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0)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0화(270/388)
270화. 채식은 위험해 (5)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곽영준도 3년 차.
알아서 처신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입양된 아이들처럼, 내가 보는 세상도 바꿔 주고 싶었던 겁니까?”
곽영준이 해맑게 웃으며 물어 왔다.
진혁이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사정도 딱했고. 도와주고도 싶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맞고요. 하지만.”
“……?”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 말씀드린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아…….”
“너무 솔직했나요?”
“아뇨. 오히려 좋습니다.”
내 편이 필요하단 말.
그만큼 불편한 게 많았다.
솔직히 말한 게 더 효과가 좋았을까.
곽영준이 진혁의 손을 다잡았다.
“전화는 꼭 받겠습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세요.”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은혜는 돌에 새기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술이나 한잔할까요?”
“네?”
“이제 한 배에 탔으니, 으쌰으쌰도 해야죠. 아, 물론 소문낼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관계는 비밀 아닙니까. 하핫.”
곽영준이 이를 드러내며 웃자, 진혁도 마주 보고 웃었다.
이제야 사람다워 보이는 얼굴.
생기가 그득한 표정이다.
그래.
화병 또한 질환 중 하나.
그 원인을 제거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투약 실수를 덮어씌운 놈이 아직 있을 텐데……. 잘 지낼 수 있으려나.’
약간 걱정은 됐지만, 내뱉진 않는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파고가 몰려오는 법.
그가 잘 헤쳐나갈 거라 여겼다.
* * *
곽영준이 본원으로 돌아간 지 며칠 후.
곧바로 의협이 움직였다.
협회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뿌린 것이다.
[무분별한 채식 권장! 오히려 건강을 망친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 환자 피해만 키워!] [완전 채식의 위험성!] [아신 병원! 완전 채식에 따른 환자 피해 사례 학계에 보고한다]평범한 제목과 달리, 매운맛이 그득한 기사.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야간 알바를 했지만, 완전 채식으로 병에 걸린 환자.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아이.
자극적인 소재기도 했지만, 이를 놓칠 기자들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부원장다운 선택.
스타의사보다 시스템.
아니 집단을 중요시한 모습다웠다.
문제가 있다면.
‘쉽게 식을 수도 있는데……. 흐음.’
다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거.
당장 음주운전 사고만 해도 성태선이 제 사연을 인터뷰하고 엄벌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언제 식을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참 고심하던 진혁이 눈을 번뜩였다.
그래.
그런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자신도 움직일 때였다.
* * *
오랜만에 오는 서울.
그 옛날 훈련소에서 지내다 돌아왔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다.
퀘퀘한 매연.
정신없이 움직이는 인파.
시끄러운 클랙슨 소리.
서울은 여전했다.
‘뭐, 다들 먹고사는 게 힘드니까…….’
짧은 상념도 잠시.
졸지에 함께 나온 김무성이 툴툴거렸다.
“아빠는 왜 만나시는 거예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근데 저는 왜…….”
“왜 불편해? 오랜만에 아버지도 뵙고 좋잖아.”
“……”
김무성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진혁이 혀를 찼다.
“나중에 돌아가시면 후회한다. 옷가지 정리할 때도 울고. 입관식 할 때도 울고. 산소 앞에서도 운다고.”
“에이, 아직 먼 미래인데요.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아직 정정해요. 아직 건강하시다고요.”
“어허. 그게 아니라니까.”
“꼭 겪어 보신 것처럼…….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
이번엔 진혁이 침묵했다.
그래.
와닿지 않으리라.
부모를 잃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감정.
겪지 못한 이들에겐 공허한 외침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상을 치르고 난 뒤엔 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있을 때 잘하라는 말만큼 뼈아픈 말도 없다며 뒤늦게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원래 겪어 봐야 아는 게 인간.
어리석은 중생이었다.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내가 차에서 내리자 진혁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김무성의 부친이자, 보건복지부 차관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 *
고풍스러운 일식집.
IMF에 무슨 호사인가 싶었지만, 별말 없이 회를 주워 먹는다.
어차피 얻어먹는 자리.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혜가 후식으로 올라오자, 김무성의 부친이 말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아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하고도 연관된 일이군요.”
“예. 의협에서 나서고 있지만, 언제까지 반응이 이어질지 걱정돼서 찾아뵀습니다.”
진혁의 걱정에,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당장 계도를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한 거지, 채식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방송사에 공문도 보내고 대언론 홍보 또한 강화하겠습니다. 그보다…….”
잠시 숨을 고르는 차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며 진혁이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셔도 됩니다.”
“행정명령도 내리고. 고발도 하고. 검찰로 이첩까지 했습니다. 한데 이놈의 파업이 끝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개원의를 제외하곤 대부분 복귀하지 않았습니까.”
“풀뿌리 의료를 담당하는 개원의들의 복귀 또한 중요해서 그렇습니다.”
“…….”
“해서 면허를 손보려고 합니다.”
핵폭탄 같은 선언.
진혁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면허를 손보겠다는 말.
그만큼 파장이 큰 사안이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를 박탈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
“이 선생님 의견이 궁금합니다만…….”
자신의 생각은 어떠냐는 말.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 * *
성범죄를 저질러도, 도둑질을 해도, 살인을 해도, 리베이트를 받아도, 대리 수술을 자행해도.
면허는 취소되지 않는다.
의사를 천룡인이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
그건 철밥통이나 다름없는 면허에 있었다.
