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1화(271/388)
271화. 채식은 위험해 (6)
반응이 좋았던 정인태의 표정이 바뀐다.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은 오므린다.
미간 또한 격하게 찌푸린다.
걸리는 게 있는 모양.
기시감이 든 진혁이 물었다.
“왜?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음……. 분원 복무 만족도 조사를 한 다음에, 운영과장님한테 전달한다는 건데요.”
“…….”
“우수 인력을 선발해서 본원으로 올린다는 거고요.”
“어, 동기 부여도 되고. 명분도 확실해.”
“근데 설문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음?”
“이게 설문이 제대로 되야 보고를 할 수 있을 텐데……. 쉽지 않을 거 같아서요.”
“아…….”
합리적인 지적.
본원에 가고 싶어도 분원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 어느 곳보다 폐쇄적인 조직.
검사동일체를 주장하는 검찰보다 더 닫힌 사회였다.
정인태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도입을 주장한 사람한테 고마워할 테고. 그래서 내 편이 늘어난다는 건 좋은데요. 아, 좀 아쉽네요.”
“잠깐, 잠깐만.”
손을 들어 정인태의 입을 막은 진혁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어렵다면 돌아갈 방법을 찾으면 그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됐다.
‘뭐, 번거롭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순식간에 생각을 정리한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비공개로 진행하자.”
“네? 대놓고 하는 게 아니라 몰래 한다고요?”
“어, 내가 했다고 소문만 나면 돼. 뒤늦게 알려져도 상관없고.”
“아…….”
“곽 선생님이 본원에 복귀하면서 불타오른 이들도 자극하고. 희망도 심어 주고. 동기 부여도 하고. 나도 내 편이 늘어서 좋고. 환자는 환자대로 좋고.”
일석사조.
아니, 일석오조라는 말.
정인태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자, 진혁이 그의 어깨를 쳤다.
탐나는 인재.
부모님이 강릉에 계신다는 걸 알기에, 같이 가자고 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아, 왜 이렇게 탐내냐고?
김무성을 보다 보니 이런 후배가 귀하다는 걸 알게 됐다.
* * *
강릉 분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264명.
인트라넷 조직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일일이 설문해야 한다는 거.
자신이 벌인 일이라는 것 또한 어필해야 했기에,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동기들한테 부탁해야 하는 건가.’
계획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하면 그만.
진혁이 업무를 쳐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음 날 오후.
늘어지게 잠을 자다 일어나 동기들을 찾았다.
같은 빌라.
그것도 같은 숙소.
방만 나눠 쓰고 있어,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갑자기 웬 왁스질을…….’
다들 바빠 보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진혁이 물었다.
“어디 좋은 데라도 가요?”
“응? 오늘이 그날이잖아요.”
“……?”
“현수랑 재성이 솔로 탈출 도와주기로 했잖아요. 그때 술 마시면서 얘기한 거 기억 안 나요?”
솔직히 말해 기억이 안 났다.
신경 쓸 게 워낙 많았으니까.
당장 장혁준이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와, 머리도 좋은 사람이 왜 기억을 못 해요. 한번 보면 다 기억한다면서요.”
“워낙 흰소리를 많이 하니까 그렇죠.”
“어효. 일단 이리 좀 와 봐요. 머리 좀 만져 줄게요.”
“으으. 난 됐어요. 솔로 탈출 필요 없다고요.”
진혁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그 자신이 원하는 건 자만추.
헌팅 같은 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에이! 같이 나가는데 이렇게 나가면 안 된다니까요!”
“그렇긴 한데…….”
“아, 쫌!”
부탁할 게 있어, 거절도 어려운 상황.
결국, 반항을 포기했다.
왁스질 한 번에 설문 조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 * *
한겨울의 경포대 해변.
찬 바람이 송송 불고.
파도는 거칠다.
바람이 세게 불어,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
체감 온도는 영하.
헛걸음이나 다름없었다.
“으으. 춥다. 진짜 왜 이렇게 춥냐.”
“완전 망했는데? 야, 여자도 없잖아!”
“그냥 다시 돌아갈까?”
당장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추운 것도 문제였지만, 복장까지 불량이었다.
패딩이 아닌 멋들어진 롱 코트.
그리고 아신 병원 마크가 보이는 명찰.
의사라는 걸 티 내기 위해 코트도 잠그지 않은 게 추위를 불렀다.
결국, 소득 없이 들어온 카페.
다들 오들오들 떨며 따듯한 커피를 마시기 바빴다.
이어진 건 침묵.
또 침묵이다.
“…….”
“…….”
“…….”
“…….”
남자만 모인 자리.
대화는 필요 없었다.
풍경을 보거나.
핸드폰을 뒤적일 뿐이다.
그렇게 정적이 이어지자.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설문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장혁준이 먼저 반응했다.
