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화(27/388)
27화. 새로운 시작 (7)
“얼마 전에 케이스 스터디를 했습니다.”
“뭐? 스터디? 병원 들어오기 전에?”
“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진혁이 한참 설명을 이어 갔다.
공기액체층이 확인되지 않은 chest PA를 근거로 기흉으로 인한 유착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출혈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다시, 공기주머니나 폐 첨부의 실질이 파열된 건 배제했다는 말을 덧붙이자 정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X-ray를 찍은 시점하고 흉관삽관을 시도한 시점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네, 그래서 얼마 전에 본 논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까…….”
“흠.”
간단명료하고 핵심만 탁탁 짚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정진석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인턴이 이런 판단을 내린다고?’
갓 병원에 출근한 인턴이 생각해 낼 수준이 아니었고 조금 더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똑같은 케이스의 환자를 공부했다는데 뭐라고 말할까.
정진석이 고개를 돌려 오태상을 바라봤다.
“블리딩이 잡힐 수도 있으니까 일단 킵하자.”
적극적인 처치보다 일단 지켜보자는 말.
진혁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오태상과 정진석은 눈치채지 못했다.
“저희가 킵하고 있을까요.”
“그래. 부탁 좀 하자. 우리 과에 사람 부족한 거 알잖아.”
“네, 이 선생 통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
“킵하기 전에 우리 막내 좀 잠깐 빌리자.”
“네?”
“네가 대신 킵 좀 서라고. 담배도 피우고 막내랑 얘기도 하고 올게.”
“아, 알겠습니다.”
“뭐 해. 잠깐 담배나 피우고 오자.”
진혁이 말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 * *
아신 병원 응급실 옆은 장례식장.
여느 병원의 장례식장과 마찬가지로, 망자에 대한 슬픔을 술로 달래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봤다면 오히려 건강을 챙겨야 했지만, 한 모금의 담배로 지친 심신과 슬픔을 달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정진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후우.
벌써 세 개비째.
줄담배를 피우는 정진석을 진혁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왜? CS 전공한다면서 줄담배라 이상해?”
“네, 사실 놀랐습니다.”
“뭐가?”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까요.”
“뭐? 크하하하.”
예상치 못한 멘트에 정진석이 크게 웃었다.
하지만, 외래 환자에게 늘상 금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진혁으로서는 입에 붙은 말을 했을 뿐이었다.
“이야, 우리 막내가 말이야.”
“…….”
“왠지 사회생활은 못할 거 같단 말이지. 어때? 힘든 건 없어?”
“힘든 건 없습니다.”
“진짜? 다른 과 레지던트들이 나처럼 움직인다고? 타교생이라 더 힘들 텐데?”
“뭐, 새벽에 전화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정규 업무가 아니라 추가 업무로 느껴지는 응급실 콜.
이를 환영하는 타과 레지던트는 없었고.
그 때문에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굳이 정진석에게 손을 내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정진석의 입장은 달랐다.
“내가 도와줄까?”
“아닙니다. 아까 오 선생도 표정이 안 좋았습니다.”
“뭐, 그놈이 그래도 내 말은 들을 거야.”
“…….”
“네 생각보다 더 친하거든. 갈구면 말해!”
자신감이 가득 찬 목소리에 진혁이 쓰게 웃었다.
오태상이 정진석의 말을 들을까?
아니었다.
레지던트가 티 내지 않고 인턴을 괴롭힐 방법은 수없이 많았다.
‘뭐, 뒤에서 괴롭히겠지.’
진혁이 쓰게 웃자 이를 눈치챈 정진석이 다시 제안했다.
“도와줄 수 있다니까?”
“스스로 풀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조만간 아실 겁니다.”
“조만간?”
“네.”
정진석이 궁금한 듯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진혁은 말을 아꼈다.
그가 알아봤자 좋을 게 없던 탓이다.
‘뭐, 어떻게 보면 사고를 치는 셈이니까.’
