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5)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85화(285/388)
285화. 세계응급의학회 (10)
증례 보고부터 연구 논문까지.
매년 숱한 논문이 쏟아지고 수많은 의사가 이름을 휘날린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 의학.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CPR 알고리즘을 건드리다니.
응급 상황에서 투약 영향도를 체크하고.
이를 실험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혹시 모를 의료 소송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오지호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공동수상을 할 수 있었다.
“과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치프!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혁아 축하한다!!”
흡사 축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자리.
한국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못해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이진혁과 김상혁은 타겟 약물을 잡고 기획안을 썼다는 이유로.
박영진은 논문의 1저자라는 이유로 상을 받았지만, 경사 중의 경사인 것이다.
물론 가만히 축하 인사만 건넨 건 아니었다.
다들 목을 쭉 내밀고, 어깨를 활짝 펴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의학 분야만큼은 후진적이라고 평가받던 동양.
그것도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망해 버렸다고 평가받던 한국에서 온 자신들이었다.
그렇게 흥분을 감추지 못 할 때.
박영진에게 다가간 진혁이 속삭였다.
“병원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안 그래도 바로 전화드리려고 했어.”
“전화드릴 때 닥터 리안에 대한 건도 말씀드렸으면 합니다.”
“음? 그건 묻기로 하지 않았나.”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뜬금없는 제안에 박영진의 눈이 커졌다.
빚을 지워 둔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묻는 것에 동의했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 있을 수 있었다.
* * *
디너 갈라쇼만 남은 상황.
박영진이 ICEM의 호스트인 미국의 위원장. 그러니까 Dr. Andrews를 찾았다.
“닥터 리안 말입니다.”
“아아. 그 일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체면을 세워 준 일. 잊지 못할 겁니다.”
“그게 참……. 곤란하게 됐습니다.”
“……?”
“위에 보고드렸는데……. 병원장님이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한국에서 공론화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아…….”
“이게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었는데…….”
말꼬리를 잔뜩 흐리고.
미간엔 힘을 준다.
곤란해 죽겠다는 표정.
일종의 연극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 턱이 없는 Dr. Andrews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안 좋았다.
정교수라고 하지만 박영진 또한 일개 봉직의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안 그래도 Dr. Lee에 대한 관심이 큰데……. 녹취록이 그대로 퍼지면…….’
그의 표정이 무거워지자, 박영진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음? 병원장을 설득할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네, 돈만 밝히고. 적자 때문에 수익에 예민하신지라…….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게 조금…….”
“허허. 속 시원히 말씀해 보세요. 뭘 원한답니까.”
박영진이 뜬금없이 오지호를 디스하자, Dr. Andrews가 답답해했다.
원래 윗사람은 그런 존재.
미국 병원만큼 영리성을 추구하는 곳도 없었으니, 오지호 또한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박영진이 침묵하자, Dr. Andrews가 재촉했다.
“병원장이 만족할 만한 대안. 아니 뭐 조건이라도 있는 겁니까?”
“그게……. 저, 대시보드 말입니다.”
“아아. 이번에 도입했다던 그 시스템 말이군요.”
“예. 환자나 보호자의 난동도 줄어들었고. 만족도 또한 30% 이상 상승했습니다.”
“뭐, 직접 순서를 확인할 수 있으니 당연하겠죠. 근데 그건 왜……?”
“도입 의사를 밝힌 병원이 몇 군데 있습니다만. 위원장님이 힘을 좀 써 주시면…….”
돈만 밝히는 병원장을 설득해 이번 일을 무마할 수 있다는 말.
Dr. Andrews가 대뜸 박영진의 손을 움켜잡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베스트.
극한의 영리성을 추구하는 미국 병원만큼 돈이 많은 곳도 없었다.
뭐, 그냥 헛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대시보드는 민원에 시달리는 응급의학과 소속 의사들에게 단비가 돼 줄 터였다.
* * *
남자 의사는 정장을 입고.
여자 의사는 드레스를 입으며 술을 마신다.
일종의 사교 파티.
그것이 갈라 디너쇼였다.
그러니.
“아. 죽겠다, 죽겠어.”
“안 되는 영어를 하려니 미치겠다.”
다들 기진맥진한 얼굴을 했다.
한국팀이 빼어난 면모를 보였기에 관심이 쏠린 건 당연한 일.
문제는 안 되는 영어로 응대하려니 죽을 지경이라는 거였다.
물론 시달린 건 진혁도 마찬가지.
쏟아지는 관심에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기분만큼은 최고였다.
‘병원장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다니…….’
박영진의 보고를 받은 뒤 걸려 온 전화.
