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5화(265/388)
265화. 초음파 증례 토의 (5)
환호성이 계속되자, 카메라 감독이 물었다.
“근데 PD님, 저 사람들 다 똑똑한 사람들인데요. 아무리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다고 해도 그렇지. 조금 그런데요…….”
“음? 뭐가요?”
“아니, 그렇잖아요. 부교수를 내보내 놓고 고작 레지던트를 이겼다고 저리 좋아하는 게……. 아무리 갇혀 산다고 해도 이상하잖아요.”
기시감이 든다는 말.
바보들이라서 그런 거라며 퉁쳐 버렸던 이현아가 장내를 가리켰다.
“에이, 감독님. 저기 좀 보세요.”
“네?”
“저기 왼쪽 중앙. 그리고 오른쪽 상단. 그리고 저쪽, 맨 앞줄 좀 보시라고요.”
“저기는 왜……. 아!! 반응이 전혀 없네요. 전부 외과 계열인가 보죠?”
“아뇨, 좌석도를 보니까 전부 내과 계열이에요.”
“음…….”
“원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죠. 누군간 하지 말자고 했을 거예요. 괜히 체면만 구긴다고요.”
이현아의 설명에 감독이 짧은 침음성을 토해 냈다.
진짜 그녀가 가리킨 곳은 반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근데 뭐,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게 세상일 아니겠어요? 대개는 무식한 애들이 목소리가 크고요.”
“침묵하는 다수가 옳을 때가 많다는 거군요.”
“그럼요. 저들은 아마 다 반대했을 거예요.”
김익종이 나서는 걸 탐탁지 않아 했을 거라는 말.
실제로 환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지, 많은 이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이현아가 이번엔 이진혁을 가리켰다.
“우리 막내 선생님 표정 좀 보세요. 다음엔 꼭 이길 것처럼 웃고 있잖아요.”
“아…….”
“두고 보시라고요. 원래 지는 게임은 안 하는 사람이니까요.”
이현아가 싱긋거리며 웃자 카메라 감독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문 용어가 가득한 초음파 증례 토의.
시청률은 꽝이라고 생각했건만, 생각보다 잘 나올지 몰랐다.
원래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땐, 다윗을 응원하는 법.
굳이 언더독 효과라는 어려운 말을 쓸 것도 없었다.
* * *
영상을 확인한 진혁이 선공을 가져갔다.
“저는 만성췌장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나는 만성 같은데? 췌장 변연(경계)이 불규칙해. 에코도 증가돼 있다고.”
“에코는 단순 염증으로도 증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 췌장관이 딜라이트(확장) 된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김익종이 손가락을 들어 영상을 가리켰다.
흰색으로 밝게 빛나는 고에코의 음영.
그사이 검은색의 기다란 관이 존재했다.
체액으로 채워진 탓에 무에코라 할 수 있을 만큼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진혁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상 덕(Duck, 관)보다 직경이 크고 굵긴 하지만, 결석이나 협착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결석이나 협착이 만성췌장염의 주요 소견인 걸 모르나?”
“고칼슘혈증이나 고지혈증 때문에 결석이 생겼을 수도 있죠.”
“만성췌장염 때문이 아니다?”
“예. 종양이나 낭종, 인접 조직이 압박되면서 딜라이트(확장)됐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정상 직경이라는 게 개인마다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췌장의 크기는 제각각.
별다른 기준점이 없었다.
김익종이 다시 영상을 가리켰다.
흰색으로 밝게 빛나는 에코.
검은색으로 표현되는 무에코와 다르게 고에코라고 부를 수 있는 밝게 빛나는 영상이 구름처럼 흩뿌려 있었다.
“저건 뭐로 보이지?”
“가스로 보입니다.”
“장관 내 가스가 찼다?”
“예.”
“아니, 아니야. 잘 보라고. 바로 밑에 음영이 있다고.”
밝게 빛나는 에코 밑에 있는 검은색 음영.
이른바 아티팩트.
초음파 산란으로 발생한 허상이었다.
“석회화 때문에 아티팩트(허상)가 생겼다고 하기엔 그 위치가 애매합니다. 위치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지저분하고요.”
“흠.”
“보통 균질된 패턴. 그러니까 깨끗하게 나와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흩뿌려 있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점을 이르는 말.
반박할 논리가 없던 김익종이 침묵하자, 사회자가 개입했다.
“자! 여기서 다른 각도로 찍은 영상을 하나 더 공개하겠습니다!”
프로브 각도를 45도로 기울여 찍은 새로운 화면.
