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7)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7화(277/388)
277화. 세계응급의학회 (2)
멱살이라도 잡으려나?
아니면 욕을?
그게 아니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가만있지 않겠다니.
어떻게 하려는 걸까.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결국.
“끄으으응.”
오지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선 한참 서성였다.
초조함, 염려, 걱정, 우려.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누가 보면 ADHD(과잉행동 장애) 환자라고 할 정도!
그만큼 이진혁이 걱정됐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첫 국제무대.
그것도 20대 중반.
2,500명이 넘는 의사.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오지호가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부당한 일을 겪었는데 왜 이렇게 걱정하냐고?
그도 그럴 게 국제무대였다.
국내랑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말리그라고 불렸던 이진혁.
여러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건, 미우나 고우나 계속 병원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지고 볶으면서 오해를 해소할 기회가 있는 국내와 국제무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첫인상이 끝인상이 되기 딱 좋은 곳인데. 자칫 엉뚱한 오해만 사고 돌아오면…….”
오지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어?”
그의 표정이 변했다.
[혹시 걱정하실까 봐 메일을 남깁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지만, 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 거겠죠.]“허허. 그래. 암. 그렇고말고.”
오지호가 흡족해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만큼 충돌과 갈등은 감정 소비를 부르고, 소비된 감정은 피로를 부른다.
그러니 갈등은 피할수록 좋았다.
참으라는 게 우스울 수도 있었지만, 우리네 인생이 그랬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게지. 암, 그렇고말고.”
오지호가 다시 메일을 읽어 내려갔다.
[시기 질투는 뭐, 타블로이드지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연차도 어린 동양인 의사가 주목받는 게 싫었겠죠.] [뭐, 이해는 합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의사. 고개가 뻣뻣한 건 어딜 가나 똑같지 않겠습니까.]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처럼 느껴졌겠죠.]“역시, 우리 이 선생이야. 암. 상대는 이해하고 봐야지. 하하.”
오지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인정한다.
더 나아가 불쌍히 여긴다.
그것이 행복해지는 법.
법륜스님이 설법했다.
“더럽지만 참고. 그냥 실력으로 보여 주면 그만이야. 암, 그렇고말고.”
오지호가 다시 메일을 읽어 나갔다.
[옐로우몽키라고 저를 놀린 놈이 이번엔 눈을 찢었습니다. 동양인은 눈이 작다고 놀리는 거죠.]“뭐!? 눈을 찢어!? 썩을 놈이 감히! 야이, 개 같은 놈아! 어!”
한참 계속된 욕설.
이진혁이 다치는 게 싫었기에 했던 걱정이지, 상대가 괘씸하고 엿 같은 건 오지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창 씩씩거릴 때.
또 다른 메일이 왔다.
이 정도면 실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제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자, 영어를 못 하냐고 하네요.] [똥이 계속 질척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녹음기가 있어서 다행입니다.]“뭐? 녹음기? 녹음기가 왜 있어?”
오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외 학회에 가는데 녹음기라니.
영문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현아 PD한테 선물로 받았던 녹음기입니다. 발음이 다들 제각각이라 한 번 더 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근데 이놈이 녹음되는지도 모르고 계속 옆에서 깐죽거리네요.] [세상엔 왜 이렇게 멍청한 놈들이 많을까요. 아무래도 공부만 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이런 애들 때문에 로스쿨도 생기고 의학전문대학원도 생기는 게 아닐까요? 앗. 이놈이 동양인들은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기 힘들다고……. 저보고 중국인이 아니냐고 하네요.]“뭐? 중국인? 야이, 똥 같은 놈아!”
“얼어 죽을! 중국인은 개뿔! 어! 우리 애가 어딜 봐서 중국인처럼 생겼어!!”
오지호가 혼자 흥분해 난장을 부렸다.
그러다 그 자신의 문제를 깨닫는다.
이건 걱정할 게 아니라 문제 삼을 일이었다.
* * *
이진혁 또한 마찬가지였을까.
또다시 메일이 왔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치워 버려야 하는 겁니다.] [앗. 이번엔 또 다른 흑인이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허허…….”
또 다른 흑인이라는 말.
오지호가 헛웃음을 켰다.
처음에 시비를 건 놈도.
이번에 시비를 건 놈도.
전부 흑인이란 말이었다.
인종 차별을 겪었던 이들.
흑인이 거꾸로 동양인을 차별한다는 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진혁이 이런 일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지호가 당장 인터폰을 들어 올렸다.
“뉴욕에 잠깐 다녀왔으면 하는데. 크음, 큼.”
“네?”
“아니, 내가 당장 손봐 줄 놈이 있어서 그래.”
“네에에?”
