 그 근거는?”
“영상 모두 무에코 병변이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혁이 초음파가 반사되지 않아 어둡게 보이는 영역을 가리켰다.
검은색으로 찌그러진 원.
네 개나 존재했다.
“그래서? 단순 낭종이다?”
말도 안 되는 유도 질문.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두 번째 영상에서 칼라 도플라로 혈류 신호를 확인했으니, 단순 낭종은 아니지요.”
“그래서? 하이드로에프로시스(Hydronephrosis, 수신증)라는 말인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확신에 찬 대답.
영상의학과 교수가 웃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고민했지?”
“사실 애매했습니다.”
“어떤 영상이?”
“첫 번째 장축 영상 때문입니다.”
무에코 병변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첫 번째 영상.
오른쪽에 떨어져 있는 찌그러진 음영은 심지어 팽창돼 있었다.
크게 확장돼 있는 것이다.
진혁의 설명이 한참 이어지자, 영상의학과 교수가 되물었다.
“연결 흔적도 보이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예, 만약 수신증이 맞다면 중앙부, 그러니까 지금 교수님이 가리키신 곳에 신우가 확장된 게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죠.”
“애매하다는 말과 다른 설명인데?”
“아……. 제가 애매하다고 표현했던 건 각도에 따라서 안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프로브 각도까지 고려했다는 말.
감독관이자 시험관인 영상의학과 교수는 침묵했다.
예상 범위를 넘기도 했고.
너무도 명확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사실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함정 질문도 쓱쓱 피해 갔고.
어떤 유도 질문에도 넘어오지 않고 있었다.
진혁이 세 번째 영상에 대해 브리핑하자, 그가 다시 추궁했다.
“우신정맥이랑 우신동맥 밑에 우레타(Ureta, 요관)가 딜라이트(팽창) 안 돼 있다?”
“네.”
“잘못 본 건 아니고? ”
“아닙니다. 위쪽은 진하고, 아래쪽은 연한 걸 보면 정맥과 동맥이 확실합니다. 살짝 굽어졌다가 다시 내려오니까요.”
“흠.”
“이 정도면 우레타(요관)가 연결돼야겠죠.”
“그래서 수신증이 아니다?”
“예.”
진혁이 짧게 대답한 다음 장내를 훑었다.
누군간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업에 반대하고.
미용 시장 개방을 주장하며 나타난 현상.
이 또한 넘어갈 산이기에 그저 웃고 말았다.
물론 그 웃음은 쓴웃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꼴값을 떠는 거로 보일 뿐.
한번 미워하게 되면 계속 미워 보이는 게 사람이었으니, 당장 객석에서 난리가 났다.
“허허. 여기서 웃어!?”
“와…….”
“지금 뭐야. 승자의 미소 같은 거야?”
“승자의 미소는. 야. 어디서 어색한 대사나 치고 있냐. 아우 재수 없어. 저 새끼는 진짜.”
한참 시끄러운 장내.
진혁이 다시 고개를 돌릴 때.
영상의학과 교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정답이야. 그나저나……. 궁금해서 그런데 말이야. 그럼 자네는 무슨 질환이라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보너스 질문이었다.
* * *
곧바로 대답해야 했다.
의심 가는 질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영상의학과 교수가 조소했다.
“왜 대답이 없지? 모르면, 뭐, 넘어가겠네.”
“아닙니다. 저, 근데…….”
“……?”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음?”
“룰에 없는 질문 같아서 그렇습니다.”
“점수가 어떻게 되냐 이 말인가?”
“옙.”
보너스 점수를 달라는 말.
그 함의를 알아챈 영상의학과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회자에게 다가갔다.
한참의 귓속말 끝에.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아, 이런 돌발 상황! 정말 싫습니다! 싫어요! 여러분들! 저는 전문 사회자가 아닙니다!”
“저도 의사입니다! 의사! 여러분과 같이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란 말입니다!”
“물론 교수님 중에는 저를 사회자로 생각하시는 분이 너무 많으시죠. 하핫.”
말장난에 가까운 너스레.
누군간 빵 터졌다는 듯 폭소했고.
장내가 한결 유하게 변했다.
말발 때문에 온갖 행사에 사회자로 끌려다니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환기시킨 사회자가 소리쳤다.
“자, 보너스 점수는 5점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보너스인 만큼 틀려도 감점은 없습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다시 내리자, 좌중의 시선이 진혁에게 쏠렸다.
진혁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대답했다.
“Peripelvic cyst(경계가 불규칙적이고 다발성으로 다양한 크기의 낭성 병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지? 페리펠빅 시스토치고는 사이즈가 큰데? 몰라서 그러나 본데 대부분 사이즈가 작다고.”
“아뇨, 페리펠빅 시스토가 맞습니다.”
“허허.”
아니라고 대답했건만, 맞다고 주장하는 상황.
영상의학과 교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황당하다는 제스처.
