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4)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4화(264/388)
264화 초음파 증례 토의 (4)
갑작스러운 CS의 난동.
반응은 반 박자 늦게 터져 나왔다.
노교수는 뒤늦게 얼굴을 붉혔고.
부교수는 성을 냈다.
조교수는 혀를 찼고.
레지던트는 미친 거 같다며 수군댔다.
그리고 그 반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감히 저런 짓거릴! 우릴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짓을 벌인답니까!”
“맞습니다! 진짜 가만두면 안 되겠습니다!”
“암요! 암요! 그냥 행사도 아니고! 분원을 홍보하는 자리가 아닙니까!”
이때다 싶어 소문을 퍼트렸고, 이를 증폭시키며 말을 옮기기 바빴던 이들.
제 허물엔 눈을 감고 타인의 허물에만 집착하는 게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듯, CS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제지했지만, 소용없을 정도!
결국, 토의는 중단됐고.
장내는 한참 시끄러웠다.
그렇게 다들 열을 내고 있을 때.
누군가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어쩌긴 뭘 어쩝니까. 혼쭐을 내 줘야지요!”
“무슨 수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야…….”
“안 그래도 사람이 없어서 허덕이는 게 CS입니다. 트러블이 생기면 우리만 손해 아닙니까?”
방법이 없다는 말.
누군가 혀를 찼지만,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뭐, 환자를 가릴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모를 일입니다. 다 같이 응환일 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CS라지만, 수용 한계가 있다?”
“뭐, 잘 아시지 않습니까. 환자만 보면 눈이 회까닥 뒤집히지만, 워낙 인력 부족이…….”
날카로운 지적.
묘한 함의가 담긴 말이었다.
의사라면 그 뜻을 모를 수 없을 정도.
결국, 다들 할 말을 잃어 했다.
응징하고 싶은데, 응징할 방법이 없었다.
* * *
명예도 좇지 않고.
돈도 원하지 않는다.
밥도 제때 먹지 않고.
건강도 돌보지 않는다.
오롯이 환자만 생각하는 CS.
그러니 협박도, 회유도,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다 꺼져 가는 초가집.
독야청정하는 선비.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
뒤늦은 현실 자각.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소릴 하긴 해야 하는데……. 크음, 큼.”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러다 피로스가 될 판입니다.”
로마를 공격해 승전고를 울린 피로스.
병력의 3분지 1을 잃었고 나라가 망할 뻔했다.
그만큼 상처뿐인 영광.
잃을 게 많은 싸움이었다.
찰떡같은 비유에 다들 헛기침을 터트리다, 고개를 돌렸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교수들이 모인 곳.
이진혁을 밟겠다며 펠로우를 내보냈으니, 그들이 나서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들도 헛기침을 터트리는 건 마찬가지.
그 모습에 누군가 나섰다.
“이봐, 박 교수. 이대로 가만있을 거야? 응?”
“…….”
“거긴 바이탈도 아니고, CS랑 접점도 없잖아.”
“접점이 없긴 왜 없습니까. 스킨캔서(피부암)가 흉부로 인베이젼(침범)되면 우리도 의뢰해야 합니다.”
“허허.”
“스킨 인펙션(Infection, 감염)도 흉강이나 렁(폐)으로 번질 수 있고.”
“…….”
“사르코이도시스(Sarcoidosis, 유육종증)도 그렇고 SLE(전신 홍반성 루푸스)도 CS랑 접점이…….”
자신들도 마찬가지라는 말.
누군가 성형외과 교수에게 말했다.
“이봐, 그쪽에서 나서. 어! 크게 문제 삼자고!”
“우리도 힘들어. 오목가슴(흉곽 기형 중 하나)이나 새가슴 성형도 그렇고. CS랑 논할 게 많다고.”
“그거야 그렇지만, 응환도 아니잖아.”
“흉벽 재건이나 브레스트 캔서(유방암)도 재건할 때 상의해야 돼!”
“뭐?”
“뭘 알면서 그러나. 체스트 익스카베이션(Excavation, 함몰) 환자는 CS 협조가 필수라고.”
자신들도 방법이 없다는 말.
