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8화(28/388)
28화. 새로운 시작 (8)
오태상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진혁이 무슨 말을 해서?
아니, 아니었다.
그냥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노여움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유명세만 좇는 이진혁.
같은 기자가 이진혁을 띄워 주는 기사를 연달아 냈으니, 본인 스스로 직접 제보한 게 분명했고.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발상을 할 만큼 싹수가 노랬다.
그뿐이랴.
처음 봤을 때 보여 줬던 뻣뻣한 태도도 맘에 들지 않았다.
좋게 봐 주려고 해도 봐 줄 수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한데, 그놈이 환자를 이용해 자신을 물 먹였다.
뭐? 내기를 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정말이지 소가 웃을 일이었다.
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저 교만한 놈을 단단히 혼내 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복수천자에 성공한 이진혁 때문에 자존심을 굽혀야 했다.
거기에 더해,
실패를 바라고 시켰던 ABGA도 전부 쳐 냈다.
군기를 잡아야 하는데.
그게 부조리든 뭐든 자신이 당했던 대로 내리 갈구며 저 오만한 놈의 기를 팍팍 꺾어 놔야 하는데 그게 되질 않았고.
타과 노티(Notify)로 애먹는 걸 보며 시비 거는 게 전부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 났다.
화가 났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정진석한테 쿠사리를 먹은 일까지 겹치자 더 열이 뻗쳤다.
그렇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오태상이 말을 삼켰다.
‘쉽게 볼 놈이 아니란 말이지. 일단 확인부터 한다.’
오태상이 차트를 확인하며 진혁이 담당했던 환자를 훑었다.
혈흉 환자는 일단 패스.
킵까지 서고 있었으니 물어볼 게 없었다.
딸깍.
딸깍.
스크롤을 계속 내리며 이진혁을 혼낼 수 있는 케이스를 찾았다.
허나, 적절한 케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ABGA만 주구장창 시켜 댔으니 그럴 수밖에.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채혈에 실패하는 걸 보고 싶어 그 자신이 직접 시킨 일이니까.
결국, 오태상이 문제 삼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계속 이렇게 할 거예요?”
“네?”
“다른 과 선생님들 호출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계속 이렇게 할 거냐고요. 지금 환자들한테 컴플레인 들어오는 거 알죠?”
“…….”
“어쭙잖게 아는 게 나왔다고 나설 게 아니라, 타과에 빨리 노티하고 환자 넘기는 게 중요하다고요. 내 말 무슨 말인지 몰라요?!”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어떻게 개선할 건데요?”
“…….”
생각해 둔 계획이 있었지만, 진혁은 쉬이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태상이 어색한 존댓말로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성질 같아선 반말을 찍찍 내뱉고 싶었지만, 참는 거다.
“제대로 하라고요. 제대로.”
“알겠습니다.”
“대답만 하지 말고, 똑바로 하라고요.”
“예.”
죄송하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는 진혁을 보며 오태상이 더 열을 내려던 찰나.
진혁이 입을 열었다.
“혈흉 환자를 좀 더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순간 오태상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다.
“뭐!?”
“블리딩(출혈)이 멈추지 않아 걱정돼서 그렇습니다.”
“하……! 그래서 퇴근도 미루겠다?”
“네,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교대 근무하는 B조가 못 미덥다?”
“그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면 뭐지? 선배들이 우습나?”
“…….”
“분명 정해진 프로토콜대로 튀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벌써 잊은 겁니까! 아니면, 정진석 선생님을 믿고 이러는 겁니까!”
“…….”
진혁이 침묵하자 오태상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속이 뒤집혔지만, 정진석의 이름을 제 입으로 언급한 순간, 그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 진짜 갈구지도 말라는 게 말이야 방구야.’
“똑바로 해요. 똑바로!”
그 말을 끝으로 오태상이 밖으로 나가자.
다들 놀란 눈으로 진혁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살벌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염려, 우려, 걱정, 의아함, 호기심까지.
여러 시선이 진혁의 등을 간지럽혔지만, 그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프로토콜대로 해 주마.’
예전 같으면 모든 걸 책임지려고 들었을 터.
하지만, 여기는 아신 병원.
계획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었다.
* * *
후으읍-.
심호흡하기 무섭게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폐부 가득 몰려온다.
정진석을 따라 잠시 밖에 나갔던 걸 제외하면, 24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맡은 셈.
뿌연 공기마저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 심호흡을 하던 진혁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뿌연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도 미세먼지가 심했단 말이지. 아니, 더 심한 건가.’
그렇게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진혁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신이 하려는 일들이 가져올 파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동안 시끄러워지겠지.’
쓰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어느새 뒤따라온 이태희가 진혁의 어깨를 쳤다.
“뭐 해?”
“어?! 아직 안 갔어요?”
