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2화(272/388)
272화. 채식은 위험해 (7)
장혁준이 없었던 30분.
완전히 망해 버렸다.
“저희 그냥 따로 놀아요.”
그러니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이 휭하니 가 버려도 붙잡을 수 없었다.
어차피 김현수와 최재성을 위해 분투했던 일.
진혁이 고개를 돌려 동기들을 바라봤다.
“우리도 갈까요?”
“그냥 가자고요? 아직 장 선생이 안 왔잖아요.”
“나가면서 전화하죠. 뭐.”
“와.”
“왜요?”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현수와 최재성의 표정이 변했다.
“와, 본인, 잘,못,도, 모르고, 진짜, 너,무,해요.”
“맞아요. 거기서 그런 얘길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이 선생이 유명해서 합석한 거 같은데. 아이, 참.”
전부 자신 때문이라는 말.
원래 남 탓이 제일 쉬운 법.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낙지가 몸에 좋다. 전복이 최고다. 강릉에 오면 시장에 가야 한다. 엄마가 그랬다.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죠.”
“아니, 그건.”
“그리고 최 선생도 그래요. 평소보다 말을 절면 어떻게요.”
“긴,장,했으,니까, 그,렇,죠.”
고개를 감싸고 괴로워하는 둘.
일단 대화가 통해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건만.
산은 드높았고.
하늘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위치했다.
평생 공부만 했기에 생긴 일.
등가교환이 당연한 세상인 만큼 다들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진혁이 그들을 달랬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소득이요?”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좋다는 건 깨달았잖아요. 침묵해도 편한 사람. 가만히 있어도 편한 사람이 최고라고요.”
어쭙잖은 훈수질은 아니었다.
그 자신의 이상형일 뿐이다.
* * *
다시 돌아온 기숙사.
장혁준이 앓는 소릴 했다.
“으으, 추워. 추워 죽는 줄 알았네.”
장혁준이 씻지도 않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에 다들 눈을 치켜떴다.
“야! 너만 있었어도 이렇겐 안 됐다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 때문이라고!”
“혁,준,이, 너, 때,문,에. 망,했어. 망,했,다.고.”
“우리 이러다 선 봐서 결혼하겠다. 열쇠 받아서 결혼하는 거 딱 질색이라고.”
“흑, 완,전, 망,했,어.”
쏟아지는 비난.
장혁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여자 친구가 너무 뭐라고 해서.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왜? 뭐라고 했는데?”
“민머리라서 상관없다고. 그냥 모쏠 구해 주러 왔다고 했는데, 죽고 싶냐고 하더라.”
“아…….”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계속 밖에서 통화했다니까.”
정아름을 간신히 달랬다는 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졸지에 롱디 커플이 된 장혁준.
그 사정 또한 딱했다.
* * *
샤워를 한 다음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는 루틴 중 하나.
샤워 중에 연락이 왔을까 싶어 하는 행동이다.
병원에서 온 연락은 다행히 없었다.
문제라면 이현아가 문자를 보냈다는 것.
그것도 엄청 많이 와 있었다.
[대학생이랑 헌팅했다면서요?] [좋았어요?] [와, 내가 얼마나 도와줬는데!] [왜 말이 없어요? 지금 뭐 해요? 밖이에요?] [야! 좋냐! 어! 좋냐고!!] [야! 이진혁이 너!] [죽는다!] [!!]뒤로 갈수록 감정이 실린 문자.
정아름한테 들은 게 분명했기에, 진혁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변명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무어라 할 말이 없는 상황.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VCR도 보내 주고. 증례 토의도 촬영해 주고. 매번 도움만 받긴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빚진 게 많았다.
아무리 친해도 순식간에 끊어지는 게 인간관계.
그만큼 허망한 관계 또한 없었기에, 진혁이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딸깍.
“아직 안 자요?”
[왜 전화했어요?]“샤워하느라 답이 늦었어요.”
