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7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78화(278/388)
278화. 세계응급의학회 (3)
어림잡아 3천 불.
환율을 고려하면 큰 금액이다.
진혁이 돈다발을 보며 웃어 재끼자, 닥터 리안이 의아해했다.
“왜 웃지?”
“웃는 건 내 마음인데?”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든다고.”
그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지만, 진혁이 다시 웃어 보였다.
땅바닥에 떨어진 돈.
이제 줍는 일만 남았다.
물론 단도리는 해야 했다.
“그보다 그 돈, 진짜 주는 건 맞지?”
약간의 자극.
그리고 도발.
닥터 리안이 얼굴을 붉혔다.
“왜? 내가 약속을 어길 거 같나?”
“뭐, 그럴지도 모르지.”
“하……. 이봐, 닥터 리. 당신 연봉이 얼마나 되지?”
“그런 질문은 실례일 텐데.”
외국인에게 몇 살이냐고 묻는 것과 동일한 일.
한국에서도 연봉을 묻는 건 결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아. 뭐, 한국은 전문의가 돼도 연봉이 적다지? 큭큭. 나라가 망했으니. 뭐, 어쩔 수 없겠지.”
“완전히 망한 건 아니야. 다들 기운 내고 있다고.”
“뭐, 한강의 기적이니 뭐니 떠들어 댔지만, 어찌 됐든 망한 건 사실이잖아? 뭐, 기분 나쁘면 부도났다는 거로 정정해 주지. 후훗.”
삼류 악당이나 할 소리.
순간 얼굴을 굳혔던 진혁이 다시 얼굴을 폈다.
저놈은 모르겠지만, 곧 있으면 IMF를 졸업한다.
역사상 가장 빠른 졸업.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맨 성과였다.
하지만 또다시 닥터 리안이 이죽거렸다.
“우린 너희랑 달라.”
“뭐?”
“연차랑 상관없이 메스를 잡는다고. 능력 있는 놈은 경력을 쌓고 돈을 벌지.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이길 자신이 있다?”
“왜? 어시만 서니까 쫄리나 보지?”
닥터 리안이 다시 킥킥거렸고.
그 모습을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시비를 건 이유.
그건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영향도 있었겠지만, 허욕 때문에 그러는 게 분명했다.
유명해진 자신을 짓밟고 제 이름을 떨치고 싶은 거다.
뭐, 자신도 있겠지.
실력만 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게 미국 의료계니까.
“길고 짧은 건 대보면 그만이야.”
“그건 중국 속담인가? 펠로우가 돼도 간단한 수술만 집도하면서, 뭘. 큭큭.”
같은 말의 되풀이.
진혁이 손을 휘저었다.
“그래. 그건 사실이야. 근데 그게 뭐가 문제지?”
“뭐?”
“서로 문화도 다르고 방식도 달라. 누가 옳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우린 돈을 따지지 않아.”
“돈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 돈이 없으면 병원에도 못 가고. 입원비를 내지 못하면 죽을 환자도 내쫓지. 안 나가면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게 미국 아니었나?”
“그건 당연한 거야. 이건 서비스라고, 서비스.”
“그놈의 의료 서비스. 그래 서비스를 받았으니까 대가를 지급해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진혁이 숨을 골랐다.
“그놈의 서비스가 누군가에겐 생명줄일 수도 있어. 우린 적어도 너희처럼 굴진 않아.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서 그렇지.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고 본다고.”
반박할 수 없는 일갈.
한국 의료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있다지만, 미국만큼 양아치는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치료도 받지 못하는 곳.
그곳이 바로 미국 의료계였다.
닥터 리안의 얼굴이 빨개졌지만,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이봐, 닥터 리안. 당신 응급실 소속 아니야?”
“…….”
“수술실은 안 들어가 갔을 거 같은데. 맞지?”
“그, 그건.”
“아아. 나는 써전이야, 써전. 어디 잘해 보자고.”
오랜만에 휘두른 [+10강] 육모방망이.
허를 찔린 닥터 리안이 몸을 파들파들 떨어 댔다.
* * *
마지막 날 예정된 갈라 디너쇼 같은 화려한 점심 식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으아아. 대박이다, 대박.”
다들 환호성을 내지른다.
호스트가 준비한 뷔페.
전 세계에서 모인 만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각양각색의 음식이 준비돼 있었다.
참치, 장어, 스시.
아보카도와 게살.
후무스와 바바 가누쉬.
양고기와 반달루 커리.
눈은 즐겁고.
코는 간지럽다.
“야. 담자, 담아.”
“으아!!”
다들 욕심을 부린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진혁 또한 접시가 가득 찰 정도로 음식을 펐다.
문제라면.
“으으. 이건 좀 짠데…….”
“아, 입맛에 안 맞는다.”