“아무래도 내가 나서는 게…….”
“지금 오전 스케줄도 펑크 내셨는데요. 내일은 이사장님 면담도 하셔야 하고. 내일 모래는…….”
한참 계속된 설명.
전화를 끊은 오지호가 못마땅한 침음성을 토해 냈다.
진혁을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
우라질!
당장 깨부숴 버리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때론 매가 약일 때도 있는 법.
설법 내용은 까마득히 잊은 오지호가 당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 *
이진혁이 직접 나서지 않게 해라.
병원 차원에서 공론화하겠다.
병원장의 연락을 받은 박영진이 쉬는 시간이 되자, 진혁을 호출했다.
“녹음하고 있다며?”
“예, 호텔로 돌아가서 강연을 다시 들어 볼 생각이었습니다.”
“증거는 계속 모아 둬. 한 번에 터트릴 거야.”
“아…….”
“병원 차원에서 이슈 제기할 거니까, 대응은 삼가고.”
“예, 과장님.”
진혁이 곧장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왔다.
2년마다 열리는 ICEM.
지금은 미국에서 하고 있었지만, 호스트는 매번 바뀐다.
영국,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등.
그런데 호스트.
그것도 미국 측 의사가 시비질이었다.
이는 본분을 망각한 일.
진혁이 쉬는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옆에 앉은 흑인이 입을 털었다.
“왜? 엄마한테 일렀어?”
“뭐?”
“어딜 다녀오는 거 같던데?”
“신경 껐으면 하는데……. 왜 이렇게 날 주시하는 거지?”
“아아. 그러지. 휘이익~!”
닥터 리안이란 이름의 사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원숭이를 부르는 조련사처럼 말이다.
그래.
미개한 원숭이.
그게 동양인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일지 모른다.
멀쩡히 수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이라고 칭하는 놈들이지 않던가.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시대착오적인 발언과 시각일 뿐이다.
‘멍청한 놈. 쯧쯧.’
진혁이 쓰게 웃자, 또다시 닥터 리안이 이죽거렸다.
“내 말, 이해는 하고 있는 거지?”
“…….”
“영어는 할 줄 아냐 이 말이야. 이봐. 닥터 Lee.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줄 안다며. 한번 따라 해 보라고.”
닥터 리안이 볼살을 늘어트리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더해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늘리며 혀까지 내민다.
이른바 눈 찢기.
벌써 몇 번이나 반복된 행동이었다.
“아까 내가 말했을 텐데. 이봐, 그거 혐오 표현이라고.”
“아, 그래? 큭큭.”
“그만했으면 하는데?”
“싫은데? 난 말이야. 주제도 모르고 깝치는 게 제일 싫어. 언론에서 받아 써 주는 것도 재수 없고. 말도 안 되는 그 능력. 그런 건 믿지도 않는다고.”
과도한 마케팅의 폐해.
엄마 시리즈를 팔아먹기 위한 전략이 반감을 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다 녹음되고 있으니까.
진혁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똥은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 그거 비겁한 변명이야. 똥이 보이면 치워야지. 다른 사람이 밟을 수도 있잖아?”
“뭐?”
“아니, 그냥 그렇다고.”
닥터 리안이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다시 세션이 시작됐다.
* * *
영어를 할 줄 아는 게 분명했지만, 연사로 나선 프랑스 의사는 굳이 통역을 거쳤다.
통역사의 말을 들으며 진혁이 메일을 썼다.
[Defensive Medicine. 방어의학에 대한 세션을 듣고 있습니다. 의료 과실을 줄이기 위해 검사를 강화하고 보수적으로 움직인다는 건데. 한국도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입니다.] [우리나라도 곧 면허 박탈에 대한 입법이 완료되면, Dr. 귈렘의 말대로…….]한참 계속된 보고.
또다시 쉬는 시간이 되자, 오른쪽에 앉아 있던 사내가 물었다.
“무슨 메일을 그렇게 써?”
“병원장님한테 보고 중이야.”
“뭐?”
“궁금해하실 거라서…….”
“와. 직통 라인도 있어? 고작 레지던트라며?”
“그건 아닌데. 그럴 일이 있어서.”
영국에서 온 Dr. 할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쪽에 앉은 흑인 놈이 시비를 털 때마다 미간을 찡그렸던 그.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였다.
“너네도 이제 입법한다며? 왜, 의사 면허 박탈 말이야.”
“아…….”
“내가 한국 소식을 알고 있어서 놀란 거야?”
“어, 조금.”
“그건 의학 잡지만 구독해도 나온다고. 그보다 궁금한 게 있어. 어떻게 생각해? 방금 저 케이스 말이야.”
자신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말.
의견을 나누고.