[그래서요?]“그냥 그렇다고요.”
[술 먹었으면 얌전히 잠이나 자요.]“아, 그게…….”
변명 아닌 변명.
이현아의 목소리는 금세 풀렸다.
[다이어트랑 완전 채식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고요? 진짜요?]“뭐, 재미없어하더라고요.”
[으이구. 20대 초반한테 그런 말을 하면 누가 좋아해요. 바보예요?]“그래도 다이어트는…….”
한참 계속된 대화.
아무 말이나 해도 좋을 정도로 편했다.
만난 기간이 길기도 했고.
그 자신보다 한참 연상이라 말이 잘 통하는지도 몰랐다.
아, 그래서 이현아는 무슨 파냐고?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 * *
인적 교류 제도를 도입하고 내 편을 늘리겠다는 계획.
그 밑바탕인 설문은 금방 끝났다.
도와준 동기만 넷.
분원 토박이 정인태까지 나섰다.
물론 의심하고 불신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이거 비밀이지? 내 이름 뒤에 적으면 안 된다.”
“그럼요.”
“근데, 아무리 이진혁이라도 그렇지. 쉽지 않을 텐데. 인사 정책이잖아.”
걱정과 염려.
그리고 우려.
당연한 일이다.
타교생 배척과 자교생 우대.
본원과 분교로 나뉜 인사 정책.
보수적인 문화까지.
병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게 인사 정책이라면.
거꾸로 인사 정책이 문화에 영향을 받아 세워지는 걸 수도 있었다.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타다다닥.
타다다닥.
빠르게 서류를 정리한다.
뼈대를 잡고.
디테일을 잡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
상대를 설득하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설문지만 126장.
각기 다른 생각을 집약하고.
녹여 넣어야 한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계속해 워드를 작성한다.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으며 작업을 한참 계속하자, 동기들이 다가왔다.
“와…….”
“허허.”
“앗.”
곧바로 탄식을 내뱉는 이들.
여자 문제만 빼곤 완벽한 이진혁이었다.
* * *
작업을 한참 지켜보던 장혁준이 물었다.
“근데 왜 논문 방식으로 써요?”
“비대면 보고라서요.”
“음?”
“통계가 뒤섞여서 차라리 이게 편해요. 뭐, 보고받는 분도 편하고요.”
너무도 평온한 대답.
말을 하면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에 장혁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논문을 쓰는 게 편하다니.
재수 없는 게 아니라 괴물이 틀림없었다.
그만큼 의학 논문은 여타 논문과 구조가 달랐다.
학계에 널리 알려진 방법을 먼저 서술해야 했고.
응용되는 분야 또한 기재해야 했다.
이어지는 건 문제 제시.
그리고 해결책.
그에 따른 기대 효과까지.
서술 구조 자체가 달랐다.
그뿐이랴.
증례 리포트 또한 방식이 달랐다.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서술해야 했고.
이론적으로 어떤 부분을 좁혀 갈 수 있는지 밝혀내야 했다.
익히 알려진 사실.
그것이 의학.
우리가 배우는 학문이니까.
인체의 신비를 찾아 헤매는 여정.
서로 자신의 나침반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뚝딱.
결론까지 찍어 내자, 장혁준이 탄식했다.
“이렇게 완벽한데……. 대체 왜 그래요?”
차마 고자가 아니냐는 말은 하지 못하는 장혁준이었다.
* * *
인적 교류 방안.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움직임까지 보고 받은 오지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면허 박탈이라니. 하…….”
“그래도 빠르게 입수해서 다행입니다.”
“확실한 겁니까?”
“조만간 발표할 거 같습니다.”
“곧 언론에 나온다는 건데. 에이, 참. 쯧쯧.”
오지호가 혀를 끌끌 찼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한 이진혁.
평소라면 칭찬했겠지만, 그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참의료지원단을 결성하고 외과 계열의 공론을 모아 파업에 반대했거늘.