“인적 교류를 건의한다?”
“네, 동기 부여도 되고. 지방 의료 활성화라는 명분도 있고.”
“음.”
“요새 곽영준 선생님이 본원에 복귀한 거 때문에 다들 난리잖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분위기 좀 바꿔 보려고요.”
“와, 왜 또 일을 벌여요. 그냥 조용히 지내자고요.”
“맞아요. 그걸 굳이 왜…….”
“나,도,별,로,같,아요.”
좋지 않은 반응.
다들 고개를 젓기 바쁘다.
모든 게 수월한 자신과 달리, 로딩에 시달리는 이들.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자신의 사정 또한 남달랐다.
‘당장 내가 불편해 죽겠다고.’
“일은 사람이 하는 거고. 감정이 상한 사람만큼 장애 요소도 없죠.”
“…….”
“누군간 전화 한 통화로 끝낼 일도, 누군간 장문의 메일을 쓰고 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거. 잘 알고 있잖아요.”
“내 편이 필요하다?”
“그렇죠. 기획안을 작성해 줬다고 고마워할 테니까요.”
“또 나선다고 말이 많을 텐데요.”
김현수의 반박.
모난 돌이 정 맞는 건 당연한 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뭐, 이미 갈 데까지 갔다.
병원장이나 운영과장이 뒤에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었고.
“뭐,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을 순 없으니까요.”
“흠.”
“공개적으로 할 순 없고. 일단 내가 주도한다고 말하면서 설문 좀 해 줘요.”
“264명 전부요?”
“레지던트나 펠로우까지만 해야죠.”
그 이상의 직급은 할 수 없기에 하는 말.
김현수조차 고개를 주억거리자, 진혁이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또다시 찾아온 침묵.
다들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아쉬움이 그득한 얼굴.
기껏 시간 내서 나왔는데 아무도 없어, 실망한 게 분명했다.
뭐, 여친이 있는 장혁준이야 상관없었지만.
혀를 끌끌 차던 진혁이 결국, 차관을 만났던 일을 꺼냈다.
그리고 그 반응은 정말 최악이었다.
* * *
토끼가 된 거북이.
항상 제 말이라면 군말 없이 따랐던 최재성조차 얼굴을 붉혔다.
“그,건,말,도,안,되는데. 외과 의사들, 전부, 죽,으,라는,거,잖,아요.”
“부작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긴 했어요.”
“그,래,도,요. 이,건,정,말, 말도 안,된,다,고,요.”
강하게 반발하는 최재성.
섭섭하진 않았다.
일반인에겐 당연한 면허 취소.
의사는 아니었다.
당장 장혁준과 김현수도 보건복지부를 성토하기 바빴다.
“와. 우리만 죽으라는 건데. 분쟁 조정 중재위원회가 있으면 뭐해요. 당장 판결이 이상하게 나면 나가리잖아요.”
“2호 동지! 진짜 따끔하게 말하고 왔어야죠.”
“헌,법,소원,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파업도 못 하게 막아버린다는 건데. 기본권을 제한하는 거라고요.”
“그렇게 되면 누가 외과를 지원하냐고! 내과야 안전하지만, 우린 아니잖아! 하, 진짜.”
쏟아지는 원성.
진혁이 그들을 말리려 했다.
정부의 의지는 확고한 상황.
대응이 필요했지, 욕만 해선 얻을 게 없었다.
하지만.
“어어어!”
“야야. 명찰 다시 차!”
“아, 조용히 좀 해 봐.”
순식간에 태세가 전환된다.
한참 열을 내던 이들이 커피숍에 막 들어온 이들을 보며.
옷매무시를 다듬고.
머리를 매만진다.
어처구니없는 상황.
아무리 젊은 혈기가 가득한 나이라지만, 애늙은이나 다름없는 진혁으로선 정말이지 황당하기만 했다.
곧, 진혁도 고개를 돌렸다.
상대는 두 명.
긴 생머리에 롱 코트.
눈부실 정도로 예뻤다.
하얀 입김을 호호 불어 대며 웃는 게 보통 미모가 아니었다.
물론.
‘하……. 진짜.’
‘어이가 없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인 건 변치 않았다.
* * *
어떻게 말을 걸지 속닥이고.
작전을 세운다.
열띤 토론.
그리고 코칭.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어, 긴장도 되고, 떨리는 건 당연했다.
장혁준을 제외한 둘 다.
아니 자신까지 합치면 셋 다 모태 솔로였다.
듣기만 하던 진혁이 끼어든 건 한참 후였다.
“갈 거면 명찰이나 빼고 가요.”
“무슨 소리예요? 우리가 어필할 게 뭐가 있다고요.”
“그게 좀 이상하잖아요. 병원 앞도 아닌데요.”