따기도 어려웠지만, 박탈하기도 힘든 게 면허.
의사에게 있어 면허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기에, 진혁은 한참 말이 없었다.
이에 당장 차관이 물었다.
“부작용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예. 당장……. 음, 필수과에 타격이 갈 겁니다.”
“필수과요?”
“네. 외과 계열을 기피하는 현상. 잘 아시지 않습니까.”
“흠.”
“보상 문제도 있지만, 과실로 인한 책임 소재 또한 심각한 허들로 작용할 겁니다.”
“그래서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아신 병원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수가를 올리고.
제도를 개선하면 옳다구나라고 외과 계열에 지원할 거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워라벨. 그러니까 개인의 여가 시간 또한 중요시된다.
이전 세대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필수 요소일 뿐이지, 충분 조건으로 말씀드렸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
“예. 많이 부족합니다. 유인책이라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진혁이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자, 차관이 답답한 듯 넥타이를 여미었다.
“변호사만 해도 금고 이상의 죄를 지으면 면허를 취소하게 되어 있습니다.”
“…….”
“공인회계사도 그렇고. 공인중개사도 그렇죠. 법무사 또한 마찬가집니다.”
“변호사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면허 취소의 주체가 대한변협입니다.”
“그렇다고 자율징계권이라는 이름으로 의협에만 모든 걸 맡길 순 없습니다.”
생각보다 강경한 반응.
계속되는 파업과 누적되는 환자 피해.
단단히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진혁이 대답을 망설이자, 차관이 씨익 웃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입장도 아니신데요.”
“그건 아니죠. 외과 계열이 걱정될 뿐입니다.”
“흠.”
“파업도 거세질 수 있고. 반발이 심할 겁니다.”
“뭐, 입법도 쉽지 않은 문제라, 계속 고민 중입니다. 그래도 끝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계속 질질 끌 순 없습니다.”
목이 탔던 진혁이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선 한참 차관의 얼굴을 살핀다.
굳게 다문 입술.
형형한 눈빛.
작정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 * *
금고 이상의 죄를 지었을 때 면허를 박탈하겠다는 거.
방향 자체는 옳았다.
대리 수술과 리베이트가 끊이지 않은 건, 그만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에 생긴 일.
실수도 아니고 버젓이 연예인을 죽인 의사가 의료 행위를 하는 미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원칙적인 찬성.
부작용만 최소화하자는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필수과 수가를 더 올려 주셔야 합니다.”
“벌써 많이 올렸습니다. 건보 재정 또한 한정적이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개원의들이 요구하는 리베이트. 그러니까 약제 마진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그게…….”
한참 계속된 얘기.
결국, 반발을 억누르려면 갈라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됐다.
물론 이득을 보는 쪽.
그건 CS를 비롯한 외과 계열이었다.
그만큼 의료 과실로 인한 면허 박탈이란 허들은 장애 요소로 등장할 게 분명했으니까.
충분한 검토를 하겠다는 말로 차관이 자리를 뜨자, 김무성이 오들오들 떨었다.
“저, 이제 왕따 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아빠 아들인 건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흠.”
“의사 면허 박탈이라니……. 하…….”
깊은숨을 들이쉬는 김무성.
그답지 않은 모습에 진혁이 헛웃음을 켰다.
“그래서 대안도 제시했잖아.”
“으으. 그래도요. 레지던트 의견만 가지고 움직이는 건 아니잖아요. 정부가 왜 정부겠어요. 원래 불통의 대명사라고요.”
“그렇긴 하지.”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했지만, 진혁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의견을 물어봤다는 건 거꾸로 말하면 타당한 의견이라면 들어줄 생각도 있다는 말.
굳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을 터였다.
* * *
부모님도 만나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늦지 않게 돌아온 강릉 분원.
출근하기 무섭게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위기가 묘하게 들썩였기 때문.
의아함도 잠시.
정인태가 찾아와 속삭였다.
“선생님이 하신 거죠?”
“응?”
“왜, 요새 시끄러운 건이요. 곽영준 선생님 발령 난 것도 그렇고. 선생님이 하신 거 같아서요.”
“왜? 내가 했다고 소문이라도 났어?”
“아뇨, 저만 알고 있는데요. 역시, 제 짐작대로……. 선생님, 진짜 대단해요!”
그 자신이 했을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인태.
같이 VCR을 봤으니.
모를 수 없었다.
정인태가 눈을 반짝이며 존경한다는 티를 팍팍 내자, 진혁이 그를 구석으로 데려갔다.
“이거 비밀인 거 알지?”
“네, 저 입 무거워요. 그보다 요새 분위기 장난 아니에요.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요.”
“응?”
“곽 선생님 본원으로 발령 난 거요. 첫 케이스잖아요.”
“근데 그게 왜?”
“다들 갑자기 불타올랐어요.”
“……?”
“성과를 내면 본원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증명됐잖아요. 증례 보고서를 만든다고 다들 난리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효과.
분원으로 내쫓기면 안 된다는 이유로 본원의 기강을 잡았다면.
거꾸로 분원으로 내쫓긴 이들이 다시 올라갈 길이 없다며 개판으로 생활한 것도 사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모양이었다.
정인태가 한참 신나서 떠들자, 진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내 편을 만들 방법이 또다시 떠올랐기 때문.
진혁이 속닥이자, 정인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 방법이.”
운영의 묘미를 살리면서, 내 편을 늘릴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