“가긴 뭘~! 공부해야지. 병원이 곧 집이야.”
“이야. 좋은 자세인데요?”
“뭐래. 너도 나랑 같은 인턴이거든? 가자.”
“?”
“아침은 먹고 가야지.”
“집밥 먹으려고 했는데요.”
순간 이태희가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주 못 볼 걸 봤다는 얼굴이다.
“그거 불효야, 불효. 얘가 진짜 뭘 모르네.”
“?”
“오프 때마다 집밥 먹으려고?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시겠어? 안 그래? 하여간 아들 키워 봤자 다 필요 없다니까.”
“와. 아침부터 너무 까칠한데요.”
“됐고. 얼른 따라와. 커피도 사 줄게.”
이태희가 앞장서자 진혁이 그 뒤를 따랐다.
물론, 어머니께 연락드리는 건 기본이었다.
딸깍.
“네, 엄마. 저 밥 먹고 가야 할 거 같아서요. 네? 아…….”
뚜욱.
뭔가 심상치 않은 대화.
이태희의 시선이 진혁에게 향했다.
“왜? 뭐라셔?”
“밥 차리기 힘들어 죽겠다고요. 당연히 밖에서 먹고 들어올 줄 알았다네요.”
“거봐. 이래서 남자들은 문제라니까.”
“네네. 그러시겠죠.”
“어쭈. 또 까분다.”
이태희가 도끼눈을 뜨자.
진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쓰게 웃었다.
자신은 어머니를 잃은 회한에 슬퍼했지만, 어쩌면 부모님의 생각은 다를지도 몰랐다.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과 현생을 이어 사는 사람 간의 괴리라고 해야 할까.
* * *
오늘의 구내식당 메뉴는 묵은지 김치찌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김치찌개 앞에서 다들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밤새 긴장한 채 일했으니 온몸에 기가 다 빨린 느낌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싫었을까.
프리 인턴 교육 때와 달리 장혁준이 날뛰었다.
그 모습은 마치, 타교생 앞에서 썼던 가면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아윌비백 하와이! 아주 죽겠어요~! 요 맨!”
“흐윽.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자리도 많은데! 왜 여기 앉은 거야!”
정상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모습.
다들 제 할 말만 하자 진혁이 희게 웃었다.
‘귀엽네, 귀여워.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싱긋 웃은 진혁이 열심히 수저를 놀리기 시작했다.
밤을 새운 뒤 먹는 김치찌개.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딱일 정도로 끝내줬다.
“크으. 시원하니 좋다.”
“!!”
“뭐야. 이 애늙은이 같은 감탄사는!!”
“헤이~ 요 맨! 하우 올드 아유?”
비난이 쏟아지자 진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진짜 시원한데.”
시원한 걸 시원하다고 말하지 뭐라 말한단 말인가.
그의 표정을 확인한 이태희가 혀를 찼다.
“뜨거운 거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거, 우리 할아버지밖에 없어! 우리 아빠도 안 쓴다고!”
“뭐,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죠.”
“너 솔직히 말해 봐. 나이 속이고 있는 거 아니야?”
이태희의 날카로운 지적.
당황할 틈도 없이, 장혁준이 가세했다.
“헤이 요 맨. ABGA 왜 이렇게 잘해요~~!”
“아, 그건.”
“수상해요. 요~맨~! 나이 속이는 거 맞죠~!”
장혁준이 개드립을 이어 가자 이태희가 질색했다.
“와! 진짜! 장혁준! 아니 장혁준 선생님!!”
“왜요?”
“하와이 한 번 다녀왔다고 영어 섞어 쓰는 거 진짜 극혐이거든!”
“!”
“한 번만 더 하면 나 일어난다! 정말이야!”
“넵!”
장혁준의 빠른 태세 전환.
쿠사리를 먹은 게 민망했는지, 그가 말을 돌렸다.
“근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아니, 이 선생이요.”
“?”
“다른 병원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면서요. 근데 왜 이렇게 잘해요? 마치 경험해 본 사람 같잖아요!”
장혁준의 시선을 느낀 진혁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그거 프리 인턴 교육 때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요?”
“?”
“이건 실전이잖아요. 실전.”
“흠.”
진혁이 짧은 침음성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모두의 시선이 진혁에게 쏠렸다.
.
.
.
한참 이어진 정적.
진혁이 주위를 쓱 둘러봤다.
다들 이어질 답을 기다리며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귀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죽어라고 연습했어요.”
“에이. 그때도 연습했다더니.”
“진짠데.”
“솔직히 학교 다닐 때 연습할 시간이 어딨어요.”
“동기들끼리 짬짬이 연습했죠.”
“에이. 유급 걱정에 시험공부만 하기도 바쁜데 무슨 연습이에요!”
불신의 눈초리를 더해 가는 장혁준.