당장 김익종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혁이 주장했던 대로 장관 내 가스가 맞았기 때문이다.
김익종이 다시 영상을 가리켰다.
“췌장 크기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커. 그래서 크로닉 판크레아라이티스(Chronic pancreatitis, 만성췌장염)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췌장에 염증이 계속되는 것. 그리고 이로 인한 구조적 손상을 우린 만성이라고 부릅니다.”
“…….”
“보통 만성췌장염 환자의 경우 췌장이 위축되고 소화 효소 또한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죠.”
진혁의 대답에 김익종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만성췌장염으로.
이진혁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
한데 그 주장과 배치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자, 다시 한번 정리하지. 자넨 만성췌장염이 아니라고 했어. 하지만 그 크기는 정상이지. 이건 자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영상이 아닌가?”
“아뇨. 저도 췌장이 위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저렇게 큰데?”
“착시 현상입니다.”
진혁이 빠르게 대답한 다음 관객을 훑었다.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는 이들.
그들과 달리 시청자들은 못 알아듣겠지만, 그들을 위해서라도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얼핏 그 크기가 정상으로 보이지만, 사실 지방 침윤에 따른 것이죠.”
“췌장 위축에 따른 빈 공간에 지방이 꼈다?”
“예. 환자의 나이는 71세. 나이가 많으면 췌장이 정상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비대하게 보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
“CT를 찍어 보면 초음파 영상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죠.”
정확한 설명.
알면서도 굳이 물어봤던 김익종이 쓰게 웃었다.
함정을 잘 피해 갔기 때문이다.
김익종이 침묵하자 이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이가 들면 노화가 진행되듯이 세포 또한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
“당장 아시니(Acini, 분비세포)만 해도 그렇죠. 아트로피(Atrophy, 위축)되면서 쪼그라든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흠.”
“세포 주변에 지방이 조금씩 축적되고 그 바깥에도 팻(지방)이 어큐뮬레이션(Accumulation, 축적)된 거로 보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대답하는데, 췌장 미부. 그러니까 꼬리 부분은 어큐뮬레이션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노화 속도도 다르고.
반응 또한 제각각.
그래서 의학이 어려웠다.
“정리하면 췌장은 위축돼 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만성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단순 노화로 인한 것이다?”
“옙.”
짧은 대답 후 진혁이 침묵했다.
사실 확신은 없었다.
초음파 외에도 혈액 검사 수치.
췌장 기능 테스트.
정상 효소 수치.
염증 수치까지.
확인할 게 천지였다.
하지만.
“앗!! 이진혁 선생의 주장대로 만성췌장염 환자는 아니었습니다!!”
“단순 노화로 인한 췌장 위축! 이번 토의의 승리자는 이진혁 선생입니다!!”
이번엔 그 자신의 승리였다.
* * *
토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담도 결석 및 기종.
담도 과오종.
언위부 간외 담관암.
전립선 석회화 및 낭종까지.
숱한 문제가 나왔고.
진혁은 팽팽하게 맞섰다.
그 자신의 주장에 확신은 없더라도 한쪽을 택해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주장하는 게 증례 토의.
그 결과,
때로는 이겼고.
때로는 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판독 능력 또한 완성돼 있다는 거.
이론적으로도 완성됐다는 걸 다른 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거다.
당장 객석에 앉은 이들이 술렁였다.
“하…….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자고 그렇게 말렸는데…….”
“크음, 큼.”
“이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 괜히 판만 깔아 준 게 됐다고.”
“그게……. 좀.”
다른 방법은 없다며, 어떻게서든 스크래치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합죽이가 된 것처럼 입을 닫았고.
괜히 부교수급을 출전시켜 이진혁의 체급을 올려 주지 말자고 했던 의사들은 한탄했다.
이대로 방송에 나간다면 어떤 반응이 일지 뻔히 보였기 때문.
그렇게 장내가 어수선한 가운데.
사회자가 소리쳤다.
“자,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문제! 전립선 비대증에 관한 문제입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이진혁 선생님은 아직 레지던트인데요.”
“그간 CS, 그러니까 심장과 혈관 쪽만 강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의 시작은 무자격자의 시술 논란과 함께 증폭됐는데요! 자, 마지막 대결로 소문의 진위가 가려질지 지켜보시죠!”
곧바로 화면에 띄워진 영상.
스크린을 확인한 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서렸다.
전립선 비대증.
전립선암과 같이 중복되는 특징을 보였고.
외관의 크기가 환자마다 달랐기 때문에, 기준을 일치화시키는 것도 힘들었다.