인턴이라는 불가촉천민보다 못한 제 처지를 바꿀 수는 없었지만, 노티를 거부하는 레지던트들을 처리할 방법은 떠올린 상황.
슬슬 ER로 돌아가고 싶던 찰나.
정진석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아프리카에는 희망봉이 있어.”
* * *
어찌 보면 쓰잘데기없는 이야기였다.
막내라 부르는 건 희망봉을 기다리는 선원의 마음 같은 거라나.
뭐, 그들만의 유희라고도 했다.
일종의 정신적인 자위에 흔들리지 말라며, 부담을 덜어 주려는 말에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밀당인가.’
결국, 한쪽은 밀고 한쪽은 당기려는 속셈.
뻔한 수작 뒤에 정진석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우리 과는 언제 도는 거냐.”
“네?”
“혹시 턴표에 없는 건 아니지?”
“10월입니다.”
“10월? 좀 아쉬운데. 아니다, 더 좋은 건가.”
“?”
갑자기 바뀐 태도.
반문할 겨를도 없이 정진석이 손을 휘저었다.
“뭐, 일찍 돌아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 정도로 힘든 겁니까?”
“그냥 다른 과보다 쪼오오금 힘든 정도?”
“쪼오오금이요?”
“아니, 아주 쪼오오오오오금?”
진혁이 눈을 가늘게 뜨자.
정진석이 희게 웃었다.
“환자 이상 있으면 바로 콜하고. 나 먼저 간다.”
“예, 알겠습니다.”
정진석이 손을 휘적거리며 다시 병동으로 향하자, 진혁이 서둘러 ER로 달려갔다.
환자가 걱정돼 그의 말은 반쯤은 흘려들었던 탓이다.
* * *
잠시 후, 정진석이 방금 있던 일을 늘어놓자, 한동수의 눈이 번뜩였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인씨전(절개) 부위를 짚었다고?”
“예, 그놈 물건입니다. 물건.”
“호오.”
“술기도 아는 거 같더라고요.”
“뭐? 술기를 알아?”
“네, 말 안 해도 필요한 걸 척척 건네주던데요? 그놈 꼭 데려와야 합니다.”
흥분한 정진석을 보며 한동수가 인상을 썼다.
“진석아.”
“예, 교수님.”
“나한텐 할 말 없냐?”
“예?”
“야 인마. 내가 그놈을 알아본 거 아냐!”
“아……!”
“어쭈!!”
“교수님! 안목에 감탄했습니다!!”
“엎드려 절 받기 잘 받았다. 킥킥.”
한동수가 다시 히죽거렸다.
환자를 살리는 걸 낙으로 삼고 있었지만, 그만큼 많이 떠나보내야 하는 CS.
농담이라도 하며 밝게 지내야 버틸 수 있었다.
“그래, 희망봉 얘기는 했고?”
“했죠. 아주 좋아 죽더라고요.”
“그래? 이것도 밀당이야, 밀당. 너무 당기면 끊어진다.”
“옙! 반드시 데려오겠습니다!”
정진석이 눈을 빛내자 한동수가 다 잡은 물고기를 쳐다보는 것처럼 흡족해했다.
닥술(닥치고 수술)만 하던 이들답게 너무도 단순했다.
* * *
응급실로 돌아온 진혁이 할 일은 명료했다.
이른바 킵이었다.
환자 옆에 붙어서 바이탈을 계속 체크하는 일이다.
그렇게 배액량을 계속 기록하고 있을 때.
환자가 말을 걸어왔다.
“선, 선생님.”
“많이 아프시죠?”
“네, 근데 왜 계속 옆에 계신 거예요?”
“그건…….”
진혁이 한참 설명을 하자.
환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특이 체질이라는 건가요.”
“특이 체질보다는…… 예, 뭐 비슷합니다.”
“수술할 수도 있는 거고요.”
“일단 지켜보자고 하셔서요.”
“아까 말씀하신 자연 지혈이요?”
“예. 맞습니다.”
피가 멈출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
사실, 수동적인 처치였다.
