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2)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82화(282/388)
282화. 세계응급의학회 (7)
어느덧 쉬는 시간.
장내는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2,500명이 넘는 의사가 모인 곳.
당연한 일이었다.
“동양인이 이기다니. 한국은 나라가 망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허허.”
“뭐, 단순한 TA가 아니지 않았습니까. 혈우병,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애디슨병까지. 희귀병 사례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야 그렇긴 한데. 저는 조금 무섭습니다.”
“음?”
“주니어도 희귀병에 대한 대처법을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주니어라니요? 시니어 아니었습니까?”
“아아, 다들 레지던트라고 합디다.”
“뭐, 뭐요!?”
다들 토끼 눈을 뜬 채 혀를 내둘렀다.
동양인이 서양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 또한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에 생긴 일.
언론 보도를 통해 이진혁이 R2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도 레지던트라니.
놀랄 노 자가 따로 없었다.
물론 그 모습에 가장 신나 한 건 박영진이었다.
괜한 말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 행려 환자를 치료해 줬거늘.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곧, 그들 중 몇몇이 박영진에게 다가왔다.
“Dr. Park! 노숙자까지 치료해 주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니라 병원 차원에서 움직인 겁니다. 하하.”
“무슨 그런 겸양의 말씀을. 저런 후학까지 길러 내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뭐, 제가 한 게 있겠습니까. 다들 열심히 해 주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지요.”
쏟아지는 축하 인사.
겸양 섞인 웃음과 응대.
명함을 교환하고.
친분을 쌓는 걸 멈추지 않는다.
다 같은 응급의학과.
친분은 쌓아 둬야 했다.
물론 박영진만 바쁜 건 아니었다.
“Dr. Kim.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아, 그건…….”
김상혁을 비롯한 다른 이들 또한 축하 세례를 받기 바빴다.
* * *
해외 학회.
그 평가는 갈린다.
누군가는 반기고.
누군가는 고생길이라 여긴다.
시다바리가 되는 곳.
한식당을 알아봐야 했고.
동선을 파악해야 했으며.
김치도 구해 와야 했다.
시차에 예민해진 교수님.
그 어떤 불편함이 없도록 타임테이블을 신경 쓰다 보면 진이 빠지고 쉽사리 지쳐 버리는 게 해외 학회인 것이다.
하지만 다들 웃고 떠들기 바쁘다.
개같이 고생한 지난 세월.
통째로 보상받은 느낌이다.
“하하. 한국에선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뭐, 솔직히 말하면 힘들기도 하죠.”
“아, 그건…….”
사실 자신들도 몰랐다.
이렇게 실력이 좋을 줄.
한국에만 있다 보니 비교할 곳도 없었고 다들 이렇게 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생긴 일.
그렇게 승리의 여운을 만끽할 때.
김상혁과 대화를 나누던 미국 의사가 기겁해 소리쳤다.
“으엑! 하루만 쉰다는 겁니까? 이틀이 아니라요? 그렇게 일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어쩔 수 없긴요! 24시간 근무 후엔 당연히 이틀을 쉬어야지요. 하루만 쉬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그러기엔 사람이 없어서……. 하하.”
“사람이 없으면 뽑아야지요! 병원은 대체 뭘 하고 있답니까!”
“그게, 음…….”
김상혁이 말을 절며, 어색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적자인 병원.
수가가 낮았기에 인력을 늘릴 수 없었다.
의사 또한 부족했고.
김상혁이 눈알을 빙그르르 굴리며 곤란해할 때, 진혁이 끼어들었다.
“뭐, 그래도 ER은 처우가 좋은 편입니다.”
“처우가 좋다니요. 그게 어떻게 좋다는 겁니까. 19세기도 아니고 21세기입니다!”
“……다른 과는 아예 퇴근도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시간만 자는 경우도 허다하죠.”
“헙!”
“건강보험 공단에서 정한 수가에 따라 보상받기 때문에…….”
한참 계속된 설명.
다들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르거나, 고개를 젓기 바빴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사회적 존경과 부가 따르는 게 의사였다.
완치된 환자와 보호자가 얼마나 고마움을 표시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돈?
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저런 대우를 받으며 지내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당장.
“의협은 뭘 한답니까!”
“맞습니다! 거긴 노조가 없는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외국 의사들이 태반이었다.
미국이야 강성 노조로 유명한 국가.
해고도 자유롭지만, 파업도 자유롭다.
뭐, 프랑스나 영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근로 시간을 엄격히 규제하니까.
그러니.
“…….”
“…….”
“…….”
“…….”
한국 의사들이 일제히 침묵했다.
말도 안 되는 구조.
거기서 버티는 자신들.
설명할 길이 없다.
진혁마저 침묵하자.
김상혁이 말을 돌렸다.
“뭐, 채용도 쉽지 않은 문제라……. 개원하는 경우도 많아서요. 그나저나 미국은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 겁니까?”
“부족하죠. AAMC(의과대학협회)에서 지금 증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증원이요?”
