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6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69화(269/388)
269화. 채식은 위험해 (4)
뜬금없는 전화.
그리고 권유.
곽영준은 한참 말이 없었다.
하지만 곧.
[하아…….]깊은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건 침묵.
또 침묵이다.
결국, 진혁이 나섰다.
“만나서 얘기하시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지금 근무 중이죠?]“네, 내일 점심도 괜찮고. 저녁도 괜찮습니다.”
[점심에 보시죠. 일단 끊겠습니다.]뚜욱.
곧바로 끊긴 전화.
진혁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만나겠다는 건 일말의 미련이 남았다는 말.
일이 잘 풀린다면, 내과에도 내 사람이 생길 수 있었다.
물론 아침방송에 나온 사짜 같은 놈.
채식이 만능인 것처럼 외치는 놈도 징취할 수 있으리라.
조조가 그랬던가.
한 가지 행동으로 세 가지 결과를 얻는다고.
일석삼조.
아니, 일석사조일지 모른다.
* * *
다음 날 점심.
커피숍에 온 진혁이 시계를 바라봤다.
12시 30분.
벌써 30분이 지났지만, 곽영준은 오지 않고 있었다.
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건 다반사.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의 숙명.
마음 급하게 여길 이유는 없었다.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진혁이 수첩을 꺼냈다.
1. 영양섭취 불균형으로 인한 환자 증례.
2. 비타민 D 농도 상관관계 논문.
3. 방송에 나온 사짜 저격 및 환자 예방.
4. 곽영준의 본원 복귀.
써 놓고 보면 간단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이 하는 일.
늘상 변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뭐, 어떻게 대응하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터.
일단 곽영준부터 부러트려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열리며 패딩을 입은 곽영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곽영준은 표정부터 어두웠다.
뭐랄까.
그늘져 있다고 해야 할까.
뭐,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을 전부 뒤집어썼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병이라는 거.
억울하고 분해서 생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사람을 좀먹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얼굴과 몸에 열이 오르고, 때로는 소화불량에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커피를 홀짝거린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우실 텐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얘기는 음……. 피차 바쁜데, 본론만 얘기하시죠.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 겁니까.”
생각보다 까칠한 반응.
통화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생각이 바뀐 걸까.
부정적인 사고에 잡아먹힌 걸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진혁이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어 갔다.
“코웍은 기본. 혼자 일할 수 없는 곳이 병원입니다. 의논할 것도 많고. 협진도 필요한 곳이죠.”
“…….”
“적이 생각보다 많이 생기는 바람에……. 특히 내과 쪽은 항상 애를 먹고 있습니다.”
상대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조차 없는 상황.
먼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덤덤히 풀었다.
이에 곽영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선생 사정이 궁금한 게 아닙니다. 본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말. 그 말을 꺼낸 이유를 물었습니다.”
목도리도마뱀이 목을 크게 펼치고 경계하듯, 날카로운 말을 쏟아 낸다.
그만큼 상처가 큰 탓.
인간 불신에 시달린 탓이다.
진혁이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본원으로 돌아가셔서, 저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전화라도 잘 받아 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타교생이라 모르는 모양인데, 유배 온 사람이 되돌아가는 거, 전례 없는 일입니다.”
“전례야 만들면 그만이죠.”
“…….”
“최근에 Malnutrition(영양실조) 소아 환자를 살핀 적이 있습니다. 비타민 D 결핍에 따른 골다공증 환자도…….”
한참 계속된 설명.
곽영준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방송을 보고 따라 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건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 겁니까.”
“이걸 해결하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요? 방송에 나가서 그 사짜 같은 놈을 저격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부원장님이 반기실 리 없습니다.”
“시스템 속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니, 뭐. 방송 출연을 권할 생각은 없습니다.”
본원의 부원장인 부재일.
유명해지는 것만 목표로 삼는다고 오해해, 자신을 내쫓으려 한 인물이다.
