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1)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81화(281/388)
281화. 세계응급의학회 (6)
첫 번째 지적은 상원의원에 관한 것이었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죠. 우열 또한 나뉩니다. 신분에 의해, 능력에 의해, 재산에 의해 나뉘죠.”
“…….”
“연방 상원의원은 고작 100명. 하나하나가 대통령에 준하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무시했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날카로운 지적.
김상혁이 곧바로 반박했다.
“5분 뒤면 구급차가 도착합니다. 그 정도면 지체된 것도 아니죠. 고작 타박상. 경증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뇨, TA(교통사고)였습니다. 추가 추돌 사고도 감안해야 했죠. 신변 보호 프로토콜이 발동되면 당연히 협조했어야 했습니다.”
“상원의원이면 혼자 다닐 리도 없고……. 경호원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시했다?”
“예. 의료진을 세 명이나 배정해 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요구였습니다.”
“한국팀의 퍼포먼스를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요?”
“아뇨,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 앞에서 감히 충분하다라는 말을 누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상원의원이라면 다친 시민을 위해 그 정도는 배려해 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상원의원 또한 정치인.
인기 관리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는 말에 심사 위원이 침묵했다.
이에 김상혁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저는 이 무대가……. 평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일하는지 보여 주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계급은 다를지 몰라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예. 저흰 그렇게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순간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
모든 일이 그렇듯 말로 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당장 심사 위원부터 냉소했다.
“뭐, 시뮬레이션이니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Easier said than done.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입니다.”
“아뇨, 그런 일이 현실에서 발생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너무 쉽게 단정하는데, 증명할 수 있습니까?”
“네.”
“어떻게 증명한다는 거죠?”
“뭐, 과거의 행적을 보면 알겠죠.”
너무도 당당한 대답.
누군간 김상혁을 비웃었고.
누군간 미간을 찌푸렸다.
현실을 모르는 애송이.
뭐, 이런 눈치인 것이다.
좌중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김상혁이 설명을 이어 갔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음주운전으로 사고 낸 환자가 브랜치에 내원했죠.”
“계속 말씀하시죠.”
“사망 사고를 낸 환자.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였습니다. 문제는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겁니다.”
“범죄자라 그런 겁니까? 아깐 범죄자라고 밝혀도 잘만 치료하던데요?”
“수술방이 풀이라……. 그 환자를 수술하려면 다른 환자를 빼야 하는 상황이었죠. 뭐, 유가족의 반대 또한 있었습니다.”
“아…….”
심사 위원뿐만 아니라 관객석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일.
흔한 일 중 하나였다.
김상혁이 다시 설명을 이어 갔다.
“여기 있는 이진혁 선생이 헬기로 환자를 이송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죠. 30분이 넘는 거리. 바이탈은 최악인 환자. 죽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헬기 안에서 흉관 삽관을 했고. 블라인드로 심장 천자를 했습니다. 아슬아슬했지만, 끝내 살려 냈죠.
“몸도 가누기 힘든 헬기에서 말입니까?”
“예.”
다들 토끼 눈을 뜬 채 서로를 바라봤다.
초음파도 없이 진행한 심장천자.
천자침이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갔어도 심장을 찔렀을 게 분명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장기를 찔렀다면 괜한 출혈을 부를 수도 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든 헬기.
심장 천자를 한다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범죄자를 위해.
김상혁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좌중을 훑었다.
“사실, 저도 놀랐습니다. 군대에서 계속 생각했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범죄자를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무리하는 게 맞았을까.”
“흐음.”
“학회에 와서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했냐고. 물론 그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뭐라고 대답하던가요?”
“의사라서 그랬다. 의사라서 그렇게 했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
“그뿐이 아닙니다. 저한테도 그러더군요. 선배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고. 범죄자가 칼에 찔려 응급실에 내원했을 때 외면했던 적이 있었냐고.”
“……!”
“좋은 의사라는 거. 별거 아니라고. 그냥 환자만 가리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김상혁의 대답이 끝나자,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 * *
좋은 의사의 정의란 무엇일까.
술기를 잘하고 지식이 많은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아니면 환자와 라뽀를 쌓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그 누구도 쉽게 정의하지 못하는 문제다.
아니, 이건 정의의 문제도 아니었다.
대다수가 잊고 살아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던 그 시절을 까마득히 잊고 돈에 매몰되거나.
일상에 함몰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의사만큼 고소득을 보장해 주는 직업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천재 의사라 칭해지는 이진혁이 말하고 있었다.
좋은 의사의 정의 따윈 자신도 모른다고.
그냥 환자를 가리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의사가 아니냐고.
그리고 우린 그렇게 항상 해 왔다고.
그래서 우린 상원의원의 존재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번엔 미국 심사 위원이 일어나 진혁을 향해 물었다.
“한국에서 의료법을 개정해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를 박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진짜 법이 개정돼도 그때처럼 할 수 있겠습니까? 자칫 소송을 당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소송의 나라인 미국 의사다운 질문.
마이크를 건네받은 진혁의 대답은 심플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왜죠?”
“꿈에 나올 거 같거든요.”
“……?”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아는 법이죠.”
“흠.”
“죽은 환자가 꿈에 나와 따져 물었을 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범죄자라서, 돈이 없어서, 신분이 미천해서. 그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망설인 게 없다고 말입니다.”
조크를 뒤섞은 진지한 대답.