“네, 40% 이상 늘려 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사람이 없으면 업무 로딩이 걸리고 실수를 유발하는 법이죠.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한테 가는 법이고……. 그걸 왜 모르는 겁니까?”
서로가 서로를 향해 기막힌 표정을 짓고.
납득할 수 없어 하는 일이 반복된다.
김상혁이 침묵하자, 닥터 로빈슨이 말을 이어 갔다.
“AMA(미국 의사협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로 인해 닥쳐올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습니다.”
“의사협회가 말입니까?”
“왜요? 뭐가 문제인 겁니까? 의협은 의사의 복지 증대를 위한 단체가 아닙니까.”
“…….”
한국 의사들이 또다시 침묵했다.
조금 전까진 기뻤는데.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거북함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의사를 늘려 달라고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협회라니.
이진혁이 왜 머리카락까지 밀었는지 알고 있었던 이들이 일제히 천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국은 의사의 정원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고.
장시간 근로를 강요하고 있거늘.
부러울 따름이었다.
* * *
어색해진 분위기.
박영진은 여전히 하하호호거리고 있었지만, 레지던트가 모인 곳은 침묵이 자리했다.
서로가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며 웃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한 진혁이 나섰다.
“한국이야 건보 재정에 한계가 있어서 그렇긴 한데……. 미국은 제약이 없는 겁니까?”
“없긴요. 연방 정부에서 전공의 수련 비용을 지원해 주고 있지요. AMA와 AAMC가 원하는 건 재정 지원 확대입니다.”
“아…….”
“재정 지원이 있어야 의사를 늘릴 수 있으니까요.”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닥터 로빈슨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미국 또한 사람 사는 곳.
생각이 다른 이들 또한 많았다.
“뭐, 보험 업계가 로비 중이죠. 일부 의사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뭐, 정 안 되면 다른 나라 의사들이라도 데려오자는 사람도 많습니다.”
“음.”
“일종의 의사 약탈이죠.”
“스카우트와는 좀 다른 의미군요.”
“뭐, 자발적으로 오게끔 만들자. 뭐, 그런 뜻입니다.”
“…….”
“차라리 그러지 말고 이쪽으로 오시지요.”
“네?”
“트리플 보드에 도전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레지던트를 세 번이나 할 바에는 미국에서 하는 게 낫지요.”
한국 의사 면허증이 미국에서 인정되지 않기에 하는 말.
미국 의사 면허증을 따려면 레지던트 과정을 다시 밟아야 했다.
시험도 통과해야 했고.
그 뜻을 대번에 이해한 진혁이 침묵하자, 닥터 로빈슨이 말했다.
“그게 Dr. Lee에게도 좋고. 뭐,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연봉도 후합니다.”
“…….”
“아, Dr. Kim도 환영입니다. 굳이 거기서 그렇게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아, 그건…….”
“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합니다! 언어야 배우면 그만이죠!”
순수한 호의에 기인한 제안.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난민을 보며 미국에서 잠깐 살아 보지 않을래?
뭐, 이런 뉘앙스였기에, 다들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곧장 자리로 돌아온 진혁이 이메일을 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와 주고받은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Mom! I want to be a Thoracic Surgeo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미국 의대 정원은 16,300명으로 인턴을 대상으로 한 실전적인 술기 책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흉부외과 의사의 연봉이 높아 충분히…….]메일을 후다닥 읽은 진혁이 쓰게 웃었다.
협의 당시엔 놓치고 있던 포인트.
그건 바로 미국 의대 정원이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엔 2만 8천 명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증원한 건가.’
보험 업계의 로비.
산하단체의 반발.
생각이 다른 의사들의 반발.
등등.
여러 난관이 있었겠지만, 증원을 이뤄 낸 미국이었다.
“하아…….”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자 진혁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부와 밀착됐기에 밀어 버린 머리카락.
조금씩 나고 있었기에 간지러웠다.
문제는 답이 안 보이는 한국 상황과 겹치자 두피염에 걸린 환자처럼 간지럽다는 것.
그도 그럴 게.
많은 걸 바꾸고자 했다.
수가도 올리고, 공공수가 제도도 시행하고, 면허 박탈 주체도 바꾸고, 피부 미용 시장도 개방하고, 레지던트 수련 시간마저 줄였다.
하지만.
‘워라벨의 시대가 오면 전부 무용지물이 되겠지. 문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앞으로 닥쳐올 현실을 알고 있었기에 냉수마찰을 한 느낌이라는 거.
쓰게 웃은 진혁이 오지호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병원장님, 갑자기 팀전에 참가하라고 하셔서 다들 당황했지만, 저희가 일 등 했습니다.] [다들 축하 인사도 받았고.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좋습니다. 아, 저를 비롯해 몇몇은 스카우트 제의마저 받았습니다.] [미국은 의협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려고 하는데, 저희도 늘려야…….]한참 계속된 넋두리.