토론한다.
학회의 본질에 부합하는 물음이었다.
* * *
진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환자의 나이는 고작 6살. 소아 환자야. 외상성 횡경막 탈장 자체가 드물 나이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증례 보고된 게 별로 없어서?”
“알면서 물어보는 거지?”
“뭐, 그냥 의견이 궁금해서.”
“소아 환자는 성인보다 탄력성도 뛰어나고 유연성도 좋아. 다이어프램(Diaphragm, 횡경막)이 충격을 흡수할 가능성이 컸다고. 그래서 예측이 힘들었던 거야.”
“그래도 의사는 기소당했어. 환자는 결국 죽었다고.”
“흉강도 작고 흉부 기관이랑 복부 기관 사이에 공간도 없었을 텐데. 안타까운 경우일 뿐이야.”
“억울한 케이스긴 하지. 그래도 엄연한 현실이야. 곧 너네 나라에 닥쳐올 미래기도 하고.”
훅 들어온 팩트 폭행.
도발하는 거 같진 않았다.
안 되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하아……. 그렇긴 한데. 그래서 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듣고 싶었어.”
“방어의학이 필요한 이유만 들어서 별로라는 거야?”
“어.”
“그건 방법이 없는 문제라고. 그보다 어때? 만약 네가 저 상황이면 발견할 수 있었을 거 같아?”
“아니, 히스토리 테이킹도 힘들었을 테고……. 솔직히 말해 줬다면 몰라도. 엄마한테 혼날까 봐, 2층에서 떨어진 걸 말하지도 않았잖아.”
“뭐, 소아 환자니까.”
“환자도 문제였지만, 의사는 신이 아니야.”
진혁이 그 말을 끝으로 어두운 낯빛을 띠었다.
문제는 기소하는 검사와 판결을 내리는 판사 또한 신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불완전한 존재의 결합.
방어의학의 필요성을 연설한 의사처럼 한국에서도 방어의학이 성행한다면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가 짊어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자신의 손을 떠난 문제.
마땅한 해결 방법 또한 없었다.
진혁이 침묵하자,
닥터 할렘이 말을 이어 갔다.
“장기를 덮고 있는 얇은 결합조직 말이야. 중피막이라고 부르는 거.”
“어, 그건 왜?”
“쿠션 역할을 할 수 있었어. 소아 환자는 지방층 자체도 두껍고. 외력 자체를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라고.”
“근데 저렇게까지 된 게 말이 안 된다?”
“어.”
“뭐, 증상도 없었을 테고. 위장관 질환이랑 쉽게 혼동될 만한 페인(고통)만 호소했을 테니까.”
“아, 그럼 너는…….”
한참 계속된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저산소성 뇌 손상이 와서 기소된 사례.
응급의학과 소속 의사가 겪은 다른 소송 사례까지.
의무기록 사후 작성을 문제 삼은 판결 얘기까지 나오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CPR 중에 옆에서 차트를 작성할 순 없는 일인데……. 의무 기록을 사후에 작성했다고 문제 삼는 건 말도 안 되는 논리지.”
“근데 점점 그렇게 되고 있잖아. 안 그래?”
“뭐. 그렇지. 그래도…….”
또다시 시작된 토론.
그건 세션이 시작되고 나서야 멈췄다.
* * *
오전 세션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스트가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
흩어져 세션을 듣고 있던 선배들과 마주할 차례.
문제는 닥터 리안이 또다시 시비를 걸었다는 거다.
“이봐, 의사는 신이 아니라며?”
“근데?”
“근데 넌 왜 신처럼 굴어? 너는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며?”
“…….”
진혁이 짧은 침묵 끝에 등을 돌렸다.
녹취가 터지면 끝.
더 이상의 대응은 불필요했다.
하지만.
“이봐. 내일 세션 뭔지 알지?”
“음?”
“빅이벤트가 있다고. 컴페티션 말이야, 컴페티션. 나랑 내기할래?”
“뭐? 내기?”
진혁이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만 보고 있자, 닥터리안이 큼지막한 장지갑을 꺼내 들었다.
천 불이 넘는 돈을 흔들며 그가 말했다.
“내가 이기면 사과해. 감히 신이 아닌데, 신인 척한 걸 사과하라고.”
“내가 이기면?”
“이 돈을 줄게.”
“부족한데?”
“그래?”
또다시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닥터 리안.
돈 하나는 잘 벌기로 유명한 미국 의사다운 행태였지만, 진혁이 씨익 웃었다.
한동수가 봤다면 분명 이리 말했을 게 분명했다.
아이고.
우리 호구 왔는가.
허허.
허허허허.
호갱님이 돈을 땅바닥에 버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