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Doctor Just Wanted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289)
회귀 닥터는 조용히 살고 싶었다-289화(289/388)
289화. 이현아 (4)
한동수가 앉았던 의자.
땀으로 흥건했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의자에 젖은 땀이 남아 있을 정도다.
‘땀을 이렇게 많이……. 아직 힘드신 건가.’
집도의는 환자 왼편.
퍼스트 어시는 그 맞은편에 서는 게 통상적인 수술실 배치.
이 정도일 줄 꿈에도 몰랐다.
진혁이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고작 2시간 40분.
장시간 수술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끝냈다.
한데 땀을 저리 흘렸다니…….
“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진혁이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자.
마취과 의사인 박의만이 입을 열었다.
“이 선생, 뭐 해? 환자부터 옮겨. 정 간호사님은 의자 좀 닦아 주세요. 오피캡(OPCAB) 때문에……. 아시죠?”
“아아, 알죠. 온도 높였잖아요.”
“아효~ 더워~!”
“어머. 박 선생님도 땀나세요?”
“그럼요. 더워 죽겠는데. 티가 안 나네요. 저도 의자에 앉았으면, 뭐. 말 다 했죠.”
뻔히 보이는 거짓말.
OPCAB이라 온도를 높였다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멸균천을 챙겨 의자를 닦는 간호사도.
환자의 머리 위. 그러니까 모든 걸 관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박의만도 개의치 않아 했다.
다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 * *
또라이. 개자식. 쓰레기.
온갖 별명이 다 붙고.
뒤에서 욕먹는 게 집도의.
수술실만 들어가면 지랄 맞은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동수는 사랑받고 있었다.
마취과 의사.
그리고 간호사한테.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박의만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크음, 큼. 말 안 해도 알죠? 비밀입니다.”
“음?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러게요. 뭐가 비밀인데요?”
다들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그 모습에 박의만이 웃었다.
“아뇨, 없었죠. 늙으면 주책이라더니. 제가 실수했네요.”
“에이, 참.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서 놀랐잖아요.”
“하하. 그렇죠.”
너스레를 떠는 스크럽 간호사.
고개를 주억거리는 서큘레이팅 간호사까지.
다들 입을 싹 닫았다.
소문이 빠른 병원.
한동수를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한동수에게 무리한 부탁을 한 건 아닐까 하며 자책하고 있던 진혁 또한 입을 열었다.
“어효. 더워. 빨리 옮기겠습니다.”
“회복실로 옮기고. 바로 보호자한테 가 봐.”
“아…….”
“왜, 지인이라며. 괜히 남아 있지 말라고.”
“감사합니다.”
“30분 뒤에 SICU(외과계 중환자실)로 올릴 테니까. 그리 알고.”
“넵.”
이젠 진짜 옮길 차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어?”
멀쩡했던 EKG 그래프가 출렁였다.
얕은 침음성을 내뱉은 진혁과 달리, 박의만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는 뭐. 빈번한 일이잖아. 아, 아직 CS 아니지?”
“네, 그렇긴 한데. Q파가 조금…….”
“수술 후 생긴 Q파. 뭐, 심각한 건 아니야. 종종 있는 일이라고.”
“…….”
“심장 박출 계수도 괜찮고. BP(혈압)도 스테이블 하다고.”
“…….”
“에이, 참. 이래서 지인 수술엔 들어오는 게 아니라니까.”
진혁이 침묵하자.
박의만은 수다쟁이처럼 굴었다.
그 딴에는 진혁을 달래는 거다.
가족이나 지인. 그 누가 됐든 수술실에 들어오지 않는 게 상례.
감정 컨트롤이 안 될 수 있었기에 하는 행동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반박하지 않는다.
어차피 혈액 검사를 하고.
심전도, 혈압, 심장 박출 계수까지 모니터링할 테니까.
그뿐이랴.
오피캡(OPCAB) 이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그러니까 심방세동, 심방 부정맥, 심실성 조기 박동, 빈맥성 부정맥까지.
여러 합병증이 뒤따르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찝찝하지?’
미묘한 거슬림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베드에서 손을 뗀 진혁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수술 전후 과정을 되짚는 것이다.
실수한 부분은 없었는지.
혹시 놓친 건 없는지.
전부 다 살폈다.
결론은 심플했다.
실수 같은 건 없었다.
심장은 아신 병원 최고라 할 수 있는 한동수가 집도했고.