오지호는 연신 허허거렸다.
무슨 말을 해도 ‘허허허허.’ 거리며 웃기만 했고, 이를 듣다 보니 자신이 통화를 제대로 하고 있는 지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피곤에 찌들어 돌아온 호텔.
마땅히 룸으로 돌아가야 할 박영진이 다가왔다.
“잠깐 나 좀 보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모양.
진혁이 군말 없이 박영진을 따라나섰다.
잠시 후.
“커피?”
“아뇨, 이제 잘 시간인데요.”
“그럼 홍차로 하지.”
“과장님도 홍차로 하시겠습니까? 제가 주문하고 오겠습니다.”
“아니야, 됐어. 내가 하면 돼.”
손수 주문까지 하는 박영진.
성군다운 모습.
아니, 완전히 자신을 믿는 모습이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박영진이 다시 한번 진혁을 치하했다.
“고생했어.”
“아닙니다. 다른 선배들이 상을 받지 못해서 조금 그랬습니다. 다 같이 고생했는데요.”
“내가 알아서 챙길 거야. 섭섭지 않게 해야겠지.”
“옙.”
진혁이 뜨거운 홍차를 홀쩍이자, 박영진이 웃어 보였다.
“사실 진종욱 교수량 충돌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
“아…….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니, 뭐. 이젠 내 사람이야. 둘 다 내 사람이라고.”
박영진이 속뜻을 내보였지만, 진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좋다가도 한순간에 틀어지는 게 인간관계.
오지호나 한동수와는 다른 유형인 박영진은 조심할 대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시보드 말이야. 위원장도 도와줬지만, 도입 의사를 밝힌 병원이 300곳이 넘어.”
“네?”
“왜? 너무 많나? 여긴 미국이야, 미국. 의사도 돈이 많지만, 병원도 돈이 많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박영진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박영진이 말을 이어 갔다.
“차세대 의료정보 시스템까지 구축한다는 병원도 있어.”
“대시보드만 도입하는 게 아니라, 차세대 EMR도 한다는 겁니까?”
“뭐, SI(구축형 사업)라 수익률은 높지 않겠지. 그래도 기대 이상이야. 예상 매출액만 500억이 넘어.”
“……!”
“뭐, 모든 병원을 바로 시작할 순 없고. 일단 레퍼런스부터 확보하고 진행할 거야.”
“와…….”
진혁이 또다시 눈을 뻐끔거렸다.
2020년은 돼야 응급실에 도입된 대시보드.
이를 2000년도에 선보였으니 시스템을 탐내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차세대 EMR까지 영업했다니, 대단했다.
아니, 그보다.
‘천조국이 천조국한 건가?’
미국이란 나라는 스케일 자체가 어마무시했다.
* * *
아신 병원은 아신 재단 소속.
재단을 만든 건 대기업이다.
그리고 그 대기업엔 늘상 그렇듯 IT 관계사가 있었다.
“단가가 저렴한 영향도 있겠군요.”
“뭐, 그렇지. 미국에 비할 바는 못 되니까.”
“RFI(자료요청서)랑 RFP(제안요구서)를 검토해 보고 제안가가 나와야 정확한 매출액을 산정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500억은 그냥 러프하게 추산한 거야. 일단 Dr. Andrews가 있는 롱아일랜드 주이시 병원부터 도입하기로 했어.”
확실한 고객마저 있다는 말.
한참 좋아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진혁이 뒤늦게 얼굴을 굳혔다.
‘서신대도 품질이 안 좋아 난리였는데…….’
글로벌 딜리버리 센터를 통해 원가 절감을 했지만, 불만이 컸던 차세대 사업.
해외 PJT가 늘상 그렇듯 요구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던 불상사가 있었다.
‘잘못하면 우리가 그 꼴 나겠는데…….’
“차세대 EMR은 무엇보다 UI가 중요합니다.”
“음?”
“유저 인터페이스가 얼마나 친화적이냐에 따라 평이 갈릴 겁니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의사들이 쓰는 시스템이니까요.”
“흠.”
“아직 본원도 서류 차트를 병행하고 있는데. 디자인 팀을 고용해서 UI/UX에 신경 써야 합니다. 그게…….”
한참 계속된 설명.
서두르다 괜한 기회를 날릴 수 있다는 경고이자 요구 사항을 반영하다 손해를 볼 수 있다는 말을 한참 늘어놨다.
이에.
“뭐, SI니까 적자가 날 수 있지. 그래도 상관없어. 안 그래도 놀고 있는 사람 천지니까.”
“음…….”