또다시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렸고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때.
쐐기를 박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주인공은 오지호였다.
“우리가 먼저 했어야지! 에잉. 쯧쯧. 우리 애들은 뭘 하고 CS가 나서!”
“그게……. 허허.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외과장, 자네도 늙었어. 늙었다고.”
일방적으로 이진혁을 편드는 병원장.
그것도 본원의 병원장이었기에, 다들 눈을 끔뻑거렸다.
잊고 있었지만, 이진혁의 뒤에는 오지호 또한 있었다.
시발…….
도저히 건드릴 방법이 없었다.
* * *
증례 토의는 곧바로 시작되지 못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기 때문.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은 건 30분 뒤였다.
“자, 쉬는 시간 동안 여러 논의가 진행됐는데요. 일단, 참가자가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해 주신 펠로우 선생님께 박수!!”
갑작스러운 선수 교체.
물론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CS를 건드릴 순 없지만.
이진혁한테는 어떻게든 스크래치를 내기로 했기 때문.
물론 오지호가 무서웠지만, 차기 원장 선거에서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는 걸 누군가 상기시켰고.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다는 말을 했으니, 당연한 액션이었다.
사회자가 시청자의 이해를 도왔다.
“여러분! 펠로우(Fellow)의 사전적 정의가 뭔지 아십니까!”
“동년배, 동무, 동지, 일원, 동기, 동료.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병원에선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라는 의미로 씁니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보드를 딴 이들.
불과 2년, 혹은 3년밖에 차이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먹은 짬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홀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라면 그런 펠로우를 이진혁이 깨부쉈다는 거.
사회자가 다시 목청을 드높였다.
“자, 그런 펠로우 위에 있는 분이 누구냐! 하늘과 땅 차이긴 하지만……. 두두두두! 그건 바로 부교수님입니다!”
“자, 나오시죠! 복부초음파 세부 전문의!! 김익종 교수님입니다!”
초음파 분석에 일가견이 있는 김익종.
그가 자리에 앉자, 곧바로 라운드 III가 시작됐다.
상호 토론 방식으로 진행되는 라운드 III.
졸지에 변경된 1:1 토론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던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뭘, 그런 걸 묻나. 시작하지.”
“예, 교수님. 저는 림프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림프절?”
“예.”
짧은 대답 후, 진혁이 영상을 가리켰다.
“갑상선 실질이 전부 거칠고. 그 표면 또한 매끄럽지 않습니다.”
신체 내부 조직에서 반사된 음파로 생성된 영상.
부드럽고 균질할 경우는 정상.
불규칙하고 이질적이면 의심하고 봐야 했다.
하지만.
“실질만 가지고 병리 상태를 연관 지을 순 없어.”
“예, 다각도로,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노듀라라티(결절성 변화)도 보이고. 혈류신호 또한 증가돼 있습니다. 그게…….”
진혁이 다시 설명을 이어 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익종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혈류신호야 TSH(갑상선 자극 호르몬) 증가로 기인했을 수도 있어. Hypothyroidism(갑상선 저하증)일 수도 있다고.”
“예, 그래서 먼저 여기 아래쪽, 그러니까 하단에 있는 저에코 다발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곳보다 반사가 잘 안 된다는 건.”
“아니, 잠깐.”
“예, 교수님.”
“폴리클(Follicles, 갑상선의 기본 단위)이 파괴되면 그리 보일 수 있지 않나?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
“왜? 내 말이 틀렸나?”
계속되는 까칠한 반박.
진혁이 침묵을 유지한 채 김익종을 바라봤다.
복부초음파 세부 전문의.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있는 사내였다.
그것도 분원에서 말이다.
‘그냥 찍어 누르고 싶은 건가? 레지던트를 상대로 이겨 봤자, 꼴이 우스울 텐데?’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Lymphocytes(림프구)나 Plasma Cells(형질 세포)가 침윤돼서 파괴됐다는 말인데, 결국, 같은 의미로 보입니다.”
“아니, 스돈노듈라(Pseudonodule, 가성결절)일 가능성이 커.”
“스돈노듈라를 언급하신 건 하시모토 갑상선염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왜? 아닌 거 같나?”