“아, 모솔은 일단 빠져요. 같은 모솔끼리 조언하는 거 아니라고요.”
되도 않는 소린 하지 말라는 말.
계속된 면박에, 진혁이 관심을 껐다.
그렇게 잠시 후.
말을 걸기 위해 떠났던 김현수와 최재성이 곧바로 돌아오자 진혁이 물었다.
“엥? 바로 까였어요?”
“그게……. 의사는 바람둥이 이미지라서 싫대요.”
“아.”
“친구들끼리 중요한 얘기를 할 게 있대요.”
중요한 얘기는 개뿔.
그냥 맘에 안 들어서 까인 게 분명했다.
풀이 죽은 김현수.
그리고 최재성.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 진혁이 밝게 웃었다.
같은 모태 솔로.
한없이 든든하기만 했다.
아, 웃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그 자신은 달랐다.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으니까.
암, 그렇고말고.
* * *
그 후에도 헌팅은 계속 실패.
핸드폰 번호를 받은 경우조차 없었다.
자리를 옮겨 다들 말없이 술만 마시자, 진혁이 못다 한 말을 이어 갔다.
“주식 시장에 이런 말이 있죠. 예측이 아니라 대응해야 한다. 대응의 영역이 중요하다.”
“갑자기 웬 주식 얘기에요.”
“욕만 한다고 해결될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도 이건 좀…….”
장혁준이 다시 보건복지부를 성토하기 시작하자, 진혁이 혀를 찼다.
“그럼 환자 버려 두고 파업할 거예요?”
“그, 그건.”
“지금 파업 반대 여론이 80%를 넘었어요. 사실상 100% 반대나 다름없다고요.”
“그야 알죠.”
다들 말이 없어진다.
어딜 가나 의사 욕.
파업에 반대하는 여론은 드높았다.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욕하는 것이다.
침울한 표정의 장혁준이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부작용만 설명하고 나왔어요?”
“아뇨, 수련 보조 수당을 지급하거나. 단기 해외 연수 비용을 지원하거나. 혹은 술기 교육비라도 줘야 한다고 했죠. 외과 계열한테요.”
“아니, 이건 돈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러다 외과에 지원조차 안 하면 어쩌려고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대응의 영역으로 치환해야 한다고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걸 왜 자신들이 고민하냐는 한탄.
어른들은 뭐하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그렇게 술을 마시길 수차례.
장혁준이 먼저 의견을 토해 냈다.
“2호 동지! 우리 근무 시간이나 줄입시다. 인턴 혁명! 아니, 레지던트 혁명의 기본 아니냐고요.”
“뭐, 그것도 좋네요.”
“김무성이를 확 잡고 있으니까. 제대로 말 좀 해 보라고요.”
자신보고 나서라는 말.
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자, 김현수마저 끼어들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병원장님한테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맞아요. 위에 보고는 해야죠. 이거 비밀로 하다간 큰일 날 거 같은데요.”
“실,무,자,도,이,미,알,고,있,을 거 같,은데. 빨리 보,고,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어차피 밝혀질 거라는 말.
보건복지부에 빨대를 꽂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곧 드러날 일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위에 보고할 생각은 없었던 진혁이 곧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본원과 분원의 인적 교류 기획안도 보고해야 하는 상황.
미리 컨센서스를 맞추는 것 또한 나쁠 건 없었다.
* * *
지극한 현실주의자.
돈이 있어야 병원도 굴릴 수 있다는 운영과장인 우용만과 통화했다.
당장 TF를 가동하겠다는 말.
그 자신 또한 회의에 오라는 말에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통화를 끝냈다.
다시 술잔을 들어 올릴 때.
“저, 네 명이세요? 저희도 네 명인데.”
갑자기 말을 거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먼저.
상대는 네 명.
그 자신들도 네 명.
어쩔 줄 몰라 하던 이들이 재빨리 자리를 마련한다.
테이블을 잽싸게 정리하고.
의자까지 세팅한다.
그렇게 졸지에 성사된 만남.
문제라면.
“어, 그. 저…….”
진혁 또한 말을 버벅댔다는 거.
김현수도 그랬고.
최재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혁준이 분발해 봤지만, 어쩔 수 없이 식어 버린 분위기.
자신을 알아보고 헌팅하자고 했던 이들이 지루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 보였다.
게다가.
“아…….”
여친인 정아름한테 전화가 온 장혁준이 통화를 하러 나가자, 무거운 침묵마저 찾아온다.
자신을 쳐다보는 김현수와 최재성.
뭐라도 해 보라는 눈짓에 진혁이 말했다.
“저, 채식만 먹는 게 얼마나 위험하냐면요. 그게…….”
지루한 환자 얘기.
여자 한번 제대로 만나 본 적 없는 진혁의 헛소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