이를 두고 말은 쉽다며 폄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흔들리는 헬기 안에서 심장 천자를 한 사내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블라인드로.
심사 위원이 침묵하자, 오히려 진혁이 되물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 그러다 한 번에 훅 간다. 바보 같은 생각이다.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
“그럼 거꾸로 묻고 싶습니다. 환자를 가리는 게 맞을까요? 생명엔 경중이 있을까요? 범죄자는 치료를 받으면 안 되는 걸까요? 신분에 따라 누군가의 골든타임을 뺏는 게 옳을까요? 돈이 없으면 내쫓아야 하는 게 맞을까요?”
“…….”
“뭐, 정답이 없는 문제죠. 그러니 저마다 믿는 대로 행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국팀은 평소에 생각했던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
“뭐, 고작 한 가지 사례를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느냐. 괜히 포장하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희 과장님. 그러니까 저기 앉아 계시는 박영진 과장님이 행려 환자를…….”
한참 계속된 설명.
박영진을 띄워 주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행려 환자를 지금까지 돌보고 있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었기에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미국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
병원에서 입구 컷부터 당할 행려 환자(노숙자)를 계속 돌보고 있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진혁이 쐐기를 박았다.
“상원의원이 범죄자가 많이 입원한 병원에 같이 있다는 설정. 애초에 무리한 설정 같습니다만…….”
조크였지만, 뼈가 있는 말이었다.
* * *
질문은 끝없이 계속됐다.
때로는 토론했고.
때로는 왜 그런 처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장이 한참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마무리해야 할 때.
누군가 일어나 물었다.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습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김상혁이 대답했다.
“말씀하십쇼.”
“개인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팀 차원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같이 교대 근무. 그러니까 같은 조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예, 저는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고. 여기 이진혁 선생은 GS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영은 선생은 A조, 박영선 선생은 B조고…….”
설명은 길었지만, 뒤섞여 교대 근무를 한다는 말.
질문을 던진 심사 위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교대 조도 다르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호흡을 오랫동안 맞춘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던데요?”
“아, 그건…….”
김상혁이 처음으로 대답을 망설였다.
과잉경쟁 사회나 다름없는 한국.
프랑스 회사에 입사한 한국인이 평소처럼 일했더니.
‘당신이 우리 회사 복지를 망가트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일본 회사조차 성실하기로 소문난 한국인을 선호한다는 걸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한국이라면 다들 이렇게 일한다고.
이건 기본이라고.
덕분에 우울증 유병률 1위, 자살률 1위 등 온갖 안 좋은 지표는 전부 1위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에둘러 말했다.
“우리 아신 병원엔……. 음, 내원객 수가 좀 많습니다. 일 평균 1만 2천 명이 넘는 외래 환자가 오고 있습니다.”
“그, 그렇게나 많이 온다는 겁니까?”
“예. 그중에 응급실을 내원하는 환자는 하루에 많게는 1,000명. 적을 때는 500명일 때도 있습니다.”
“……!”
“의사 수는 30명이 안 되는데 그 많은 환자를 커버하다 보면 저절로 합이 맞게 되어 있죠.”
담담한 설명.
다시 웅성거림이 커진다.
환자를 저렇게 많이 소화하는 건 다른 병원에선 있을 수 없는 일.
프랑스는 노동 시간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었고.
미국은 저런 경우라면 의사를 더 고용하거나, 이직을 막기 위해 환자를 일정 숫자 이상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었다.
당장 좌중이 시끄러워졌다.
“의사를 완전히 갈아 넣고 있지 않습니까.”
“허허. 저 정도면 믹서기로 갈아 넣은 다음에 포집기로 포집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짠다는 건데…….”
“이런 미친……. 수용량을 까마득히 넘긴 게 아닙니까.”
웅성거림이 커지자, 김상혁이 쓰게 웃었다.
“1인당 연간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전 세계 1위로 압도적입니다.”
“……!”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을까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할 말을 잃었다.
어메이징 코리아!
정말 어메이징했다.
* * *
이젠 평가만 남은 상황.
한국팀의 퍼포먼스가 뛰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한 김상혁이 밝게 웃었다.
“이 정도면 말 잘했지?”
“그렇긴 한데, 가장 중요한 코멘트가 빠졌는데요.”
“왜? 뭐가?”
“의사 증원이요.”
“뭐?”
“의료기관 방문 횟수 1위. 1인당 병원 입원 일수 1위. 외래 진료 횟수 1위. 다 좋은데요.”
“어어.”
“의사 숫자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게 빠졌잖아요.”
“뭐, 그야…….”
김상혁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의사가 부족한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사실.
기득권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어 다들 침묵하고 있을 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상혁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심사 위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프랑스팀은 9.3점, 미국팀은 9.2점. 중국팀은 8.1점……. 최고의 팀 퍼포먼스를 보여 준 한국팀이 9.5점으로 1위입니다!”
1위는 한국팀이라는 말.
반응은 뒤늦게 터져 나왔다.
“와…….”
“야야! 우리가 이겼다!!”
“우와!!!”
좋아 죽으려는 선배들.
그들과 함께 진혁도 밝게 웃었다.
왠지 개인전까지 이긴다면, 오지호가 헬기를 사 줄 것만 같았기 때문.
아, 우용만이 있지 않냐고?
원래 사고 치는 사람 따로.
수습하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