그 자신도 도왔으니까.
근데 왜 이런 걸까?
이현아의 부친이라서?
저도 모르게 감정 이입을 해서?
의문도 잠시.
이번엔 박의만이 침음성을 토해 냈다.
이번엔 산소포화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 *
전신마취로 진행된 수술.
당연히 호흡기를 씌웠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익스튜베이션(Extubation, 호흡기 제거)을 했다.
자발 호흡이 가능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세츄레이션(산소포화도가)이 조금씩 떨어지는데요.”
산소 포화도 수치가 낮아지고 있었다.
“음, 잠깐. 잠깐만. 지켜보자고. 방금 익스튜베이션 했잖아.”
“네.”
“아직 의식도 없다고.”
“…….”
진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페이션트 모니터만 바라봤다.
90%를 밑돌면 저산소증 주의 상태.
조금씩 떨어지던 세츄레이션은 어느새 91%에서 멈춰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88%까지 떨어지자.
진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셀 세이버(Cell saver, 자가수혈기) 때문에…….”
“음?”
“셀 세이버 부작용이 아닐까요?”
“뭐?”
“자가 수혈한 건 좋은데. 유일한 부작용이 호흡부전이라서요. 그게.”
“잠깐, 잠깐만.”
박의만이 곧바로 진혁의 말을 잘랐다.
다시 세츄레이션이 떨어졌기 때문.
“알부테롤(기관지 확장제)이랑 코르티코(코르티코스테로이드, 기도 염증 감소를 위한 약물) 투약합시다!”
“예!”
“푸로세마이드(이뇨제) 슈팅해요!”
“넷!”
박의만과 마취과 소속 간호사가 빠르게 손을 놀렸다.
이뇨제를 사용해 폐의 체액을 줄여 주고.
기관지 확장제를 추가로 투약하는 것이다.
이어진 건 마스크의 재연결.
결국, 기계 환기를 다시 해야 했다.
* * *
상황이 달라졌기에, 회복실까지 따라가 환자 옆을 지켰다.
물론 가만있었던 건 아니었다.
ABGA 검사도 했고.
혈액 검사 또한 진행했다.
그뿐이랴.
심전도 그래프를 계속 주시하며 움직임을 살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사실 심장 수술이라는 게 그랬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근육이 풀리며 흉통을 동반한다.
여러 부작용까지 수반되는 게 심장 수술이란 놈이었다.
그러니.
“저, 괜찮은 거죠?”
SICU로 옮긴 다음에 만난 이현아의 물음에 함부로 답할 수 없었다.
그저.
“괜찮아지실 거예요.”
뻔한 말을 늘어놓을 뿐이다.
하지만 너무 부족한 대답이었을까.
이현아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 그렇죠? 괜찮겠죠?”
“네. 호흡이 조금 불안정하긴 한데…….”
“아…….”
“일단 상태 지켜보다가 바로 시술 들어갈 거예요. 왜, 그 양성 종양이요.”
“기관지 입구를 막고 있다던 그거요?”
“네. 심장이 급해서 먼저 수술하긴 했는데. 시술로 제거하긴 해야 해서요.”
“흐으윽.”
이현아가 또다시 통곡했다.
평소엔 상상할 수 없는 모습.
그녀도 여느 보호자처럼 굴고 있었다.
* * *
부모의 소중함은 잃어 보지 않고선 절대 알 수 없다.
먹고 살기 바빠서.
연애하기 바빠서.
공부하느라.
돈 버느라.
무슨 이유가 됐든.
부모님께 소홀히 하는 게 우리네 삶이었다.
그러니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나온 거겠지.
하지만.
“흐으윽.”
이현아는 울고 또 울었다.
중환자실 면회는 고작 15분.
자신이 엄마 대신 들어가겠다고 고집부린 건 아빠한테 못 했던 일만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빠……. 흐윽. 흑.”
콧물과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상관없었다.
온갖 라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아빠.
어릴 때는 널찍했던 어깨가 어느새 왜소해 보이는 나이가 됐다.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고.
쉽지 않은 생을 살았던 만큼 고생한 흔적 또한 곳곳에 있었다.
잘게 팬 손 주름.
검붉은 얼굴.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었던 우리네 아버지 세대가 가진 특징을 똑 닮아 있었다.
그러니 울고 또 운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빠는 딸에게 있어 첫사랑이나 다름없다고.