다른 이들 또한 급조한 거짓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진혁이 거짓부렁을 늘어놓았다.
“서신대에는 비전 같은 게 있어요.”
“비전? 뭐, 야마(족보) 같은 거예요?”
“네. 뭐, 그런 거죠.”
“진짜 그런 게 있어요?”
“이미 확인해 본 거 아니에요?”
진혁이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산증인이 눈앞에 있다는 제스처였다.
“그거야……. 흠.”
“됐죠?”
“아뇨. 그 비전 좀 줘 봐요. 같이 보자고요.”
당당하게 손을 내미는 장혁준.
진혁이 빤히 그를 바라봤다.
‘어쩌면 윈윈 할 수도 있겠는데?’
원래 아이디어는 한번 떠오르면 물밀 듯이 밀려오는 법.
아직 실행 전인 아이디어가 세 개나 됐다.
* * *
진혁이 일부러 강하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시선이 모이자.
“말 그대로 비전이에요. 비전.”
“그래서요.”
“유출되면 조금 그래요.”
“그래서 못 주겠다?”
“아신 병원이 야마 단속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알려지면 끝이에요. 끝.”
손을 들어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하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현수가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비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불신이 가득한 목소리.
진혁이 뭐라 반박하기도 전에, 장혁준이 나섰다.
“야. 어제 못 봤어? 그냥 던지면 꽂히는 수준이었다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야마랑 비슷한 거라잖아. 그냥 이름만 거창하게 붙인 거고.”
“야!”
“아, 됐고! 못 믿겠으면 넌 빠져. 현수는 필요 없다니까 저만 알려 줘요. 동기 좋다는 게 뭡니까.”
장혁준이 또다시 손을 내밀자.
진혁이 짐짓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좀…….”
“아, 쫌 달라고요! 인턴 동기잖아요! 동기.”
“유출되면 진짜 곤란해서 그래요.”
“비밀로 할게요. 네!?”
“흐음.”
진혁이 고심하는 척하자 장혁준이 안달 나 했다.
개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인턴 첫날의 기억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진짜 이러기예요? 인계장도 보여 줬잖아요!”
“자꾸 달라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거래할래요?”
“거래요?”
“네. 레지던트 콜 열 번에 완벽한 팁 전수. ABGA만요.”
“고작 콜하는 거랑 바꾸자고요?”
“아무래도 타교생이라 인맥이 없거든요. 새벽에 부르니까 다들 짜증만 내더라고요.”
따로 생각해 둔 계획이 있었지만, 충돌은 적을수록 좋기에 하는 제안.
장혁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라 했다.
“콜!”
“오케이, 그럼 장 선생은 됐고. 김 선생은 어떻게 할래요?”
어차피 똑같은 내용을 알려 줄 터.
수강생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지만, 김현수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자존심이 상하겠지. 믿지도 못하겠고.’
“싫어요? 싫으면 말고요.”
“흠.”
“그럼 열다섯 번.”
“?”
“이것도 싫으면 스무 번?”
“!”
“그럼 스물다섯 번?”
“!!”
진혁이 가격을 올리듯 콜 수를 늘리자.
김현수가 황당한 듯 반문했다.
“왜 콜 수를 올려요?”
“비전의 존재도 인정하기 싫고. 동기한테 배우려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그, 그건.”
“그러니까 그만큼 맞춰 주려는 건데요. 뭐, 싫으면 말고요. 전 상관없어요.”
대가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
사실, 김현수가 거절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어차피 생각했던 그 일도 밀어붙일 생각이니까.
* * *
사실, 김현수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A턴을 받아 PS(성형외과)에 합격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들들 볶이고 있었지만, 제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무조건 붙어야 한다고 했는데…….’
하지만, 이대로 이진혁의 손을 잡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저 뻔뻔한 얼굴도.
여유 있는 웃음도.
제가 좋아하는 이태희와 친한 것도.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김현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진혁이 다시 콜 수를 올렸다.
“서른 번.”
“!”
“이것도 별로면 마흔 번.”
“!!”
“자교생이니까 콜 하는 거 사실 어렵지 않잖아요. 한 달 동안 마흔 번이면 뭐 금방이죠. 이것도 싫으면…….”
계속 콜 수를 올릴 기세.
결국, 김현수가 소리쳤다.
“콜!”
“진짜 콜? 그럼 둘 다 마흔 번씩!!”
땅땅.
진혁이 서초동에 있는 이혼 법원의 판사처럼 식탁을 두들기자, 장혁준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항변했다.
“나는 왜 마흔 번인데요!”
“연대 책임 몰라요?”
“와…….”
“싫으면 없던 일로 할까요?”
“아, 아뇨.”
“밥이나 먹죠.”
진혁이 차게 식은 김치찌개를 다시 흡입했다.
오태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뻔히 보였기에, 어느새 맛이 더 좋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