게다가 전립선이 균일하게 커지는 경우도 있었고, 비대칭적으로 커질 수도 있었다.
“비뇨기과도 아니고……. 저건 어렵겠지.”
“근데 김익종 교수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복부초음파 세부 전문의지, 전립선은 영…….”
“허허, 이 사람아. 그래도 짬은 무시할 수 없어. 밥그릇 개수만큼 차이 난다 이거야.”
“그렇겠죠?”
꺼져 가는 희망을 품고 눈을 빛내는 이들.
마지막 영상이 곧바로 화면을 메웠다.
* * *
커다란 두 개의 알.
그 경계를 검은색 음영. 그러니까 저에코대 경계면이 둘러싸고 있었다.
남성의 생식기를 찍은 영상.
진혁이 선공했다.
“저는 전립선 비대증(BPH)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러기엔 종물의 경계가 뚜렷해.”
“BPH라고 경계가 뚜렷한 건 아닙니다만.”
“안다니 다행이군. 자, 보라고. 전립선 종물이 방광으로 돌출돼 있어. BPH라면 돌출되지 않았겠지.”
“아뇨. 유래뜨라(Urethra, 요도) 주변을 보시면 무에코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전립선이 단순 변연됐다는 건가?”
“예.”
“염증에 의한 거겠지.”
“그럼 전립선 종물이라고 주장하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그 경계도 뚜렷하고. 확 튀어나와 있어. 누가 봐도 종물이야, 종물. 이건 토론할 가치가 없다고.”
김익종의 주장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때로는 자신이 옳더라도 숙일 줄 알아야 했지만, 양보할 수 없는 상황.
강하게 나가야 했다.
“각도가 잘못된 겁니다.”
“뭐?”
“프로브를 유리네리 블레더(Urinary bladder, 방광) 쪽으로 너무 눕혀서 생긴 착시 현상이 분명합니다.”
“조직이 과장돼서 관찰됐다?”
“예.”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김익종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은 복부초음파 세부 전문의.
아무래도 전립선 쪽은 약했다.
하지만 그건 이진혁 또한 마찬가지.
김익종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토론은 한참 계속됐다.
그렇게 얼마 뒤.
토의가 끝나자 다들 사회자를 바라봤다.
한참 침묵하며 좌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던 사회자가 소리쳤다.
“전립선 비대증이 맞습니다!”
“최종 결과도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총 8문제 중 5문제는 이진혁 선생이! 3문제는 김익종 교수님이 이겼습니다!”
“아! 이걸 레지던트라고 할 수 있을지……. 마치 노회한 의사가 젊은이의 몸에 들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이걸로 소문의 진위는 가려진 게 아닐까요! 아아!!”
사회자의 호들갑.
뒤늦게 환호성이 울렸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외과 계열 의사들.
그들이 주인공이었다.
일제히 일어나 환호하고.
손뼉을 치는 그들.
오지호 또한 기립박수를 치며 승리를 만끽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현아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감독님, 그거 아세요? 방금 인터넷을 찾아봤는데요.”
“네네.”
“삼국지 4에 나오는 여포 있잖아요. 게임 캐릭터 지력이 28이래요.”
“오오. 생각보다 높은데요. 제갈량은요?”
“제갈량 무력은 10이에요.”
합계가 고작 38이라는 말.
이현아가 키득거리며 웃자, 카메라 감독이 물었다.
“이걸로 소문도 잠재우고 능력도 입증한 건 알겠는데요.”
“네네.”
“이진혁 선생이 증례 토의를 개최하자고 한 거 같던데……. 맞죠?”
“그럼요. 똑똑한 사람이죠.”
“근데 CS는……. 음, 얘기 들어 보니까 무식하고 수술만 할 줄 알고 아무것도 모르던데요. 이진혁 선생도 약간 흉부외과의랑 비슷하던데…….”
이진혁도 같은 부류가 아니냐는 말.
너무 똑똑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당장 이현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환자만 생각하고. 멍청한. 아니, 흉부외과 의사들처럼 똑같이 구는데 너무 똑똑하다는 거죠?”
“네.”
이현아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아까 보니까 CS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야만인 취급을 하더라고요.”
“그렇죠.”
“근데 그거 아세요? 야만인. 아니 바바리안들도 주술사가 있어요.”
“음?”
“주술사는 제일 똑똑한 사람이 하는 거고요.”
“아…….”
“뭐, 바바리안으로 치면 주술사나 마찬가지겠죠. 호호.”
좋아 죽겠다는 표정의 이현아.
그녀의 예상대로 방송이 나가자, 세상이 또 한 번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