뭐, 육선재의 청탁도 받았지만.
그만큼 쇼닥터.
아니, 방송에 나서는 의사들을 혐오했다.
한참 날을 세우던 곽영준이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일단 이걸 보시죠.”
진혁이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들자, 이를 확인한 곽영준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 * *
진혁이 꺼내 든 건 논문 초록이었다.
이른바 Abstract.
연구 목표와 그 방법.
그리고 결론까지.
의학 논문의 초록(Abstract)이라는 건 말 그대로 소개서 같은 거였다.
사용된 자료와 연구 방법.
그리고 결론을 250단어.
길게는 500단어 안에 집어넣어야 했으니까.
“이건……. 음. 이 선생이 만든 겁니까?”
“네. 간단하게 방향만 잡아 봤습니다.”
“케이스 리포트를 세 개나……. 이걸 언제 다 만든 겁니까?”
“상세한 리포트도 아니고 초록에 불과한데요.”
“아직 2년 차인데……. 논문을 많이 써 본 겁니까?”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말.
어느새 제 처지도 잊은 채 곽영준이 눈을 반짝였다.
환자와 라뽀를 쌓을 때 본 곽영준의 모습.
자신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래.
매출 걱정을 하는 개업의보다 봉직의가 어울리는 사람이 분명했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 건가.’
회귀해서 그랬다고 대답할 순 없기에, 진혁이 말을 돌렸다.
“여기 오기 전에 Medric(의학정보검색사이트)랑 Kmbase(의학논문데이터베이스)를 뒤져 봤습니다.”
“…….”
“영양 섭취 부족 및 일광 노출 부족. 특히 비타민 D 결핍으로 거동까지 힘든 케이스는 보고된 적이 없더군요.”
치매 환자를 돌보다 야간에만 외출한 여환을 가리키는 말.
곽영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타민 D 부족에 의한 거니까요. 사실 골연화증이랑 골다공증이 같이 오는 경우도 드물고. 정말 희귀한 케이스긴 하죠.”
“네, PubMed도 확인했는데, 찾아볼 수 없는 케이스였습니다.”
“미국도 보고된 적이 없다?”
“예.”
그 함의를 깨달은 곽영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걸 학계에 보고하고 본원으로 돌아가라는 겁니까?”
“네. 논문도 아니고 증례 보고야 금방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여기서 그쳐선 안 됩니다.”
“……?”
“찾아보니까 폐경기 여성. 그리고 시니어(노인)를 대상으로 한 비타민 D 상관관계 연구만 있던데요.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곽영준이 얼빠진 표정으로 반문했다.
“20대 여성, 아니 청년 대상으로 비타민 D 혈중농도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리포트 하자?”
“예, 최근엔 남자도 선크림을 바르던데……. 자외선 차단제 사용에 따른 영향도를 분석할 수도 있고.”
“…….”
“다이어트를 한다고 채식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상관관계를 분석할 수 있겠죠.”
비타민 D 부족에 따라 거동까지 불편해진 환자의 케이스와 엮으라는 함의.
곽영준이 말을 더듬었다.
“오, 오래 걸릴 텐데요.”
“그건 논문이니까 당연히 오래 걸리죠. 다만, 내분비내과장님이랑 같이 진행하셔야 합니다.”
“……!”
“원래 원하는 걸 얻으려면 상대방이 필요한 걸 내줘야 하는 법입니다.”
1저자는 양보해야 한다는 말.
너무도 정치적인 제안이었기에, 곽영준이 입을 떡 하니 벌렸다.
* * *
펠로우가 된다고 해서 신세가 달라질까.
아니, 아니었다.
레지던트나 펠로우나 피라미드의 하층에 있는 건 마찬가지.
논문도 대필해야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논문을 쓸 수 있는 아이디어는 취합해 보고해야 했다.
물론 시켜서 하는 게 대부분.
하지만 그걸 직접 제안하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에 더해.