“야야, 고추장 좀 꺼내.”
“김치도 좀…….”
한국인이라는 거였다.
고추장이나 김치가 없으면 물리는 건 당연한 일!
냄새가 날까 봐 신경이 쓰였지만, 다들 조용히 김치를 꺼내 먹었다.
그렇게 만찬을 즐기고 있자니, 조금 전에 불쾌한 경험은 까마득히 잊혀진다.
시끄러운 한국을 피해 오게 된 곳.
잘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머리를 민 것도.
면허 박탈 입법 때문에 시끄러운 것도.
음주 운전 사건도.
채식주의 선동도.
전부 잊혀진다.
그러니.
“진짜 오랜만에……. 아, 너무 좋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이에.
“왜? 뭐가? 진혁이 너, 뉴욕 와 본 적 있어?”
“그러게, 아깐 비행기 처음 타는 거라며.”
“왜? 뭔데?”
선배들이 따져 묻기 시작했다.
제 실수를 깨달은 진혁이 당장 손사래를 쳤다.
“아, 그냥 너무 좋아서요. 저 음식 좀 가져오겠습니다.”
서둘러 자리를 피한 다음 일식 코너로 향한다.
하지만.
“아아, 닥터 리. 얘긴 많이 들었습니다.”
인사를 청한 사람이 있었다.
곧바로 건네받은 명함.
그리고 자기소개.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갈라 디너쇼도 아니고 밥 먹는 중에 인사를, 어지간히 급한가 본데…….’
이어진 건 스몰토크.
뚝딱뚝딱 인사했다.
물론 그 관심사가.
“근데 진짜 다 따라 할 수 있는 겁니까?”
제 능력에 집중됐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졸지에 하나둘 관심을 보이더니 자신을 둘러싸고 원이 만들어진다.
“허허, 와이프가 브레인을 연구하는데 말이야, 이런 경우는 없다고 하던데…….”
“흐음. 진짜라면 보물이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 조금은…….”
한마디씩 거드는 이들.
이 또한 거짓말이 만들어 낸 업보였다.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수년간 노력했던 진혁이, 땀을 삐질삐질 흘릴 정도로 당황했다.
계면쩍게 웃기만 하면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닥터 리가 컴페티션에 나간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그건…….”
“아닙니까? 닥터 리안이 그러더군요. 내기까지 했다고 말입니다. 하하.”
어쩜 이리 입이 가벼운 호갱님이 다 있을까.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 * *
자본주의 사회.
품격은 돈에서 기인한다.
화려한 정장.
세련된 구두.
클래식한 시계.
넥타이 혹은 루프타이.
돈 하나는 끝내주게 버는 의사들답게, 다들 품격과 교양이 그득해 보였다.
그러니 관심 없을 줄 알았다.
닥터 리안같이 저급한 말을 쏘아 내기보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내기 나도 해도 되겠습니까?”
“네?”
“닥터 리만 괜찮다면, 나는 오천 불을 걸죠.”
“그럼 나도…….”
“허허, 그럼 나도…….”
바람잡이를 고용해 펌핑을 한 적도 없건만, 품에서 지갑을 꺼내는 제스처를 한다.
황당함도 잠시.
짐승의 발목뼈로 만든 주사위가 발견됐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주사위.
인류 역사만큼 오래된 도박.
호기심과 유흥을 위해 눈빛을 빛내는 호갱님들이 눈앞에 즐비했다.
* * *
사고 치지 말라는 말.
오지호가 했던 말이다.
그러니 거절해야 마땅했다.
너무 판이 커지면 안 되니까.
하지만 우용만의 목소리가 귓가를 적신다.
– 전공의 근무 시간 제한 말이야. 제약은 좋은데, 이걸 지키려면 채용을 더 해야 돼.
– 병원 재정이 뒷받침 안 되면 그냥 허울뿐인 제도에 불과하다고.
– 방법이 없진 않아. 책만 잘 팔리면 할 만하다고. 해리슨 발가락. 아니 발톱만 돼도 수익이 날 거라 이 말이야.
레지던트를 세 번이나 해야 하는 자신의 복지와도 연결된 일.
그러니.
“아, 저는 그 돈을 기부하려고 했습니다.”
판을 더 키우고자 했다.
개인 대 개인의 내기가 아니라 마케팅의 일환이 될 수 있는 기부로.
갑작스러운 말에 다들 웅성거렸다.
“기부? 기부한다고?”
“예, 미국엔 병원비가 부족한 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의료보험이 없으니, 뭐, 나라가 잘사는 거랑은 관련이 없겠죠.”
“오…….”
“저소득층. 아니 당장 수술할 돈이 없는 환자에게 기부하려고 합니다.”
“허허, 그럼, 말이 달라지는데.”