“곧 긴급 운영회의가 열릴 거야. 본원도 진행하기로 했고.”
“본원도 말입니까?”
“뭐, 아신 IT가 MM이 남는 모양이야. 겸사겸사 레퍼런스도 쌓고. 서로 좋은 게지.”
안 그래도 불편해 죽겠던 상황.
차세대 EMR이 도입되면 UI/UX 측면에서 진일보할 테고.
도입 초기에는 늘상 그렇듯 불만글이 폭주할 테지만, 지금보단 훨씬 좋아질 터.
빨리 빨리의 대명사인 한국인답게 다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참신함과 희소성.
잠재성과 밝은 미래.
비현실성이 가져다주는 충격까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린 천재를 향한 대중의 열광은 광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13살에 가오카오(중국 수능)에 응시하고.
10살에 네덜란드 공대에 입학하고.
9살에 하버드에 들어간 천재까지.
어리면 어릴수록 화제가 되고, 언론에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게 현실이었다.
물론 진혁의 나이는 낙제점.
미국 나이로 27살.
이제 곧 28살이 되기에 한참 늦었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R2입니다. 한창나이지 않습니까.”
“고작 20대 후반인데…….”
의학계만큼은 이진혁의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알고 있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천재 의사 이진혁! 올해의 논문상 받아!』
『International Scholar Awards란?』
『동양에서 온 천재 의사!』
『한번 보면 다 따라 할 수 있다!』
쏟아지는 신문 기사.
그리고 내로라하는 거물들의 인터뷰.
행사를 주체했던 미국은 연일 시끄러웠다.
『ICMJE(국제 의학 저널 편집자 위원회)에서 1978년에 논문의 연구 과정. 출판 과정. 그리고 저자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이번 연구 결과는 그에 부합하며…….』
『우리 ICEM은 응급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 코리안 닥터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타블로이드에서 거론되던 이진혁을 이젠 주요 일간지까지 거론하는 상황.
그 결과는 간단했다.
의학 서적 코너에 있던 『엄마! 흉부외과에 가고 싶어요!』에 띠지가 둘러진 것이다.
홍보용 띠지를 의학 서적에 두르는 건 처음 있는 일.
운영과장인 우용만 또한 역사를 쓰고 있었다.
* * *
의학 서적의 타겟은 의사와 의대생.
그들을 대상으로 고액의 서적을 파는 게 전부.
그러니 먼저 이름이 있어야 했고 역사가 깊어야 했다.
안 그래도 봐야 하는 책이 산더미.
논문마저 쏟아지고 있었으니.
괜한 책을 보며 시간 낭비를 할 순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합리적으로만 행동하는 동물이던가.
유명세에 솔깃한 이들이 숱하게 책을 샀고.
시리즈로 급하게 내놓은 다른 엄마 시리즈 또한 미친 듯이 팔리기 시작했다.
같은 의사지만 연봉이 넘사벽으로 차이나는 미국.
그들은 아틀라스처럼 사진이 잔뜩 들어가 있고.
Q&A까지 구비되어 있는 사용자 친화적인 서적에 열광했다.
그간의 의학 서적은 글자만 빽빽했으니까.
그 결과 진혁은 바로 귀국할 수 없었다.
각종 인터뷰를 해야 했고.
수없이 많은 의학 신문이 미국에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냥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정확한 기전은 모릅니다.”
“그건…….”
한참 계속된 설명과 변명.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말에 나도 모른다로 대답했다.
회귀자라고 밝힐 수도 없어서 생긴 일.
뭐, 결과로 입증했으니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물론 신문 인터뷰만 한 건 아니었다.
유명인이 진행하는 쇼에 나가 처음 그 능력을 밝혔을 때의 비디오도 틀어 주고.
직접 술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낭보는 연이어 날아들었다.
아직 모든 엄마 시리즈가 발간된 게 아닌 상황.
거액의 선인세를 받게 됐고.
그걸 고스란히 써 버렸다는 거였다.
* * *
한 달 뒤.
진혁의 앞엔 닥터 헬기가 서 있었다.
거액의 선인세.
그리고 구축사업 발굴.
아신 병원 소속으로 명성을 드높인 일까지.
여러 일이 겹치며 생긴 선물.
그것도 재단 이사장이 건넨 선물이었다.
곧이어 이어진 건 시범 비행.
굉음을 울리며 풍납동을 나는 닥터 헬기 안에서 진혁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조금씩 변화되는 미래.
이젠 환자를 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니 노회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진혁도 어린애가 된 것처럼 외칠 수 있었다.
“가즈아!!!”
이젠 환자를 살릴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