재출혈.
지속적인 공기 누출.
혈전농흉(Clot empyema).
미래에는 합병증 발발을 우려해, 초기에 수술하는 걸 선호했고.
진혁도 당장 수술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존적 치료를 택한 상황이었다.
‘미래는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하…….’
답답한 마음에 절로 나오는 한숨.
그러다가 든 생각은 단순했다.
‘확! 들이받아 버려?’
곧,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 들이받는 건 제 발등을 찍는 일.
뭐라 말한다 한들 들어 줄 사람도 없었고 설득할 논리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대책 없이 무작정 들이받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방법이 있었다.
* * *
진혁은 컨퍼런스가 시작될 때까지 꼼짝없이 환자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작된 컨퍼런스.
오태상이 진혁이 킵을 섰던 환자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 무섭게, 응급의학과 과장인 박영진이 반문했다.
“CS는 계속 킵하자는 입장인가?”
“네, 경과를 지켜보자고 합니다.”
“언제까지?”
“오전까지 블리딩(출혈)이 잡히지 않으면, 바로 수술실을 연다고 합니다.”
“그래?”
“네. VATS bullectomy(비디오 흉강경 기포 절제술)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박영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예상치도 못한 말을 꺼냈다.
“자자. 인턴도 들어왔으니 우리도 컨퍼런스다운 컨퍼런스를 해야겠지.”
“!”
“목요일부터 인턴이 먼저 발표하지.”
“!!”
다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말.
날카로운 지적.
디스커션(토론).
샤우팅까지.
살벌한 발표가 예상됐기에 인턴들의 표정이 굳었다.
공부가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오는 거다.
‘벌써 발표를 시킨다고?’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을 때.
인턴 교육을 담당하던 장길만이 손을 들었다.
“어떤 주제로 하는 게 좋을까요?”
“자유 주제로 10분씩 하지.”
“알겠습니다!”
곧, 인턴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범위를 정해 주지 않는 시험만큼 어려운 시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 * *
어느덧 퇴근 보고만이 남은 상황.
출근했을 때는 분명 피부에 광이 났건만, 불과 하루 만에 폭삭 늙어 버린 김현수가 세상이 떠나가라 한숨을 내쉬었다.
“하……. 죽겠다, 죽겠어.”
이를 들은 장혁준이 김현수를 타박했다.
“뭘 그 정도로 엄살이야!”
“뭐?”
“나는 24시간 내내 혼만 났거든? 죽고 싶은 건 나라고, 나!”
장혁준의 반박에 김현수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뭐래? 나는 더 혼났거든?”
“넌 혼만 났겠지. 난 욕도 먹었거든?”
“욕은 기본이고 환자한테 멱살 잡힐 뻔했다고! 이대로 가면 A턴이고 뭐고 C턴이야, C턴!!”
“벌써부터 성적 이야기가 왜 나오냐!?”
“성적이 중요하니까 그렇지!”
“지금은 살아남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
장혁준의 타박에 김현수가 입을 닫았다.
성형외과 전문의를 꿈꾸는 자신과 달리, 여차하면 개업할 생각을 하는 장혁준.
그가 제 처지를 이해해 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질 때.
문이 열리며 서슬 퍼런 얼굴의 오태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들. 지금부터 퇴근 보고합니다.”
“!”
“먼저 장 선생부터!!”
졸지에 첫 퇴근 보고를 하게 된 장혁준이 어색한 얼굴을 했다.
“저 선생님.”
“?”
“퇴근 보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장혁준이 말꼬리를 흐리자.
오태상이 말없이 마우스를 잡았다.
장혁준이 담당했던 환자 리스트를 띄운 그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이익환 환자에 대한 처치 보고부터 합니다.”
“네, 이익환 환자는…….”
떠듬거리며 퇴근 보고를 하는 장혁준.
오태상의 날카로운 질문에 버벅거리며 식은땀을 쏟아 내야 했고 샤우팅마저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한참 후.
진혁의 차례가 돌아오자 오태상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