“하시모토라고도 볼 수 있지만, 환자의 나이는 20대. 그것도 남자입니다.”
“통계의 함정에 빠졌군.”
김익종이 고개를 젓자, 진혁이 또다시 침묵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40대에서 60대 사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겪는 질환이었다.
하지만 염증에 의한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건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통계는 그저 통계.
김익종의 말처럼 남자도 걸릴 수 있는 것이다.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인정은 빠르군.”
“다시 말씀드리면, 중앙부 선상에 고에코가 보이는데. 혈류신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이브로스 티슈(섬유성 조직)가 증식된 거겠지. 호르몬을 강하게 분비하고 있으니까 칼라도플라 상에도 그렇게 보이는 거고.”
“그건…….”
진혁이 무어라 반박하려다 말고 다시 김익종을 바라봤다.
그의 의도가 뒤늦게 짐작됐기 때문이다.
‘일도 잘하고 아는 건 많은데, 싸가지는 없다? 뭐, 이런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건가.’
너무도 유치한 전략이었다.
* * *
일은 잘해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재는 많다.
싸가지가 없어서.
예의가 없어서.
지 잘난 맛에 살아서.
뭐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들은 알게 모르게 배제된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이다.
그러니 알아도 모른 척해야 했고.
나이 많은 이들에겐 수긍하고 순응하는 척해야 하는 게 조직 생활이었다.
가늘고 길게 생활하는 게 정답.
봉직의. 그러니까 월급쟁이 의사 또한 회사원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CS에서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저런 일까지 벌인 상황.
오히려 강하게 부딪쳐야 했다.
진혁이 말했다.
“네 번째 영상을 보시면 림프 노드(Lymph Node, 림프절)라고 할 만한 병변이 보입니다.”
“나는 애매해 보이는데? 무엇보다 하일룸(Hilum, 림프절에 보이는 문)이 없어.”
“하일룸이야 병리학적으로 볼 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래도 주요 징후 중에 하나야. 자, 보라고. 결절 내 에코도 약하고. 조밀하지도 않아. 무엇보다 혈류신호도 없어.”
“모양만큼은 전형적입니다.”
“아니, 콩처럼 납작하지도 않고. 외관이 미세하게 달라. 하시모토가 있는 환자라고.”
“아니, 그건…….”
계속된 토론.
그 끝은 부교수의 승리였다.
진혁이 주장했던 것도 일리가 있었지만, 지방종으로 밝혀진 것이다.
* * *
1:1 토론의 결과가 발표되자, 장내가 난리가 났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 죽겠다는 듯 웃어댔다.
“이겼다!!”
“아싸! 이겼다고!!”
“드디어!! 어!! 하하하!!”
내 일처럼 기뻐하고.
환호하는 이들.
그 모습에 이현아가 혀를 찼다.
“진짜 바보들인가?”
“네?”
“아니, 바보들의 행진 같다고요.”
“무슨 말씀을…….”
옆에 서 있던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현아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자, 보세요. 부교수랑 레지던트의 대결. 거의 팽팽했다고요.”
“그래도 이진혁 선생이 졌는데요.”
“에이, 질 수도 있죠. 애초에 애매한 영상을 문제로 내기도 했고.”
“…….”
“다른 자료는 전혀 없었는데요. 혈액 검사 결과지도 없었고. 안티 TPP인가. 자세한 수치도 보여 주지 않았잖아요.”
“…….”
“근데 대등하게 싸웠죠. 그럼 된 거예요. 시청자들이 모든 걸 판단할 테니까요.”
졌지만, 진 게 아니라는 말.
카메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아가 말을 이어 갔다.
“변호사도 그렇고, 판사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다들 자기들끼리만 아웅다웅 살다 보니까 일반인하고 인식이 다른 거죠.”
“…….”
“뭐랄까.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음……. 여포의 지력과 제갈량의 무력을 합쳤다고 해야 할까?”
이현아가 호호거리며 웃자, 카메라 감독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여포의 지략과 제갈량의 무력을 합쳐졌다니.
저들을 아예 바보로 보고 있는 게 아니던가.
정말 찰떡같은 비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