그래서 아빠를 닮은 남자한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 아빠에게 잘못했던 일만 기억났다.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고 화냈던 일.
결혼은 언제 하냐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방송국에 처박혀 있었던 명절.
김천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가 멀다고 따라가지 않았던 그 자신과 이를 섭섭해하던 아빠.
잘못한 일투성이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간섭하지 말라는 이유로.
소중한 사람의 존재를 잊고 멀리한 것이다.
“흐으윽. 미안해요. 죄송해요. 아빠. 흐으윽.”
오열과 통곡만 하다 끝난 면회 시간.
밖으로 떠밀려 나온 이현아는 의자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이진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을 잡아 줬지만,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이 지나 조금은 진정된 이현아가 입을 열었다.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요. 고맙다고도 안 했고. 그냥 당연하게 여겼어요.”
“…….”
“회사에 다니면서 알았죠.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빡센지. 아빠는 어떻게 30년을 넘게 회사에 다녔을까요?”
“…….”
“그래도 고맙다고도. 감사하다고도 안 했어요. 그 흔한 정장도 안 맞춰 드리고. 그냥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사느라 바빴어요.”
자신의 행태에 대한 통철한 반성.
이를 묵묵히 듣던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원하는 대로 살라고 아버님이 저렇게 고생하신 거예요.”
“나 때문에 그랬다고요?”
“네. 그래서 좋아하셨을 거예요. 딸이 방송국 PD가 된 것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프로그램이 런칭된 것도. 자막에 이현아라는 이름을 보는 것도. 전부 좋아하셨을 거예요.”
“……진짜, 진짜 그랬을까요?”
“그럼요.”
“…….”
“앞으로 잘하면 돼요. 아직 시간이 있잖아요.”
진혁의 위로에 이현아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잘할 수 있을까.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낯부끄럽다며 하지 못했던 자신이니까.
* * *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먹고살기 힘든 게 세상살이였다.
그러니 누굴 탓할 수조차 없었다.
거친 세파와 맞서 싸우며 담배 한 모금으로 평안을 찾고자 했던 그녀의 부친.
1934년생답게 무뚝뚝할 대로 무뚝뚝한 그녀의 부친을 빼닮은 이현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세상이 문제였다.
각박하고 또 한없이 각박한 게 우리네 삶이었으니까.
그러니 의사라는 직업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직업.
평생 면허 하나로 먹고살 수 있는 게 의사였다.
괜스레 부모님이 생각난 진혁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저 진혁이에요.”
[밥은? 밥은 먹었고? 수술은 잘 끝났니?]“아직 지켜봐야 해서요. 그보다 같이 여행 가기로 한 건…….”
[뭐, 그건 다음에 가면 되지.]“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고맙기는 무슨.]“엄마…….”
[응?]“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낯부끄러운 고백.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마저 빨리 뛴다.
하지만 해야 할 말.
다시 인생을 사는 자신은 반드시 해야 했다.
허나.
[으음? 너 혹시 무슨 사고 쳤니? 왜? 뭔데? 뭔데 그래?]어머니의 반응은 여전했다.
나직한 한숨.
그리고 헛웃음까지.
이불킥을 할 정도로 부끄러웠던 진혁이 이번엔 아버지한테 전화했다.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버지.
어머니한테 하는 것보다 백 배, 아니 천 배는 더 부끄러웠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방금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뭐? 너 혹시…….]“아,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사랑한다는 말은 자주 할수록 좋은 거래요.”
[너 혹시 애 가졌니? 사고 쳤어? 여자 친구는 뭐래? 그쪽 부모님께 말씀은 드렸니?]“네?”
아버지의 반응 또한 여전했다.
표현에 서투른 건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 * *
통화를 끝낸 진혁이 곧바로 일어섰다.
의대 정원 문제를 언급했고.
아직 의료계가 시끄러웠기에, 그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던 오지호.
차세대 EMR을 빌미로 한 달 동안 미국에 체류할 것을 명한 건 회피나 다름없었다.
기나긴 휴가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동수는.
‘몸이 멀쩡하지 않았는데도 도전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말이 나올 걸 알면서도 집도했다.
빌어먹을 유전병과 싸우길 천명한 것이다.
평생 시술만 할 순 없으니까.
그러니 자신 또한 돌아가야 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병원장님, 저 이진혁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두 번째 면담이었다.