“이봐, 닥터 장! 나는 말이야…….”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
그들 중 한 명이 먼저 나섰다.
“나는 10만 불을 내지.”
“……!”
“그 능력이 진짜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고. 뭐, 돈이야 많으니까.”
“그럼 난 20만 불을 내지. 이긴 사람 명의로 기부하는 게 어떤가?”
“허허, 그럼 난 30만 불을…….”
한참 계속된 소란.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까지 음식을 뜨다 말고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젠 자신의 손을 떠난 일.
호스트에게 알리고 준비를 부탁할 판국이었다.
* * *
박영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진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 갔다.
“운영과장님이 최대한 마케팅을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재정 문제 때문에…….”
한참 계속된 보고.
박영진이 혀를 찼다.
“기부한다는 거 자체가 마케팅이겠군.”
“예.”
“인종 차별도 뉴스에 나오면 그 또한 마케팅이 될 테고.”
“뭐,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흐음.”
“혹시 괜한 일을…….”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한테만 시선이 집중되는 건 박영진으로선 원치 않는 일.
응급실에 상황판을 설치하고, 대기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일까지 발표할 예정이었다.
거기에 더해 CPR 알고리즘을 변경한 논문까지 발표해야 했으니.
마땅치 않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진행하지.”
박영진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자신을 두고 여러 차례 경고를 하기도 했고.
진종욱 교수와 충돌했을 땐 묘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던 박영진.
이번 성과로 또다시 마음이 기운 게 분명했다.
어찌 됐든 자신이 기획했던 일로 이 자리까지 온 건 분명했으니까.
* * *
다시 시작된 세션.
진혁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주최 측과 협의도 해야 했고.
듣고 싶은 강연도 들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 와중에 짬도 내 전시회도 다녀왔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가 만든 최신 장비.
시연도 해 보고 팸플릿을 보며 궁금한 것 또한 물어봤지만, 성에 차는 건 없었다.
‘이동형 CT도 마땅치가 않은데. 흠.’
최신 의료기기를 선보이는 거대한 장이었지만, 미래인 입장에선 아쉬울 뿐이다.
전시장을 빠져나온 진혁은 곧.
“닥터 헬기 도입으로 인한…….”
영국에서 온 의사의 강연을 들었다.
진혁이 눈을 반짝이며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장님, 닥터 헬기 도입의 유용성에 대한 세션을 들었습니다.] [닥터 헬기는 섬이나 농촌 같은 도서 지역에서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대도시의 경우에도 교통 체증 없이 환자를 이송할 수 있어서…….] [제가 얼마 전에 닥터 헬기로 포장한 구조 헬기를 타고 원주 성심 병원을 가다가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아, 당장 사 달라는 건 아닌데요. 그게…….]한참 계속된 메일 보고.
겸사겸사 변질된 내기 얘기까지 써 내려가자, 이를 확인한 오지호가 뒷목을 잡았다.
* * *
컴페티션에서 이겨 깐죽거리는 놈을 박살 낸다는 계획.
뭐, 녹취록을 들춰내 카운터까지 날릴 예정이었으니,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끄응. 기부하겠다고?”
일이 엄청나게 커져 버렸다.
미국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건 알았지만, 기부액이 살벌하게 모이고 있었다.
“이긴 사람 이름으로 기부하겠다는 건데……. 허, 참.”
오지호가 혀를 끌끌 찼다.
이 정도 속도라면 500만 불도 넘을 터.
일이 너무 커졌기에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오지호가 우용만을 불러들였다.
곧.
“혹시 밤을 새우신 겁니까?”
“사실, 그게 말이야…….”
갑작스러운 고백.
상황이 궁금해 메일로 실시간 보고를 받고 있다는 말에 우용만이 혀를 찼다.
“그래도 퇴근은 하셨어야죠.”
“크음, 큼.”
“잠깐 메일 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안경을 치켜올린 우용만이 메일을 읽더니 소리 없이 기함했다.
“허업!”
반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먼저 홍보팀에 연락해 보도자료를 뿌리라고 지시하고.
아직 이기지도 않았건만, 출판사에 연락해 『쉽게 풀어 쓰는 의학 이야기』 같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까지 출판하자고 꼬셨다.
거기에 더해 메일까지 쓴다.
그 대상은 타블로이드지.
일종의 제보였다.
그렇게 숨도 쉬지 않고 후속 조치를 끝낸 우용만이 말했다.
“흐흐흐. 띠지를 붙여야겠습니다.”
“응?”
“표지 위에 띠지를 붙이는 거죠. 능력이 검증된 천재 의사! 집필에 참여하다!”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우용만.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이자, 오지호가 말했다.
“헬기를 사 달라는 건 왜 또 안 읽어?”
“아, 그건, 좀…….”
승전보만 울리면 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