오지호와 친하다 보니 가감 없이 제 생각을 끄적거렸다.
이대로 아프리카 난민보다 못한 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이탈할 거라는 말마저 끄적거린 것이다.
그렇게 한참 메일을 쓰고 있을 때.
닥터 리안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의사를 갈아대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한국은 망했다고.”
또다시 시작된 시비질.
똑같이 인종 차별을 겪었을 흑인 놈이 시비를 거니 더욱 기분이 나빠진다.
그를 상대하기 싫었던 진혁이 침묵하자, 닥터 리안이 다시 주접을 떨었다.
“오우 쉣.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일하다간 다들 떨어져 나갈 거라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니까?”
“…….”
“두고 보라고. 지금이야 버티겠지만 금방 나가떨어질 거야. 다들 개원하거나 도주할 거라고. 한국 의료계는 망했어. 두고 봐, 두고 보라고.”
재수 없는 악담.
질투에 눈이 멀어 내뱉는 개소리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질 현실.
한참 대답 없이 듣고만 있던 진혁이 뒤늦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바꿀 거야.”
“뭐?”
“내가 바꿀 거라고.”
“일개 개인이 시스템을 바꾼다고?”
“그래. 할 자신도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난 반드시 해낼 거라고.”
“무슨 개소리를. 이거 자의식 과잉 아니야?”
닥터 리안이 말도 안 된다며 웃어댔다.
하지만 어머니의 임종마저 보지 못했던 진혁으로선 반드시 해야 할 일.
어차피 봉직의로 다시 사는 삶.
지난 과오를 되풀이할 생각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진혁이 차게 웃었다.
“왜 이렇게 말이 많지? 개인전에서 보자고.”
“…….”
“왜? 이길 자신이 없나? 아주 밟아 줄 테니까. 그때 보자니까?”
안 그래도 봐 줄 생각이 없었건만, 짜증이 난 진혁이 이를 악물었다.
최선?
최선 따윈 필요 없었다.
실력으로 증명할 때였다.
* * *
뉴욕과 시차는 14시간.
한국은 당연히 새벽이었다.
자정을 넘겨 12시 56분인 것이다.
“하암.”
오지호가 하품하자.
우용만이 혀를 찼다.
“차라리 주무시는 게 낫겠습니다. 라꾸라꾸가 있지 않습니까.”
“허허. 어디 잠이 옵니까. 결과는 보고 자야지요. 하아암.”
다시 하품하는 오지호.
설득을 포기한 우용만이 노트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진도 넣고.
술기 장면도 넣고.
상세하게 서술해야 하는 엄마 시리즈.
일종의 아틀라스처럼 만들고 있었기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접속 서버도 챙겨야 했고.
번역도 신경 써야 했으며.
현지 출판사와 컨택도 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우승을 한 다음엔 띠지마저 붙여야 했으니.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렇게 우용만이 일에 몰두하자.
오지호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헬기를 확인했다.
닥터 헬기의 유용성을 어필했던 이진혁.
그 마음이 갸륵했다.
환자를 위한 마음의 발로.
참의사다운 행동인 것이다.
그러니.
“허허.”
계속 클릭하게 된다.
돈?
돈은 물론 없었다.
하지만 리스라는 훌륭한 제도가 있었다.
뭐, 우용만이 저리 몰두하는 걸 보니 돈도 잔뜩 벌어들일 게 분명한 상황.
누군간 써 줘야 하는 게 도리였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하는 거니까. 암.’
그렇게 한참 미국 병원이 보유한 닥터헬기를 살피고 가격을 보고 있을 때.
진혁의 메일이 도착했다.
팀전에서 일 등을 했다는 말.
2,500명이나 참석한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응급의학 학회에 준함)에서 일 등을 했다는 말에 입이 쩌어어억 벌어진다.
하지만.
“으으음?”
뒷얘기가 문제였다.
너무도 솔직한 글.
미국 의협과 한국 의협의 행태 비교.
열악한 근무 환경 문제.
필터링 없는 팩트 폭행이 계속된다.
거기에 더해.
‘스,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의대 정원도 늘려야 할 거 같다니…….’
또 다른 얘기가 튀어나오자, 혈압이 오른 오지호가 뒷목을 잡았다.
의대 정원 문제.
감히 거론해선 안 되는 성역이었다.
“끄으으으으윽.”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가 사고 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이대로 미국으로 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의 발로였다.
그러니.
“끄으으윽.”
혈압이 계속 몰아치듯 올라온다.
오지호가 뒷목을 잡은 채 끙끙거리자 뒤늦게 우용만이 달려와 소리쳤다.
“병, 병원장님!!!”
“끄으윽.”
“괜찮으십니까!”
“끄으응.”
계속 끙끙거리는 오지호.
우용만이 어쩔 줄 몰라 하다 기함했다.
듀얼 모니터.
그러니까 오른쪽 모니터에 띄워진 헬기를 확인한 것이다.
이번엔 그가 다른 의미로 소리쳤다.
“병원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