“사짜처럼 방송에 나와 떠드는 인간도 저격하시죠.”
“부원장님이 좋아하실 거다?”
“네. 의사도 아닌데 저렇게 설치는 건 더 싫어하시겠죠. 아, 직접 부원장님한테 말씀드리라는 건 아닙니다.”
“내분비내과장님께 말씀드려라?”
“예. 그럼 이뻐하실 겁니다.”
너무도 확신에 찬 목소리.
곽영준이 다시 초록을 훑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야간에만 일하러 나갔던 환자.
완전 채식을 하다 영양실조로 실려 온 소아 환자.
창자병증 말단피부염 케이스까지.
위에서 좋아할 만한 사례가 분명했다.
“증례 리포트야 일주일 안에 만들 수 있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꼭 내가 그 대상인 이유. 그게 궁금하단 겁니다.”
“…….”
“본원에 다른 선배들. 아니 동기들한테 줘도 될 일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돌아가는 겁니까.”
그 이유가 궁금하단 말.
진혁이 한참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신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7명이 넘는 아이를 입양한 부모를 인터뷰한 기사였죠.”
“……? 갑자기 그건 왜…….”
“기자가 물었죠.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뭐가 달라질 거 같냐고. 세상은 안 바뀐다고.”
“그래서 대답이 뭐였습니까?”
“그건 직접 찾아보시죠.”
“……?”
“그럼 저는 이만.”
이유는 말해 주지 않은 채 진혁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선택은 그의 몫.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말할 게 없었다.
* * *
한참 멍하니 앉아 있던 곽영준이 일어섰다.
그가 들른 건 피시방.
스타가 한참 유행이었지만, 게임할 생각은 없었다.
자리에 앉은 그가 진혁이 말했던 기사를 찾았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
그건 길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왜 이렇게 많이 입양했냐고요? 세상이야 달라지지 않겠죠. 그래도 이 아이. 아니, 우리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저는 항상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입양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너의 세상은 달라질 거다.]“너의 세상은 달라질 거다? 아이가 보는 세상이 달라진다고?”
곽영준이 한참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뮤탈을 제대로 컨트롤하라며 고성이 들리고.
키보드를 내리치는 소리로 시끄러웠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부모의 품에서 자랄 아이들.
여러 사정으로 버려졌고.
누군간 고아원에서.
누군간 길거리에서 입양됐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보듬은 한 사내가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의 세상은 달라질 거라고.
네가 보는 세상이 달라지면, 그걸로 된 거라고.
그걸로 족하다고.
“하…….”
짧지만 깊은 한숨.
곽영준이 이번엔 이진혁에 관한 기사를 찾기 시작했다.
너무도 유명해 그 행보가 널리 알려진 이진혁.
지난 몇 년간의 행적을 살피다 보니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참, 피곤하겠다.
왜 저렇게 살까.
적당히 좀 하지.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저럴까…….
하지만 반대로 그 선의도 명백히 느껴진다.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는지.
어떤 뜻으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온몸으로 와닿는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그 마음.
몸짓과 손짓.
아니, 그 행보에 전부 녹아 있었다.
이진혁이 바라보는 세상은 따스했다.
아니, 너무도 열정적이었다.
자신한테 모든 걸 뒤집어씌운 선배를 증오하고.
지금은 전문의 시험 공부를 한다며 호텔에만 짱박혀 있을 그놈만 생각하며 이를 갈았던 자신과 대비될 정도.
곽영준이 벌떡 일어나 몸을 일으켰다.
밑져야 본전.
당장 움직여야 했다.
* * *
그렇게 일주일 후.
사복 차림의 곽영준이 진혁을 찾았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골이 상접해 보이고, 수염조차 덥수룩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그가 말없이 웃자 진혁이 물었다.
“뭐라던가요?”
“일주일 후에 복귀하라네요.”
“축하드립니다.”
진혁이 희게 웃자, 그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항상 적만 가득했던 내과에 내 편이 생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