다시 야단나게 생겼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지요. 일단 정부에 요구할 리스트를 준비해 봤습니다.”
현실주의자인 우용만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숫자가 가득한 보고서를 내밀자, 오지호가 혀를 찼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잔뜩 뜯어내자?”
“미운 오리 새끼. 아니, 우리 외과 계열을 위한 일입니다.”
“언제부터 외과가 우리 외과가 된 겁니까.”
“이진혁 선생이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라고 하시지요. 이 선생 덕분에 수가도 정상화됐지만, 아직 배가 많이 고픕니다.”
오지호가 대답 없이 보고서를 넘겼다.
각종 지원책.
해외 병원 연수 방안.
근무 시간 절감 방안까지.
근무 환경 개선부터 돈 문제까지, 모든 게 망라돼 있었다.
마치 미리 준비한 것처럼.
문제라면.
“너무 외과 계열에 치중한 거 아닙니까.”
“가장 피해 보는 과니까 당연하지요. 여차하면 움직인다고 하십쇼. 그만한 협상 카드도 없습니다.”
“협박이라도 해라?”
“공갈포라고 하시지요.”
“흐음.”
“피해는 외과 계열에 집중될 거라서, 수가를 그만큼 더 올려야…….”
한 시간, 두 시간, 다섯 시간.
한참의 토론.
기진맥진한 표정의 오지호가 뒤늦게 물었다.
“인적 교류안은 반발이 심할 겁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번엔 채찍을 들 생각입니다.”
오지호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우용만이 씨익 웃어 보였다.
* * *
이진혁이 제안했다는 이유로 가장 반발이 심할 만한 곳.
그건 피부과였다.
안경을 치켜 쓴 우용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누군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녀의 가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우용만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안녕하지 못합니다.”
“네?”
“최송이 선생님. IgE 검사(혈액 내 면역글로불린 확인) 때문에 이번에 삭감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건.”
“스킨 테스트(알레르겐 피부 반응 검사)부터 진행해야 급여 인정되는 거, 모르셨습니까?”
우용만이 다시 안경을 치켜 올리자, 최송이의 표정이 변했다.
물론 폭언도 없었고.
폭행 또한 없다.
하지만 저놈의 잔소리.
아니, 팩트 폭행이 무서울 뿐이다.
그동안 다른 일을 못 하고 로딩이 쌓일 테니까.
‘일단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라고 했지.’
“죄송합니다! 과장님.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저희가 사례집도 나눠 드렸을 텐데요.”
“그게……. 스킨 테스트는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 버렸습니다.”
“당연하지요. Graphism(피부묘기증), Severe ichtyois(건피증)도 아니었고. Eczema(습진)도 아니었습니다. 특정 케이스만 인정되는 거. 모르셨습니까.”
한참 계속된 잔소리.
건보 삭감이 즉각적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었고.
그간 했던 수십 건의 치료가 일괄 삭감됐기에 최송이는 한참 쩔쩔매야 했다.
그렇게 시달리길 한 시간.
간신히 탈출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보세요. 김 선생님. 아나필락시스 쇼크도 확인되지 않았고. 약물 알러지 반응도 안 나왔는데 추가 검사를 왜 한 겁니까.”
“저, 그게…….”
“병력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삭감됐습니다. 아시겠습니까?”
“허어! 박 선생님! 농피증 환자한테 유주농양 천자. 그거 무조건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그게. 이게 이번엔 확실했는데요. 건락소가 연화된 거라서.”
“아니, 그래도 심평원에서 다발성 청구 건이라고 매번 반려 처리 하는 거 모르고 계셨습니까. 지금 적자가 얼만 줄 알고 계시냐 이겁니다.”
육군으로 따지면 사전 정지 작업.
공군의 융단 폭격이 시작됐다.
아, 영점 타격이라고 해야 하나?
피아는 구분된 상황.
황금 거위의 편을 늘리기 위해 우용만이 폭격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