관심을 환기시킨 그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뭐, 보너스 질문이니 감점은 없고. 바꿀 기회를 주겠네.”
“아뇨, 괜찮습니다.”
“페리펠빅 시스토가 맞다?”
“예. 특이 증례니까요.”
“뭐?”
“웬만한 증례는 문제로 안 내셨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이즈가 대부분 작죠. 근데 이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이 증례를 가져 와 변별력을 가져갈 생각이 아니었냐는 질문.
모두의 시선이 영상의학과 교수를 향했다.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리던 그가 뒤늦게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답.
정답이었다.
좌중에 정적이 차올랐다.
* * *
그 시각.
이진혁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권성철의 얼굴은 상상 이상으로 굳어 있었다.
개자식. 나쁜 놈. 배신자. 죽일 놈.
이진혁은 무슨 욕을 다 붙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었다.
감히 피부 미용 시장 개방을 주장하다니.
IMF가 끝나면 상황을 봐서 개업하려고 했던 그로선, 응징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고.
속만 끓이고 있었다.
한데 이진혁을 밟아 줄 기회가 제 발로 찾아왔다.
초음파 증례 토의.
누군간 초음파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하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세부 전문의 제도까지 시행하며 따로 전문의를 뽑는 이유가 있을 만큼 너무도 많은 케이스가 있었고.
시중에 나온 증례 또한 평생 공부해도 모자랄 만큼 차고도 넘쳤다.
사람마다 장기의 크기도 다르고.
조직의 반응 또한 다양해서 생긴 문제.
모든 패턴을 정형화시킬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런 연유로 많은 준비를 했다.
무리하게 연차를 썼고.
지난 일주일간 공부만 했다.
그뿐이랴.
나름대로 필승 전략도 세웠다.
물론 시간은 짧았지만, 자신 있었다.
그 자신은 서운대 출신.
의대생 중의 탑만 갈 수 있는 곳에 수석 입학했고 수석 졸업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강릉이 아니라 서운대에서 당당히 교수를 했을 인재 중의 인재인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원한만이 그의 동력은 아니었다.
갑자기 퍼진 소문을 들었고.
의협신문에서 낸 기사를 읽었다.
이진혁의 지난 몇 년간의 행적을 집대성하고.
의구심을 늘어놓은 기사.
악의적인 내용이 가득했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봤을 때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천재라고 칭해지면서도 외과 수술에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이진혁.
아무리 보수적인 병원이라도, 원한다면 기회를 줄 수 있는 교수님도 많았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남들과 같은 코스를 밟고 있는 이진혁이 이해되지 않았다.
파업 때문에 참의료지원단이 결성되지 않았다면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수련했을 거란 소리였으니까.
이는 모의 수술도 아니고 실제 수술.
그러니까 환자한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진혁이 했기 때문이지만.
이를 모르던 권성철은 이진혁을 밟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럴 때 할 수 있는 건 하나.
이진혁보다 부저를 빨리 누르는 것이었다.
영상이 화면에 띄어지기도 전에 부저를 눌렀다.
당장 사회자가 소리쳤다.
“아아!! 또다시 문제를 듣지 않고 부저가 울렸습니다! 앗! 그게 아닙니다! 이번엔 초음파 영상이 화면에 띄워지기도 전에 누군가 부저를 눌렀습니다!”
“앗!! 피부과 권성철 교수님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쇼! 권성철 교수님은 아직 펠로우(조교수)입니다!”
연이어 터지는 사회자의 호들갑.
이를 무시한 채 권성철이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곧바로 띄워진 영상.
그리고 문제의 출제.
헷갈렸지만,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음. 아니야. 이건 그런 케이스가 아니라고.”
오답이었다.
특이 증례답게 상식과 반대되는 초음파 영상.
곧바로 실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앗!! 이진혁 선생보다 성형외과 차인재 교수가 먼저 부저를 눌렀습니다!!”
“앗! 정답! 정답입니다!! 차순위 감점 –5점! 답변 성공 가점 10점! 총합 5점으로 차인재 교수가 점수를 획득합니다!!”
자신이 실패할 걸 대비해 부저를 먼저 누른 이들이 존재했다.
어떤 방식인진 몰랐지만, 미리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 * *
문제는 계속 출제됐고.
권성철은 영상도 보지 않고 부저를 눌렀다.
때로는 점수를 획득했고.
때로는 점수를 뺏겼다.
그 덕에 총합은 (-)를 기록한 지 오래.
하지만 다른 이들이 차순위로 줍줍을 하고 있었다.
진혁 또한 가만있지 않고 부저를 빨리 눌렀지만, 네 명이 게임기를 누르듯 미친 듯이 부저를 두드리니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들은 문제를 맞힐 때마다 환호했다.
Yes or No의 문제.
차순위 답변자가 틀린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진혁은 한참 혀를 차야 했다.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저를 저렇게 눌러 대다니.
품위도 없었고.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게임하냐! 게임해! 어!
다른 방식을 강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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